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46)
제 346화
346화
“맞다.”
“그런데 그 사실과 아인호르타하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기록과 진실이 살짝 다르다고 하지만 정말로 사소한 차이였다.
“그들이 원한 것은 필멸자들의 멸망이었다.”
“마르헨 대륙 역시 멸망했어야 한다는 거로군.”
제론은 손을 저어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길을 막아내며 말했다.
베헤못이 그것을 보며 휘이-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특별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불길이 막혔다.
“정말 신기하군.”
“그런 꼴이 되지 않았다면 너도 할 수 있을 텐데?”
“불필요한 힘의 소모가 없이는 불가능하지. 우리는 싸움에 익숙한 존재가 아니니까.”
“아무튼, 계속 이야기해봐.”
“이런 상황에서?”
신과 악마가 옛 종족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하나둘 죽어갔다. 그들의 신성이 아인호르타하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태연하게 뒷이야기를 계속하라니. 정말이지 대담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나도, 너도 힘을 회복해야 하니까.”
“……흐흐. 여우가 잔꾀를 부리던 거였군.”
베헤못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 * *
아인호르타하는 가득 차오르는 신성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칼로파 대륙의 연결 매개체에 이어 마르헨 대륙의 연결 매개체까지 흡수해버린 지금, 그는 반쪽짜리 수호자에서 진정한 신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부족했다.
고작 신이 되기 위해 이러한 짓을 벌여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신화의 멸망.’
오래전 기억이 불쑥 떠오른다.
잊었다고 생각한 옛 기억.
언제부터 신화의 멸망을 꿈꿔왔던가.
자신이 혼자서 이 땅에 남겨졌을 때?
아니다.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였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순간 아인호르타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비록 반쪽짜리 수호자에 불과하나 그에게는 망각이라는 저주이자 축복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절대로 보고 들은 것을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터 신화의 멸망을 꿈꿔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기억을 거슬러서 올라가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아무 상관 없지.”
아인호르타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이유를 찾는 건 늦었다. 코앞까지 닥쳐온 종말을 이용해 신화를 멸망시킨다.
오직 그것만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달려왔기에.
* * *
옛 종족의 공격에서 제론의 일행들과 퓨리온 공작 등은 안전했다.
애당초 그들을 목표로 한 공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일찍 전장으로 발을 내디뎠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터.
“이거 기분이 조금 묘하구먼.”
그 원흉이 다른 사람도 아닌 퓨리온 공작의 망설임 때문이었으니 당사자로서는 복잡하고 미묘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잘 됐다고 하기에는 아까의 각오가 의미 없이 되는 것 같았고, 반대로 생각하자면 다 같이 죽었을 것이다.
알쏭달쏭한 미소가 퓨리온 공작의 입가에 맺혔다.
“허허. 이래서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지만.”
“제론 님 말로는 저것들이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해요.”
에르딘이 옆으로 와서 말했다.
퓨리온 공작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조금 전에 무너진 보라색 타워가 미들어스와 아스트랄의 차원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고 해요. 그러면서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것들을 본래의 세상으로 되돌려 보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서 이 세상에 묶어버렸다고 하네요.”
에르딘은 전음으로 들은 정보를 이들에게 전달했다.
슈롬벨 백작이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이 떠올라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날개를 잃은 천사는 인간이 되었다.”
“‘플롬뵐의 타락천사’라는 작품이라면 나도 본 적 있다네.”
“하하. 공작님께서도 아실 줄은 몰랐습니다.”
“별세한 부인이 그런 쪽으로 관심이 깊었거든.”
슈롬벨 백작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헛기침을 한 그가 바위 위로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확인했다.
옛 종족의 공격에 방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던 신과 악마가 이제는 반격하기에 이른 상태였다.
“어후. 엄청나군요. 이거 함부로 나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슬슬 준비하시게나.”
“예?”
“당한 만큼 돌려줘야지.”
퓨리온 공작이 허허 웃으며 휘둥그레 눈을 뜬 슈롬벨 백작에게 말했다.
제론의 일행들이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어섰다.
* * *
“……그렇게 된 것이다.”
제론은 베헤못의 말이 끝나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의 존재 이유가 처음부터 종말을 위해서였다고?”
“그렇다. 그는 종말을 위해서 태어난 존재. 아스트랄 역시 미들어스에 속했던 세상이니만큼 종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지.”
아인호르타하.
그 이름은 ‘예견된 종말’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놀랍게도 아인호르타하는 미들어스에 남아 있는 아스트랄의 존재들이 이 땅을 떠난 신과 악마에게 필멸자들을 멸망시켜달라고 간청하고 애원하여 태어난 존재였다.
그것도 신성이 분해되어 소멸한 어리고 약한 신의 잔재에서 태어난 것이다.
“다른 놈들은 아인호르타하에 대해 완전히 모르고 있는 거고?”
“그렇다. 아인호르타하는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스스로의 기억을 봉인시켰다. 오직 예견된 종말을 완수한다는 목적의식만 남겨둔 채 말이야.”
“불쌍한 녀석이었군.”
“불쌍하다? 그 말도 틀리지는 않겠군. 하지만 그 녀석한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완수해야 할, 살아가는 이유니까.”
“너는?”
“나는 나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지. 신과 악마가 신성을 지닌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베헤못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마디로 꼴리는 대로 한다는 말이었다. 이 새X도 만만치 않게 나쁜 놈인 건 확실했다. 쉽게 말하자며 나쁜 또라이. 그래도 나쁜 놈들 중에서는 제일 나은 놈이라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럼 슬슬 움직여볼까.”
에르딘 쪽에서 움직이려는 조짐이 보였다.
제론은 신성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달려갔다.
[……!]하늘을 누비며 신과 악마를 공격하던 옛 종족이 긴 목을 돌려 제론을 응시했다. 말라비틀어진 날개 가죽이 움직이며 빠르게 허공에서 선회하여 입을 크게 벌린다.
옛 종족의 벌려진 아가리 앞에 무지갯빛의 커다란 구체가 생겨났다.
“문 크리스탈 파워?”
제론은 검을 곧게 세우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무지갯빛의 구체가 발사되기 전에 반으로 갈라져 사라진다.
‘드래곤 브레스.’
옛 종족인 드래곤만이 갖고 있는 권능이었다. 신성이 충만하지 않았다면 손쉽게 갈라내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우선 저 녀석은 건드리지 않는다.’
살아남은 신과 악마를 상대하기 위한 미봉책이다. 제론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신과 악마, 그리고 아인호르타하였다.
그 셋 중 어느 하나도 빠트리면 안 된다.
대륙의 종말을 막기 위해서.
멍하니 서 있는 아인호르타하를 향해 달려갔다.
옛 종족-드래곤은 잠시 고뇌하였으나 제론을 외면했다.
어디까지나 그는 의지대로 행하는 자. 그저 갑작스럽게 존재감을 드러낸 제론에게 반응하여 권능을 사용하였을 뿐이었다.
[가거라.]“뭔지 몰라도 땡큐.”
제론은 드래곤이 다시 공격할 것 같지 않자 눈을 찡긋- 윙크해주고 아인호르타하를 향해 계속 달려갔다.
베헤못이 못 볼 꼴을 본 표정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저 녀석 뭐 하고 있는 거지?’
아인호르타하는 여전히 계속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녀석의 몸 주위로 흐르는 막대한 양의 신성이 느껴진다. 보라색 타워를 통해 신과 악마의 신성을 전부 흡수한 것이다.
하지만 제론의 신성 역시 적지 않았다.
아인호르타하가 나타나기 전까지 수많은 신과 악마를 베어내며 그들의 몸에서 흘러내린 신성을 흡수했다.
“아인호르타하.”
제론이 아인호르타하의 앞에 도착하자 흐릿했던 그의 눈빛에 색채가 돌아왔다.
이윽고 두 존재가 시선을 마주쳤다.
‘제로니아 페리안.’
아인호르타하가 제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예정된 종말의 시기가 앞당겨지게 된 원인.
“그래. 내가 왔다.”
제론이 이죽거리며 말했지만 아인호르타하는 아무런 감정도 동요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그러한 감정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평소와 같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제론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뭐 긴말이 필요하나?”
제론은 그렇게 말하곤 바로 검을 휘둘렀다. 잿빛의 힘이 검을 타고 채찍처럼 길게 뻗어져 나온다. 이윽고 채찍은 아인호르타하를 반으로 가른다. 하지만 통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은 듯 느껴졌다.
신기루나 아지랑이처럼 말이다.
제론은 눈앞의 아인호르타하가 잔상이거나 특수한 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촤악-!
잿빛의 채찍에 반으로 갈라진 아인호르타하의 몸이 살짝 흐릿해지더니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달라붙으며 뚜렷해진다.
‘영체화?’
아니.
영체가 아니다. 잿빛의 채찍에는 신성이 담겨 있었다. 영체인 상태라고 해도 베여야 한다. 하지만 손끝에는 아무런 감각이 남아 있지 않았다.
‘형상만 남겨진 상태.’
그러나 아인호르타하는 두 눈으로 오롯이 제론을 응시하고 있었다.
* * *
[과연.]옛 종족은 점차 거세지는 신과 악마의 반격에 온몸이 넝마로 변해갔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남아 있는 건 이미 죽어 뼈와 가죽으로 이루어진 육신이었다.
[나의 의지 또한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인가?]옛 종족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되었으나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세상의 이치란 한낱 피조물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먼 옛날 미들어스를 지키던 수호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따르리라.]옛 종족의 황금빛 눈동자가 세로로 갈라지며 입이 아닌 신역의 공간을 흔드는 고대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며 오롯이 세상의 법칙을 강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명령이었다.
“언령言靈이다!”
“신성으로 차단하면 괜찮…… 커헉!”
아직 힘의 흐름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신과 악마 몇몇이 칠공七孔에서 신성을 흘리며 쓰러졌다. 그들의 몸이 천천히 빛의 가루로 분쇄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완전한 소멸을 의미했다.
옛 종족 역시 멀쩡하지는 못했다. 영원한 잠에 빠져들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뼈와 가죽만 남은 육신으로 세상의 법칙을 조종하는 언령을 사용하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옛 종족의 가죽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뼈만 남았다. 언령을 사용한 대가였다. 그러나 세상의 법칙을 조종하는 행위를 주저하지 않았다. 모든 가죽이 사라지고 뼈만 존재하게 될 때까지도 언령을 사용하여 더 이상 아스트랄에 속하지 않게 된 신과 악마를 공격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거냐!”
“그렇다! 미들어스의 수호자가 어찌하여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냐!”
[세상의 의지이다.]“그 세상을 만든 것이 우리다! 그런데 어찌하여……!”
[미들어스의 의지가 그대들을 벌하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대지의 신 가르곤이 입을 쏙 다물었다. 그가 말하는 세상은 아스트랄의 공간이었다. 절대로 미들어스를 일컫는 게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흩어져 사라지나 미들어스의 의지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옛 종족은 신과 악마의 공격 속에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언령을 사용했다.
대지의 신 가르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소멸했다.
신과 악마는 자신들이 만든 신역의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쳤다. 하지만 그들의 뜻은 허락되지 않았다.
미들어스와 아스트랄의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역의 공간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수한 제물을 바쳐 쌓은 결과물이었다. 또한 미들어스의 의지였다. 온전한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 만든 공간이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감옥으로 변한 것이다.
허나 그것도 잠시.
옛 종족의 육신이 뼈만 남게 되자 신과 악마가 반색하며 외친다.
“놈이 소멸한다!”
“조금만 더 버텨! 아니, 공격해!”
옛 종족의 황금빛 눈동자에 한낱 미물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신과 악마가 보였다.
필사적으로 발악하는 꼴이 어찌 그들을 아스트랄의 존재이자 모든 생명에게 섬김을 받던 신과 악마라고 할 수 있을까.
[가엽도다. 하찮도다. 무엇이 그대들을 그런 꼴로 만들었는가.]옛 종족은 그들을 연민했다.
일개 필멸자에서 초월자로 거듭나 신이라 섬김받기까지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탐욕스러웠다. 여전히 욕망에 휘둘려 살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완전하고 완벽한 존재란 없으니까.
그런 존재가 있었다면 불완전함은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탐욕과 욕망이 스스로의 파멸을 자초하였다.]마침내 뼈가 가루로 변해 흩날리며 옛 종족은 서서히 존재를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신과 악마의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안타깝구나.]옛 종족은 탄식했다. 미들어스의 의지가 종말에 가까워지며 약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영원한 잠에 빠져든 그의 육신을 지탱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미들어스의 의지가 더 이상 나를 지탱하지 못하는구나.]바로 그때 황금빛 눈동자에 비치는 여러 그림자가 있었다. 신과 악마가 아니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자라, 스스로의 의지로 종말을 막기 위해 온 필멸자들이었다.
[이 역시 준비되어 있던 것인가?]옛 종족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힘을 그들에게 나누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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