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3)
제33화
33화
제론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꾸욱 눌렀다.
최근 로한의 행동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두통이 생겼다.
사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니었다.
시대와 배경을 막론하고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단순히 9살 꼬맹이가 연상의 소녀에게 반했다는 거니까.
‘그 대상이 로한과 누나라는 게 문제일 뿐이지.’
솔직히 로한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다. 녀석을 알게 된 지 한 달밖에 안 됐지만 어떤 성격인지 금세 파악했다. 넉살 좋고 능글맞으며 ‘분노 조절 잘해’였다.
좋게 말하자면 감정조절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말이었다.
외모도 뭐라고 태클을 걸 여지가 없었다.
9살짜리치고 키가 제법 크고 외모도 준수한 편이었으니까.
살짝 마르긴 했지만 아직 9살 꼬맹이한테 뭘 바라겠는가?
형이나 누나처럼 어렸을 적부터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녀석의 집안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무려 건국왕이 오른 왕국을 건국하기 이전부터 그의 옆에서 오른팔처럼 함께 해온 ‘철혈의 재상’이 세운 가문이다.
‘강철의 심장’을 가졌다고 해서 아이언하트IronHeart라는 성을 하사받은 ‘철혈의 재상’에게는 개국공신으로서 엄청난 양의 혜택이 주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사면권이었다.
사면권은 반역죄와 국가내란죄를 제외한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도 용서해주고 어떠한 형벌에도 처하지 않겠다는 면책의 권리였다.
즉, 아이언하트 가문이 반역죄나 국가내란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부와 명예, 권력을 손에 거머쥐고 있으리라는 뜻이다.
‘음. 다시 생각해보니 거의 완벽한 사윗감(?)이네.’
유일한 단점인 몸이 비실비실한 거야 몇 년 옆에 잡아놓고 무공을 수련시켜주면 체질까지 개선시켜 줄 자신이 있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근데 왜 짜증 나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의 기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제론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수업을 변경하겠다. 모두 대련장으로 가도록.”
유한이 담당하는 선택 전공이 아닌 기초 전공 수업 검술에서 갑자기 수업내용을 변경한 것이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유한의 지시를 받아 강의실에서 대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련장은 개미 한 마리도 없이 한적했다. 본래라면 발을 내디딜 공간도 없어야 했는데 오늘 예약이 텅 비어버린 것이다.
검술수업 수업내용을 변경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오늘은 목검 대련을 할 것이다.”
웅성웅성.
학생들-꼬맹이들이 살짝 당황했는지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귀족 가문의 자제라고 한들 검 한 번 안 잡아본 애들이 태반이었다. 부호나 상인 밑에서 태어난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귀족 가문의 자제는 예법을 익히며 몇 번 휘둘러보기는 하지만 아카데미 수업은 검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그때와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흥미롭게 지켜보던 제론이 내심 감탄했다.
조금만 풀어줘도 마음껏 날뛸 꼬맹이들이 유한의 오러에 중압감을 느끼며 독사 앞의 쥐처럼 움츠러들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취한 행동인데 이보다 탁월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물론 오러의 양을 잘못 조절하면 내상을 입겠지만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가 그것도 못 하면 당장 은퇴해야 한다.
‘그래도 제법인데? 오러로 공기의 성질을 무겁게 바꾸다니! 천마군림보나 제왕검형 같은 수법이잖아?’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는 오만한 이름처럼 ‘천마가 세상을 군림하듯이 걷는 발걸음’이라는 방자한 뜻을 갖고 있었다.
이름과 뜻을 들으면 ‘킥킥! 뷰웅신!’이라고 비웃겠지만 막상 그 무공과 맞서 싸우게 되면 180도 입장이 달라진다.
시전자가 걸음을 내딛는 순간 내공의 양에 따라서 최소 반경 30m에서 수백 미터까지 엄청난 기압으로 짓눌러 버린다.
비슷한 수준의 고수를 상대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지만 약한 놈들이 떼거리로 있을 때는 학살하기 딱 좋은 무공인 것이다. 천마군림보를 몇 걸음 걷고 나면 전부 쥐포가 되어 죽거나 피를 몇 바가지 토하고 겁에 잔뜩 질려버리니까 공포감을 조성하기에 최적이었다.
제왕검형帝王劍形 역시 천마군림보와 비슷한 유형의 무공인데, 걷는 것이 아니라 검으로 펼친다는 차이밖에 없었다.
어쨌건 2개 다 내공의 성질을 바꿔 대기에 간섭해 기압을 무겁게 만들어 짓누르는 무공이었다.
“목검과 보호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유한은 학생들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담담한 표정으로 보조 교사들에게 무기와 보호구를 준비하도록 부탁했다.
단단한 목검과 보호구가 보조 교사들의 손에 들려서 한 명당 한 개씩 지급되었다.
잠깐 사이에 다시 분위기가 풀어지자 꼬맹이들이 목검과 보호구를 쳐다보며 시끌벅적 떠들었고, 유한이 크게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쿵-!
“모두 조용!”
다시 적막으로 물들자 유한이 자신의 목검과 보호구를 들며 말했다.
“보호구를 착용하기에 앞서 목검 대련을 왜 해야 하는지 짧게 설명하겠다.”
유한의 설명은 길지 않았다.
원래 성격이 말수가 적은 편인지 필요한 사항만 딱 전달했다.
더 짧게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1. 상위부생이 되면 진검으로 실전을 한다.
2. 최악의 상황에서는 검을 들고 싸워야 하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3. 그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목검 대련을 하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말해봐야 이해하지 못해서 귀찮기만 하고 ‘왜 우리가 이것을 해야 하는 거지? 용병 혹은 기사, 병사가 있잖아?’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먼 훗날 단 한 명이라도 지금의 수업으로 살아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9살 꼬맹이들은 유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엄숙한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듣기만 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1왕자인 카론과 아이언하트 공작가 차남인 로한을 비롯해, 가문의 영지에서 잦은 싸움이 벌어지는 귀족 가문의 자제나 상인의 자식들은 간접적으로 많은 죽음을 경험한 것이다.
그 녀석들은 유한의 말을 100프로 이해하지는 못해도 조금은 깨달은 바가 있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분위기가 많이 무거워졌군.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다. 제론 학생 앞으로 나오도록.”
“네!”
유한의 호명에 제론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꼬맹이들이 제론의 엄청난 키와 덩치를 보며 속닥거렸다.
“오우야. 쟤는 항상 보지만 엄청나게 커.”
“난 항상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쟤를 보니까 그 소문이 어쩌면 사실이 아닐까 의심이 들어.”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는 거?”
“격세유전이라는 말도 있잖아. 원래 거인족의 피가 계속 흘렀는데 저 녀석한테만 그게 나타난 거지.”
“오오. 그럴싸한데?”
앞으로 걸어가던 제론이 볼을 씰룩거렸다. 이러다가 진짜로 모두가 페리안 남작 가문에는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는 소문을 믿을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나도 선동과 날조로 승부해야지!’
제론은 비겁하게(?) 팩트로 싸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특히나 정파 놈들의 모함은 치가 떨릴 정도였다.
무림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이 경험으로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자신의 몸속에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는 선동과 날조를 그대로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물론 너무 심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아직은 애들이니까.
‘음. 역시 훌륭하군.’
제론이 앞으로 나오자 유한의 표정이 흐뭇하게 변했다.
언제 봐도 훌륭한 근골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데려가서 제자로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아카데미 학생이었고 귀족 가문의 자제였다.
‘상위부생도 아니고 입학생에게 손을 댔다가는 큰일이지.’
게다가 녀석을 노리는 선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상도덕도 없냐면서 몰매를 맞을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권유해봐야지.’
제론은 유한이 마음속으로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사이 보호구를 받아서 착용했다. 보조 교사들이 옆에서 도와줬다. 곧 목검을 들자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균형이 잘 잡혔잖아?’
꼬맹이들한테 훈련 시킨다고 들려주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밸런스가 잘 잡혀 있었다. 진검이었다면 명검까지는 못되더라도 골드 몇 개는 써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굉장했다.
“이제부터 검을 쥐는 방법을 알려 주겠…….”
수업을 진행하려던 유한은 제론이 검을 쥐고 있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자 말끝을 흐리며 유심히 쳐다봤다.
그야말로 완벽했다.
지적할 곳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건 이거대로 곤란하군.’
유한이 고심했다.
사실 검을 쥐는 방법-파지법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베기, 찌르기, 막기 등 동작을 함에 따라 변화가 다양해지며 시시때때로 손에 들어가는 힘의 양에 의해서도 바뀌기 때문이다.
검의 길이와 두께, 무게에도 영향을 미치니 상황에 맞는 파지법이 존재할 뿐 완벽한 파지법이란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제론의 파지법이 완벽하다고 생각한 이유.
몸은 똑바로 세웠으며 앞까지 가깝게 끌어 당겨진 목검의 날 끝이 곧게 하늘로 향해 있었다. 한 마리의 피닉스Phoenix가 높게 비상하려고 하는 것처럼 고고하게 느껴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학생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제론 학생이 검을 잘 쥐고 있어서 편하군. 다들 봤지? 이렇게 쥐면 된다. 가문에 내려오는 검술이 있고, 만약 검을 쥐는 방법이 다르다면 참고만 해라. 그리고 보호구는 대련 중에 잘못 맞으면 다칠지도 몰라서 착용시킨 것이니까 덥거나 답답하더라도 벗지 말아야 한다.”
유한이 제론의 보호구를 확인했다.
원래라면 품에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키가 크고 몸집이 큰 탓인지 한 몸인 것처럼 딱 맞았다.
‘더 크면 선생들에게 지급되는 걸 꺼내줘야 할 것 같군.’
유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수업을 계속 진행했다.
“앞에 나온 제론 학생이 간단한 검술을 시범 보일 것이다. 제론 학생 앞으로.”
“예.”
제론이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몇 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수업내용을 변경하기에 앞서 간단한 검술을 시범 보이라는 얘기를 전달받았다.
유한이나 보조 교사들이 시범을 하지 않는 이유는 수준이 높은 검술을 학생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생들 중 한 명에게 시범을 보이게 하자는 결론이 났는데, 만장일치로 제론이 선택되었다.
다시 학생들의 시선이 제론에게 집중되었다.
‘검을 쥐는 건 오랜만이네.’
제론은 손에서 느껴지는 그립감에 옛 기억을 떠올렸다.
무림에서 제법 많이 쥐어패고 다녔는데!
그때도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목검같이 생긴 몽둥이를 휘두르고 다녔다.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야.’
제론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검을 쥔 손에 감각을 집중했다.
몇 년 만에 검을 쥐는지 모르겠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24년 전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9년을 빼면 무림의 마지막을 기준으로 15년 전이라는 뜻이다.
검을 손에서 놓은 이유가 뭐냐고?
탈마에 오르며 적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전설로만 내려지는 심살心殺의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죽이지 못할 자가 없었다.
숨은 고수와 백만의 황군이 도사린다는 자금성의 황제조차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눈치만 살피기 바빴다.
우화등선을 해서라도 현대로 돌아가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더 이상 대적할 존재가 없어져 고독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은 다를까?’
다를 것이다.
이 세상은 무림과 현대에서는 신화 속의 존재가 실존하는 곳이니까.
‘강해져도 된다.’
무림에서 찾지 못한 대적자가 이곳에는 존재할지도 모르니까.
비록 현대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