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10)
제 310화
310화
‘궁지에 몰린 쥐 같군.’
제론은 사령관이 심리적으로 곤궁에 처한 것을 알았다.
이성적인 상태였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무모한 작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부터가 증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단순한 추측에 불과했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른 작전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지극히 위험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을 말이야. 뭐…… 그럴 확률은 낮지만 말이야.’
사령관의 눈동자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지휘관과 참모들 앞에서 보여준 태도와는 전혀 달랐다.
발몽크를 만난 뒤로 겨우 가라앉았던 공포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커져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조금 심각한데?’
제론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했다.
그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무슨!”
손을 뻗어 사령관의 손목을 잡자 그가 깜짝 놀라며 크게 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제론이 그의 손목을 통해 내공을 불어넣자 불안과 초조함, 그리고 발몽크에 대한 공포로 지배당하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표정이 평온해지며 은은한 미소가 입가에 맺혔다.
“무슨 일이십니까?”
때마침 사령관의 막사 앞에서 보초를 서 있던 기사들이 입구를 살짝 걷어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제론을 노려보며 묻는다.
사령관은 흠칫 몸을 떨고선 기사에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흥분한 것이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시거나, 생길 것 같으시면 아무 소리라도 외쳐주십시오.”
“알겠네. 그리고, 잠시 동안 내 막사로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게. 적어도…….”
“5미터 정도면 충분합니다.”
제론이 사령관의 눈길을 의식하고 작게 말했다.
사령관은 고개를 작게 끄덕인 뒤 기사들에게 5미터 정도 멀어지라고 말했다. 또한 그 안으로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했다. 만약 경고를 무시하고 다가온다면 그 누가 됐든 간에 베라고 지시를 내렸다.
“무척이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터이니.”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제론을 쳐다보다가 정확하게 5미터 멀어졌다. 사령관의 직속 부하로 보였다.
‘충직한 기사들이군.’
제론의 그런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사령관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실력은 어떻게 보이십니까?”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과 상급. 하지만 실전경험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이 오크와 싸운다면 50프로 확률로 죽을 겁니다.”
사령관은 제론의 말을 들으며 뿌듯해하다가 미간을 좁혔다.
하이 오크와 싸운다면 50프로 확률로 죽는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이 오크가 힘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기술은 단순해. 반면 태생적으로 약한 인간은 기술을 갈고 닦아 하이 오크의 강한 힘을 뛰어넘는 게 가능하지. 몇 번의 전투로 그 사실이 입증되었어. 그런데 어째서?’
막사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기사들은 연합군의 모든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몇 번의 전투로 하이 오크를 단독으로 쓰러트린 결과를 내보이기까지 했다.
“50프로도 높게 쳐준 겁니다. 만약 하이 오크의 몸 상태가 완전에 가까웠다면 90프로 확률로 죽었을 겁니다.”
제론이 다리를 꼬며 계속 이야기했다.
“싸움이라는 건 단순한 전투력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날의 기분과 몸 상태, 주변 환경 등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합니다.”
“운이 좋았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사령관은 제론의 말을 대충이나마 이해했다.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하는 입장이었다면 기사들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금까지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던 것이다.
세인로라는 요새가 없었다면 전멸했으리라는 예상처럼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좋은 생각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사령관은 제론의 내공으로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고 정신이 맑아진 지금 자신의 계획이 그릇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른 방법을 떠올린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여전히 암담했다.
오크군과 싸워서 승리할 만한 작전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신이 맑아지지 않았다면 반쯤 미쳐서 다리나 덜덜 떨며 지금 상황을 악몽으로 여기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지푸라기라도 있다면 잡고 싶은 마음이다.’
다행스럽게도 사령관의 앞에는 지푸라기…… 아니, 어쩌면 황금 동아줄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일어나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간청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음. 무엇을 기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전략가나 전술가가 아닙니다. 적을 죽이는 칼에 가깝지요. 그런 저에게 다른 것을 바라시면 안 됩니다.”
“그럼 적을 죽이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사령관은 숙였던 허리를 펴며 제론과 시선을 마주했다. 순간 등골이 섬뜩해졌다. 제론의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무관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마치 오크와의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해도, 패배해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여태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야 시야가 트이셨나 봅니다.”
“……!”
“그럼 적을 죽이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칼을 날카롭게 벼리십시오.”
제론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일어나 천막을 나갔다. 뒤에서 사령관의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그 이상을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저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말을 해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게 사령관은 혼자 남아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천천히 입꼬리를 비튼 그가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 말이었군.”
제론은 ‘칼의 날’이 아닌 ‘칼’을 날카롭게 벼리라고 했다.
그 말을, 이해했다.
* * *
천막으로 돌아온 제론은 일행들을 불러 모아 사령관이 자신의 말을 깨닫는다는 기준으로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전투가 잦을 거야.”
“많은 사람들이 죽겠군요.”
로건이 낯빛을 어둡게 물들였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거기까지였다. 이 전쟁은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연합군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거야. 물론 무리는 하지 마. 다쳐서도 안 돼. 우리도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 말이 머지않아 이곳에서 떠날 것이라는 말처럼 들려왔다.
에르딘이 흐음, 하고 거친 숨소리를 낸 뒤 제론에게 물었다.
“마탑과 교총지부 때문인가요?”
“그래. 지나치게 조용한 마탑도 수상하고, 교총지부가 일으킨 군대의 행적이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수상해.”
오크와의 전쟁도 중요하지만 두 세력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
얼마 전부터는 남대륙과 관계가 없는 무언가가 제론의 직감을 건드렸다.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아인호르타하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만약 그 녀석과 관련된 것이라면 제론으로서도 마땅한 해결대책이 없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녀석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또한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 * *
슈롬벨 백작은 평안한 나날을 보내던 도중 설산의 이상 현상을 보고 받았다.
“산이 죽어가고 있다고?”
설산은 눈 폭풍이 그친 이후로 푸른빛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완벽한 생태계를 찾기까지 몇 년이면 충분하다는 조사결과를 받았다.
그런데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빠르게 생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설마 야만의 땅이 사라진 것과 관계된 것은 아니겠지?”
설산의 변화는 야만의 땅이 사라진 뒤로 시작되었다.
이번 변화도 그것과 관계가 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슈롬벨 백작은 기사와 병사들을 대동한 채 설산으로 향했다.
설산에 도착하자 수많은 인파가 보였다.
각국의 조사대였다.
그들과 접선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큰 소득은 없었다.
여러 가지 추측만 난무할 뿐 ‘이거다!’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내 눈으로 확인해보는 수밖에.”
“안 됩니다.”
“끙.”
슈롬벨 백작은 기사의 ‘안 됩니다’가 누군가의 말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정체는 저택에서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인이었다.
오랜 시간 영지를 비운 대가로 대부분의 가신이 부인에게 붙었다. 동행한 기사 역시 부인의 수족이었다. 슈롬벨 백작이 엉뚱한 짓을 못 하게 감시하는 역할 말이다.
‘이 배신자들.’
슈롬벨 백작은 까드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기사는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자신의 배후를 믿는 것이다.
“후우. 안 된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군.”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부인이 자네에게 이 말은 하지 않았나 보군.”
“……?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자네를 때려눕히고 갈지도 모른다는 것 말일세.”
“백작님!”
기사가 화들짝 놀라며 슈롬벨 백작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오러 익스퍼트 상급인 기사가 오러 마스터인 슈롬벨 백작을 떨쳐내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퍽!
“……!”
“그곳에선 평온하시게.”
슈롬벨 백작의 손날이 기사의 뒷목을 강타했다. 기사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슈롬벨 백작은 그를 간이침대에 눕히고 막사에서 나갔다.
기사를 기절시키기 직전 차음막을 펼쳐서 막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상태였다.
“조사대에 다녀오겠네.”
“알겠습니다!”
슈롬벨 백작은 조사대 진영으로 가는 척하다가 설산으로 향했다.
설산에는 조사대의 일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곳곳에서 이상 현상의 샘플을 채취하거나 아티팩트 혹은 이상한 액체 같은 것으로 실험을 하고 있었다.
대화를 잠깐 엿들어보니 야만의 땅이 있던 곳으로 가기에는 위험하다고 한다.
‘그래도 가봐야지.’
슈롬벨 백작은 과거 그가 머물렀던 설산 수비연합군의 전진기지로 갔다.
다행히도 전진기지가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숨겨뒀던 예전에 사용하던 갑옷을 꺼내서 착용했다.
단순한 갑옷이 아니었다. 갑옷 안쪽에 경량화 마법과 충격 흡수 마법, 실드 마법이 걸려 있는 아티팩트였다.
“비싼 녀석이라서 웬만하면 안 쓰고 싶었는데.”
슈롬벨 백작이 쩝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몰랐다. 아무리 비싸더라도 목숨값보다는 못했다.
설산의 정상에 도달한 그의 눈에 야만의 땅이 존재했었던 바다가 보였다.
예전에 편지로 전해 들은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바다였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검게 죽어가는 산기슭이 보였다.
바다와 맞닿아서 죽어가는 나무들과 식물들도 있었다.
“흐음. 좀 더 가까이 가봐야 하는 건가?”
슈롬벨 백작은 잠깐 고민했다.
이윽고 뒤편의 나무 위를 쳐다보며 재차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