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4)
제34화
34화
‘천천히 한 발자국씩 걷자.’
시간은 충분하니까.
아직 자신의 몸은 다 자라지 못했고 이제 막 9살이니까.
과거의 힘을 모두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니까.
제론의 손이 허공에 수를 놓았다.
가로 베기.
세로 베기.
마지막으로 찌르기.
무림에서는 삼재검법이라고 불리는 검술이었다. 하지만 모든 검술이 삼재검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모든 창술의 기본인 ‘란攔’, ‘나拿’, ‘찰扎’처럼 말이다.
그러기에 삼재검법은 모든 검술의 시작과 끝이며 동시에 완전무결한 3개의 초식이었다.
‘이런.’
제론은 삼재검법의 시연을 마치고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목검을 쥔 탓인지 고양감을 절제하지 못했고, 흥분한 탓에 모든 깨달음이 담긴 삼재검법을 펼치고 말았다.
‘그래도 이것을 알아볼 사람은 없겠지.’
삼재검법은 완전무결해서 그 속에 담긴 진의眞意를 깨닫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론조차도 탈마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궁극의 오의奧義였다.
허나 제론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아……!”
어디선가 흘러나온 한 줄기의 탄성!
곧이어 대련장이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으윽!”
“아흐헤!”
꼬맹이들이 전부 식은땀을 흘리며 주먹으로 가슴을 치거나 목을 붙잡으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흘러나온 엄청난 오러의 힘에 짓눌려 숨을 쉬지 못한 것이었다.
꼬맹이들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져 갔다.
이윽고.
“유한 선생님!”
“크윽! 정신 차리십시오!”
보조 교사들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 * *
“!!!!!”
유한은 제론의 삼재검법을 본 순간 번갯불이 떨어져 영혼을 관통하는 충격에 빠졌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검로劍路였다. 그의 인생을 통틀어 제론이 펼친 3개의 검보다 아름답고 황홀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 유한은 처음 검을 쥐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검을 휘두르니까 막 날아다닐 것 같아요!
7살의 유한이 처음으로 검을 휘두르고 한 말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물을 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기분은 이상하게도 하늘 높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그래, 내가 왜 검을 들게 되었는지 기억이 난다.’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망각했던 순수했던 시절의 유한이었다.
초심初心!
가로 베기와 세로 베기, 찌르기만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을 연습했다.
지루하지 않았다.
지치지 않았다.
힘들지 않았다.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이 좋았으니까.
‘나는 초심을 잊고 있었구나.’
제론의 검술 시연을 보자 깨달았다.
유한의 입가에 첫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은 미소가 깃들었다.
영혼을 관통한 번갯불이 깨달음으로 되돌아왔다.
고오오오오오-!
오러 홀에서 강대한 힘이 들끓었다.
이런 힘이 잠들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곧 깨달았다.
오랫동안 앞을 막고 있던 벽이 허물어지며 새롭게 용솟음친 힘이라는 것을!
새로운 힘이 전신으로 퍼졌다.
‘아아!’
희열과 쾌락이 머리를 뜨겁게 만들었다. 환희에 찬 비명이 입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마음껏 터트리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입을 열면 영원과 같은 이 순간이 끝날 테니까!
그러나.
“크윽.”
“서, 선생님! 오…러를……!”
보조 교사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은 순간 유한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들이 유한의 오러에서 학생들을 보호하고 있던 것이다.
“아차!”
유한이 흠칫 놀라며 다급하게 오러를 거둬들였다. 동시에 평생을 통틀어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하아……!”
유한이 짙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억! 허억!”
“사, 살았다……!”
보조 교사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털썩 주저앉았다.
‘실수했네.’
제론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입맛을 쩝- 다셨다.
유한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또다시 완벽에 가까운 삼재검법을 펼칠 생각이 없었다. 방금은 오랜만에 검을 쥐어서 고양감에 취해 흥분했다.
이 세상에서는 고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수를 했다.
유한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 보조 교사들이 나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의 신음과 외침에 유한은 깨달음을 얻던 도중 정신을 차렸다.
어쩌면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이 아니라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설 기회를 놓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한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섰다면 지금의 제론으로서는 막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제론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수업이 재개된 것은 약 10분이 지난 뒤였다.
짙은 한숨을 연달아 내쉬던 유한이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것이었다. 돌아온 그의 낯빛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드러났지만 본분을 잊지 않고 수업에 임했다.
제론은 그와 몇 차례 시선이 마주쳤지만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려줬다.
“이제부터 목검 대련을 하겠다. 각자 마음이 맞는 학생과 짝을 지어라.”
“!!!!”
제론이 눈을 번쩍 떴다.
목검 대련을 같은 학생들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번쩍 든 생각.
바로 로한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합법적으로 녀석을 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짝을 지으라는 말에 카론과 이쪽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 누구를 선택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감히 내게서 누나를 뺏어가려는 악적!’
로한에게로 향하는 제론의 발걸음이 경쾌했다.
“야, 나랑 같…….”
“넌 나랑 같이 짝을 지어야 해.”
로한이 대련 상대를 카론으로 정했는지 녀석한테 가서 말하려는 순간 제론은 두 명의 사이로 파고들어 악적의 팔을 잡으며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으음. 그럼 나는 다른 사람과 하지.”
카론이 제론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자리를 떴다.
로한이 잠시 어벙벙한 표정으로 카론의 등을 쳐다보다가 제론과 시선이 마주쳤다.
“왜,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야?”
평소라면 넉살 좋게 반응했을 로한이었지만 지금 제론의 눈빛은 가녀린 사슴을 앞에 둔 배고픈 호랑이의 것처럼 사납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알잖아?”
제론이 히죽 웃으며 눈웃음을 쳤다.
잠시 후.
“으악!”
로한의 비명이 대련장 안을 가득 채웠다.
* * *
수업이 끝나고 세 명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로한은 눈탱이 밤탱이가 된 채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제론에게 물었다. 반면 제론은 로한의 맞은편에 앉아서 속이 뻥 뚫린 표정으로 생과일주스를 쪽쪽 빨아 마시고 있었다.
‘아, 달다 달아.’
오늘따라 유달리 더 달달한 것 같다.
품질 좋은 과일이라도 들어왔나?
기분도 이상하게 상쾌하고.
“야! 나한테 왜…….”
로한이 발끈해서 소리치려다가 제론과 시선이 마주치자 말끝을 흐리며 눈을 조용히 내리깔았다.
제론의 눈빛이 다시 호랑이처럼 사납게 일렁였기 때문이다.
곧 눈을 내리깔았던 로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누님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
제론은 흠칫 놀라 생과일주스를 입에서 뿜어버리고 말았다.
“흠?!”
여유롭게 두 명을 구경하고 있던 카론은 허리를 유연하게 꺾어 피하는 것에 성공했으나 제론과 정면으로 마주 보며 앉아 있던 로한의 안면에는 생과일주스가 그대로 뿌려졌다.
“큰일 날 뻔했군.”
카론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반면 로한은.
“……음. 충분한 대답이었어.”
얼굴에 묻은 끈적끈적한 생과일주스를 기품 있게 닦아내며 말했다.
제론의 사나운 눈빛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아까와는 태도가 달라졌다. 일단 목소리에서 억울함이 사라졌다. 앞으로 기울었던 상체가 뒤로 젖혀지며 한결 여유를 뽐냈다.
곧 녀석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네가 그렇게 싫다면 하지 않으마.”
“뭘?”
“너희 누님.”
제론은 잠시 뚱한 표정으로 로한을 쳐다봤다.
녀석의 표정이 진지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내가 뭘?”
“뚱하잖아. 소중한 것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말이야.”
로한의 직설적인 말에 제론이 표정을 고치며 침묵했다.
너무 티가 났나 생각했다.
환생을 한 후 정신이 점점 어려져 간다는 것을 얼핏 느끼고 있었다.
무림에서 흔히들 그러지 않던가?
반로환동을 하면 육체가 정신의 나이에 맞춰서 젊어진다고!
제론은 이미 유민현의 삶을 살 때 반로환동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어리지 않았다. 27살의 유민현으로 돌아갔다.
57살이 되었지만 정신은 27살에서 멈춰 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9살이지.’
무뎌진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탄산음료에만 목메고 있던 무림에서의 상황보다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가끔씩 지금처럼 곤란할 때가 있었다.
‘9살짜리 꼬맹이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제론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어른스럽지 못하게 굴었네.”
“엥?”
로한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쳐다봤다.
옆에서 듣던 카론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야, 너 우리랑 같은 9살이야. 물론 뭐… 겉으로 보기에는 안 그렇지만. 아무튼! 네가 그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 소중한 누님이니까.”
“뭐?”
“소중한 누님이니까!”
제론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래, 누나가 소중하다는 말은 부정 못 한다. 그런데 왜 배알이 꼴리는 건지 모르겠다.
로한이 넉살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속이 배배 꼬인 것처럼 어금니가 꽉 깨물어진다. 간신히 표정이 찌푸려지는 것을 참았다. 지긋이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생각했다.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라고.
그렇게 작은 소동은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제론.”
“유한 선생님?”
담임 선생님이 새로운 사건을 몰고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니?”
* * *
제론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제자가 되라고요?”
“그래, 네가 펼쳤던 검술은 그만큼 완벽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 말로는 다시는 펼치지 못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일부러 감추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절할게요.”
“그래, 수락할 줄 알…… 어? 거절한다고?”
유한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제론은 어깨를 으쓱했다.
“예, 거절이요. 저를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가문의 검을 이어야 해서요.”
“그런……!”
유한은 뭐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을 지었으나 곧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거 말고 나의 검술을 배워라!’라고 말하기에는 가문의 검이라지 않은가! 상대만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 전체를 욕보이는 것이니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중간고사 공부를 해야 해서요.”
제론이 작게 고개를 숙이고 후다닥 사라졌다. 왠지 모르게 유한이 끈질기게 달라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유한은 제론이 사라진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이내 중얼거렸다.
“반드시 나에게 검을 가르쳐달라고 말하게 만들어 주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