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2)
제32화
32화
“휴우. 마스터라는 경지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야.”
헤샤가 투덜거렸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제론의 말을 허언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릴 적부터 기이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제론이었다.
몇 번이나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잠재된 본능이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내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걸로 생각할게.”
“어, 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많이 재수 없네.”
헤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재수 없어도 어쩌겠어? 다 사실인데.”
“동생만 아니었으면 확……!”
제론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다가 물끄러미 헤샤를 쳐다봤다.
누나가 작은 목소리로 옹알거리며 말했지만 뛰어난 청력을 가진 그가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확 뭐?”
“……뽀뽀라도 해줬을 거라고. 응. 정말이야. 믿어.”
헤샤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말했다.
제론은 피식 웃고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형이 졸업시험 때문에 바빠서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건 아카데미 안이 아니라 밖에서 졸업시험을 치른다고 생각해도 되겠어.’
아카데미의 졸업시험은 매해 바뀐다. 1학기에 시행되는 1차 졸업시험은 이론평가였고, 2학기에 시행되는 2차 졸업시험은 실전평가였다.
이론평가가 아카데미 내부에서 시행된 적도 많았지만 실전평가가 시행되는 장소에 따라서 때로는 외부로 나가 졸업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한 번쯤은 찾아왔을 법한 형이 여태까지 코빼기도 안 비췄다는 건 아카데미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졸업시험이 시행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방학 되기 전에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왜?”
“혹시나 형이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니까. 웬만해선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말 그대로 혹시나 몰라서 좀 조치를 취해 놓으려고.”
“생각보다 오빠를 많이 신경 써주네?”
“형보다 누나를 더 많이 신경 써주는 건 모르지?”
“나는 그냥 네가 나한테서 관심을 끊어줬으면 좋겠어.”
“정말로?”
투덜거리던 헤샤가 입을 쏙 다물고 슬쩍 제론의 눈치를 살펴봤다.
말라서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땅만큼이나 무미건조한 시선이다.
헤샤가 단순히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주입식 교육과 더불어 잔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제론을 무서워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때때로 보여주는 저 눈빛.
사람을 무기질처럼 보는 저 눈빛.
가족인 자신을 진짜로 무기질로 보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일부러라도 저런 눈빛을 보낼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이성보다 본능이 발달한 헤샤는 저런 눈빛을 한 제론이 아빠나 엄마보다 더 두렵고 무서웠다.
“다, 당연히 농담이지!”
헤샤의 입에서 바싹 바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제론이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 나중에 누나도 졸업부생이 되면 내가 제대로 손봐줄게.”
“내가 괜한 말을 했네.”
헤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 무덤을 판 기분이었다.
* * *
제론은 누나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돌아왔다.
친구들과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해서 오랜 시간을 빼앗지는 않았다. 모두 합쳐서 20분 정도. 짧다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이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너희 누님 예쁘시더라.”
제론이 돌아오자 로한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카론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누가 예쁘다고?”
“너희 누님.”
제론은 괴상한 것을 본 표정으로 두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
‘우리 누나가 예쁘다고?’
맙소사!
이 세상에서 태어난 지 9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말세가 오려나 보다.
‘아니지.’
곧 제론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누나가 못생긴 건 아니다. 유전자가 한 명한테 몰빵된 것도 아니고 아빠와 엄마의 피를 이었다면 당연히 준수한 외모여야 된다. 그런데 무공을 익히며 신체의 밸런스가 맞춰지면서 성장 속도가 가히 발군에 이르렀다.
누나한테는 아직 주안술을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무공을 배웠다는 사실 자체가 어느 정도 미모를 뛰어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는 거다.
‘게다가 우리 누나가 좀 짐승 같은 매력이 있긴 하지.’
어렸을 때부터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경공과 보법, 신법에서는 형보다 더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덕분에 몸에서 군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아직 애라서 그렇지 똑같은 애들이 보기에는 다를 수가 있을 거야.’
제론의 경우에는 이미 눈이 어른의 초점에 맞춰져서 같은 꼬맹이를 봐도 연애나 그에 준하는 어떤 감정이 전혀 들지 않지만 카론과 로한은 다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나가 예쁘다는 말에는 동의를 못 하겠네.’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뭐… 너희의 미적 관점이 그렇다면야.”
“무슨 소리야?”
“너희 누님 이대로 자라시면 오른 왕국에서 한 손에 꼽히는 미녀가 되실걸?”
제론은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누나의 외모가 아빠의 20프로와 엄마의 80프로를 닮았다.
심지어 아빠의 20프로가 얼굴 쪽이 아니라 신체 쪽으로 몰려 있으니 누나는 엄마가 어렸을 때를 고대로 닮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럴…싸한데?”
“너는 가족이라서 그런 거야. 나도 누님이 있어서 잘 알아. 남자들이 그러어어어엏게 예쁘다고 달라붙는데 내 눈에는 웬 오크 암컷이 취익- 취익- 하는 걸로 보인다니까?”
로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표현이 많이 과격하지만 정말로 사실이었다.
동생인 그의 눈에는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17살의 누나가 끔찍한 한 마리의 몬스터로 보였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면서 달려올 때는 켄타우로스가 돌진해오는 것처럼 무서웠다.
“음. 나도 전담 시녀가 나를 잡겠다고 달려올 때 괴물처럼 느껴지기도 하더군.”
“전담 시녀라면 아르엔 영애 말하는 거야?”
로한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왕실의 시녀는 모두 하급 귀족 가문의 자제로 이루어져 있다.
어렸을 적부터 모두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았기에 행동거지나 몸가짐이 바르고 고왔다.
그중에서도 아르엔 영애는 하급귀족 무트란 남작의 장녀였는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곧바로 1왕자 카론의 전담 시녀 자리를 꿰차며 유명해진 케이스였다.
더군다나 아르엔 영애는 외모가 제법 뛰어나기까지 했다.
그게 왜 그녀가 유명해진 이유냐면 하급귀족의 자제들은 대부분 고위귀족의 첩이나 정략혼의 희생양이 되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다면 그녀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1왕자의 전담 시녀 자리를 꿰차며 어느 귀족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로 변모했으니!
한 마디로 자신의 인생을 180도 뒤바꿔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유명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아르엔 영애가 카론을 잡겠다며 괴물처럼 뛰어온다고 하니 로한으로서는 친구의 입장이 공감이 가면서도 안 가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너희 누님은 안 그래?”
“우리 누나?”
제론이 잠시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두 명을 쳐다봤다.
곧 방금 전까지 떠들던 주제를 상기하고 손사래를 쳤다.
“아까 봤잖아? 우리 누나 순해. 기운이 좀 많이 남아돌아서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것만 빼면 사고도 잘 안 쳐.”
물론 ‘내 앞에서는’이라는 주어가 빠졌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친구들 앞에서 가족을 욕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 말을 들은 카론이 ‘호오, 과연 그렇군.’이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로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녀석이 지나치게 화색을 띠며 ‘헤에’라는 실없는 웃음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에이, 설마.’
제론은 불쑥 솟구친 불안감을 애써 무시했다.
나이 차이가 몇인데!
무려 4살이다!
아래도 아니고 위로 4살!
게다가 누나는 아직 13살밖에 안 됐다.
무공을 익혀 13살치고 크다곤 해도 공작 가문의 몸매가 좋고 늘씬하며 아리땁고 고운 시녀들과 여인들에게 비할 바가 못 된다.
아직은 풋내만 풀풀 풍기는 소녀다.
‘설마 아니겠지.’
그러나 제론은 이 불안감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았다.
카론과 로한을 보며 말했다.
“혹시나 누나한테 반하거나 그러지 마. 카론 너는 괜찮은 거 같지만 로한 네가 조금 마음에 걸리…… 오, 맙소사! 너 지금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으, 응? 내가 왜?”
말을 더듬는 로한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발그레 홍조가 띤 두 뺨은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게 만들어줬다.
‘이대로는 안 돼. 녀석이 누나의 마수(?)에 빠지면 큰일이야.’
제론은 정말로 순수한 마음에서 로한을 걱정하며 말했다.
“뭔지 알겠지만 잠깐에 불과한 감정이야. 절대로 그러면 안 돼. 왜냐면…….”
“야! 너 설마 내가 하룻밤의 여색만 탐하고 여인을 버리는 그런 쓰레기인 줄 아는 거냐? 비록 친구의 누님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고 해도 지금 난 진심이다. 내 마음은 거짓이 아니야!”
로한이 화가 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제론은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이 자식 내 말을 끝까지 들을 생각이 없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녀석의 눈을 보니까 저 마음이 절대로 꺾이지 않을 것을 알았다.
생각한 적도 없고 말하지도 않은 내용을 줄줄이 읊는 것을 보니 더더욱 확실했다.
친구의 누나에게 반해서 어떻게 잘 되고 싶으니까 찔려서 발끈한 것이다.
전형적인 어린아이들의 반응이었다.
‘맙소사.’
제론은 경악성이 입속에서 맴도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이 끝내 입 밖으로 튀어 나가지 못하고 끝났다. 너무 기가 차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나 정말로 그런 놈 아니다. 아이언하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녀석에 대해서는 나도 보증하지. 그리고 혹여나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걱정하지 말도록. 왕실에서 결코 좌시하지 않을 테니.”
로한이 주먹을 쥐고 왼쪽 가슴을 치며 말한다.
옆에서 카론도 그를 지원했다.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대환장 파티였다.
“……마음대로 해라. 나는 모르겠다.”
제론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겨우 침묵을 끝낼 수 있었다.
누나의 마수에서 구해주려는 마음도 모르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 기분이었다.
‘저러다가 누나의 실체를 알게 되면 정신 차리겠지.’
* * *
“누님께서 좋아하시는 게 뭐야?”
“몰라.”
“한 번 알아봐 줘.”
“그런 건 네가 알아보라고.”
“고맙다. 직접 만나서 데이트라도 하며 알아보라니. 역시 넌 내 친구가 맞구나. 말은 그래도 사실 나를 응원하고 있던 거였어.”
“아니야. 이 미친놈아. 응원 같은 거 안 한다고!”
로한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진짜로 누나를 만나러 간 것이다.
제론의 외침이 허공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카론이 제론의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왕실에서 결코 좌시…….”
“너도 그만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