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51)
제51화
51화
아카데미는 4부생의 전투 실습 도중 나타난 오우거 때문에 오랜 시간 시끌벅적했다.
피해 보상을 받자며 말하는 선생들도 있었고, 정식으로 왕실에 탄원서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선생들도 있었다.
물론 위의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
‘에단의 은신처’를 관리하는 것은 왕실의 몫만이 아니었다.
전투 실습 현장으로 사용하는 아카데미에게 결정적인 책임이 있다.
오우거가 언제 ‘에단의 은신처’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최후의 최후까지 안전을 점검했어야 한다.
현장에 있던 선생들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다행인 건 다친 학생들이 없다는 건가?”
교장 아브람이 꽃잎을 한 장씩 정성스럽게 닦으며 중얼거렸다. 학생들이 다쳤다면 쉽게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작게 긁히거나 넘어져서 생긴 타박상 정도는 있지만 무마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2가지.”
첫 번째로 오우거를 죽인 존재가 누구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유일한 단서는 마나도 오러도 아닌 기묘한 힘의 잔향.
추적술을 전문적으로 익힌 프로 헌터가 아닌 이상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잔향이 옅었다.
결국 추적은 포기했다. 잔향이 옅었다는 것도 있었지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이유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우거를 사냥한 업적은 대륙에 명성이 퍼질 정도로 대단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면 나서지 않을 수가 없다.
“정체를 감추고 싶다는 뜻.”
최소한 마스터 급 실력자다.
제국에서도 후작위를 받을 존재가 오른 왕국 아카데미의 선생과 학생들을 구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저 이유 말고는 떠올리지 못하겠다.
이내 아브람은 고개를 저었다.
“괜히 자극할 필요는 없겠지.”
어쩌면 큰 범죄를 저지른 흉악한 자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떠돌며 강한 존재와 싸우는 것을 목표로 삼은 자일지도 모른다.
제법 적지 않은 이름들이 머릿속으로 떠올랐지만 모두가 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학생들을 도와준 이유는 모르겠지만 건드려서 좋을 것은 없다.
두 번째로 중요한 점.
“오우거가 ‘에단의 은신처’로 오게 된 이유.”
‘에단의 은신처’는 아카데미가 오랜 시간 전투 실습 현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숲에서 주변 일대까지 어떤 몬스터가 서식하고 지형지물이 어떤지 속속히 파악하고 있었다.
지난 수십여 년간 ‘에단의 은신처’와 주변 일대에서는 오우거가 출몰한 적이 없었다.
아카데미 전투 실습을 앞둔 몇 달간은 특히나 신경 쓴다.
자연재해 급 몬스터의 이동이라면 미연에 알아차렸을 터.
“그렇다면 외부에서 들어온 놈이라는 건데.”
오른 왕국의 영토에서 오우거가 서식하는 곳을 조사해보면 조금 더 확실해지리라.
만약.
정말로 만약에.
“누군가 수작을 부린 것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아브람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뚝.
그 순간 손에 힘이 들어가며 꽃잎이 뜯겨졌다.
“아? 아… 아아!”
아브람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뜯겨진 꽃잎을 바라봤다.
“에이프릴! 맙소사! 내, 내가 무슨 짓을! 오 신이시여!”
아카데미 교장 아브람.
그는 지독한 꽃 애호가였다.
* * *
지하실로 추측되는 장소에서 육망성이 그려진 커다란 원형 탁자를 중심으로 검은색 로브를 입은 6명의 인영이 둘러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실패했네.”
한 명의 입에서 고혹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은한 불빛에 비친 로브 안쪽으로 가늘고 선명한 붉은색 입술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을 빨리 실패했다는 것일까?
의문은 또 다른 한 명에 의해 해소되었다.
“이제 막 성체가 된 오우거였으니까 어쩔 수 없지.”
경박하게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뭐…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실패했다는 말에는 동의해. 적어도 1년 정도는 시간을 끌어줄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네임드가 될 자질이 있는 녀석이었는데 좀 아깝네. 거기까지 데려가려고 제법 공들였는데.”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경박한 목소리의 남자는 ‘에단의 은신처’로 오우거를 데려갔다고 한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번에는 허스키한 목소리의 남자. 앞서 말하던 2명이 남자의 말에 집중했다.
“이제 막 성체가 되었다고 하지만 오우거다. 네임드가 될 자질까지 있던 녀석이라면 최소한 마스터 급의 실력자가 상대해야 하지. 하지만 입수한 정보로는 아카데미의 피해는 무척이나 약소하다고 하더군.”
“그건 조금 의외네. 잠깐, 아카데미에 마스터 급 실력자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떠돌이일지도 모르지.”
“흐응.”
고혹적인 콧소리가 흘러나왔다. 2가지 경우 모두 가능성이 있지만 후자에 더욱 무게를 뒀다. ‘에단의 은신처’에 파견된 왕실 기사들과 아카데미 선생들 중에서 마스터 급 실력자는 없었으니까.
“동부대륙의 대검호大劍豪가 오우거를 찾아다닌 걸지도 모르겠네.”
동부대륙의 대검호는 오우거 슬레이어로 유명했다.
정체를 감추고 오우거를 사냥했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야?”
로브 6인 중 경박한 목소리의 남자가 물었다.
고혹적인 목소리의 여인이 기가 찬 콧소리를 내고 툭툭 쏘아붙였다.
“당분간 행동거지를 조심해야지. 1년의 시간을 벌려고 했는데 실패했잖아? 너는 괜히 나대다가 꼬리가 붙잡혀서 뒤지지 말고.”
“이런 X년이! 지금 뭐라고 했어!”
“고자 새끼는 성 기능뿐만이 고장 난 게 아니라 귀도 고장 나나 보네?”
“앞뒤가 똑같은 년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
“이 개……!”
“그만.”
허스키한 목소리의 남자가 느릿하게 말하자 두 사람이 멈췄다.
두 사람은 허스키한 목소리의 남자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눈치를 보는 것이다.
상관관계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변수가 끼어들면 안 되니까 오른 왕국은 당분간 손을 뗀다.”
“이러면 계획을 전부 바꿔야 하지 않나?”
침묵하고 있던 3명 중 한 명이었다.
저절로 미소가 맺힐 정도로 듣기 좋은 로우 톤의 목소리였다.
“적어도 3년.”
다른 한 명이 가녀린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문맥상 계획을 바꾸는 시간이 3년 정도 소요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계획을 바꿀 3년 동안 제국을 흔든다.”
마지막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어느 제국?”
“칼튼!”
고혹적인 목소리의 여인이 로브 안쪽에서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네?”
이윽고 로브 6인이 하나씩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 * *
오우거 소동이 마무리된 것은 1학기가 끝날 때쯤이었다.
“그래서 어땠어?”
“어떻긴 뭐가 어때. 그냥 겁나 무섭게 생겼더라고. 그래서 바로 도망쳤지.”
제론이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2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전투 실습 현장에서 벌어진 소동을 물어보는 꼬맹이들이 많았다.
바로 대피를 하느라 오우거의 피어만 들은 녀석들이었다.
질문도 참 다양했다.
오우거는 어떻게 생겼냐.
오우거는 얼마나 강했냐.
오우거는…….
오우거는…….
2달이 넘도록 똑같은 질문만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제는 귀에서 진물이 흘러내리다 못해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제론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말했다.
“유한 선생님이 오우거랑 싸우셨다니까 선생님한테 물어봐봐.”
“으응. 하지만 유한 선생님은 무서운걸.”
꼬맹이가 고개를 저었다.
제론은 헛웃음을 들이켜며 물어봤다.
“허, 나는 안 무섭냐?”
“어? 어… 어… 무섭지. 하지만 유한 선생님만큼은 안 무서운걸?”
그래도 같은 반 학우여서 덜 무섭나 보다.
“어흥!”
“푸하하하! 뭐 하는 거야!”
제론이 호랑이처럼 손동작을 취하며 울부짖자 꼬맹이가 포복절도했다.
얼마나 시원하게 웃던지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혔다.
“나는 선생님이 불러서 간다.”
“응! 이따 봐!”
제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교실을 빠져나가 교무실로 향했다.
선생님들은 모두 바쁜지 제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덕분에 편안하게 유한의 집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똑똑.
“들어와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을 중심으로 다크서클이 진하게 번진 유한이 보였다.
제론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생각했다.
‘판다인 줄 알았네.’
사자 갈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풍성한 머리카락이 둥그렇게 퍼져 있으니 판다의 동글동글한 체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사자검이 아니라 판다검이라고 불러도 되겠어.’
잠시 기다리자 유한이 작성하던 서류를 끝내고 말했다.
“미안하다.”
“아니에요.”
제론이 헤헤 웃었다.
“아카데미에서 지시사항이 내려왔다.”
유한의 말을 간략하게 줄이자면 전투 실습을 나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인원을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것이다.
S클래스 1반에서 제론이 마지막 순서였다.
“나는 네가 오우거 슬레이어라는 것을 안다.”
“제가요?”
“그래, 오우거를 죽인 존재는 너다.”
유한은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부정할 생각이 없었던 제론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 아니, 오우거를 네가 죽였다니까?”
“음. 음. 그렇군요!”
유한이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제론을 쳐다봤다.
긍정하는 건지 부정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곧 ‘아차!’ 하며 녀석의 처세술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마터면 격장지계에 넘어갈 뻔했군.”
“……?”
제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듣고만 있었다. 질문을 해서 대답까지 했다. 그런데 뭐가 큰일 날 뻔했다는 건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모양이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유한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넌 누구냐?”
“제론이요.”
“…….”
“어, 음. 제로니아 페리안. 쥬페토 페리안 남작과 아이리 남작 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제론이 말끝을 흐렸다.
유한의 표정을 보자 이걸 묻는 게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적사항이라면 알고 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너의 진짜 정체다.”
“예?”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적어도 제론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내 진짜 정체가 뭔데?’
* * *
“하아아암.”
30대로 보이는 하늘색 머리카락의 사내가 크게 하품을 했다.
무척이나 평화롭고 지루해 보이는 모습.
그러나 사내의 앞에 늘어진 몬스터의 시체를 보면 절대로 그런 감상평이 나올 수 없었다.
“트롤Troll은 더럽게 생명력이 질기기만 하고 너무 약해.”
사내가 클레이모어에 묻은 트롤의 피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빨리! 주머니를 가져와!”
“이게 다 돈이라고! 한 방울도 흘리지 마!”
트롤 사냥이 끝난 것을 알아차린 병사들이 재빨리 달려와 녀석들의 피를 짜서 주머니에 받았다. 트롤의 피는 포션의 재료로 사용돼서 주머니 한 개의 양이면 몇십 골드나 한다. 병사들이 난리를 치는 것도 당연했다.
병사들을 통제하던 여기사가 하늘색 머리카락의 사내에게 다가와 사무적으로 말했다.
“트롤이 약한 건 당신의 기준에서만 그런 겁니다.”
“당신이라고 하지 말고 시무르 칸이라고 불러줘.”
시무르 칸!
동부대륙의 대검호大劍豪의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하늘색 머리카락의 사내가 동부대륙의 대검호란 말인가?
“그 소문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문?”
“오른 왕국에서 오우거가…….”
하늘색 머리카락의 사내-시무르 칸은 여기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오우거 슬레이어라고 불리는 동부대륙의 대검호가 맞는 모양이었다.
“이런.”
여기사는 ‘오우거가 죽었다고 먼저 말할걸.’이라며 후회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