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47)
제47화
47화
끈적끈적하고 음습한 음기와 옅은 혈향이 공기 중에 섞였다.
‘사람의 피는 아니군.’
뭐랄까.
맛으로 표현하면 쇠처럼 비리지 않았다. 케일 녹즙을 섞어놓은 것마냥 쓰고 더럽게 맛없고 거슬리는 비린 맛에 가까웠다.
이것이 바로 몬스터의 피 냄새다.
제론은 그 사실을 깨닫고 가늘게 눈을 떴다. 기감을 높여 주변으로 은밀하게 내공을 흘렸다. 몬스터의 피 냄새는 옅었지만 다른 냄새도 함께 맡았기 때문이다.
들개나 늑대 특유의 누린내였다. 하지만 몬스터가 많은 ‘에단의 은신처’에 짐승들이 잡아먹히려고 들어올 리가 없었다.
예측이 되는 몬스터 1종이 있다.
‘놀Gnoll인가?’
놀에 대해 쉽게 설명하자면 이족보행 하는 들개나 늑대를 떠올리면 된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늑대인간과는 다르다.
늑대인간은 말 그대로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놀은 아니었다.
들개나 늑대가 사람처럼 서 있는 것이라서 허리가 구부렁했고, 지능도 높지 않아서 도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되는 몬스터라고 하지.’
놀은 몬스터 중에서 지능이 높은 편이다.
녀석들의 지능이 높지 않다는 사실은 사람을 기준으로 했을 때다.
도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
놀은 몽둥이를 휘두를 줄 알고 방어구가 자신들의 몸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안다. 또한 들개와 늑대의 습성도 갖고 있어서 무리를 이루고, 무척이나 교활한 방법으로 먹잇감을 사냥한다.
제론의 짐작을 확신시켜주기라도 하듯 한 병사가 심상치 않은 흔적을 발견했다.
“놀이 싸운 흔적입니다.”
“모두 정지.”
기사가 손을 들며 말하자 행군이 멈췄다.
“잠시 주변을 살피고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을 한곳으로 모아주십시오.”
“자자, 다들 이쪽으로 모여라.”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인솔해 한곳으로 모았다. 전투 실습을 시작하기 전 우발적인 사고가 생기지 않게 대비하는 것이다.
잠시 후 주변을 정찰하고 돌아온 기사가 말했다.
“놀들의 영역 다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놀은 영역본능이 있는 몬스터였다. 무리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자주 싸운다. 보기 드문 현상은 아니었다.
“다른 몬스터는 없었습니까?”
“고블린이나 그렘린 같은 소형종이 있습니다. 전투 실습을 위해 방치해 뒀습니다.”
“위험한 녀석들은 아니로군요.”
선생님들은 기사의 말을 듣고 모여서 짧게 회의를 했다.
그사이 레인저들이 다시 한번 주변을 정찰하러 갔다.
한편 제론은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상한데?’
놀들의 영역싸움.
단순히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투 흔적을 살펴본 제론의 감각에는 녀석들의 감정이 느껴졌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영역 다툼이 아니다.
제론은 확신했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서 도망치다가 만났고 자기들끼리 싸웠다.
‘공포와 혼란, 충격.’
그 외로도 부정적인 감정들이 흘러들어왔다.
가장 큰 것은 공포.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제론, 아니 유민현이 마선이라고 불리게 된 일화였다.
당시 중원 무림은 유민현을 장차 무림에 크나큰 위험이 될지도 모른다고 단정했다. 강한 힘을 가진 마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서 27년을 산 유민현은 무림의 사상에 완전히 물들지 않았고, 윤리와 도덕 면에서는 나름 엄격한 기준을 세워서 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중원 무림은 명분이 설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유민현을 주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림을 떠돌던 도중 한 정파 무림의 명숙-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이 힘없는 백성의 여식을 강간하려는 장면을 목격했다.
유민현은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쳐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팼다.
구해준 여인은 유민현의 무자비한 폭력을 목격하고 도망쳤고, 명숙-범죄자는 소동을 알고 몰려온 정파인 덕분에 겨우 목숨만 건졌다.
상당한 고구마 전개였지만 현대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범죄자-명숙이 여인을 강간하려고 한 악적은 유민현이었다며 모함을 한 것이다. 그는 ‘힘없는 여인을 강간하려던 마인에게 단죄를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마인은 강했고, 여인만 겨우 도망치게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유민현으로서는 기가 찰 일이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지만 중원 무림이 주시하고 있는 마인이 바로 유민현이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명분名分!
유민현에게 단죄의 철퇴를 내릴 명분만 있으면 됐다.
거짓도 진실로 만들면 그만.
유민현은 순식간에 온갖 악행을 저지른 마인으로 둔갑했다.
분노를 금치 못했고 무림과 맞서 싸웠다.
천라지망 속에서 수백 명의 정파인과 사파인을 물리쳤다.
유민현의 힘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 중원 무림의 실책이었다.
처음부터 무림의 절대 고수가 나섰다면 유민현은 살아남지 못했다.
투쟁으로 강해지지 못했다.
탈마를 이루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다급하게 무림의 절대 고수가 나섰지만 탈마를 이룬 유민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유민현이라는 마인을 죽이기 위해 몰려든 모두가 도망쳤다.
그 이후로 유민현의 별호는 마魔의 하늘에 올라섰다고 하여 마선魔仙이 되었다.
‘지금 느껴지는 게 그때랑 비슷해.’
자신에게서 도망치던 무림인들의 감정이 놀의 흔적에서 느껴진다.
‘유한 선생님한테 말할까?’
제론의 고민은 짧았다.
100프로 믿지 못할 테지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흐음. 확실한 증거도 없이 다른 선생님들과 왕실의 기사들에게 위험하다며 물러나자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에단의 은신처’는 아카데미에서 3일 거리에 있다.
아카데미 선생들과 학생들은 전투 실습이라 마차를 타고 와서 반나절밖에 안 걸렸지만 왕실의 기사와 병사들은 죄수들을 끌고 다녀야 했다.
죄수들의 이동시간을 생각하면 왕복 거리만 6일에 중간중간 휴식과 야영까지 해서 대략 8일에서 10일이 소요된다.
더군다나 전투 실습에 파견된 왕실의 기사가 10명이고 병사는 3천 명이다. 죄수가 고작 100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 많은 병력이었지만 학생들의 안전을 고려한 숫자였다.
그 많은 숫자가 10일의 시간을 소비한다.
재정도 문제가 되지만 시간이 더욱 큰 문제인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거라면 일정을 뒤로 미루면 되지만 왕실은 다르다. 레인저와 병사를 주변으로 정찰 보내서 위험이 될 몬스터를 발견하지 못하면 강경한 태도로 나갈 거다.”
제론의 말을 믿지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왕실과 아카데미의 사이는 상당히 기묘했다.
정확하게는 왕실과 아카데미에 소속된 기사나 마법사 관계가 그랬다.
아카데미 역시 왕실에 소속되었으나 파벌이 달랐다.
유한이 위의 내용까지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제론은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다.
‘참 복잡하게 사네.’
제론은 혀를 내둘렀다. 파견 나온 기사들과 선생님들 사이가 왠지 서먹서먹하더니 그런 이유가 있을 줄은 몰랐다.
서로 날을 세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혹시 모르니까 준비를 해둬야겠어.’
놀들의 흔적은 최소한 몇 시간 전에 생겼다.
녀석들을 두렵게 만든 존재가 인근을 벗어났을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지성이 있는 몬스터라면 기사들과 병사들도 많으니 절대로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리라.
‘그런데 왜 다른 흔적이 없는 거지?’
고블린 혹은 그렘린 같은 소형종 몬스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놀들을 두렵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개체의 흔적이 남지 않았다.
제론은 그 사실이 의아했다.
바로 그때 네로가 말을 걸어왔다.
[하찮은 인간 꼬마야.]“왜?”
제론이 네로를 쳐다봤다. 녀석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빼곡하게 드리운 나무숲만 보였다.
기감을 흘려보내도 곤충이나 토끼같이 작은 동물만 느껴졌다.
[……아무것도 아니다.]“뭐?”
제론이 반문했지만 네로는 혀로 앞발을 핥으며 못 들은 척했다.
이런 상태의 녀석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는다. 입만 아프게 재차 질문하는 대신 ‘에단의 은신처’에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네로가 신경을 쓸 정도의 일이 뭐지?’
정령술 수업에서 제이나 선생님이 정령은 세상의 일부이자 근원인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어떤 꼬맹이가 그럼 신이 아니냐고 물어보자 굳이 비유하자면 신의 조각-손톱 때 정도의 작은 조각이라고 덧붙였다-이나 신을 믿는 사제라고 했다.
‘무림 식으로 표현하자면 착한 요괴려나?’
요괴치고 착한 놈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무튼.
네로가 신경 쓸 만한 일이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정령술에 통달한 제이나 선생님이 있다면 알아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지금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최대한 빠르게 오더라도 하루는 걸린다.
제론이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왕실의 기사는 주변 정찰을 마치고 온 레인저에게 위험한 몬스터가 없다는 말을 전달받고 전투 실습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마법사들도 있으니까 괜찮겠지.”
제론은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중얼거렸다.
* * *
전투 실습이 시작되었다.
S클래스 1반은 지휘관이 되어 죄수 100명으로 전략을 짰다.
적은 ‘에단의 은신처’에 있는 몬스터였다.
죄수들이 탈주 시도를 하며 학생들을 공격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지급된 무기와 방어구는 엄청나게 조잡했다.
긴 나무 작대기에 조금 날카로운 돌조각이 달려 있는 창과 얇은 나무판자로 가슴을 덮는 브레스트 플레이였다.
“다시 한번 말한다. 전투 실습이라고 해서 너희들이 전술 전략을 새롭게 만들어서 할 필요가 없다.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수업이 아니니까. 그냥 전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한 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한은 죄수들을 부려먹기 전에 학생들을 모아 말했다.
짧고 간결하게 설명을 마치고 주의사항까지 짚었다.
“죄수들과 30m 거리를 유지하고 지휘한다. 만약 죄수들이 수상한 행동을 보인다면 즉각 가까운 선생님 혹은 기사님, 병사들에게 외쳐서 알리도록 해라. 또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절대 가지 말고.”
유한이 말을 끝내고 왕실의 기사에게 시작 신호를 보냈다.
끄덕.
왕실의 기사는 수신호로 죄수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S클래스 1반의 전투 실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존재가 있었다.
* * *
시간을 돌려 3시간 전.
‘에단의 은신처’를 영역으로 삼아 양분하던 놀 무리들은 평소처럼 영역 다툼을 하던 도중 2개의 무리가 힘을 합쳐도 이기지 못할 포식자가 나타나자 깨갱- 하고 울부짖으며 도망쳤다.
그렇게 놀 무리가 사라지자 거대한 몬스터가 쿵- 쿵-거리며 걸어왔다.
3m를 넘는 거대한 육체. 두꺼운 나무도 손쉽게 부러트릴 괴력. 칼과 창으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하는 두꺼운 가죽.
숲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오우거Ogre였다.
크아아아아아-!
오우거는 ‘에단의 은신처’ 중심에서 강력한 피어Fear를 터트리며 이곳이 자신의 영역임을 선포했다.
숲의 모든 존재가 새로운 지배자를 숨죽이며 경배했다.
제론들이 ‘에단의 은신처’에 도착하기 불과 3시간 전의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