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45)
제45화
45화
“후우. 미안하게 됐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유한이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 넣었다.
제론이 힐끔 서류를 쳐다보니 ‘전투 실습 계획 보고서’라는 글자가 보였다.
4부생이 되면 전투 실습을 나간다고 들었다.
그것과 관련된 서류 같았다.
애당초 유한이 그를 개인 집무실로 부른 이유가 전투 실습 때문이었다.
유한은 책상 위를 정리하며 천천히 말했다.
“이전에 말하긴 했지만 4부생이 되면 1학기에 전투 실습을 나갈 거다. 당연하지만 성적에도 큰 반영이 되겠지.”
“그런데 저는 왜 부르셨어요?”
제론이 담담하게 물었다.
불필요한 대화는 스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뜻이었다.
유한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고 말했다.
“…혹시 모를 상황이 오면 다른 친구들을 부탁하려고 불렀다.”
“에이.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요.”
“나는 네가 오러를 다룬다는 것을 안다.”
그 말을 들은 제론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유한은 100프로 확신하고 있었다. 말투와 표정이 그것을 말한다.
단순한 어림짐작은 아니라는 뜻.
‘어떻게 알았지?’
제론은 살짝 의아했다.
아카데미에 입학 이후 한 번도 힘을 외부로 내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유추할 만한 몇 가지 단서를 던져준 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반 배정 테스트와 검술 수업이었다.
물론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오러 연공을 살펴보거나, 테스트 도중 기척을 알아차리고 순간 멈칫한 것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 의심하는 건 힘들 테고… 아무래도 삼재검법이 문제였나?’
제일 의심이 가는 건 신입생 때 검술 수업에서 사고를 친 것이다.
제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완벽에 가까운 검술 시연을 보여줬다.
덕분에 유한 선생님이 깨달음을 얻게 되었지만 그의 식견이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래서 인기인은 피곤하다니까.’
제론이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유한을 비롯해 몇 명의 선생님들이 그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조금 과했다. 직접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린 적도 없는데 확신하고 있으니 다른 설명이 불필요하리라.
‘흐음. 어떡하지? 이거 은근히 골치 아프네.’
제론의 기 응용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다. 모르는 척 잡아뗄 수도 있다. 오러를 흘려보내도 숨기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주의를 기울이면 언젠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유한 선생님이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고?
전 대륙에 50명의 오러 마스터가 있다.
이는 공식적인 숫자였다.
자신의 힘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강자들까지 포함해도 100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100명도 엄청 높게 잡은 것이다. 그런데 유한 선생님은 오러 마스터 바로 아래 경지인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이었다.
공식적인 집계로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의 강자는 전 대륙에서 5천 명을 겨우 웃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전 대륙을 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대륙이 중앙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경계를 긋고 있으니 5개의 대륙으로 나누어지는데, 한 대륙마다 1천 명씩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의 강자가 있다면 유한 선생님은 중앙대륙에서도 마스터를 포함해 1천 명 안에 드는 강자라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마스터의 경지가 멀지 않아 보였다.
제론이 한순간이라도 내공을 사용한다면 바로 눈치챌 것이다.
‘그때는 빼도 박도 못하지.’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무슨 수작은 못 부리겠지만 귀찮은 일이 생기리라.
“특별상점을 주겠다. 설령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4부생 혹은 5부생 때 S클래스가 유지되도록…….”
“그런 건 필요 없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부탁은 받아들일게요.”
“그게 정말이냐? 그런데 왜 특별상점을 안 받겠다는 거냐?”
유한이 안도함과 동시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특별상점은 S클래스를 담당하는 선생들에게만 주어지는 고유권한이었다. 성적이 낮아서 클래스가 다운되려는 페널티를 없애주는 아주 특별한 상점이다. 그런데 제론은 자신의 부탁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받길 거절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특별상점이 없어도 클래스 유지는 쉬우니까요. 그리고… 친하지는 않더라도 같은 반 학우가 옆에서 죽는 모습을 지켜볼 생각도 없고요. 어른이 되어서 그 정도도 못 하겠어요?”
“네가…… 음. 아니다.”
유한은 ‘네가 어른이라고?’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일단 겉모습 자체가 마냥 애라고 보기 힘든 이유도 있었지만 ‘모든 문제는 말에서 비롯된다.’라는 격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부탁하마.”
“아직요. 계산이 끝나지 않았잖아요.”
“응?”
유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론의 계산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특별상점을 안 받는다고 했지 다른 것을 안 받는다고는 안 했잖아요?”
“하지만.”
“설마 선생님께서 말씀을 번복하시려는 건 아니시죠?”
유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같은 반 학우가 죽는 모습을 지켜볼 생각이 없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아쉬운 건 이쪽이었다. 아직까지도 제론을 포기하지 않았다.
특별상점이 아니더라도 S클래스 담당 선생으로서 학생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많았다.
“으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구나. 내가 먼저 부탁을 한 입장이기도 하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라.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다 해주마.”
“정말이죠?”
제론이 히죽 웃었다.
* * *
제론은 교무실을 빠져나와 방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밤이 깊어지기 전에 누나의 무공을 손봐줘야 했다.
‘2차 졸업시험이 멀지 않았으니까.’
누나한테는 ‘다친 곳 없이 무사히 졸업한다.’는 중대한 임무가 있다.
사실 지금까지 봐준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언제 어디서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막말로 죄수들이 단체로 탈주 시도를 한다면 아카데미 학생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왕실의 기사와 병사들이 배치된다고 하지만 탈주 시도의 전례가 있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설마 내가 졸업시험 치를 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제론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누나에게 줄 비급을 작성했다.
* * *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누나는 무사히 졸업했다.
형처럼 수석은 아니었지만 제법 상위권으로 졸업식을 마쳤다.
졸업식에 형은 오지 못했다.
아빠를 대신해서 영주 대리로 남작령에 남았다나.
이윽고 신학기를 맞았다.
제론은 4부생이 되어 입학식에 참가했다.
‘벌써 12살이네.’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다. 신입생으로 입학할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멍하니 서서 입학식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2부생 앞 열에 서 있는 예쁘장한 꼬마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꼬마 소녀는 포니테일로 머리를 땋고 있었는데 얼마나 머리카락이 길던지 허리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이건 제론의 시점이었고,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머리카락의 길이가 아닌 색에 초점을 둘 것이다.
바로 태양빛 머리카락!
그랬다.
꼬마 소녀는 오른 왕국의 꽃이라고 불리는 카이야스 오른 압실론 1왕녀였다.
애칭은 카야.
참고로 나이는 카론보다 2살 아래다.
‘어디 카 씨요? 오른 카 씨입니다.’
카론과 카야.
절묘하게 카 자 돌림으로 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한 제론이었다.
아무튼 카야라는 꼬맹이가 이대로 잘 큰다면 누나보다는 못하지만 졸업한 메이엔 선배 정도의 미모를 뽐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쁘장한 축이었다.
그래도 제론의 시선에는 그냥 꼬맹이로만 보였지만 말이다.
“흥.”
카야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메롱- 하고 혀를 쏙 내민다.
제론은 고개를 갸웃했다.
‘쟤는 또 왜 저러냐.’
저 꼬맹이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입학식 때였다.
카론이 자신의 첫 번째 여동생이라고 소개를 시켜줬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나?
카야는 9살의 나이에 벌써 사춘기가 찾아왔는지 카론이 무슨 말만 하면 툴툴거리며 쏘아붙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1년 동안 카론과 함께 다니다 보니 가끔 마주치긴 했는데 특별히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이상하게 그의 앞에만 서면 입을 꾹 다문 채 죽일 듯 노려보기만 했다.
‘내 첫인상이 별로였나?’
나름 잘생겼다고 자부하는데.
어쩌면 누나처럼 츤데레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오빠-카론을 너무 좋아해서 녀석과 친한 자신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 브라콤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쨌거나 저 꼬맹이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친하지도 않으니까.
따분함 속에서 입학식이 끝났다.
제론은 하품을 하면서 카론에게 갔다. 녀석의 옆에 꼬맹이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카야였고, 나머지 한 명은 처음 봤다.
복장을 보니 신입생이었다.
그런데 신입생이 제론을 향해 대뜸 이렇게 외치는 것이 아닌가.
“무엄하구나!”
“뭐가?”
“감히 왕족의 앞에서……!”
카야가 손을 휘둘러 신입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악-!
신입생은 눈이라도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되게끔 찰진 소리와 함께 앞으로 자빠졌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강당 안이 적막으로 물들었다.
곧 사방에서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2왕자님!”
“괘, 괜찮으십니까!”
중간의 외침이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신입생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신입생은 바로 왕위계승권을 갖고 있는 2왕자였다.
현 국왕에게는 2명의 정실 왕비가 있는데 각기 1왕자와 2왕자를 낳았다. 즉, 카론과 배다른 형제라는 것이다. 동시에 왕위를 놓고 다투는 입장이고 말이다.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게! 누나가 그렇게 가르쳤어?”
카야가 2왕자한테 으르렁거렸다.
그런데 2왕자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일어나질 못했다.
‘아따. 손맛이 아주 찰지구려.’
제론은 2왕자가 기절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맛!”
뒤늦게 2왕자가 기절한 것을 알고 카야가 발을 동동 굴렀고, 아카데미에 파견된 사제가 출동하는 사태로 번졌으나 제론에게는 별것 아닌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 정도로 제론을 당황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안하다.”
“뭐가?”
“동생들이 사고를 쳐서…….”
카론이 말끝을 흐렸다.
제론은 손을 절레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덕분에 나름 재밌는 입학식이 되었다.
“그보다 전투 실습은 잘 준비하고 있어?”
“그것 때문에 방학 동안 쉬지도 못하고 군사학을 배웠다.”
“꺼이꺼이. 헤샤아아.”
마지막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는 로한의 것이었다. 새로운 학기가 됐는데 누나가 졸업하고 없으니 혼자서 서럽게 우는 중이었다.
“헤어진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서럽게 우냐?”
“하루라도 안 보면 죽을 것 같단 말이다!”
로한이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외쳤다. 곧 다시 서럽게 울어대는데 제론과 카론이 녀석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지랄도 가지가지네.”
“동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