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27)
제 327화
327화
종말終末.
단어의 뜻을 풀어보자면 ‘계속된 일이나 현상의 끝’이다.
대륙에 종말이 닥쳐온다.
전 대륙으로 빠르게 번지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딜 가도 똑같다며? 차라리 여기가 그나마 안전해.”
“몬스터들이 밖에 천지빼까리로 돌아다닌다잖아.”
“종말이 닥쳐오면 뭐하나.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지를 못하는데.”
“나는 오늘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리.”
죽음의 위기나 대륙의 멸망보다 하루를 벌어서 먹고사는 게 더욱 중요한 것이 양민이었다.
한편 각 국가에서는 괴수 토벌에 힘썼다.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다친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많았다. 하루에 한 번씩 수백 명의 시체가 수레에 실려 왔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겁을 먹되 물러서는 이는 없었다. 괴수들의 무분별한 등장과 공격으로 도시와 마을이 파괴되고 큰 피해를 입었다. 괴수들을 토벌하지 않으면 크게는 국가가, 작게는 사랑하는 이들이 다치거나 죽는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물러나지 않는 것이었다.
한 달이 지났다.
괴수 토벌이 익숙해져 가며 사상자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았다. 예전처럼 수백 명의 시체가 실려 오는 건 아니었지만 백여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나왔다.
사상자는 병사들뿐만이 아니었다. 마법사와 사제, 용병을 가리지 않았다. 오러 연공법을 익힌 익스퍼트의 기사들도, 지고한 경지에 이른 마스터조차도 죽거나 다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나 많은 괴수들을 토벌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위안 삼았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던전에서 몬스터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뭐? 분명히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탐험이 끝난 던전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탐험이 끝났다는 말은 몬스터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니까.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군요.”
“다른 던전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직까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병력을 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빠른 대처는 중요하지요. 그리고 모험가 길드와도 이야기해두십시오. 던전이라면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올 겁니다.”
불특정다수의 위험은 던전뿐만이 아니었다.
던전에서 존재하지 않아야 할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건 다른 곳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데드킹의 무덤, 마왕의 유해, 악룡 다크니스의…….”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존재들이 부활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대비해야 했다.
* * *
[하늘이 변하고 있다.]“나 역시 알고 있다.”
옛 종족과 아인호르타하는 같은 것을 보았다.
대륙의 하늘이 혼란과 죽음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저 하늘 아래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죽으리라.
“때가 되었다.”
아인호르타하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 * *
“저를 찾아왔다고요?”
괴수 토벌을 마치고 돌아온 제론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정확하게는 종족이 다른 손님‘들’이었다.
인간, 드워프, 엘프.
3개의 종족이 동시에 제론을 찾아왔다.
“……그러니까 이쪽이 드워프 제사장이고, 저쪽은 하이 엘프라는 거지?”
“맞아요.”
고개를 끄덕인 성녀는 차를 마시다가 혀가 데이기라도 했는지 혀를 쏙 내밀고 ‘아뜨뜨.’거린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는데요?”
제론이 묻자 드워프 제사장과 하이 엘프라는 것들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찡그린다.
1분을 기다려도 아무 말이 없자 제론이 일어섰다.
“할 말 없으면 일어납니다.”
“커흠.”
드워프 제사장이 불편한 기침 소리를 냈다. 하지만 제론은 쓸데없는 시간을 소모할 생각이 없었다. 괴수 토벌을 하다가 피를 흠뻑 뒤집어썼다. 피 냄새가 얼마나 지독하던지 내공으로 태워도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찝찝함을 없애기 위해 씻으러 가야 한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하이 엘프가 말했다.
“어머니께서 저를 보내셨어요.”
“……어머니?”
문고리를 놓지 않은 채 묻는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바로 나간다는 의미였다.
하이 엘프는 그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것의 중심에 당신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기 위해 당신을 찾아왔어요.”
“다시.”
하이 엘프가 흠칫하더니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제론이 조용히 마지막이라고 으름장을 놓자 무엇을 말하라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세계수세요.”
“그쪽은?”
“저 어린놈의 자식이!”
드워프 제사장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벌떡 일어나 삿대질했다.
드워프의 수명이 최소 200년이라고 알고 있다. 반면 제론은 20대 중반. 한참 어린놈이 반말로 지껄이니 기분이 나쁠 만도 하다. 하지만 최대 수명이 다른 종족끼리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싶다.
게다가 중요한 건.
“나를 찾아온 건 그쪽이지 내가 아니야. 나는 아쉬울 게 전혀 없어. 그러니까 말하기 싫으면 문밖으로 나가.”
중요한 손님만 아니었다면 무시하고 갔을 텐데 각 종족의 최고위 사제라고 해서 일단 와봤더니 신경을 건드린다.
그때 성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제론 님께서 문 앞에 계시는데 어떻게 나가요?”
“……비켜주면 되잖아.”
“아. 그러네요.”
성녀는 배시시 웃었다.
‘일부러 저러는 거지?’
제론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본다. 나름대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안면이 있고 신세 진 적도 있어서 넘어가기로 했다.
“후우. 아무튼 드워프 제사장 아저씨. 저 녀석의 얼굴을 봐서 넘어가 줄 테니까 우리 쉽게 갑시다. 제 인내심이 그렇게 좋지 않아요. 오케이?”
“맞아요. 저 사람 인내심 진짜 낮아요. 밑바닥 뚫고 지하까지 내려갈 정도로.”
“……제발 입 다물고 있어.”
“읍읍.”
분명히 일부러 저러는 거다.
사교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던 옛날보다는 나았지만 너무 달라진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잠깐만.’
제론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성녀를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 맞다.
정확하게는 성녀의 몸을 빌린 다른 존재였다.
“언제 오셨어요?”
“음. 성에 도착하기 전쯤?”
“하아. 처음부터 이야기하시지.”
“덕분에 재밌는 구경을 했어요.”
“…….”
제론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 앉았다.
드워프 제사장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리며 제론과 성녀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나마 하이 엘프는 눈치가 있는지 벌떡 일어나 예를 취한다.
“포근하고 자애로운 달의 어머니를 뵈어요.”
“후후. 세계수께서는 잘 계신가요?”
“예. 어린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품어내고 계십니다. 하지만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로 인해서 많은 걱정을…….”
“헉! 포근하고 자애로운 달의 어머니를 뵙습니다!”
뒤늦게 성녀의 몸에 강신한 루나의 존재를 알아차린 드워프 제사장이 일어나 예를 취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어느 누구 하나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수치감에 몸을 부들부들 떤 드워프 제사장은 조용히 앉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무엇인가요?”
“솔라.”
“…….”
성녀, 아니 루나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솔라’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제론이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켜주세요.”
“알겠습니다.”
“……?!”
하이 엘프가 드워프 제사장의 팔을 잡고 일어섰다.
쿵.
문이 닫히자 제론은 모든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기막을 펼쳤다.
“고마워요.”
“그럼 이제 편하게 말하세요.”
“대륙에 종말이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죠?”
“예.”
“신들 사이에서 파벌이 나누어졌어요. 종말을 막아야 한다, 막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두 개의 파벌로 말이죠.”
제론은 헛웃음을 들이켰다.
참 마음 편하게 지랄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하지만 당신의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본래대로라면 종말이 닥쳐올 때가 아니니까요.”
“……누군가가 먼 훗날 닥쳐올 종말을 앞당겼군요?”
“맞아요.”
“누구인지 알겠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대륙 곳곳에서 온갖 수상한 짓을 저지르고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킨 자.
바로 아인호르타하다.
얼핏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먼 훗날에 닥쳐올 종말을 앞당긴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사건의 스케일이 다를 뿐 기본적인 원리는 비슷하다.
‘스노우 볼 효과.’
눈덩이는 구르면 구를수록 커진다.
처음에는 보잘것없고 작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점점 커져 가며 나중에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비대해진다.
아인호르타하가 수백 년에 걸쳐 저질러왔던 일들이 커다란 눈덩이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 솔라가 제게 한 짓이 무슨 상관이죠?”
“솔라는 종말을 막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요. 누군가의 짓으로 앞당겨져 온 종말이지만, 그것 역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제론은 그 순간 하이 엘프의 말을 떠올렸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것의 중심에 당신이 있다고 하셨어요.
모든 것의 중심.
말인즉슨 종말을 뜻하는 것이다.
“솔라가 나를 막으려고 했군요. 하지만 실패했고.”
“맞아요. 솔라는 당신의 힘을 간과했어요. 아니. 솔라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죠. 차원의 벽을 뛰어넘어 아스트랄의 본신에 닿을 줄 그 누가 상상했을까요.”
“그래서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대륙의 종말을 막아주세요. 부탁드려요.”
“흐음.”
제론은 대답하지 않고 검지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대륙에 종말이 온다는 건 알겠지만, 루나가 찾아와서 막아달라고 부탁하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될 텐데?’
대륙의 종말은 모든 생명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제론은 종말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런데 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툭.
테이블을 두드리던 제론의 검지가 멈췄다.
“……종말을 막지 말아야 한다는 파벌의 개입이 있겠군요.”
“네. 맞아요.”
루나는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아스트랄의 존재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미들어스를 떠났다. 또한 미들어스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의지와 약속을 어기려 했다. 제론에게 종말을 막아달라고 한 부탁은 사실상 아스트랄의 존재들과 싸워달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미들어스와 아스트랄을 나누는 차원의 벽이 얇아져요. 그렇게 된다면 아스트랄의 존재가 본신의 상태로 미들어스에 강림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돼요.”
“흐음.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일부만 강림이 가능하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어려운 부탁은 아니네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나에게 말해주세요.”
제론은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루나를 보며 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