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299)
제 299화
299화
퓨리온 공작의 잔소리는 30분 이상 이어졌다.
“……자네? 내 말 듣고 있는 겐가?”
“예. 안 듣고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귀를 닫고 있던 말콤은 퓨리온 공작이 무슨 말을 했는지 조금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말만큼은 확실하게 듣고 대답했다.
“허. 지나치게 솔직한 친구로구만.”
“참고 살던 시간이 길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솔직히 말하게. 이제는 이 늙은이가 편하지?”
“사실 그렇습니다.”
서대륙에서 대외적으로 알려진 퓨리온 공작에 대한 평가는 상하 관계가 철저하고 격식을 따지며 고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말콤은 제론을 통해 퓨리온 공작과 인연을 맺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만약 퓨리온 공작의 성정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했을 것이다.
“쯧. 제론 그놈이 다 망쳤어.”
“제론 님께서요?”
“그래. 오냐오냐해주니까 네놈까지 날 편하게 생각하잖아. 나중에 그놈을 만나면 아주 그냥 혼쭐을…….”
말콤은 또다시 시작되는 잔소리에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잔소리가 정겹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네.’
곧 그가 웃음기를 지웠다. 멀리서 다가오는 다수의 기척을 느꼈기 때문에. 옆에서 함께 걷던 퓨리온 공작도 잔망스럽던 입술을 다물고 손을 들어 병사들을 멈추게 했다.
몇 발자국 뒤에서 따라오던 부관이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아차리고 묻는다.
“바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합니까?”
“아니. 주변만 경계하도록 하시게. 싸우러 온 게 아닌 모양이니까.”
부관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잠시 후 수십 명의 오크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퓨리온 공작과 말콤의 시선이 다른 오크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크고 손바닥 한 뼘만큼 긴 송곳니를 가진 오크에게 향했다.
“저 녀석이 말로만 듣던 하이 오크인 것 같군.”
“그런 것 같습니다.”
“어때? 싸우면 이길 수 있겠는가?”
“지금은 조금 버겁겠군요.”
“버겁다고?”
퓨리온 공작이 눈빛을 반짝반짝 빛냈다. 골똘히 생각하던 말콤이 체념을 하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예. 버겁지만 이길 것 같습니다.”
“……일부러 약 오르라고 그런 거지?”
흠칫 놀란 말콤이 퓨리온 공작을 쳐다봤다. 눈빛이 짜게 식어 있었다. 절대로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여간 그놈한테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퓨리온 공작이 투덜거리는 사이 오크들이 멈춰 섰다.
하이 오크가 혼자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같이 가지.”
“……알겠습니다.”
말콤은 퓨리온 공작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갔다. 하이 오크와 10미터 거리가 남았을 때 특유의 누린내가 코를 찔러왔다.
“고기가 먹고 싶어지는 그런 누린내군.”
“공작님. 지금은 조금 자중해주십시오.”
“허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대접을 받아가며 아직까지 살아 있을까? 나이가 들었으면 죽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주름 하나 찾을 수 없는데 무슨 노화입니까?”
“육체가 젊어졌다고 해서 정신이 젊어지는 건 아닐세. 명심하시게.”
퓨리온 공작은 엄중하게 충고하며 하이 오크의 앞에 섰다.
“크릉! 대부족 잉카엔의 3번째 이빨 주도로다.”
“폴른 제국의 퓨리온 공작일세.”
“…….”
“자네는 뭐 하나?”
퓨리온 공작이 말콤의 옆구리를 찔렀다.
눈썹을 찡그린 말콤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S+등급 용병 말콤입니다.”
“크릉?”
하이 오크 주도로가 말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곧 남대륙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곤 고개를 끄덕인다.
“서대륙의 용병이군. 크릉.”
“그래서, 무슨 일로 우리를 찾아왔는가?”
퓨리온 공작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묻는다.
주도로가 콧김을 거칠게 뿜어내고 말한다.
“크릉! 남대륙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전언하러 왔다.”
“그럴 수 없다면?”
“우리의 분노를 받게 될 것이다.”
“허허. 말년에 화끈하게 놀 수 있겠군.”
주도로는 눈을 날카롭게 뜨며 퓨리온 공작을 노려봤다.
* * *
세인로 도시에 입성한 연합군은 대대적인 수성을 준비했다.
공성 무기를 파괴하기 위해 수성 무기를 설치하고 마법사들을 부려 성벽으로 접근하는 오크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마법진을 설치했다.
엄청난 재물이 소모됐지만 아낄 틈이 없었다.
세인로 도시가 함락된다면 모든 게 끝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2차 지원군이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사령관은 벌떡 일어나 기뻐 소리쳤다.
오크군의 공격으로 2차 지원군이 전멸한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살아남은 병력이 존재했다. 그들이 규합하여 보급품을 싣고 오고 있다고 한다.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겠군.”
“소식을 전파하도록 하겠습니다.”
2차 지원군 소식을 들은 병사들의 사기가 높아졌다.
“빌어먹을 오크 새X들. 가만두지 않겠어!”
“이번에는 꼭 로크의 복수를 해주마.”
이러한 상황을 반기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암암리에 연합군의 정보를 빼내 오크군에게 제공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자신을 제외하고서도 오크군의 협력자가 더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만나야겠어.”
이대로 연합군이 승리한다면 자신의 신세가 실이 끊어진 연처럼 땅으로 고꾸라질 것을 알기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오크군이 승리하게끔 만들어야 했다.
오크군의 협력자만이 알 수 있는 신호를 남기고 다녔다.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혹시 이건 어떨까요?”
“떠오르신 생각이 있으시다면 흔쾌히 말씀해주십시오.”
“오크군의 공성이 시작되면…….”
은밀하게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대화를 은밀하게 듣는 이들도 있었다. 제론이 준 아티팩트로 마법 감지를 피해 숨어든 말콤의 부하들이었다.
‘좋은 정보다.’
* * *
4일이 지났다.
퇴각했던 오크군은 새로운 군대를 이끌고 빠른 속도로 진격해 세인로 도시의 성벽 앞까지 도달했다. 성벽 위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들은 엄청난 숫자의 오크군을 바라보며 질린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저 정도면 2만 명은 되지?”
“……2만 명밖에 안 되길 바랄 뿐입니다.”
선임 병사의 말에 후임 병사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크군의 숫자가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막사의 숫자만 대략 8천 개가 넘었다.
한 막사에서 오크가 3명씩 머무른다고 해도 최소 2만 4천 명 이상의 병력인 것이다.
게다가 오크가 가진 힘을 생각하면 인간의 병력으로 따졌을 때 10만 대군을 우습게 뛰어넘는 전력이다.
“만약에 말입니다.”
“……어.”
“저 오크 놈들이 한 번에 쳐들어오면 어떻게 됩니까?”
“미친놈아! 그런 끔찍한 말 하지 마. 그리고 설령 한 번에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을걸? 산을 깎아서 만든 곳이 세인로 도시야. 성벽 바깥 경사가 가팔라서 성벽을 타고 올라오다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목이 부러져서 죽거나 데굴데굴 굴러간다고.”
선임 병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사령관이 세인로 도시에서 수성을 선택한 이유는 마리온 왕국에서 가장 높은 성벽을 자랑하기 때문이었다.
성벽의 높이만 무려 30미터!
보통 성벽을 최대 15미터에서 20미터 사이로 짓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성벽이었다. 하지만 30미터의 성벽이 전부가 아니었다.
선임 병사의 말처럼 성벽 바깥 경사가 무척이나 가팔라서 사실상 30미터보다 더욱 높다고 봐야 했다. 성벽을 타고 오르다가 떨어지면 목이 부러진다는 말이 절대로 과장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윗분들이 설마 모르시겠어?”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안심한 표정으로 경계를 서던 두 병사에게 다음 경계 근무자가 왔다.
“어이. 형씨들. 교대할 시간이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뭐 하고 있었길래 교대시간이 다 된 것도 몰랐어?”
병사들은 낄낄거리며 인수인계를 마치고 근무를 교대했다.
“그럼 수고들 해.”
“……어? 어이. 잠깐만!”
성벽을 내려가던 병사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목소리.
병사들이 서둘러 성벽 위로 다시 올라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오크가…… 오크가……!”
“설마 오크군이 쳐들어오는 거야?”
“저, 저기를 봐.”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보자 아무런 변화도 없는 오크군 진영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더 아래! 더 아래를 보라고!”
병사들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성벽으로 걸어오는 하이 오크의 모습이 보였다. 하이 오크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치자 병사들은 숨을 멈췄다.
“대부족 발자크의 2번째 이빨 우르쿠다. 연합군 총지휘관을 불러라!”
“뭐,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한다! 대부족 발자크의 2번째 이빨 우르쿠다! 연합군 총지휘관을 만나고 싶다!”
“…….”
병사들은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이내 자신들의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대를 마치고 복귀하려 했던 병사들이 상부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취침하던 사령관이 헐레벌떡 성벽으로 나갔다.
“내가 연합군 사령관이다.”
“크릉! 대부족 발자크의 2번째 이빨 우르쿠다. 현재 오크군의 총지휘관이다.”
“대부족 발자크라면…….”
사령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말로 큰일이군.’
투신 발자크 이후 최강의 하이 오크가 대족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대부족이 전쟁에 참여했다.
오크군 총지휘관과 연합군 총지휘관의 대화는 길지 않았다.
우르쿠가 요구한 것은 연합군의 항복이었다.
항복하고 성문을 연다면 절반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권유했다.
사령관은 재고할 필요도 없이 거절했다.
“그런 개수작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차라리 이곳에서 뼈를 묻겠다!”
“크릉. 알겠다. 전사로서 그대의 생각을 존중한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우르쿠가 몸을 돌리다가 멈춰 섰다.
“궁금한 게 무엇인가?”
“오크는 무슨 이유로 남대륙을 지배…… 아니! 어째서 아무런 죄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싹 다 죽인 거냐!”
“크릉. 싹을 제거해야 하니까. 그게 전부다.”
빠드득!
사령관은 이가 부러질 것처럼 세게 갈았다. 핏발이 선 눈동자로 우르쿠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는 신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아니. 우리가 반드시 그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
“기대하고 있지.”
우르쿠가 송곳니를 훤하게 드러내며 웃었다. 병사들이 옆에서 사령관에게 활을 쏴도 되냐고 물어봤지만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른 새벽 적의 공격이 있을 것이다.’
미래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예감이 들었다.
* * *
밤이 깊어지자 성안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궁병들이 성벽 위로 올라가 활과 석궁을 장전하고 오크군을 향해 겨눴다. 아직 오크군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지만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텁텁한 공기가 흘렀다.
각 성문을 지키기 위해 10명의 기사들과 500명의 병사들이 배치되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 오크군 진영에 변화가 없자 병사들이 술렁였다.
“아무래도…….”
목소리를 꺼낸 병사의 머리가 무언가로 인해 사라졌다.
“……오크군이 공격했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생각한 오크군은 어느새 성벽 지척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