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36)
제 336화
336화
옛 종족은 ‘죽은 녀석’이라는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죽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원래라면 그는 영원한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야 했다.
종말이 강제로 앞당겨지고 미들어스와 아스트랄의 벽이 얇아지며 존재의 이유와 다르게 눈이 뜨여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존재는 무척이나 신비롭군.’
옛 종족의 황금빛 눈동자가 제론을 훑었다.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 이유를 알아냈다. 그의 몸 주변에는 막대한 양의 인과율이 쌓여 있기 때문이었다.
인과율이란 원인에서 결과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의 법칙성이다. 하지만 옛 종족에게 인과율은 그런 단순한 뜻을 의미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그토록 알아내고자 원하는 세상의 진리이자 신비였다.
‘여러 세계의 인과율이 섞여 있군.’
인과율의 종류가 서로 달랐다.
호기심이 생겨났다.
무슨 이유로 이런 존재가 미들어스에 있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기에 지켜보기로 했다.
먼 옛날 미들어스의 수호자였던 때처럼.
* * *
제론은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드래곤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공격할 의사가 느껴지지 않아.’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인물이 눈앞에 있기도 했다.
아인호르타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를 왜 불러냈지?”
“곧 마지막이 찾아올 거니까.”
“여기서 내가 너를 처리한다면 마지막이 오지 않지는 않을까?”
“그래도 마지막은 온다. 나의 존재는 마지막을 불러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이유였을 뿐, 여기서 소멸하여 영원한 잠에 빠져든다고 하여 마지막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긴. 진짜도 아닌 가짜를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긴 하겠어.”
제론은 반쯤 뽑았던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예전에는 아인호르타하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할 수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보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은 실체를 갖고 있지만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운을 추적하자 방향이 대충이나 짐작 가능했다.
“진짜는 보라색 타워에 있는 건가?”
“맞다. 나의 본체는 저주의 매개체 안에 잠들어 있다.”
“흐응. 그 사실을 왜 순순히 밝히는 거지?”
“쉽지 않을 테니까. 마르헨 대륙의 종말을 바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아스트랄의 신들이 그대를 막을 것이다.”
“이상하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아.”
제론은 눈썹을 가운데로 좁히며 말했다.
“네가 마르헨 대륙의 종말을 바라는 건 그렇다고 쳐. 수백 년 동안 꾸민 음모나 흉계를 보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단단히 꼬여 있다는 걸 알 수 있거든. 그런데 왜 신들이라고 불리는 놈들이 종말을 바라는 걸까?”
“…….”
아인호르타하가 무미건조한 눈빛과 표정으로 제론을 응시했다.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또한 제론은 그에게 대답을 듣고자 묻는 것이 아니었다.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종말이든 뭐든 막을 거니까.”
“나 역시 그것을 고대하지.”
“그래서 나를 왜 불러냈어?”
“종말을 막을지도 모르는 존재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너 내 팬이었냐? 사인해줄까?”
“……역시 재미있는 인간이군.”
아인호르타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한 가지 알려주지. 지금 아스트랄은 뜻이 분열했다. 그것을 잘 이용하면 종말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역시 내 팬이 맞았잖아. 등에다가 사인해줄까?”
“필요 없다.”
아인호르타하는 제론의 손을 쳐내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마르헨 대륙의 종말이 아니다.”
이 말을 끝으로 그는 사라졌다. 더불어서 그와 함께 이곳으로 왔던 옛 종족 역시 거대한 육체를 이끌고 날아갔다.
큰 날개가 펄럭이며 일으킨 바람에 먼지가 입속으로 들어왔다.
“으퉤퉤.”
제론은 입속에 들어온 것을 뱉어내고 아인호르타하가 남긴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원하는 게 마르헨 대륙의 종말이 아니라고?”
* * *
[왜 진실을 말해준 것이지?]“종말이 코앞으로 닥쳐왔으니까.”
[그런 이유라면 이해할 수 없군.]“미들어스의 수호자여. 나는 그대의 이해를 바란 적 없다. 그저 먼 옛날처럼 두 눈으로 세상을 지켜보기만 하라.”
황금빛 눈동자는 알겠다는 듯 두 차례 깜빡였다.
* * *
전 대륙의 최정예 병력이 중앙대륙에 집결하기 위해 출발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면 빠르게 도착하겠지만 병력의 숫자가 많아서 여러 차례 재가동하기 힘들었다.
또한 고장이라도 나면 위급한 상황에서 사용하지 못하니 큰일이었다.
괴수와 몬스터의 공격으로 몇몇 개의 텔레포트 게이트가 부서지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수리가 가능했다.
전 대륙의 최정예 병력이 집결하는 동안 중앙대륙은 보라색 타워를 감시했다.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접근하는 건 불가능했다.
누군가가 접근이라도 하면 괴수들과 몬스터들이 몰려와 공격했다.
중앙대륙의 오러 마스터가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 수십 명을 이끌고 갔다가 반 시체가 되어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보라색 타워뿐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괴수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기후의 이상 변화 역시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볼 줄이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이 데일 것처럼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이었는데, 이튿날이 되자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쳤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수백 명의 시민이 얼어 죽었다.
미미한 피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성 밖을 돌아다니는 괴수와 몬스터와는 다르게 시민들도 직접적인 체감이 가능한 재앙이었다.
“이 정도 눈보라면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겠어.”
중앙대륙으로 집결하고 있는 최정예 병력들의 도착 예정이 많이 늦어질 것으로 생각되었다.
제론은 침묵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 * *
한편 중앙대륙을 향해 모여드는 건 전 대륙의 최정예 병력들만이 아니었다.
부활한 잊힌 옛것과 죽은 옛것이 누군가의 부름에 응답하듯 무분별한 파괴행위를 멈추고 중앙대륙을 향해 움직였다.
처음에 그 모습을 목격한 것은 상단이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종말이 닥쳐온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로 괴수들의 이상한 움직임은 평소의 무분별한 행위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잊힌 옛것과 죽은 옛것이 국경을 넘어가며 전 대륙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자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은 이상기후의 영향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그저 중앙대륙으로 향하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중앙대륙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급보입니다!”
오른 왕국의 왕실에 통신 구슬로 급보가 도착했다. 중앙대륙 전역에서 괴수들이 급격한 이동을 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왕실은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대를 파견했다.
“괴수들이 평화롭게 모여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
조사대 대장은 새파랗게 질린 낯빛으로 왕실에 보고를 올렸다.
“이동 경로에 있는 모든 도시와 마을에 대피령을 내려라!”
몬스터들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오른 왕국의 북부를 지키는 레바테인 공작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시민을 이끌고 이동 경로에 포함되지 않은 도시로 피신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북대륙의 최정예 병력이 도착했다.
북대륙의 총사령관인 슈롬벨 백작은 오른 왕국의 왕실로 향했다.
국왕이 그를 직접 만났다.
“북대륙 역시 비슷한 상황이오?”
“그렇습니다. 보라색 타워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허어.”
슈롬벨 백작의 말에는 반쯤 확신이 담겨 있었다.
* * *
시간이 지나 전 대륙의 최정예 병력이 여러 왕국에 도착했다.
이상기후로 도착일이 늦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가 묻어있을지언정 각오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제론 역시 쥬페토와 함께 왕실로 향했다.
슈롬벨 백작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하하! 우리 사위 아닌가!”
“아직…….”
“아니라고? 진심으로?”
제론은 등 뒤에 꽂히는 쟌느의 시선을 느끼곤 입을 다물었다.
“페리안 백작이라고 합니다.”
“슈롬벨 백작입니다.”
쥬페토와 슈롬벨 백작은 성향이 달랐지만 금방 친해졌다.
“상황이 이렇지만 않으면 술이라도 한잔 꺾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텐데 아쉽구려.”
“남는 게 시간 아니겠습니까? 이번 전쟁이 끝나면 영지에 방문해주십시오. 제가 거하게 모시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럼 초대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벌써부터 혼인이 성사된 것처럼 따스한 공기가 흘렀다.
제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로한과 카론도 만났다.
“누나는?”
“내 안부가 아니라 헤샤의 안부부터 묻냐?”
“네 안부는 딱히 중요하지 않으니까.”
“야!”
카론이 옆에서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로한이 울컥했다.
“아 참. 나 이번 전쟁에 참모로 참전한다.”
“나는 지휘관이다. 그러고 보니 너보다 상관이군.”
“네가 왜 지휘관이야?”
“왕세자니까. 꼬우면 네가 왕세자 하든지.”
“하. 이래서 공작가 차남은 안 된다니까.”
제론은 벌써부터 투닥거리며 싸우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다들 변한 것이 없었다.
“너는 이번에 뭐 해?”
“나는 별동대로 움직여.”
“뭐야? 제일 하급자잖아?”
“큭큭. 독립부대라서 상관없어.”
제론이 비웃음을 띤 로한에게 말했다.
문득 카론이 묻는다.
“카야는 만나 봤냐?”
“……나 벌써부터 살 떨리려고 한다.”
“음. 저기 있군.”
카론의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돌리자 드레스를 입고 있는 카야가 보였다.
쟌느가 그녀와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쪽으로는 절대로 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나저나 큰일이야.”
“큰일이지. 엄청나게.”
“적어도 주어는 붙여주지 않을래?”
3명의 대화는 들쑥날쑥했다. 하지만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 정도로 친한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 결혼식은 어떻게 되었어?”
“상황이 이러해서 미뤄졌다.”
카론은 이웃 왕국의 공주와 결혼이 약속되어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며칠 뒤 성대한 연회와 함께 결혼식을 거행했겠지만, 종말이 코앞으로 닥쳐오며 잠시 뒤로 미뤄졌다.
“만나본 적은 있어?”
“음? 내가 말한 적 없나? 함께 살고 있다.”
“제론 너는?”
“나는 아직…….”
무심코 대답하던 제론은 쟌느와 카야의 시선을 느끼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 이 새끼 오줌 쌌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으로 보이는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어. 내가 지금 그 상태야. 쟌느와 카야의 한 맺힌 눈빛이 내 심장을 관통했어.”
“눈은 얼마 전에도 내렸고. 헛소리하지 마.”
제론이 시무룩해져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로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묻는다.
“출정은?”
“이틀 뒤로 결정될 것 같다.”
“흐음. 시간이 살짝 촉박하군.”
“촉박할 수밖에 없지. 지금도 국경을 넘어가고 있는 괴수들에 대한 보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까. 더 많은 숫자가 모이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