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15)
제 315화
315화
“남대륙을 대표해 감사합니다.”
“그럼 일어나겠소.”
사령관과 이야기를 끝낸 퓨리온 공작은 막사를 나갔다.
막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말콤이 작게 목례를 했다.
“왜 여기에 있으신가? 자네가 매일같이 부르짖던 그놈한테 안 가 있고.”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콤은 덤덤하게 대답하며 돌아섰다. 제론의 막사로 안내하려는 것이다. 피식 웃은 퓨리온 공작이 그를 따라갔다.
“일은 잘 풀리셨습니까?”
“상황이 이런데 잘 풀릴 수밖에 없지. 하지만…… 쉽지 않을 거 같아. 그 녀석이 나서지 않는 이상 놈을 막을 방법이 없어.”
퓨리온 공작이 발몽크와의 싸움을 상기해보고 대답했다.
“저와 함께 싸운다고 해도 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놈과 몇 번을 싸우더라도 이기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잠깐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건 가능하겠지.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팔 하나와 다리 하나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고.”
말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까와는 말씀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만.”
“아까? 내가 무슨 말을 했었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기억이 나질 않네만. 그나저나 여기 밥은 잘 주나? 전쟁을 하는데 든든하게 먹어야지. 이왕이면 맛있는 걸로 말이야.”
“날이 지날수록 파렴치해지십니다.”
퓨리온 공작이 콧방귀를 뀌었다.
“자네도 이 나이가 되면 알게 될 걸세. 낯짝이 두꺼워지다 못해 철로 뒤덮여서 웬만한 말로는 얼굴에 상처도 안 생긴다는 걸 말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멀어? 언제 도착하는 거야?”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한 막사 앞에서 멈춰 섰다.
작게 헛기침해서 목을 가다듬은 퓨리온 공작이 묻는다.
“들어가도 되는가?”
“들어오세요.”
두 사람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제론과 그의 일행들이 대화를 멈추고 일어나 목례했다.
“다들 오랜만일세. 처음 보는 처자도 있고. 사제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신수가 훤해지셨군.”
“공작님께서도 더욱 젊어지신 모습을 보니 그간 잘 지내신 것 같군요.”
“예끼. 늙은이를 놀리면 못 써.”
“어머. 진짜예요. 피부가 저보다 좋아 보이시는데요?”
퓨리온 공작이 자연스럽게 빈자리에 앉으며 일행들과 안부를 나눴다. 그의 뒤에 자연스럽게 선 말콤이 작게 고개를 숙여 제론에게 인사했다.
그 뒤로 짧은 대화가 오간 후 제론이 물었다.
“남대륙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허허. 자네의 일행들이라면 믿어도 되겠지?”
제론이 긍정의 의미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퓨리온 공작은 품속에서 곱게 접힌 편지를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망치 문양의 봉인 인장이 찍혀 있는 편지였다.
“읽어보시게.”
“봉인 인장의 문양이 독특하군요. 망치를 상징하는 귀족 가문은 흔치 않은데 말입니다.”
“드워프를 상징하는 문양일세.”
제론이 편지를 펼쳐 읽으려다가 멈칫했다.
의외의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현 대륙에서 이종족이라고 지칭할 종족은 몇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종족들이 바로 엘프와 드워프였다.
엘프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숲속에서 살아가며, 드워프는 땅속이나 산의 동굴 깊은 곳에서 사람의 눈을 피해 살아간다.
제론도 북대륙에서 엘프와 만나긴 했지만 웬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존재마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드워프라고?’
정말로 의외였다.
의도치 않게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던 것이 아니라 ‘편지’를 이용해 공식적인 존재감을 나타냈다.
‘드워프가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제론은 물끄러미 편지를 바라봤다. 그 이유가 이곳에 적혀 있을 것이다.
* * *
“남대륙에는 몬스터가 적다고 하지 않았나?”
시무르 칸은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물었다.
부관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오크 때문일지도 모르죠.”
“흐음. 일리가 있어.”
남대륙의 상황을 안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남쪽 해안의 몬스터와 해적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오크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북부지역과 중부지역의 왕국에서 병력을 뺐을 것이다. 내륙의 몬스터 토벌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것이다.
“오크들과 용병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몬스터의 번식을 막는 건 어렵겠어. 전쟁이 끝나도 한동안은 골머리를 썩겠지.”
“생각이 전보다 깊어지셨습니다.”
“내가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머리는 좋아.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어.”
“그건…….”
“천재가 아니었다면 내가 오러 마스터가 됐을까?”
“공부 머리와 검술의 재능은 다른 영역입니다만.”
“맞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부 머리보다는 이해력이 좋은 거야. 난.”
부관은 볼을 씰룩거렸지만 시무르 칸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녀석은 어디 있어?”
“마녀의 정보에 따르면 용병으로 고용되어 오크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합니다.”
“용병? 그 녀석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도 모르죠.”
시무르 칸은 모른다는 말에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를 알고 있다면 이렇게 남대륙까지 올 일은 없었을 테니까. 사실 제론의 행보는 참으로 수상하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서대륙과 북대륙으로 여행을 갔다지. 여러 가지 사건에 얽히기까지 했고.”
제론의 정확한 행보는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몇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서대륙에서는 바후르 도적단을 궤멸시키고, 북대륙에서는 야만족의 침공을 막은 주역 중 하나라는 것이다.
“베헤못의 강림을 막아낸 영웅 중 한 명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이건 확실하지 않아. 사실 악마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동대륙에서도 흔하게 있는 일이잖아? 막상 가보면 진짜 소문에 불과했고. 북대륙에서 나타났다는 베헤못도 진짜 마수들의 왕인지 밝혀진 것도 없고 말이야.”
서대륙의 사건은 막을 수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북대륙의 사건은 정보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차단되어 있었다. 야만족의 대대적인 침략을 비롯해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한두 명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정황상 아이오닉 교국도 얽혀 있다는 거지.”
아이오닉 교국의 힘은 제국에 필적했다.
그러니까 가능한 일이다.
“뭐…… 그 녀석을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그쪽으로 가면 동대륙입니다.”
“아, 고마워. 역시 부관을 데려오길 잘했다니까.”
“후우. 저놈의 방향치.”
부관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 * *
연합군과 오크군의 마지막 전투는 각 진영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로 인해 잠깐의 소강 상태를 보였으나 연합군은 서대륙의 군대가 합류하자 빠르게 진격해 오크군을 쳤다.
서대륙의 군대는 퓨리온 공작이 직접 훈련시킨 최정예 병사들이었다.
또한 수많은 전쟁과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전쟁에 있어서는 연합군이나 오크군보다도 몇 수 위인 것이다.
오크군은 크고 작은 전투에서 연달아 패배하여 물러났다.
발몽크를 비롯해 하이 오크들이 나섰으나 퓨리온 공작과 말콤, 그리고 제론과 일행들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자네가 그놈만 해치우면 전쟁이 금방 끝날 텐데.”
“제가 가려고만 하면 도망치는데 어떡합니까?”
“에잉. 이런 불필요한 소모전은 딱 질색인데.”
제론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오크군이 궁지에 몰려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놈들은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지난 10일 동안 치른 다섯 차례의 전투에서 오크군의 피해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
“발몽크를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오크군한테 큰 피해를 입혀야 해. 시간이 흘러갈수록 불리해지는 건 우리 측이니까.”
발몽크가 시간을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거듭된 전투로 소실된 전력을 보충하려는 것이다.
오크들과는 달리 인간은 남부해안과 내륙에서 몬스터와도 싸워야 한다. 지금은 오크와의 전쟁이 급선무라서 대부분의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머지않아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일부 병력을 귀환시켜야 한다.
그 후에 다시 오크군과 싸운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때가 돼서 부랴부랴 귀환시켰던 병력을 돌려보내 봐야 늦는다.
‘거기에다가 마탑들과 교총지부까지 있지.’
황탑이 오크들과 손을 잡은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연합군의 마법사들 중에서도 아는 이가 드물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는 전부 함구령이 내려졌다.
당연하지만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좋지 않은 흐름이야.’
제론은 미간의 주름을 펴며 생각했다.
며칠 뒤 연합군은 총공격을 가했다. 지휘부 역시 전쟁을 오래 끌고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크군 역시 연합군의 총공격에 강력하게 맞서 싸웠으나 대패大敗를 했고, 중부지역까지 물러나며 궁지에 몰렸다.
최후의 전투를 눈앞에 둔 그때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교총지부의 군사들이 천사라고 부르는 강력한 존재들을 이끌고 남부지역의 각국을 공격한 것이다.
“이것은 성전聖戰이다!”
“신께서 명하시되 악으로 물든 이들을 처단하라! 우리는 신의 군사이니 우리를 막는 모든 것은 악惡이다!”
교총지부는 파죽지세로 남부지역의 국가들을 짓밟고 불태웠다.
중부지역과 북부지역의 국가들은 혼란에 빠졌다.
혼란스러운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부지역 해안에서 몬스터들이 의문의 떼죽음을 당해 해안가로 시체가 밀려왔다.
최후의 전투를 앞둔 연합군 역시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길 이틀째.
퓨리온 공작은 무겁게 내려앉은 눈빛으로 오크군이 점거한 성을 바라봤다.
“남대륙에서도 결국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군.”
“예정된 일이었으니까요.”
“서대륙은 일이 커지기 전에 막아서 피해가 작았지만 남대륙은 달라. 그게 문제야.”
“곧 마탑도 움직일 텐데 큰일이군요.”
“자네도 슬슬 결정을 내려. 이대로 끌려다니면 곤란해.”
제론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총지부가 외치는 성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몰라도 계시啓示가 내려진 것은 진실이었다. 드워프가 보낸 편지에는 이러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마르헨 대륙은 멸망할 것이다.
그들의 신이 제사장을 통해 내린 계시였다.
* * *
아인호르타하가 천천히 눈을 떴다.
“……드디어 시작되었나?”
오랜 기다림이었다.
지침과 지루함마저 잊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모든 교단에서 공통적으로 전해져오는 종말의 예언을 떠올렸다.
거대한 혼돈이 전 대륙을 뒤덮을 때가 오리니.
그날이 도적처럼 이르리라.
허나 그 예언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현시대에 없었다. 구전으로도 전해져 내려 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예언을 불완전하게 만든 장본인이 이곳에 있었으니까.
“잊힌 옛것이 나타나고.”
아인호르타하는 예언의 나머지 구절을 떠올리며 천천히 읊조렸다.
“죽은 옛것이 부활하리니.”
그의 두 눈이 선명한 증오로 물들었다.
“모두가 대비하라.”
대비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멸망하리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