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44)
제44화
44화
축제가 끝나자 곧바로 2차 졸업시험이 시행되었다.
시험결과는 제론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형은 압도적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랄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수석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윽고 졸업부생이 아카데미로 복귀하자 졸업식이 시작됐다.
“가르시안 페리안 학생은 졸업부생을 대표해서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형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아카데미 수석졸업생을 상징하는 졸업 모자의 금색 수실이 흔들리며 조명에 반짝였다. 저 금색 수실의 재질은 금이라고 한다. 예전에 에르딘의 손수건을 보고 금사로 만들었냐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건 농담이었고 저건 진짜였다.
‘얼마나 하려나?’
문득 잡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어 떨쳐냈다.
곧 단상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형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내 형이면 저 정도는 해야지!’
제론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제 졸업까지 2년 남은 누나가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나름 잘하고 있으니 뭐라고 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지.’
워낙 왈가닥이다 보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사고 한 번 안 치고 무사히 아카데미를 다녔고 이대로 2년이 지나면 상위권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는 점에서 칭찬을 받아 마땅했다.
‘아주 훌륭합니다. 헤이샤르 학생. 선생님은 매우 기뻐서 눈물까지 날 것 같아요.’
제론이 누나를 생각하며 흐뭇해하는 사이 졸업식이 끝났다.
“……이상 졸업식을 마칩니다. 졸업부생 여러분들 그동안 수고와 고생 많으셨습니다. 돌아가시는 발걸음에 신의 은총이 깃들길 바랍니다.”
짝짝짝짝-!
형이 졸업생들을 대표해서 교장 선생님께 졸업장을 받고 단상에서 내려오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부모 석에 앉아 지켜보던 부모님-졸업식은 학부모도 참관이 가능했다-께서 형에게 다가갔다. 제법 장성한 형이었지만 아직 부모님보다는 작았다. 부모님이 꼬옥 안아주니 품에 쏙 들어갔다. 따스한 온기를 나누는 가족에게 제론도 다가가서 형을 안아줬다.
“으으!”
누나가 징그럽게 뭐 하는 거냐며 질색했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더니 흥흥- 콧방귀를 뀌며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살짝 안아주는 전형적인 츤데레의 모습을 보여줬다.
‘내 누나가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제론은 잠시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누나를 쳐다봤다.
곧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쳤다.
엄마를 닮은 누나가 예쁘고 귀여운 건 당연한 이치였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끼리는 그런 거 없지만.’
어느새 누나가 다시 오크(?)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제론의 가족에게 한 소녀가 다가왔다. 차석을 상징하는 은색 수실이 달려 있는 졸업 모자를 쓴 메이엔이었다.
‘나를 보러 오는 건가?’
제론이 그녀의 기척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메이엔은 카드 점의 결과를 굉장히 신경 썼다.
배지를 건네준 것이 증거였다.
축제가 끝나고 바로 2차 졸업시험이 시작돼서 아카데미 안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모든 학생이 한자리에 모이는 졸업식이었다. 앞으로 제론이 졸업하기 전까지 만날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니 마지막으로 만나러 오는 것이다.
메이엔은 제론이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주춤거렸으나 가까이 다가왔다. 이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제론 후배님. 잠깐 시간이 있을까요?”
“네? 잠깐이라면… 될 거 같아요.”
뚫어질 것처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형과 누나, 부모님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등에 꽂혔다.
“예쁘네?”
“저 아이는 누구지?”
“동기인 메이엔 발렌타인이라고 합니다. 어머니.”
“역시 내 아들이구나.”
차례대로 누나와 엄마, 형 아빠였다.
‘역시나 내가 목적(?)이었구만.’
이래서 인기인은 괴롭다니까.
제론은 살짝 어깨가 으쓱거리는 것을 느꼈다.
메이엔과 졸업식장을 빠져나가 카페로 갔다.
졸업식이 끝나서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막상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긴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
짧게 함축하면 메이엔이 나중에 제론을 찾아가거나 반대로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짐작했던 것처럼 카드 점 때문이었다.
‘아티팩트라는 건 좀 의외였지만.’
카드에 기묘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아티팩트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티팩트에서 느껴진 기운이 마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공도, 마나도, 정령의 기운도 아닌 전혀 색다른 기운!
제론은 처음으로 접해본 종류의 힘이었다.
그래서 신기했고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힘은 너무나도 미약했으니까.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
“조심히 돌아가세요. 메이엔 선배님.”
“후배님의 앞길에 ‘영원의 숲’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메이엔이 성호를 긋듯 손짓하고 가슴 앞에 양손을 모았다.
“선배님께도 ‘영원의 숲’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제론도 얼떨결에 따라 하자 그녀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꼭 뵈었으면 좋겠어요.”
“선배님 같은 미인이라면 저야 환영이죠.”
“어머. 고마워요.”
메이엔이 양 뺨을 살짝 붉히고 떠났다.
제론도 남은 음료수를 쪽쪽 빨아 마시며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 갔다.
“흠흠. 그 소녀와는 무슨 사이냐?”
돌아온 제론에게 아빠가 묻는다.
옆에서 양손을 모은 채 대답을 기다리는 엄마는 호기심과 흥분으로 고양되어 있었다. 관심이 없는 척 딴청을 피우는 형과 누나도 본심은 달랐던지 곁눈질로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혹시 아카데미 와서 사귄 여자 친구냐?”
“아니에요.”
제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누나가 말했다.
“뭐가 아니야? 얼굴에 구멍이 뚫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뜨겁게 쳐다보던데! 아주 나까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니까.”
“흠. 그 정도였나? 내가 보기에는 아니었는데.”
형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박했으나 놀랍게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가족의 모든 관심은 제론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축제 때 카드 점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나 봐요. 나중에 안 좋은 인연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나? 그래서 조금 더 자세히 카드 점을 봐주고 싶다고. 혹시나 시간이랑 기회가 된다면 자기를 찾아와 달라고 말하더라고요.”
“안 좋은 인연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고?”
“내 아들이라서 하는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더 걱정이 되는구나.”
제론의 말에 아빠가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도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누나가 기가 찬 헛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이거 다 수작이잖아! 나중에 또 만나고 싶어서 약속을 만드는 거지. 고작 카드 점 가지고 다들 왜 이렇게 진지해? 그냥 재미로 보는 걸.”
“메이엔 발렌타인 양의 카드 점은 특별하다고 아카데미에서 정평이 나 있다. 맹신하기는 무리겠지만 불신해서 좋을 것도 없지.”
누나의 말에 형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누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 사제 납셨어. 아주 그냥 신의 말씀이야.”
“나도 예전에 메이엔 발렌타인 양에게 카드 점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녀가 말하길 가문에 커다란 복이 찾아왔다고 하더군. 나는 그 복이 제론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녀석이 태어난 이후로 페리안 남작가가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역시 내 아들이다.”
아빠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엄마는 무엇에 감동 받았는지 몰라도 손수건을 꺼내 촉촉해진 눈가를 닦고 있었다.
“내가 비정상인 거야? 그런 거냐고!”
누나가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제론이 보기에는 누나한테 사춘기가 온 게 분명했다.
* * *
제론은 가족들과 함께 남작령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에르딘이 같이 가지 않았다.
가문에서 소환령이 떨어졌다나?
제이워크 가문은 1년마다 집사로서의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조금 신기했지만 부모님은 알고 있었는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하긴 전문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닐 테지.’
제론은 내심 납득했다. 이윽고 페리안 남작령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 * *
“한 것도 없는데 2학기네.”
제론이 작게 투덜거렸다.
투덜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학기 중에는 공부를 하며 꼬맹이들을 상대했다.
방학 때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형의 무공을 봐줬다.
아카데미에서는 졸업부생이 되어 2차 시험을 코앞에 둔 누나에게 새로운 궁술과 신법을 알려주느라 게으름을 피울 여유조차 없었다.
그랬다.
제론은 어느새 3부생이 된 것이었다.
“곧 2학기가 끝나니까 12살도 멀지 않았네.”
“저는 제론님이 12살이 된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에르딘이 제론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제론의 키가 170cm를 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직 한 해가 지나가지 않아 11살인 제론은 졸업부생 중에서도 최장신인 선배보다 손가락 한 마디 이상 더 컸다.
정확하게 재보지 않아서 170cm를 넘었다고 추측하는 것이지, 실상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고 에르딘은 예상하고 있었다.
“저는 정말 가끔이긴 하지만 제론님의 몸속에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는 그 소문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웬 헛소리야?”
“제론님의 키가 하루를 멀다 하고 쑥쑥 크니까요.”
에르딘이 제론의 옆으로 딱 달라붙어서 손을 위로 뻗었다. 정확하게 손목에서 제론의 머리가 걸린다. 나름 2년 동안 자신도 쑥쑥 컸다고 자부하지만 제론의 옆에 있으니 조촐해 보였다.
“그러게 우유를 마시라니까?”
“마시고 있습니다! 마시고 있다고요!”
“너도 사춘기냐? 우리 누나도 얼마 전까지 사춘기였는데.”
“이익! 으익!”
“풋.”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날뛰는 에르딘에게 살포시 미소를 흘려준 제론은 교무실로 갔다. 유한 선생님이 그를 찾았기 때문이다.
교무실로 들어가자 많은 선생님들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문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제론인 것을 보고 반색하며 묻는다.
“제론이구나. 무슨 일로 온 거냐?”
“유한 선생님께서 찾으셔서요.”
이번에는 다른 선생님이 묻는다.
“유한 선생님이?”
“부탁할 게 있다고 하셔서요.”
또 다른 선생님이 묻는다.
“또? 하여간 그 선생님은 심심하면 너만 찾는다?”
“하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너무 오냐오냐 받아주지 마. 그러다가 유한 선생님께서 버릇 잘못 드신다.”
선생님들이 하하 웃는다.
제론은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유한의 개인 집무실로 갔다.
개인 집무실은 S클래스를 담당하는 담임 선생님들한테만 배정된다. 유한은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지금은 최상급이 되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였기에 여전히 S클래스를 담당했고. 개인 집무실의 위치가 교무실 안쪽이라서 지난 2년간 제론을 찾는 선생님들이 많아 밥 먹듯이 이곳을 들락거리다 보니 이제는 다른 선생님들도 친근하게 말을 걸어올 정도였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졌다는 게 뭔가 담담해서 더 씁쓸하네.’
쓴웃음을 지으며 유한의 개인 집무실 문을 노크했다.
“왔으면 들어와라.”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한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만 기다려라. 거의 다 끝나가니까.”
“네.”
제론은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