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28)
제 328화
328화
생각 외로 협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후우. 알겠어요.”
루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했다.
우선 중요한 것만 몇 가지 꼽자면, 첫 번째로 남대륙의 성전은 아인호르타하와 솔라의 거래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런 일을 벌인 이유가 뭐냐고?
제론을 막기 위해서였다.
정확하게 말해서 죽이거나 반쯤 병신으로 만들 목적이다.
모든 것의 중심에 제론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 상황.
종말을 막지 말아야 한다는 파벌인 솔라가 제론을 해치려고 한 것이었다. 물론 실패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두 번째로 오크를 부추긴 것은 전사의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전사의 신은 솔라와 한패였다.
종말을 막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파벌이라는 것이다.
오크들이 무슨 이유로 전쟁을 일으켰는지 이해가 된 순간이었다.
그 외의 나머지 일들은 아인호르타하가 먼 옛날 준비해둔 장치들이었다.
바로 대륙에 종말을 불러오기 위해 꾸며놓은 수작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말할 수 없었죠.”
“왜죠?”
“미들어스의 일에는 관여하면 안 된다는 약속 때문이에요.”
“하지만 관여하고 있죠.”
제론이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루나는 또 한 번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랬다.
관여하면 안 된다는 약속을 했지만 그것을 어기고 있었다.
예언이나 계시 같은 간접적인 간섭이 아닌 강신을 통한 직접적인 간섭을 했다.
“대가는?”
“본신의 그릇이 상처를 받아 오랜 잠에 빠져들어요.”
신은 살아 숨 쉬는 것들의 믿음을 받아먹으며 힘을 키운다.
그러나 그릇에 금이 가면 안을 채운 힘이 새어 나간다.
약속을 어긴 대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하다 보니 아스트랄의 존재가 함부로 미들어스에 간섭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괜찮고요?”
“저쪽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까요.”
“퉁치는 셈이로군.”
“맞아요.”
루나는 ‘퉁’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나 어떤 뜻을 지녔는지 알 것 같았다.
제론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물었다.
“종말을 막아주는 대신 뭘 줄 수 있어요?”
“성흔.”
루나가 짧게 대답했다. 제론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진다.
“성인聖人에게 새겨준다는 성흔이라.”
“…….”
“좀 더 쓰시죠?”
히죽 웃으며 그리 말하는 제론이 얄미웠던 루나가 투덜거렸다.
“제가 누굴 만나고 있는지 헷갈리네요. 마치 장사꾼을 만나고 있는 기분이에요.”
“장사꾼이었다면 넙죽 엎드려 있었겠죠. 존귀하신 루나 님을 뵙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죠.”
“말이라도 못하면 얄밉지 않지.”
루나는 피식 웃고선 말했다.
“제 권능의 일부를 나눠줄게요.”
“허.”
“이 정도면 충분…….”
“그렇게 저와 함께 하고 싶으셨어요?”
“…….”
싸늘하게 식어버린 눈빛을 마주하자 제론은 어깨를 으쓱했다.
“성흔과 권능이면 충분하죠.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요.”
목소리가 싸늘하다 못해 비수가 날아와 꽂힐 것 같았다.
장난을 너무 심하게 쳤나 싶었다.
“솔라는 태양과 인간의 신 아닌가요?”
“그걸 정한 건 누구죠?”
질문을 했는데 질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태까지 쌓아둔 제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대답으로는 충분했다.
* * *
루나가 떠나자 하이 엘프와 드워프 제사장은 인간과 엘프, 드워프의 동맹을 상징하는 한 장의 서신을 남겨두고 돌아갔다.
그들이 해야 할 말은 루나가 전부 했다.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제론은 뜨거운 눈두덩을 만지며 목욕물에 푹 몸을 담갔다.
몸에 밴 지독한 악취를 빼기 위함이었다.
‘괴수들이 점점 강해져 간다.’
아직 제론을 위협하는 수준의 괴수는 없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유한이 죽을 뻔했다. 정작 본인은 위험했다는 수준 정도로 인식했지만 함께 있던 제론의 식견識見으로는 자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그가 죽었다.
‘권능이란 그리 쉽게 보아선 안 되는 것이지.’
마법처럼 불덩이를 날리고 벼락을 떨구는 것 따위가 아니다. 보다 세계의 이치에 가까운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얕보면 안 된다.
“후우. 물이 뜨끈하니 좋네. 그치?”
“언제까지 나를 방치해 둘 거야?”
텅 빈 허공에서 쟌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론이 피식 웃고 말았다.
“몰래 숨어서 들어왔는데 어떡하라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몰래일지 몰라도 우리 자기한테는 천둥처럼 크게 들리는데, 그게 무슨 몰래 숨어서야?”
“내 알몸을 엿보려고 온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일이야?”
“강해지고 싶어.”
제론이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 묻는다.
“지금도 충분하지 않아?”
“아니.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해. 훨씬 더.”
“흐음.”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쟌느의 몸이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스르륵 나타난다. 그녀의 두 발은 벽이 평지라도 되는 것마냥 평온하게 딛고 있었다.
“전보다 더 늘었네.”
“그치?”
쟌느가 제론의 칭찬에 헤실헤실 웃었다. 하지만 잠깐에 불과했다. 그의 대답을 들으려는 것이다.
“얼마나 더 강해지고 싶어?”
“우리 자기만큼.”
“호오.”
제론은 쟌느의 배포에 감탄했다. 자고로 목표는 높을수록 좋은 법이다. 설령 넘어지고 좌절할지언정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간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럼 앞으로는 대충이 아니라 열심히 굴려야겠네.”
“응?”
“나만큼 강해지고 싶다면서?”
제론이 일어서며 묻는다.
쟌느가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똑똑히 보고 말았다.
‘드…… 드래곤이었어!’
가슴이 메이스로 후려친 것처럼 쿵쾅쿵쾅 뛰었다.
“응? 갑자기 왜 그래?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의 박동 수가 너무 빠른데?”
“……강해진다고 생각하니까 투지가 불타올라서 그래.”
쟌느가 빠르게 호흡과 심박수를 조절하며 대답했다. 찰나의 순간 엄청난 물건을 봐버려서 그랬을 뿐 그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 마저 준비하고 있어. 새벽에 바로 출발할 테니까.”
“알겠어.”
제론은 쟌느의 기척이 사라지자 피식, 피식 실소를 흘렸다.
사실 무엇 때문에 호흡과 심박수가 변했는지 알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내려 무언가를 바라본 제론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몇 시간 뒤 성을 벗어나는 몇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아우. 졸려.”
“졸려? 고작 그 정도로?”
그림자 중 하나가 투덜거리자 또 다른 그림자가 그를 타박했다.
투덜거린 그림자가 주눅 든 몸짓으로 말했다.
“저 1시간 전에 돌아왔어요. 이제 막 쉬려고 뜨거운 물에 목욕까지 했던 참이라고요. 그런데 왜 다시 또 끌고 나가는 거예요!”
주눅 들었던 목소리가 마지막에는 제법 앙칼지다. 또한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억울하고 분했고, 속상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미안한 감정이 먼저 일어났을 터. 하지만 그에게 타박을 놓았던 그림자한테는 눈곱만큼도 통하지 않았다.
“누가 약하래?”
“……!”
타박을 놓은 그림자가 치사하게 팩트로 공격했다.
투덜거렸던 그림자는 그 뒤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그림자들은 이슬조차 맺히지 않았을 무렵 어딘가로 향했다.
* * *
쥬페토는 그림자들, 아니 제론과 일행들이 성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아 차를 음미하던 아이리가 조용히 묻는다.
“괜찮을까요?”
“걱정 마시오. 부인.”
아이리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대답하는 쥬페토를 지그시 바라보며 다시금 물었다.
“걱정 말라고 걱정 안 할 수 있나요?”
“그…… 미안하오.”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하는 말 같아요?”
쥬페토가 슬쩍 아이리의 눈치를 보고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웃으며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건 알지만…….”
느릿하게 말하는 이유는 어떤 대답을 해야 아이리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질까……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최대한 그녀의 화가 이쪽으로 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실시간으로 생각하면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로서도 쉽게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소? 꾸짖어보기도 했…….”
“제론을 꾸짖었다고요?”
“아니. 아니. 꾸짖는 척 말이오! 꾸짖는 척! 그런 척만 했다는 말이오.”
아이리의 눈썹이 가운데로 좁혀지자 쥬페토가 빠르게 말을 바꿨다.
“그런 척을 했다고요?”
“……그냥 내 목을 베시오. 부인.”
역시 포기가 제일 빠른 정답이었다.
족히 10년 어치의 기가 빨린 얼굴로 변한 쥬페토가 거북이처럼 목을 쑥 내밀었다.
“후후. 사랑하는 사람의 목을 제가 왜 베겠어요.”
“적어도 지금 나의 심정은 그렇다오.”
“정말요?”
“그 사랑이 너무나도 크고 넓어 내 목을 줘도 아깝지 않다는 뜻이었다오.”
“하여간 말은.”
아이리의 표정이 맑아지자 쥬페토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밖에서는 괴수들과 싸우느라 숨이 막히고 안에서는 부인의 눈치를 보느라 숨이 막힌다.
매일이 전쟁터였다.
“괜찮겠죠?”
“그럼. 우리의 아들이잖소.”
* * *
그로부터 며칠 뒤 아침 해가 뜰 때쯤 열심히 땅을 굴러다니는 한 사내가 있었다.
“으갸갸갸갸!”
“잔망스럽구나.”
“주군께서 잔망스럽다고 하십니다.”
제론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 옆에 서 있던 말콤이 복창했다.
땅을 굴러다니던 사내가 벌떡 일어나 다시금 괴수에게 덤벼들었다. 잠시 후 사내는 괴수의 공격을 흘려내지 못하고 날아가며 또다시 잔망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으갹! 으갸갹!”
“저놈의 주둥이를 진짜.”
“저놈의 주둥이를 진짜, 라고 하십니다.”
“너 뭐 하냐?”
“너 뭐 하냐고 하…… 가 아니라. 흠흠. 사실 조금 심심했습니다.”
말콤은 인상을 찡그린 채 쳐다보는 주군의 시선에 솔직하게 고백했다.
“너도 같이 구를래?”
“그래도 됩니까?”
“……아니. 다음 차례가 되기 전까지는 안 돼.”
“그렇군요.”
제론은 잔뜩 아쉬워하는 말콤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런 꼴을 보고도 그런다니 이놈도 어지간하네.’
열심히 굴러다니며 잔망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에르딘과 아쉬워하는 말콤을 번갈아 쳐다보며 생각했다.
퓨리온 공작까지 있었다면 정말 가관이었으리라.
“그 양반은 뭐 하고 있으려나.”
“공작님이라면 아마 괜찮으실 겁니다.”
“너 혹시 궁예냐?”
제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궁예가 뭡니까?”
“아니다. 내 생각을 너무 잘 알아맞혀서 관심법이라도 쓰는 줄 알았지.”
“관심법이라면 독심술이랑 비슷한 겁니까?”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이름만 다르지 똑같은 거라고 보면 돼.”
“마치 마법 같군요.”
“너 진짜 심심하구나?”
말콤이 에르딘과 괴수의 싸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손이 근질근질합니다.”
“야! 에르딘!”
“으갸갸……?”
“말콤과 교대!”
제론의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말콤이 앞으로 달려가고, 에르딘이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로건과 메이엔이 차를 우려내고 있었다.
두 사람 뒤에는 쟌느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에르딘 형제님께서 이번에는 제법 오래 버티셨군요.”
“아까는 다리 하나가 부러졌었죠.”
“이번에는 팔 하나…… 가 아니라 다리 하나도 추가되었군요.”
뒤로 물러나던 에르딘이 괴수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결국 다리가 부러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