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43)
제43화
43화
“으.”
에르딘은 콧물로 범벅된 손수건을 조심히 접었다.
마음 같아서는 버리고 싶었지만 왕실의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손바느질한 명품이었다. 가격이 비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구하기 힘들었다. 이대로 버리기는 아까워서 안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눈살을 찌푸린 제론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거 비싼 겁니다.”
에르딘이 변명하듯 말하자 제론은 얼른 표정을 바꿨다.
“누가 물어봤냐?”
“지금 표정으로 ‘저런 걸 왜 안주머니에 넣는 거야?’라며 말하고 계시잖아요!”
“벌써 사춘기가 왔나. 짜식, 까칠하네.”
제론이 희멀겋게 웃으며 에르딘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런 시선으로 쳐다본 건 사실이었다. 녀석이 알아차릴 줄 몰랐지만 말이다.
‘표정 관리가 많이 서툴러졌나?’
내심 뜨끔했다.
아무래도 에르딘과 많이 친해져서 저도 모르게 표정 관리를 안 한 것 같았다.
“그……! 하아. 아닙니다.”
에르딘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이러나저러나 제론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구렁이를 몇 마리나 삶아 먹었는지 어른들 못지않게 능글맞은 주인님이다.
‘포기하면 편해.’
에르딘은 9살에 유명한 격언을 깨닫고 말았다.
“짜식, 삐졌냐?”
그렇게 축제를 구경하며 돌아다니던 제론이 에르딘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 녀석의 표정이 계속 쀼루퉁했기 때문이다.
에르딘은 포기하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감정까지 완전히 죽이지는 못한 것이었다.
“안 삐졌습니다. 제가 무슨 좀생인 줄 아십니까? 아, 좀 하지 마십시오. 옆구리 아픕니다. 그만 좀 찌르라고요!”
“나중에 똑같은 걸로 하나 사줄게. 그러니까 표정 좀 풀어라.”
“됐습니다. 이거 비싼 겁니다.”
“얼만데?”
“대충 20골드 정도 할 겁니다.”
“20골드? 에이, 농담이 심하네. 차라리 자동으로 세탁기능이 있는 아티팩트에다가 한 300골드라고 했으면 믿었겠다.”
제론은 에르딘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웃었다.
명품의 ‘ㅁ’도 모르는 그였지만 고작 손수건 한 개가 20골드나 할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20실버라고 했으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이곳은 모든 것을 수제로 만들어서 가격이 비싸니까.
“나중에 진짜로 가격을 알게 되시면 기겁하시겠군.”
에르딘이 고개를 저으며 작게 중얼거리자 제론은 내심 움찔했다.
‘진짜인가?’
1골드가 대충 1백만 원 정도 된다. 즉, 20골드면 2천만 원이라는 것이다.
최고급 라인의 명품이라고 해도 손수건 1개에 2천만 원은 안 한다.
‘이태리 장인이 금사金絲-금으로 된 실-로 한 땀 한 땀 짰다고 해도 말이 안 되지.’
몇백 년을 묵히고 역사적인 가치까지 가진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물건을 9살짜리가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설령 존재한들 박물관 같은 곳에 고이 보관돼 있을 것이다.
‘그래도 1골드나 2골드는 하는 모양이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가격이지만 저 반응을 보니 제법 비싼 모양이다.
“그런데 카드 점은 어땠습니까?”
“재미있더라. 나름 신선하기도 했고. 카드로 한 사람의 삶을 살펴보는 게 신기했어.”
에르딘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하자 제론은 잽싸게 대답했다.
내심 미안해져 가고 있었는데 화제를 돌려주니 다행이었다.
‘내가 잘 해 줄게!’
졸업하기 전까지 무공도 알려주고 제 한 몸 지킬 만큼 강하게 만들어줄게!
아무튼 좋은 거 다 해 줄게!
‘형만 믿어!’
제론은 재빨리 미안한 마음을 없애버렸다.
에르딘이 그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양심에 털이 수북하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내심 억울하기도 한 제론이었다.
손수건에 코를 풀었다고 삐지다니!
원래 그런 용도로 쓰이지 않던가?
‘암, 그렇고말고.’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제론 님의 카드 점은 어땠습니까? 저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났다고 하더군요. 아마 제론 님을 말하는 거겠죠?”
“아마도? 그런데… 으음. 단어가 조금 께름칙하네. 동반자라니. 마치 마누라 같잖아?”
“듣고 보니 좀 그렇긴 하네요.”
에르딘이 제론의 카드 점을 궁금해하는 눈빛을 보냈다.
“나한테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요? 어… 저 그 말 들어본 적 있습니다.”
“잉? 어디서 들어봤는데?”
“형들한테요. 입대해서 자대배치를 받으니까 선임 병사가 와서 양손으로 눈을 가리더니 ‘보이냐? 이게 바로 네 전역일이다.’라고 말했다나? 아무튼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구나.”
유민현도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맞선임한테 똑같이 당한 기억이 있었다.
저런 건 세상은 달라도 공통분모인 모양이었다.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축제를 구경하는 사이 해가 저물었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축제의 하이라이트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퍼벙-!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오색빛깔의 아름다운 불꽃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였다.
축제에 온 모든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카데미 건물 안에서 공무를 보던 관계자들도 이때만큼은 창문으로 다가가 불꽃놀이를 바라봤다.
불꽃놀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성공을 기원’과 ‘죽음을 애도’였다.
커다란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하고,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는 그 슬픔을 달래주고 영웅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한다.
오른 왕국의 개국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의 불꽃놀이는 화려하다기보다는 은은하게 밝고 찬란했다.
아침이 찾아오기 직전의 새벽녘 같았다.
“희망의 아침?”
제론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 * *
아카데미 교장 아브람은 창문 바깥으로 불꽃놀이를 바라봤다. 그의 등 뒤로 전 교직원이 모여 있었다. 축제를 한창 즐겨야 할 때였으나 축제가 끝나고 바로 치러질 졸업부생의 2차 졸업시험으로 잠시 모인 것이다.
“선생님들은 저 불꽃놀이에 담긴 의미를 알고 계십니까?”
“‘새로운 희망의 아침’ 아닙니까?”
“맞습니다. ‘새로운 희망의 아침’이지요. 건국왕께서는 오른 왕국을 건국하시며 왕국민 모두가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나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카데미에서는 매년 개국 기념 축제 때마다 ‘새로운 희망의 아침’이 열리길 바라며 불꽃놀이를 하지요. 아직까지는 건국왕의 유지遺志가 잘 이어지고 있으나 언제 어디서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를지 모릅니다. 대륙의 평화가 마냥 반갑지 못하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지만요.”
아브람은 흘흘 웃었다.
이 자리에 모인 전 교직원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무튼 다들 바쁘실 텐데 쓸데없는 이야기는 치우도록 하지요. 그래서…… 졸업부생들의 2차 졸업시험은 잘 준비되고 있습니까?”
“예, 혹시 모를 몬스터의 대이동이나 타국의 습격을 대비해서 척후병을 보내 정찰했습니다. 아직까지는 문제가 될 소지는 없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왕실의 지원을 받아 주기적으로 계속 정찰을 돌 예정입니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오른 왕국의 미래나 다름없습니다. 절대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졸업부생 중에서 수석인 가르시안 페리안이라고 했던가요? 그는 어떻습니까? 선생님들의 평가를 듣고 싶군요.”
“아주 훌륭한 학생입니다. 아니, 최고이자 완벽한 학생이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개인소견으로는 페리안 남작가의 소영주만 아니었다면 왕실 수호 기사단에 추천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왕실 수호 기사단에요?”
아브람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왕실 수호 기사단은 경험과 지식, 능력을 두루 갖춘 최고의 엘리트 기사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이었다.
가르시안 페리안이 아카데미 역사상 한 손에 꼽힐 천재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왕실 수호 기사단의 입단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아브람은 몇 년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카데미 역사상 한 손에 꼽힐 천재라고 하지만 아직 어리다.’
15살의 소년이다.
벌써부터 헛물을 들이켜기에는 이르다.
그런데 가른에 대한 고평가는 선생 한 명으로 그치지 않았다.
“어? 저만 그 생각을 했던 게 아니었군요.”
“어림짐작에 가깝긴 하지만 10년 안에 왕실 수호 기사단장에 오를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졸업하고 10년 후면 26살이니까… 최연소 왕실 수호 기사단장이 되는 건가요?”
“10년도 길지 않겠습니까? 저는 7년 정도면 충분하다고 예상합니다.”
“왕실 수호 기사단도 좋지만 지휘관으로서의 재능도 차고 넘치니 장교로 입대하면 5년 안에 총사령관으로…….”
“그만!”
아브람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수선해지자 외쳤다. 동시에 가르시안 페리안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매우 낮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정도의 인재란 말인가?’
여전히 미심쩍었지만 선생들이 왜 아쉬워하는지는 알았다.
페리안 남작령은 변방에 위치한 영지였다. 오른 왕국의 봉신가지만 다른 가문과 다르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곳의 소영주이니 차기 영주가 되어 영지를 다스릴 것이다.
만약 영주가 될 생각이 없었다면 이미 선생들의 유혹에 넘어갔을 터이고 다들 이렇게 안타까워할 리가 없었다.
아브람도 조금씩 페리안 가문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동생인 헤이샤르 페리안 학생은 어떤가요?”
“여러 곳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특출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조금 한정적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무척이나 발이 빠르고 궁술은 가히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기동대나 레인저Ranger 쪽이 어울리는데… 아마도 가르시안 페리안 학생처럼 몇 년 뒤면 큰 명성을 떨치리라 생각합니다.”
“흐음. 그렇군요.”
“하지만 귀족가의 여식이니 아무래도…….”
말하던 선생이 뒷말을 잇지 않았지만 아브람은 대충이나마 예상했다.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겠지.’
페리안 남작가라면 다를지도 모른다. 그들의 행보를 보면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륙 어디에서도 여인의 몸으로 활약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몇 차례의 전례로 인식이 천천히 변해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무리였다.
“두 학생이 그 정도로 재능이 있다면… 제로니아 페리안 학생은 어떻습니까?”
“아직 신입생이라서 잘 모르겠…….”
“왕국! 아니, 대륙 최고의 기사가 될 재능이 있습니다.”
대답하던 선생의 말허리를 자르며 유한이 대뜸 단언했다.
“아닙니다! 제론 학생은 최고의 정령술사가 될 겁니다.”
이번엔 제이나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제 생각은 두 분과 다릅니다. 전 제론 학생에게서 최고의 전투 마법 지휘관이 될 자질을 봤습니다. 본질을 파악하는 식견과 스펀지처럼 마법 지식을 흡수하는 두뇌! 제 이름을 걸고 장담컨대 대륙 최강의 전투 마법 병단이 탄생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말한 선생은 데르먼이었다.
앞의 두 명에 비해 제법 논리적이었다.
“대륙 최고의 기사가 될 겁니다!”
“대륙 최고의 정령사라니까요?”
“제가 방금 한 말을 못 들으셨습니까? 전투 마법 지휘관이 어울리는 학생입니다.”
3명의 선생이 일어선 채 서로를 노려봤다.
제론과 접점이 없거나 큰 관심을 갖지 않은 선생들은 당황해서 그들을 쳐다봤으나 일전의 사건으로 대충 상황을 알고 있던 아브람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중재했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로니아 페리안 학생은 어느 누구의 제자도 될 생각이 없다고 했고요.”
“…….”
3명의 선생들이 침묵했다. 아브람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차차 생각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물러설 때입니다. 배려 없는 강요는 오히려 반발만 일으킵니다. 그러니 진정하고 앉으세요.”
아브람의 말에 3명의 선생들은 자리에 앉았다.
바로 그때 누군가 제론의 이름을 들어봤다는 듯 중얼거렸다.
“제로니아 페리안?”
“소문의 그 신입생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다른 선생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는 그…….”
“선생님도 그 소문을 믿어요?”
“하하. 믿는 건 아닙니다만 워낙 소문이 재밌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 번 멀리서 지켜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크긴 크더군요.”
“호오? 2부생이 되면 만날 기회가 생길 테니 기대되는군요.”
다른 선생들이 제론에게 하나둘씩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3명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망했다!’
유한과 제이나, 데르먼이 동시에 생각했다.
본의 아니게 제론이 아카데미 모든 선생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