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20)
제 320화
320화
“후우.”
거인족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존재를 바라보던 쥬페토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거대한 존재가 무분별한 파괴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만약 그것이 거인족이라면 비다르로 보이던 그 거대한 새도 진짜일지 모르겠어.”
비다르의 전설이 사실이라면 세상의 종말이 닥쳐오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허황된 이야기다.
“종말이라니.”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해야 백작령을 더욱 나아지는 방향으로 개선할까 고민하기 바빴던 쥬페토였다. 하지만 그 허황된 이야기를 외면하기에는 너무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후우. 그보다 제론 그 녀석은 뭐 하고 있는 건지.”
불현듯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막내아들이 생각났다. 대륙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도통 소식이 없으니 걱정되었다.
남대륙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문까지 들려온 상황.
만약 중앙대륙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까지 그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면 남대륙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쥬페토의 가장 큰 걱정은 따로 있었다.
“……나중에 돌아오면 엄마한테 싹싹 빌어야 한다.”
* * *
“……!”
제론은 흠칫 놀라며 말하던 것을 멈추고 어딘가를 바라봤다. 짙은 불안감이 등골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기감을 널리 퍼트려 주변에 무언가가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짐승이나 풀벌레를 제외하고는 감지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왜 불안하지?’
에르딘은 제론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지자 창을 들며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야. 잠깐 착각했나 봐.”
제론이 고개를 저었다. 신성을 갖게 된 이후로 더욱 날카로워진 감각으로도 아무것도 잡아내지 못했다. 착각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착각이 아니라면 최소한 나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는 거지.’
예전이었다면 오만방자해서 그런 존재는 없을 거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대륙에서 베헤못에게 패배 아닌 패배를 경험한 이후로 생각을 달리했다. 또한 마이얀의 ‘파멸의 대지 Ruin of Ground’에 휘말렸을 때 진실을 알게 되며 그것을 굳혔다.
앞으로 자신이 싸울 적은 이 세상의 모든 종족들에게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다.
‘나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로 약하지는 않을 거다.’
강자와의 싸움은 제론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무림에서 마선으로 군림하기 전까지 살아남기 위해 강자와 무수한 싸움을 거듭해왔다.
물론 그때와 차이가 있긴 했다.
인간이 아닌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와 싸워야 하니까.
또다시 ‘그때’처럼 패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보다 강해졌다.’
나 자신을 증명하는 신성 역시 갖게 되었다.
아직 그 증명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와 닿는 것이 있었다. 또한 검이 지닌 신살의 힘을 자세히 분석하면 어떻게 신을 죽이는 게 가능한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
누구에게나 쉽게 넘지 못하는 벽이 존재하듯 제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벽이 다른 사람들보다 수십 배로 높을 뿐!
‘이번에도 넘는다.’
제론은 눈을 감으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완전히 정리했다.
이윽고 밤이 깊어졌다.
이튿날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1명, 2명 잠에서 깼다.
“하아암!”
제일 먼저 일어난 쟌느가 기지개를 펴고 욱신거리는 몸을 주물럭거렸다. 골렘과 싸운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던 것이다.
“다시 싸워도 내 공격이 통하긴 하려나?”
이제는 광물 덩어리로 변한 골렘에게 다가간 그녀는 흠, 하며 단검을 꺼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서 휘둘렀다.
캉!
“아야. 죽었는데도 통하지 않네.”
쟌느는 시큰거리는 손목을 빙글 돌린 뒤 생각에 잠겼다. 제론이 알려준 골렘처럼 단단한 것을 벨 방법을 떠올려봤다.
“아마 이렇게 하라고 했지?”
다시 한번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훨씬 더 색이 짙고 많은 양의 오러가 응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불안정했다. 오러 블레이드가 유리처럼 깨질 것같이 진동했다.
우우웅!
쟌느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역시 아직은 무리인가?’
안타까워하며 오러 블레이드를 없애려고 한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눈썹을 가운데로 좁힌 채 서 있는 제론이 보였다.
“머릿속에 잡념을 지우고 집중해.”
“……응.”
쟌느는 당황했으나 이내 제론의 말을 따랐다. 머릿속에서 잡념을 비우고 정신을 집중하자 아주 조금씩이지만 진동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난 일행들이 하나둘 두 사람 주위로 몰려들었다.
쟌느의 오러 블레이드가 처음과 비교해 눈에 띌 정도로 안정될 무렵 퓨리온 공작이 말했다.
“허허. 벽을 뛰어넘는 건 무리겠지만 발을 대는 건 어렵지 않지.”
“오러 블레이드를 응축시키는 게 벽을 뛰어넘기 전의 단계라고 보면 되나요?”
“그렇지. 이제 보니 자네 제법 이해력이 좋군.”
에르딘은 그전까지 자신이 멍청해 보였냐고 묻고 싶었지만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그 질문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저게 바로 될까요?”
“그럼. 아마 자네도 가능할 걸세. 굳이 도움도 필요 없지.”
“저 어제 실패해서 피 게워내는 거 보셨잖아요?”
에르딘은 골렘과 싸움이 끝나고 제론의 설명을 들은 뒤 혼자서 검강을 응축시키는 연습을 하다가 내공이 역류해서 피를 한 바가지 쏟아낸 경험이 있었다.
퓨리온 공작이 쯧쯧 혀를 차곤 말했다.
“그건 자네의 마음속에 잡념이 가득해서 그래. 옆에서 지켜보니까 걱정과 근심만 가득해 보이더군. 오러 블레이드를 응축시키는 것에만 집중하면 어렵지 않아. 아무리 길어도 하루나 이틀 정도만 연습하면 가능하지.”
“호오.”
에르딘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네.”
“그게 뭔가요?”
“바로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네. 잡념을 모두 비우고 집중하는 게 쉬운 일인가? 그것도 적을 눈앞에 두고서 말이야.”
압도적으로 약한 상대라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실력을 갖고 있거나 더욱 강한 상대라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오러 블레이드의 응축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못 되겠지. 강한 상대는 공격을 해오는데 집중은 해야 하고, 잠깐이라도 집중하는 사이에 내 목이 달아나면 어쩌나 걱정되고. 끌끌. 제어에 실패하면 어제의 자네처럼 피를 토하거나 심하면 내부의 충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기절할지도 모르니, 잡념이 사라질 수가 없지 않겠나.”
“역시 어렵군요.”
“하지만 처음에 성공하면 그다음부터는 좀 더 쉬워지는 건 사실이니 걱정하지 마시게.”
연달아 한숨을 내쉬는 에르딘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퓨리온 공작이 껄껄 웃으며 그의 어깨를 팡! 팡! 때렸다.
“억! 억!”
“메이엔 양. 저희는 식사를 준비할까요?”
“네. 그렇게 하죠.”
에르딘이 몸을 크게 휘청거리며 비명을 토하는 사이 로건과 메이엔은 유유자적 식사 준비 데이트를 했다.
그사이 쟌느는 오러 블레이드의 응축을 성공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와. 진짜 이게 되네?”
응축된 오러 블레이드는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한 빛을 뗬다.
손을 대면 통째로 분쇄되겠지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제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그 감각을 잊지 않고 계속 연습하면 조금씩 빠르게 응축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고, 나중에는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될 거야.”
“역시 우리 자기가 최고야.”
쟌느가 제론을 덥석 끌어안았다. 응축된 오러 블레이드가 목덜미 근처를 지나가는 바람에 암살을 시도하는 줄 알고 흠칫 놀라긴 했지만 헛기침을 한 뒤 등을 토닥여줬다.
“……알겠으니까 오러 블레이드 좀 치워주지 않을래?”
암살이 아닌 건 알고 있지만 등골이 오싹한 건 어쩔 수 없었다.
* * *
며칠 뒤 제론과 일행들은 남부지역에 도착했다.
교총지부가 일으킨 성전聖戰으로 도시의 경계가 삼엄했다.
마리온 왕국에서 신원을 보장하는 자유 기사 신분이 없었다면 성문을 통과하는데 하루 종일은 걸렸을 정도였다.
말콤이 제론을 찬미했다.
“역시 뛰어나신 혜안을 갖고 계시군요!”
“우연찮게 얻어걸린 건데 혜안은 무슨.”
“그래도 주군께서 만약을 대비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큰 곤혹을 치렀을 겁니다. 역시 저 말콤이 섬기는 주군다우십니다.”
“저놈은 미쳤나?”
퓨리온 공작이 갑자기 말이 많아진 말콤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저랬어요. 서대륙에서 같이 다닐 때 1분도 쉬지 않고 말을 하는 걸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죠.”
“나랑 다닐 때는 한 마디도 안 하던데?”
“그건 공작님께서…….”
“그건?”
“헤헤. 공작님께서 위엄이 있으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에르딘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라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제론과 함께 다니며 항상 느꼈지만 말은 함부로 내뱉는 게 아니었다. 뇌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말하면 꼭 맞곤 했다.
“허허. 위엄이라니. ……뭐 내가 좀 위엄이 넘치긴 하지.”
퓨리온 공작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에르딘이 재빨리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성안의 분위기가 엄청 험악하네요.”
“괜한 시비에 안 휘말리게 조심하시게.”
“소매치기도 조심해야 하고요?”
“아악! 놔! 놓으라고!”
10살은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에르딘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남자아이는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지만 놓칠 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놓아줄 테니까 앞으로는 조심해라.”
“……네.”
놓아준다는 말에 남자아이가 발버둥 치던 것을 멈추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회가 엿보이면 또다시 노릴 것을 알고 있기에 에르딘이 확실하게 다짐을 받았다.
“다음에는 손목이 날아갈 거야. 형이랑 형 일행들의 무기 보이지?”
“아, 알겠어요! 안 그럴 테니까 놔줘요!”
“믿는다. 혹시나 다른 사람 데려오거나 그러면 싹 다 죽어. 저쪽에 있는 할아버지랑 다른 형 보이지? 나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람들이야. 눈 돌아가면 막 다 죽이고 그래.”
제론과 퓨리온 공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쪽에 있는 할아버지가 퓨리온 공작이고 다른 형이 제론이기 때문이다.
남자아이의 손목을 놔주려던 에르딘이 잠시 멈칫했다.
“아, 맞다. 꼬마야.”
“왜, 왜요!”
“음식 맛 좋고 깨끗한 숙소나 여관 알면 소개 좀 해줄래? 괜찮은 곳이면 소개비는 충분히 주마.”
에르딘은 실버를 1개 꺼내 남자아이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남자아이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실버를 따라 눈을 움직였다.
“……제가 아주 죽여주는 곳을 알아요.”
“그래? 네 말대로 죽여주는 곳이면 1개가 아니라 2개를 주마.”
“저를 따라오세요.”
에르딘이 손목을 놓아주자 남자아이가 앞으로 나아갔다.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고, 라는 거죠.”
“그럼 나는 오늘 한 번 눈 돌아가 볼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녀석에게 제론이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