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40)
제40화
40화
“축제라.”
제론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마냥 반갑게 느껴지는 단어가 아니었다.
이유인즉 유민현의 과거 때문이었다.
무림으로 넘어가기 전보다 더욱 오래전, 그러니까 현대에서 학교를 다닐 무렵 축제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학교에 관련된 기억 중에서 좋다고 말할 만한 기억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지만 유민현은 고아원 출신이었다.
고아원 출신의 학생 모두가 유민현처럼 악의에 찬 말을 듣고 자라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건 그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했다.
무사히 졸업한 건 아니었다. 여러 가지 불행이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 하나하나 다 말하자면 A4용지 수백 장에 써도 부족할 정도로 많았다. 대표적인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왕따도 당했고 집단적 괴롭힘도 받은 적 있었다.
운동회나 축제에서 무언가를 해본 기억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최악의 나날이었다.
원장선생님과 고아원 형과 누나, 동생들이 없었다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음침하고 기분 나쁜 성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유민현이 탄산음료에 집착하는 이유가 극강의 사이다 때문이었다.
목에 넘기는 순간 뇌를 물들이는 짜릿하고 시원한 청량감!
제론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현대인이었던 유민현의 나쁜 기억들이 지웠다.
“기분만 잡쳤네. 후우.”
지금의 나는 유민현이 아니다.
제론이다.
제로니아 페리안.
고아였던 유민현이 아니다.
멋있고 아름다운 부모님을 두고 형과 누나가 있는 제론이다.
제론은 스스로를 세뇌하듯 끊임없이 되뇌었다.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제론의 머릿속에는 무림에서 오랫동안 굴러먹은 노괴나 다름없는 유민현의 자아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10분 정도를 되뇌자 실제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곧 유민현이 아니라 제론으로서 축제 포스터를 다시 봤다.
불행 위에 행복을 쌓아 덮는다.
유민현이 아닌 제론으로서 살아간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현대도, 무림도 아니니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처럼!
제론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로 다짐했다.
전생의 유민현 역시 그것을 바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탄산음료는 잠시 잊도록 해볼까?”
축제를 순수한 마음으로 즐겨봐야지.
제론이 다짐하고 축제 포스터에 잠시 시선을 둔 뒤 돌아섰다.
연금술 클럽을 가입하려고 했던 계획을 뒤로 미뤘다.
새로운 삶에 제대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까지는 유민현이라는 존재를 잊기로 했다.
* * *
그날 이후로 제론은 순수하게 아카데미의 생활을 즐겼다.
9살 꼬맹이들은 여전히 귀찮게 굴었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유민현이 아닌 제론으로서 살아가고자 했지만 머릿속에 각인된 지식과 경험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어른의 인내심이란 생각보다 대단하다.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대단한 거지만 말이다.
‘그래도 제법 신선한 기분이네.’
제론이 공원을 산책하며 생각했다.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어도 50프로 정도는 비운 느낌이었다.
정말로 의외인 점은 귀족 가문의 꼬맹이들이 ‘내 아빠가 네 아빠보다 작위가 더 높은데?’라던가 ‘변방의 귀족 가문 자제 주제에!’라는 식으로 허세나 텃세를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진실은 달랐다.
제론과의 압도적인 신체적 스펙 차이로 감히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한 것이다.
일단 앞에 서면 커다란 벽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감히 말을 꺼내겠는가?
차라리 어른이라면 상관없었겠지만 제론은 같은 나이의 친구였다.
1학기를 같이 지내서 익숙해질 무렵 3달의 방학이 그것을 리셋 시켜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겁에 질리지만 않아도 다행인 셈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덧 축제가 코앞으로 닥쳐왔다.
“거참, 시간 겁나 빨리 지나가네.”
제론은 찌뿌둥한 몸을 풀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이 축제였다.
시험을 치르랴 축제를 준비하랴 다들 정신없이 바빴다.
그런 와중에서 제론은 연금술 클럽을 들어가지 않아서 여유만만이었다.
제론의 뒤를 조용히 따르던 에르딘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제론 님은 그새 더 크신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 일일이 재지는 않아서 말이야.”
“솔직히 부럽습니다. 전 아직도 키가…….”
에르딘은 말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녀석의 키는 전형적인 9살짜리였다.
이것도 잘 사는 귀족 가문의 자제 기준이었다. 평민이나 노예와 비교하면 5cm는 더 크다. 모시는 주인인 제론이 너무 커서 상대적으로 작다고 느끼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본인은 전혀 인정을 안 하지만 말이다.
“우유를 많이 마시라니까?”
“제론 님께서 우유를 마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만?”
“어허. 이제는 주인의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나 하고 말이야.”
“제론 님의 식대로 표현하면 꼰대 같다고 하면 되는 거죠?”
“나쁜 건 참 잘 배워.”
“칭찬 감사합니다.”
제론과 에르딘이 동시에 피식 웃었다.
잡담을 나누며 20분 정도 걸으니 축제 장소에 도착했다.
유민현이었다면 웬만해서 근처에 발도 내딛지 않았겠지만 제론으로 살아가기로 한 이상 스스로에게 변화가 필요했다.
‘즐기기로 했으니까.’
혹시 알까?
재밌는 일이라던가 좋은 추억이 생길지도 모르고 말이다.
“와, 사람이 너무 많은데요?”
에르딘이 뒤에서 감탄했다.
녀석의 말처럼 축제 장소에는 꼬맹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아카데미가 워낙 크고 넓어서 체감하지 못하는데 아카데미 학생의 총인원은 3천 5백 명이나 된다. 오른 왕국에서만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게 아니라 대륙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오른 왕국의 아카데미는 전 대륙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오래되어 많은 나라에서 입학을 자원한다.
그러하니 오른 왕국과 거리가 제법 먼 나라에서 오는 학생들은 방학 기간 동안 집으로 오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곤 했다.
수도에서 국경까지 이동하는 시간만 3달이 훌쩍 넘는다.
원거리 이동이 가능한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지만 이동하는 비용이 엄청나게 비쌌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구동시키기 위해 마정석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중요한 거점에만 설치가 되어 있어서 이용하더라도 모두가 각자의 집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먼 곳에 사는 학생들 대부분이 방학 기간 동안 숙소에 남아 방학을 보낸다.
그사이 집을 오고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신해서 부모가 온다.
타국의 귀족을 비롯해 지역의 지주나 발이 넓은 상인, 일정 이상의 부를 축적한 부자들 말이다.
그들은 자식을 빌미로 하여 아카데미의 안팎에서 만났다.
예전에 말한 적 있던 정치 혹은 교류의 목적을 둔 만남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방학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아카데미의 축제처럼 공개된 경우에도 온다.
“외부 사람도 오니까 많을 수밖에 없지. 게다가 학생들만 즐기는 게 아니라 교사들이나 아카데미 관계자들도 다 나와서 놀 거 아냐?”
제론은 간만에 흥이 솟는 것을 느꼈다. 축제 장소 곳곳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같은 학생들이었다.
“저거 맛있어 보이는데 먹을래?”
제론이 가리킨 것은 설탕에 열을 가한 채로 반죽한 사탕이었다.
색소를 알록달록 입혀놔서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저런 건 어린애들이나 먹는 겁니다.”
“네가 애지 뭐냐?”
에르딘이 콧방귀를 뀌었다.
“제 말을 오해하셨군요. 당연히 먹는다는 겁니다.”
“저런. 내가 큰 오해를 했네.”
둘은 키득키득 웃으며 사탕을 사서 쪽쪽 빨며 돌아다녔다.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클럽의 종류가 다행해서 연극이나 오페라 같은 것도 했다.
“아아. 창문을 열어주시오. 나의 베르앙디여!”
“하지만 당신은 남작 가문의 자제고, 저는 백작 가문의 자제예요. 우리는 서로에게 어울리는 신분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아버지께서…… 앗! 어서 빨리 가세요! 아버지께서 지금 오고 계시……!”
“네 이놈! 내가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이 죄는 네 아비에게 묻겠다!”
“어찌하여 우리의 사랑을 막는 것입니까? 저는 베르앙디를 사랑하고, 베르앙디는 저를 사랑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설령 죽음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럼 내 앞에서 이 단검으로 자결을 하거라. 그렇다면 죽음조차 너희의 사랑을 막지 못하겠노라고 인정하겠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쪽 세상 버전 연극.
“옛날 옛날에 서쪽 숲을 다스리는 블러디 베어와.”
“쿠어어어!”
“동쪽 초원을 다스리는 샤벨 타이거가 있었어요.”
“크르릉!”
“블러디 베어와 샤벨 타이거는 인간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침 중간계에 신이 강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이쪽 세상 버전 단군설화까지.
수준이 대단하지는 않았다.
축제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나이가 많아 봐야 최대 16살이다.
그 16살조차 졸업부생이라서 대부분 바빠 소수만 참여했다.
“그래도 제법 볼 만한데?”
나름 진지하게 연기를 하고 있는데 국어책을 읽는 말투여서 더 웃겼다. 가끔 관객이 환호를 하거나 호응하듯 질문을 하면 당황해서 어리바리를 타는데 그조차도 개그 요소였다.
“저도 나름 기대를 하긴 했는데, 기대 이상이라서 만족 중입니다. 밤에는 불꽃놀이도 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게 제일 기대됩니다.”
“불꽃놀이?”
“예. 하늘로 이적異蹟급 마법을 쏴 올리는데 축제에 오는 외부 사람들 대부분이 불꽃놀이를 보러 온다고 할 정도로 장관이라고 합니다.”
“위험하지는 않아?”
“파괴력이 있는 마법이 아니라 환상 계열이라서 괜찮다고 합니다.”
“너는 어떻게 그걸 다 아냐?”
“제이워크 가문이니까요.”
왕실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이것저것 주워듣는 게 많다는 뜻이다.
“그래, 너 잘났다.”
“제가 아니라 제 가문이 잘난 것이죠.”
“집안을 잘 둔 것도 능력이다. 기억해라.”
제론은 고개를 내젓고 생과일주스를 2개 사서 에르딘과 함께 쪽쪽 빨며 돌아다녔다.
마인드가 달라지니 주변을 보는 시야도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신선했다.
‘문화권이 달라서 그런가? 무림과는 확실히 다르네.’
현대와는 조금 비슷한 부분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외모가 서양 쪽이라서 색다르게 느껴졌다.
외국에 놀러 온 관광객 같은 심정이었다.
“응?”
한참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던 제론은 흥미로운 클럽 부스를 발견했다.
“당신의 운명을 봐 드립니다?”
클럽 이름은 ‘샤머니즘’이었다.
현대에서 샤머니즘Shamanism이란 원시종교의 하나였다.
초자연적 존재-신과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점복占卜이나 예언, 병을 치료하는 등 기적을 보여주는 존재들이 여기에 속한다.
제론은 이 세상에서도 샤머니즘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잠깐 생각해 보니 오히려 당연히 존재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신이 강림한 적 있는 세상이니까.’
신을 모시는 사제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아이오닉 교국敎國도 있었다.
“들어가 볼까?”
제론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샤머니즘’ 클럽의 부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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