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1)
제31화
31화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아무리 생리현상이라지만… 응? 어디 가는데?”
“흠?”
제론이 말하며 일어나자 로한과 카론은 설전을 멈췄다.
곧 두 명은 어느새 저 멀리까지 가 있는 제론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반짝 빛내며 일어섰다.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기려나 보군.”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뭐,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제론은 두 명이 몰래 따라붙는 것을 눈치챘으나 내버려 뒀다.
어차피 누나를 보러 가는데 재밌는 일 따위가 생길 리가 없었다.
‘나한테는 재밌는 일이겠지만 말이지.’
누나한테 가는 이유.
단순히 가족으로서 안부를 묻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아카데미 입학식 때 약속한 것을 지켰는지 확인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
히죽히죽 웃으며 친구들과 어디론가 가던 누나가 갑자기 흠칫 놀라더니 미어캣처럼 서서 고개를 쭉 뺀 채 사방을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어후. 직감이 거의 짐승 수준인데?’
제론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낮추며 생각했다.
누나와의 거리는 약 100m가 된다.
100m는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제론은 살짝 기척을 감춘 상태였다. 완전히 감췄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카데미 안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꼬맹이들이 뛰어다니면서 몸을 퍽퍽 치기 때문이다.
물론 제론이 다치는 일은 없었다.
꼬맹이들이 다칠까 봐 염려돼서 그렇지.
그런 이유로 기척을 살짝만 숨긴 채 잘 피해 다니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제론의 기척을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누나는 말 그대로 짐승에 가까운 직감으로 불길함을 알아차렸다. 무공을 가르쳐준다고 너무 괴롭혔나 싶었지만 이게 모두 다 누나를 위해서였다.
“언제까지 내가 누나를 케어해 줄 수는 없으니까.”
페리안 남작가는 사천당가처럼 데릴사위제가 아니다.
귀족은 웬만하면 같은 귀족끼리 결혼하니까 남편의 가문으로 들어가서 살게 될 것이다. 그전까지만 누나를 열심히 잘 키워줄(?) 생각이었다.
“헤샤, 갑자기 왜 그래?”
“으, 으으. 갑자기 불안해졌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그럼 얼른 가자. 네가 불안하다고 할 때마다 꼭 무슨 일이 생기더라.”
친구들이 누나한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내공을 돌려서 들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나는 못 박힌 것처럼 가만히 서서 절망에 빠졌다.
“아냐. 이번에는 못 피해.”
“뭐?”
“오, 오고 있어!”
“뭐가? 누가 오고 있는 건데?”
“그 녀석!”
“……설마 네 동생?”
제론은 다가가다가 기가 차서 헛웃음을 들이켰다.
얼마나 많이 친구들한테 자신의 욕을 했으면 그 녀석이라는 말에 바로 네 동생이냐는 질문이 돌아올까!
“아우으.”
누나는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거의 주저앉으려고 했다.
‘아이고. 다치면 어쩌려고!’
제론이 재빨리 다가가서 팔을 붙잡았다.
“아, 깜짝아!”
“억!”
누나의 친구들이 갑자기 나타난 제론을 보고 기겁했다.
곧 비슷한 나이대의 훤칠해 보이는 미소년이라는 것을 깨닫자 두 뺨에 발그레 홍조를 띠며 옷차림을 가다듬었다.
“어머. 잘생긴 신사분이셨네.”
“오늘 화장 잘 안 먹혔는데 하필…….”
곧 한 명이 조심스럽게 제론에게 물었다.
“누구신……?”
“미안해! 아직 못 외웠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숙제랑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절대로 고의는 아니니까 용서해줘!”
친구의 질문이 끝나기 전에 누나가 울상을 지으며 외쳤다. 누나의 목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주변에서 돌아다니던 꼬맹이들이 전부 이쪽을 쳐다볼 정도였다.
“아카데미 다닐 때는 바빠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일어나. 내 팔 떨어지겠다.”
제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누나를 달랬다.
하지만 본심은 달랐다.
‘한마디로 혈도 다 안 외웠다는 거잖아?’
개수도 몇 개 안 된다.
전부가 아니라 3분의 1만 외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외워?’
마음 같아서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도 들어가서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잔뜩 겁에 질린 누나의 얼굴을 보니 제론의 마음이 살짝 약해지려고 했다.
“저, 정말……?”
“물론이지. 나도 한 달 만에 누나 얼굴 보는 건데 잔소리부터 하겠어?”
제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친구들의 표정에 놀랍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누나?”
“그럼 이분이 그 녀… 아니 동생이라는 거야?”
“이런 훤칠한 외모의 동생이 있었어?”
친구들이 제론의 얼굴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아래까지 훑어봤다. 얼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몸도 좋다. 팔뚝에 선명하게 갈라진 근육이 있는 것을 발견하자 두 뺨에 띤 홍조가 더욱 짙어졌다.
‘저 팔뚝에 안기면 어떤 느낌이… 어맛?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홍조가 띤 게 아니라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그런 친구들의 표정을 발견한 누나-헤샤의 표정이 한순간에 돌변했다. 포식자가 피식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사나운 짐승의 눈빛으로 변한 채 스산한 목소리로 묻는다.
“너희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동생분께서 너무 멋…… 아니 아니! 이런 분을 동생으로 둬서 든든하겠다고 생각했어. 나도 이런 분이 동생으로 있었다면 좋겠다!”
“맞아맞아! 나도 똑같이 생각했어.”
“물론이지! 그렇고말고!”
친구들의 구차한 변명을 들은 헤샤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오우! 우리 누나 카리스마 엄청난데?’
제론이 누나의 의외의 면모에 깜짝 놀라 입꼬리를 씰룩였다.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더니 밖에서 누나가 골목대장 정도는 되나 보다.
‘암 그래야 말고. 나랑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가면 순한 양보다 더 순해지지만 밖에서도 그러면 안 되지. 내 누나인데 대륙 정도는 호령해야지 않겠어?’
제론은 누나의 모습을 보며 내심 뿌듯했지만 표정을 관리했다.
그런 제론을 향해 두 개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카론과 로한이었다.
잠시 누나와 대화(?)하는 사이에 바로 앞까지 온 것이다.
두 명이 누나에게 정중하게 귀족의 예법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론의 누님 되십니까? 제론의 친구 카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론의 친구 로한이라고 합니다. 하하! 제론이 누굴 닮아서 잘생겼나 했더니 누님을 닮아서 그랬군요.”
누나와 누나의 친구들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두 명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상위부생이 입학생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놨다고 하지만, 1학기부터 파벌을 나누거나 가문의 사익을 위한 접근을 금지한 것이지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막은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왕세자인 1왕자와 아이언하트 공작가의 차남이었다.
오른 왕국을 이끌어갈 어린 차기 권력자 두 명이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이들이 두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아카데미 내부에도 소문이 퍼졌고 많은 상위부생들은 두 명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래서 평범하게 아카데미를 다니던 상위부생들조차 저 두 명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누나-헤샤의 친구들이 그런 부류였다.
“1왕…… 아니…… 그……!”
“어, 어떡하지?!”
친구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헤샤는 카론과 로한에게 다가가 씨익 웃으며 손을 뻗었다.
악수를 하자는 뜻이었다.
카론과 로한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선 차례대로 헤샤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카론이랑 로한이라고?”
“예, 누님.”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제론 잘 부탁해.”
마지막 말에서는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누구를 잘 부탁한다고?
한 달 동안 모든 아카데미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녀석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제론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해도 모자랄 처지였다.
“자자, 아무튼. 나는 누나랑 할 말이 있으니까 너희는 이만 가라. 가족들끼리 하는 이야기니까 혹시나 따라오지 말고. 특히 로한 너 말이야.”
“어? 어어.”
“그래, 로한 너 말이다.”
카론이 로한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 * *
제론과 헤샤는 카페로 가서 시원한 생과일주스를 주문했다.
음료가 나오자 구석에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혈도는 다 외웠어?”
“그래. 그 질문할 줄 알았다.”
헤샤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옆으로 고개를 떨궜다.
아까는 바빠서 그럴 수 있다고 말했는데 시선을 마주친 순간 친구들이 있어서 잠깐 넘어가는 것이라며 눈빛으로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아니. 아직 못 외웠어. 절반 정도?”
“오. 당당하네.”
“거짓말 해봐야 통하지 않을 테고.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가면 눈물 콧물 줄줄 짤 건데 벌써부터 기죽을 필요 없지!”
헤샤가 떨궜던 고개를 하늘 높게 들며 당당하게 외쳤다.
제론이 키득 웃으며 말했다.
“뭐… 누나의 그 의지는 잘 알겠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뭐라고 할 생각이 없긴 해.”
“뭐?! 왜?!”
헤샤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 흔들렸다.
‘으음!’
제론은 누나의 저 모습을 보고 나니 왠지 모를 변태성이 깨어나려는 것을 느꼈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집이 아니잖아. 밖에서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누나의 체면을 지켜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아……!”
제론의 말을 듣고 감동했는지 헤샤가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꿈틀꿈틀.
제론의 완전히 깨어난 변태성이 검은 속내에서 꿈틀거렸다.
‘참자, 참아. 여긴 집이 아니다.’
제론은 억지로 변태성을 억누르며 생과일주스를 빨대로 쭈욱 빨아올렸다.
상큼한 비타민이 몸에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톡톡 쏘는 탄산이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2학기에 연금술 클럽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거기에서 마음껏 실험을 하며 음료에 주입할 탄산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아무튼, 혈도 다 외웠는지 확인하려는 것도 있지만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어보려고 왔어. 원래는 형한테 먼저 찾아가려고 했는데 안 보이더라고.”
제론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형이 어디에서 뭐 하고 있는지 확인도 안 해봤다. 카론과 로한 두 명과 있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가던 누나가 보여서 무작정 온 것이다.
“오빠는 바쁘다고 하더라고. 나도 입학식 때 잠깐 보고 그 뒤로는 본 적 없어서 잘 몰라. 아마도 졸업시험 때문이겠지.”
“흐음. 졸업시험이라. 형이 졸업부생이니 당연한 건가?”
아카데미는 7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졸업하게 되지만 마지막 시험을 통해 컨펌을 받아 왕실이나 귀족 가문의 초빙을 받게 된다. 단순히 돈이 많은 평민도 귀족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를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중 하나인 것이다.
“나도 2년 뒤에는 졸업부생이야. 머지않았어.”
“그전까지 내가 열심히 굴려줄게. 걱정하지 마.”
“그게 더 걱정된다고! 아니, 그전에 왜 굴릴 생각부터 하는 거야?”
“당연히 누나가 걱정되니까. 너무 약하다고? 어디 가서 안 맞고 다니려면 지금보다 10배는 강해져야 해.”
“지금보다 10배 강해지려면 적어도 마스터 수준은 돼야 하는 거 아냐?”
제론은 대답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었다.
헤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처럼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