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96)
제 296화
296화
제론이 요구한 조건은 사령관이 처음 제시한 마리온 왕국의 작위와 왕실의 보물이 아니었다.
남대륙인이었다면 좋다고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남대륙인이 아닌 제론과 일행들에게 귀족의 작위는 어디를 가던 시선을 끌고 발목을 잡는 신분에 불과했다.
“마리온 왕국에서 신원을 보장하는 자유 기사 신분과 각종 포션을 비롯해 여러 가지 지원 물품을 넉넉하게 챙겨주십시오.”
“그 정도면 충분합니까? 보상이 너무 적지는 않습니까?”
사령관은 내심과 다르게 얼굴을 굳힌 채 묻는다.
제론과 일행들에게 부탁한 의뢰는 목숨을 걸고 싸워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칼밥으로 먹고 사는 용병이라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의뢰를 받아들이는 조건이 고작 저 정도라는 건 사실상 말도 안 된다.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저 한 명에게 자유 기사의 신분을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용병단 전원을 말하는 거죠. 그리고 저희와 함께 다니는 용병들에게도 마찬가지로요.”
“함께 다니는 용병들이라면…… 으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래도 보상이 적다고 생각하지만 납득이 안 될 정도는 아니군요.”
한두 명도 아니고 11명의 자유 기사 신분이라면 귀족작위를 내어주는 것 못지않다.
마리온 왕국에서 신원을 보장해준다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고가의 포션을 잔뜩 안겨주는 게 나중에 말이 덜 나온다.
“아무튼, 전부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론과 일행들이 막사 밖으로 나가자 사령관은 참모들과 연합군을 어디까지 퇴각시켜야 할지 회의했다.
* * *
제론은 말콤의 부하들을 불러 사령관과 나눈 이야기를 전달했다. 말콤의 부하들은 살짝 당혹스러운 기색을 비쳤지만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말콤의 입장에서도 훗날 남대륙에서 활동할 기반이 쌓이는 거니까 너희들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 만약 뭐라고 하면 나한테 말해.”
“……믿겠습니다.”
말콤의 부하들은 제론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말콤에게 받은 지시가 제론과 일행들을 찾으면 잘 모시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이번 일 역시 그것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오크들의 전력은 어느 정도라고 파악됐습니까?”
“나도 몰라. 흑마법 때문에 엄청 많이 죽었을 거라는 예상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해.”
“…….”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믿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콤의 부하들은 제론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지휘부의 회의가 끝나고 퇴각로가 정해졌다.
수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도시였다.
오크들이 뛰어넘지 못할 만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수성할 때 유리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도시와 주변 마을의 거주민을 대피시키라고 전령들을 보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이튿날 아침. 제론과 일행들은 수백 명의 정예 병사들과 함께 퇴각로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병사들을 이끄는 기사가 경직된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마리온 왕국의 루인 기사단 소속 베캄이라고 합니다.”
“A등급 용병 아론 다이트입니다. 용병단 ‘에스파다’를 이끌고 있습니다.”
“젊어 보이시는데 용병단을 이끌고 계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어렸을 적부터 칼로 먹고살아서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분들도……?”
“예. 신입으로 들어온 한 명을 빼면 그렇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실례가 되었군요.”
제론은 베캄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용병들을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바라본다. 하지만 베캄의 말투와 표정에서는 조금도 비꼬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처럼 정말로 실례를 했다는 미안함만 느껴진다.
“베캄 경께서는 이 일에 자원하신 겁니까?”
“예.”
“죽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생각했습니다. 어젯밤에는 오크한테 산 채로 잡아먹히는 악몽을 꿨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더군요.”
“그런데 왜 자원하신 겁니까?”
“으음.”
“대답하시기 곤란하다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곤란한 건 아닙니다. 제 입으로 말하자니 조금 부끄러워서요.”
베캄이 귓불을 붉힌 채 투구를 긁적였다.
제론은 그가 말하길 기다렸다.
“제 어릴 적 꿈은 용사였습니다.”
“용사요?”
“네. 마왕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했는데 서로 사랑에 빠져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에서 나오는, 그 용사 말입니다.”
베캄이 왜 말하기 부끄럽다고 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농담하지 말라며 믿지 않았거나, 그딴 게 꿈이냐고 비웃었겠지.’
야만족의 침공은 북대륙만의 일이 되고 몬스터와 도적의 들끓음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이벤트가 되어버리며, 지난 수백 년간 대륙은 평화로웠다.
그 외로 어떠한 것도 대륙을 위협하지 못했다.
아니.
위협적이지 못하다고 느껴버리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모든 것이 안전할 거라고 위험은 없다며 생각하는, 소위 말해 안전불감증에 걸려버린 것이다.
그러한 시대에서 ‘용사’라는 단어는 아주 먼 옛 과거에만 존재했던 잔재에 불과했다. 안타깝기는 했지만 베캄의 꿈이 비웃음당하는 게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시대가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수백 년간 평화로웠던 대륙은 과거가 되었다.
각 대륙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위험 속에서 사람들은 옛 과거처럼 ‘용사’ 혹은 ‘영웅’이 나타나 평화를 되찾아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저는 약하지만 용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베캄의 긴 이야기가 끝을 맺었다.
제론은 그를 비웃지 않았다.
과거 유민현이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삶을 살아간 것처럼 베캄 역시 자신의 삶을 똑바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좋은 꿈이로군요.”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베캄은 긴장이 완전히 풀렸는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 * *
연합군이 퇴각하는 사이, 투캉쿠는 오크군과 함께 죽음의 구름이 가라앉아 있는 지역을 우회하고 있었다.
연합군과 하루의 거리가 남았을 무렵 새로운 오크군이 합류했다.
새로운 오크군을 이끌고 나타난 하이 오크는 대부족 카쿠른의 2번째 이빨 케루타였다.
“전사 투캉쿠여. 이 나약한 인간은 누구냐?”
“크릉. 전사 케루타여. 그 나약한 인간은 인간 협력자이다.”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
케루타가 로브를 뒤집어쓴 인간을 면밀히 살펴봤다. 사내답지 못하게 톡 건드리면 부러질 것처럼 앙상한 팔과 다리로 무엇을 협력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약한 인간들이 전략이라는 것을 펼쳐 강한 적들을 상대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전사 투캉쿠여. 그대의 육신이 전사의 신께 돌아가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
“크릉. 전사 케루타여. 알고 있다. 투캉쿠는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다. 이제는 전사의 신께 돌아갈 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충고를 하자면 쫓고 있는 인간들 중에 강한 인간이 몇 명 있다. 그중에서도 특출한 인간이 있다. 그 인간을 조심하라.”
“특출한 인간을 조심하라고?”
“무척……이나 강한 인간……이다. 전사의 신께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
투캉쿠의 눈빛에서 불이 꺼졌다. 케루타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겨우 붙잡고 있던 생명의 끈을 놓친 것이다.
케루타가 무너지는 그의 몸을 잡고 천천히 눕혔다.
그리곤 외쳤다.
“크르릉! 전사 투캉쿠가 전사의 신의 곁으로 돌아갔다!”
“전사 투캉쿠가 전사의 신의 곁으로 돌아갔다!”
모든 오크들이 발을 구르며 외쳤다.
케루타가 투캉쿠의 시신과 그의 자루만 남은 무기를 함께 땅속에 묻고, 새로운 오크군의 지휘관이 되어 인간 연합군을 추격했다.
로브를 뒤집어쓴 인간-흑마법사는 손톱을 깨물었다.
‘투캉쿠를 겨우 구워삶았더니 일이 예상과는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했어.’
케루타는 투캉쿠와 다르게 늙은 하이 오크가 아니었다.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나?’
카득.
깨물던 손톱이 부러졌다.
* * *
제론은 큰 바위 위에 앉아 검을 손질했다.
오크를 잔뜩 베었더니 검신이 기름으로 번들번들했다.
“닦아도 계속 나오네.”
기름이 엄청 끈적끈적해서 잘 닦이지도 않는다. 물로 빨아도 기름이 그대로 배어 있으니 버린 천만 몇 개째인지 모르겠다.
“저도 미치겠어요.”
아래에서 들려오는 에르딘의 목소리.
제론이 고개를 빼꼼 내밀자 천으로 창을 닦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기름이 창날에 흡수된 것처럼 자꾸 새어 나와요.”
“그냥 나중에 닦을까? 어차피 또 싸울 텐데.”
“그게 낫긴 할 텐데…… 에휴. 그래도 닦아야죠. 잘못하면 날이 상할 거 같아요.”
화르륵!
에르딘이 다시 힘을 내서 닦으려는 순간 제론이 삼매진화를 일으켜 검에 묻은 기름을 단숨에 태워버렸다.
그럼에도 기름이 남아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나았다.
“삼매진화로도 전부 못 없애네.”
“그래도 꽤 없어졌는데요?”
에르딘도 따라 했지만 제론의 삼매진화와 다르게 기름이 조금만 사라졌다. 괜한 분통을 터트리며 다시 한번 삼매진화를 일으키려는 순간 베캄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정찰병이 돌아왔습니다. 오크군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흑마법사가 펼친 죽음의 구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건 연합군뿐만이 아니었다. 오크군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또한 후방으로 퇴각해야 하는 연합군과 다르게 오크군은 언데드를 피해 멀리 돌아와야 해서 거리가 많이 늘어나 최소 하루가 차이 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오크군이 언제쯤 도착할 거 같다고 합니까?”
“지금 같은 속도로 이동한다면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사이에 도착할 것 같다고 합니다.”
“놈들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군요.”
“맞습니다.”
제론은 잠시 고민한 뒤 말했다.
“저희가 기습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예?”
베캄이 무슨 뚱딴짓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 * *
“크릉!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간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오크군은 야영지를 구축했다. 오크들이라고 밤눈이 밝은 건 아니다. 평지였다면 모를까 산악 지대에서 강행군을 하다가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피해가 계속 생길 것이다. 행군을 멈추고 쉬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케루타는 막사로 들어가 나약한 인간 조력자를 불렀다.
“크릉. 앉아라. 나약한 인간.”
로브의 사내는 케루타의 맞은편 빈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전사 투캉쿠가 말한 특출한 인간이 누구인지 물어보려고 불렀다.”
“저도 투캉쿠의 곁에 있었던 터라 알지 못합니다.”
“왜 특출한지도 모르는 건가?”
“……투캉쿠께서 어떤 모습을 하고 계셨는지 기억하십니까?”
“기억한다.”
케루타가 투캉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오른쪽 어깨가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날려 보내 그렇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크릉?”
“투캉쿠께서는…….”
콰앙-!
로브의 사내가 말하던 도중 폭발에 휘말려 날아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