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41)
제41화
41화
부스Booth라고 하면 전시장의 칸을 막아 임시로 만든 작은 공간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제론도 아카데미의 축제가 열리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각 클럽에서 사용하도록 부스를 설치해준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중간고사가 끝나고 축제 장소로 향한 제론은 자신이 아카데미를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부스의 크기가 웬만한 중소기업 사무실을 뺨칠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정한다.
‘샤머니즘’ 클럽은 S등급이라 아카데미에서 엄청난 혜택을 받아서 그런지 부스가 중소기업 사무실의 뺨을 1번이 아니라 족히 2번은 칠 정도로 컸다.
평수로 재면 대충 50평은 돼 보였다.
내부는 또 몇몇 칸으로 나누어져 입구를 중심으로 안내 데스크가 있고 앞으로 통로가 길게 늘어졌으며,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대략 10개의 방이 교차 배치되어 있었다.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군.’
아카데미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잊을 만하면 새삼 깜짝깜짝 놀란다.
“어서 오세요. 클럽 ‘샤머니즘’입니……다?!”
안내 데스크에 서 있던 선배가 제론과 에르딘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나 반기다가 마지막에는 제론을 알아보곤 깜짝 놀라 동공에 지진까지 일으키는 재주를 선보였다.
2학기가 되자 이런 반응에 익숙해진 제론과 에르딘이 담담하게 대화를 나눴다.
“예상했던 반응이네. 뭔가 새롭고 신선한 반응 없을까?”
“그런 반응이 있을 리가 없죠. 저도 저 선배님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놀랐을 테니까요. 사실 이건 비밀인데… 전 아직까지도 제론 님이 대리입학은 아닐까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으음. 왠지 나를 보는 시선이 음흉하더니. 하긴 나라도 나 같은 신입생이 있다면 놀라지 않을 자신이 없긴 해.”
“저, 저기…….”
깜짝 놀라 동공에 지진까지 일으켰던 안내 데스크 선배가 말을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네?”
“흐갹?!”
제론이 선배를 쳐다보자 또다시 깜짝 놀란다. 어떻게 비명을 질러야 저런 소리가 나오는지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호, 혹시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는 소문의 ‘그’ 신입생 맞…죠?”
“거인족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니고 소문의 ‘그’ 신입생은 맞아요.”
제론이 적당하게 정정해줬다. 하지만 선배는 듣지 못한 것인지-듣지 않은 것으로 봐도 무방했다-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양손을 가슴 앞으로 꼬옥 모았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어……!”
“저기, 선배님?”
이제야 말하지만 안내 데스크 선배는 여자였다.
정확하게는 소녀.
몇 부생인지는 모르겠다.
축제가 아니었다면 아카데미 교복-놀랍게도 현대의 중고등학교 교복과 비슷한 디자인이었다-을 보고 알겠지만 지금은 ‘샤머니즘’ 클럽의 컨셉 때문인지 로브를 입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로브 자락이 땅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선배님?”
“다른 선배들도 불러야 하나? 어떡하지? 나만 보고 싶은데!”
역시 듣지 않고 있던 게 맞았다.
‘야, 이거 어떡하냐?’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십니까?’
‘네가 내 집사니까.’
‘집사가 만능인 것은 아닙니다.’
제론과 에르딘이 눈빛으로 짧게 대화했다.
결국 이 상황을 해결할 사람은 이곳으로 오자고 한 제론이었다.
“선배님!”
“흐엑?!”
안내 데스크 쪽으로 상체를 쭉 내밀며 외치자 선배가 뒤로 자빠질 것처럼 크게 휘청거렸다.
제론이 재빨리 손을 뻗어 선배의 팔을 잡았다. 잡지 않았으면 자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팔을 잡힌 선배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하더니 잡히지 않은 손으로 한쪽 볼을 감싸 부끄럽다는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역시 제론 님입니다!”
에르딘이 옆에서 감탄하며 외치기까지 한다.
제론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선배의 팔을 잡아당겨 똑바로 세우고 말했다.
“조심하세요. 넘어질 뻔했잖아요.”
“스윗해……!”
거듭 말하지만 제론의 외모는 제법, 아니 많이 뛰어난 편이었다.
“네?”
“아,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선배가 고개를 흔들고 물었다.
제론은 이 선배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히 점 보러 왔죠. 앞에 쓰여 있잖아요? 당신의 운명을 봐 드린다고. 근처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많이 바쁘…….”
“아니요! 안 바빠요!”
“…시지 않으면 감사하죠. 그럼 접수 좀 해 주세요.”
“혹시 지명하실 분 있어요?”
“지명이요?”
제론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 반응을 본 선배가 ‘진짜 처음 왔나 보네.’라고 중얼거리며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안쪽으로 들어가 인원을 체크했다.
곧 밖으로 나온 선배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제가 추천해드려도 되나요?”
“예, 물론이죠.”
“메이엔 선배한테 한번 받아보세요. 마침 손님이 없어서 대기 중이세요.”
“메이엔 선배요?”
“아!”
제론은 뒤에서 흘러나온 감탄사에 고개를 돌렸다.
에르딘이 깜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녀석의 저런 반응은 굉장히 이례적이었기에 제론은 호기심이 솟구쳤다.
“유명해?”
“유명하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호오.”
제론이 계속 말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1학기 내내 아카데미와 관련된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제론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꼬맹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필수로 알아야 하는 건 에르딘이 척척박사님처럼 바로바로 알려주니까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어떤 의미로는 S클래스 학생이 받는 지원 혜택의 폐해였지만 제론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한 편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아카데미에서 근래에 가장 화제의 인물이라고 하면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는 제론을 비롯해 아이언하트 공작 가문의 차남 로한과 차기 왕세자로 낙점되다시피 한 1왕자 카론까지 3명이었다.
하지만 유명세를 기준으로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운명을 보는 소녀’라고 불리는 졸업부생 선배님이세요. 제론 님의 형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수석도 메이엔 선배님께서 차지하셨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까지 겸비하신 분이시고요.”
“‘운명을 보는 소녀’?”
제론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별명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무시하기는 힘든 별명이었다. 호기심이 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왜 그렇게 불리시냐면…….”
“그만. 미리 알고 가면 재미없잖아? 스포 당하는 기분이라고.”
“스포가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대충 의미는 알겠습니다.”
“아무튼, 그 선배님께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주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안내 데스크 선배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가장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돌아온 안내 데스크 선배가 들어가라고 말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고마워요. 선배.”
“아… 스윗해……!”
머쓱해진 제론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에르딘은 다른 선배한테 점을 본다고 했다.
“오?”
방으로 들어가자 조명이 꺼져 있어서 어두컴컴했고 발밑에는 자욱한 안개가 깔려 있었다.
살짝 한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는 드라이아이스인 것 같았다.
‘이 세상에 드라이아이스가 있긴 하려나?’
탄산을 만드는 기술이 있다면 드라이아이스 역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기술이 필요 없다.
웬만한 건 전부 마법으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론이 보기에도 마법은 참으로 훌륭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가 없는 게 당연하지.’
아주 먼 옛날에는 마법과 과학을 합친 마도 공학이 발전한 시대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간간이 발굴되는 유적으로 간접적인 체험만 가능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제론의 귓가에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운명이 이끈 소년이여.”
가녀린 목소리는 아직 소녀여서 그렇게 느껴진 것이다.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면 신비로웠다. 방의 분위기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컨셉에 맞게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론이 현대에서 무림으로 이동하고 이 세상에서 환생을 한 경험이 없었다면 방의 분위기와 목소리에 홀려서 멍하니 메이엔 선배를 쳐다봤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앞에 의자가 있어요. 와서 앉으세요.”
메이엔 선배로 추정되는 그림자가 당황했는지 잠시 침묵하고 말한다.
제론은 문을 닫고 성큼성큼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메이엔 선배의 모습이 검은 그림자 형태로만 보였겠지만 제론의 단전에는 40년 어치의 내공이 잠들어 있었다.
이까짓 어둠은 시야에 방해도 되지 않았다.
그 결과 제론은 메이엔 선배를 뚜렷하게 볼 수 있었고.
‘예쁘네?’
메이엔 선배가 누나에 못지않은 미소녀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제론의 눈에는 어린애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래요. 무엇을 알고 싶어서 왔나요?”
“음. 제 미래요.”
제론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운명을 봐준다는데 당연히 미래를 물어보는 게 맞다. 전생이라던가 과거는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자, 의자를 당겨서 가까이 오세요.”
제론은 메이엔 선배가 시키는 대로 했다.
달칵.
제론이 가까이 다가오자 메이엔 선배는 수정구를 눌러서 불을 켰다. 환하게 빛이 뿜어져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어렴풋이 선배의 모습이 비칠 정도였다.
이것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도구가 틀림없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꼬맹이들한테는 통할 만한 연출이었다.
그런데.
‘타로 카드?’
메이엔 선배가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카드 더미를 섞더니 10장을 뽑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뒤로 뒤집혀 있어서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타로 카드 점과 거의 비슷했다.
제론의 표정을 오해한 메이엔 선배가 말했다.
“이 10장의 카드는 순서대로 당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해요. 못 믿기죠? 알아요. 고작 이런 카드 10장으로 한 사람에 대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건 누구라도 믿기 힘들 테니까요.”
“으음. 솔직히 그렇긴 해요.”
제론은 ‘솔직히 타로 카드가 이 세상에도 있을 줄은 몰랐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재미로 듣기만 하세요. 나쁜 이야기는 흘려들으시면 되고요. 그럼 시작할게요. 자, 당신을 기준으로 가장 왼쪽의 카드를 뒤집어주세요. 그 카드는 과거예요.”
“음. 과거군요.”
미래를 알고 싶다고 했는데.
제론이 내심 생각했지만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시키는 대로 가장 왼쪽의 카드를 한 장 뒤집었다.
사슬 같은 것에 묶여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그 카드는 ‘얽매인 사람’이에요. 정방향인 것으로 보니 무언가에 묶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런데 이상하네요.”
메이엔 선배가 미간을 좁혔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쳐다보니 선배가 계속 뒤이어 말했다.
“다음 카드를 뒤집어주세요.”
“으음. 네.”
제론이 2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한 개의 선이 가로로 카드 중앙에 그어져 있고, 그 선을 중심으로 위에는 태양이 아래에는 음습한 지하가 있었다.
음습한 지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싸웠다.
“‘처절한 싸움’이라는 카드예요.”
메이엔 선배가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