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97)
제 297화
297화
오크군 진영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어두운 밤하늘이 잠시나마 환하게 밝아질 정도로 화끈한 폭발이었다.
이런 짓을 저지른 사람은 당연하게도 제론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론이 메이엔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지만 말이다.
제론은 낮은 언덕 위에서 혼란에 빠진 오크군 진영을 훑었다.
폭발은 단순히 터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천막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오크들이 진화鎭火에 나섰지만 산속에 옹달샘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불가능했다.
“다음 걸 준비해줘요.”
“알겠어요.”
메이엔이 비구름을 몰고 올 마녀의 비술을 준비했다.
“베캄 경.”
“알겠습니다.”
베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바이저를 내리고 크게 숨을 마셨다.
처음 기습이라는 말을 듣고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반대했다.
당연했다.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오크군의 숫자는 최소 수천 명이었다.
수백 명의 병사로는 절대로 이기지 못할 압도적인 전력 차이였다.
아니.
이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끈다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제론의 말은 맨땅에 헤딩을 하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맨땅이었다면 대가리가 깨질지언정 파이기라도 했을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쳤다면 흰자와 노른자로 더럽히기라도 했을 것이다.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왔지, 자살을 하러 온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본 순간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났다.
‘어쩌면.’
실낱처럼 작고 가느다란 희망이라는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셨던 숨을 토해내며 그는 외쳤다.
“……전원! 돌격!”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오크 진영을 향해 달려갔다.
에르딘과 쟌느, 로레인도 병사들 속에 섞여서 이동했다.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베캄이 말의 고삐를 힘차게 잡아당기며 돌격했다.
제론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메이엔과 로건의 주변에 진법을 설치하며 말했다.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빠져요.”
“알겠습니다. 제론 님께서도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마녀의 비술을 준비하고 있는 메이엔을 대신해 로건이 말하며 제론에게 축복을 걸었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 제론이 뒤돌아 오크군 진영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지휘관이 누구냐.’
제론은 앞서 돌격한 병사들보다 먼저 오크군 진영에 도착해 하이 오크의 기운을 탐색했다.
하이 오크의 것으로 짐작되는 기운들이 제법 많았다. 정확한 숫자가 20명. 국경 전선에서 연합군과 싸울 때보다 숫자가 2배나 많았고 흑마법사를 죽이려고 날렸던 검강을 막은 하이 오크-투캉쿠-보다 더욱 강했다.
남대륙으로 넘어와 지금까지 만난 오러 마스터 급의 힘을 지닌 오크가 대륙에서 공인한 오러 마스터들의 숫자 절반을 넘는 것 같다.
웬만한 왕국은 며칠 안에 지도에서 사라지리라. 제국이라고 불리는 두 곳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총력을 쏟은 상황이 아닐 테니 이런 놈들이 더 많다는 건데.’
정체 모를 녀석들이 오크들의 옆구리를 찌르며 남대륙을 손아귀에 넣으라고 부추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크들이 남대륙에만 한정되어 산 것이 아니라 전 대륙에 퍼져 살았으면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오크가 지배자로 군림했을지도.’
제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화재를 진압하고 있던 오크들을 급습했다.
“취익!”
“인간! 인간이 있다!”
“인간이…… 사라졌다?!”
급습한 뒤 은신술을 펼쳐 사라지자 오크들이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그런 오크들을 뒤로 한 채 유유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제론이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하이 오크를 공격했다.
“크릉?!”
“오, 막았어?”
괜히 하이 오크가 아니었다.
대충 서걱 썰어버리고 끝내려고 한 공격이지만 막혔다.
“하지만 두 번은 없어.”
“……!”
검강으로 무기와 함께 목을 베고 다음 타깃으로 향했다. 하지만 제론은 알지 못했다.
지휘관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 * *
“커헉!”
로브의 사내는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었다.
잠깐 정신을 잃었다.
폭발 이후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욱신거리는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어질어질한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오크군 천막들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이지만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에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정신이 돌아오자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맞았다.
‘누가 습격을 한 거지?’
연합군은 아니다.
언데드를 이용해서 국경 전선을 지키던 그들을 격퇴했다.
2차 지원군도 다른 오크군이 모조리 쓸어버렸다.
‘설마 퇴각하던 연합군이 다시 돌아왔다고?’
말도 안 된다. 이 정도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킬 마법사와 배짱이 있었다면 국경 전선에서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케루타! 케루타는?’
뒤늦게 떠오른 케루타의 존재.
“허……!”
케루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하이 오크의 사체가 보였다. 반쯤 숯검정이 된 모습. 저런 상태라면 운 좋게 살았어도 살아 있는 거라고 할 수 없었다.
‘일단 나부터 살아야 한다.’
이런 폭발을 또다시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주변 광경만 보자면 가히 대마법사가 펼친 하이 써클의 마법이다. 적들이 진영 중심까지 침투하지 못한 지금이 기회다.
케루타의 시체로 다가가 라이프 드레인으로 아직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은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욱신거렸던 몸이 좀 나아지자 주변 상황을 조금 더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의 폭발 이후로 변한 건 없다.’
진영을 공격하는 병사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천 명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전투가 계속된다면 어디 소속인지 알지 못할 병사들의 패배가 확실해진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해.’
아까의 폭발 때문인지 큰 불안감이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고, 본능이 퇴각을 해야 한다며 외치고 있었다.
‘퇴각해야 한다.’
로브의 사내는 본능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 * *
베캄은 검을 휘둘렀다.
“헉! 헉!”
오러 소드를 겨우 만들어내는 수준에 불과했던 오러의 양이 오크를 베어내는 횟수가 많아지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제법 뚜렷한 오러 소드가 검에 맺혔다. 하지만 지금은 체력이 밑바닥까지 닳았다.
타고 있던 말도 오크의 도끼에 목이 잘려 죽었고, 무거운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채 힘겹게 검만 휘두르고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눈앞이 흐릿해졌다. 하지만 베캄은 숨을 고를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두르는 횟수가 한 번이라도 줄어든다면 병사가 1명씩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헉! 헉!”
그런 베캄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잠시 숨을 골라요.”
“숨을…… 헉! 헉! ……고를 시간이……!”
“제가 상대하고 있을 테니까 어서요.”
베캄은 담담한 목소리를 듣자 저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제론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일은 그 뒤였다. 제론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오크들이 다가오는 족족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저건 뭐지?’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현실감이 떨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오크들이 바람이 불자 떨어지는 낙엽처럼 보였다.
“퇴각 준비를 해야 합니다.”
“……네?”
낙엽…… 아니, 오크들이 휙휙 쓸려나가는데?
아직 숨을 고르지 못해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이었다.
“계속 싸우면 병사들이 모두 죽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오크군에게 꽤나, 아니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했고요.”
“……네?”
하이 오크만 10명을 제거했으니까요, 라고 제론이 덧붙였다.
어느 정도 숨을 고른 베캄이 이번에도 똑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 * *
베캄이 퇴각명령을 내리기 전에 오크군이 먼저 퇴각했다. 그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크군이 왜 퇴각하는 거지?”
기습이 완벽하게 성공해서 오크군을 큰 혼란에 빠지게 만들어 많은 피해를 입혔다고 하지만, 병사들의 숫자는 고작 수백 명에 불과했다. 이대로 전투를 계속 이어간다면 상황이 반전되는 건 금방이다. 퇴각을 해야 하는 건 오히려 이쪽이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베캄만큼은 아니지만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바로 제론과 그의 일행들이다.
“쟤네들 왜 도망쳐요?”
“나도 몰라.”
제론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에르딘이 솔직하게 말하라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농담이나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몰랐다.
베캄에게 퇴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전투가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병사들이 전부 죽었을 테니까.
그런 상황에서 제론과 일행들만 살아 돌아가는 건 그림이 이상했다.
오크군에게 병사들을 팔아먹고 살아 돌아온 게 아니냐고 의심을 받아도 ‘내가 진짜 그랬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라고 자기최면을 걸 정도로 충분히 납득이 될 만할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은 달랐다.
와아아아아!
오크군이 퇴각하는 모습을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들의 환호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런 병사들의 흥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지만 빠르게 퇴각 준비를 지시했다.
오크군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답이 없어지는 상황이 닥쳐온다.
그 전에 서둘러 전장을 벗어나야 한다.
후위 정찰병을 배치하고 빠른 속도로 전장을 이탈했다.
1시간을 행군했다. 주변에서 시야 안에 들어오는 오크군이 없자 잠시 행군을 멈추고 휴식했다. 그리고 후위 정찰병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도착한 그들이 오크군이 다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정말로 퇴각했군요.”
조금은 허탈한 표정으로 베캄이 말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왔는데 자잘한 상처들과 지친 것만 빼면 멀쩡히 살아서 돌아간다는 사실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진짜 본론은 이다음이었다.
“우리가…… 정말로 이겼군요.”
이제야 승리했다는 사실을 체감한 것이었다. 죽어도 조금만 시간을 끈다면 이긴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벽한 승리. 그것도 대승을 거뒀다.
질끈 감겨진 그의 눈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목숨을 걸어준 병사들 덕분입니다.”
그는 제론과 일행들, 마지막으로 병사들을 향해 허리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오열했다.
* * *
“오크군은…… 오지 않는군.”
사령관은 정찰병의 보고를 듣자 마음의 짐이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죽으러 간 기사와 병사, 그리고 제론과 그의 일행들에게 미안했다.
“후우.”
담배 연기가 오늘따라 눈을 따갑게 만든다. 그렇게 눈앞이 흐릿해지려는 순간 경계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가 달려와 외쳤다.
“와, 왔습니다!”
“설마 오크군이 왔다는 거냐!”
사령관이 물고 있던 담배를 집어 던지며 일어선 순간 병사가 다시 말했다.
“베캄 경과 병사들이 돌아왔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