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53)
제53화
53화
여기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 좀 들으세요. 얼른 돌아가야 한다고.”
“말이 좀 짧다?”
시무르 칸이 뒤돌아서서 여기사를 쳐다봤다.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으나 여기사는 무서워하는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제가 말을 짧게 하지 않도록 만들어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음. 그런 일은 없지 않을까?”
“그래서 이러는 거다. 상관님아.”
“부관의 반말은 언제 들어도 참 정겹단 말이야.”
시무르 칸은 언제 인상을 찌푸렸냐는 듯 히죽 웃으며 여기사-부관의 바이저를 슥슥 쓰다듬었다. 바이저에서 까드득- 까드득- 하며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부서질 것 같은 위태로운 소리가 났다.
“투구 망가진다. 쓰다듬을 거면 힘 조절은 해라, 이 상관아.”
‘상관아.’ 대신 ‘X놈아.’나 ‘새끼야.’였으면 더욱 자연스러웠을 말투였다.
시무르 칸이 히죽 웃고 묻는다.
“그래서 여기가 어디라고?”
“오른 왕국입니다.”
부관이 다시 말투를 존대로 바꿨다. 시무르 칸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선을 넘지 않는 기준에서 조절하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실체는 격을 초월하신 분. 언제 마음이 바뀌어서 날 죽일지 모른다.’
바퀴벌레를 죽이듯 가볍게 발만 움직여도 자신은 꼼짝없이 죽을 것이다.
반항하면 되지 않냐고?
‘그런 건 꿈도 못 꾼다.’
저 사람 앞에서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러봐야 어린아이가 부리는 앙탈만도 못 하다. 부관 역시 30대가 되기 전에 오러 익스퍼트 중급이 된 뛰어난 기사였지만 시무르 칸은 오러 마스터라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홀로 군단의 힘을 가진 괴물!
애당초 사람과 괴물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
부관은 몸을 움츠렸다. 시무르 칸이 코앞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1cm만 가까워져도 코가 닿을 거리였다.
주르륵.
모골이 송연해지며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며 오감이 극도로 발달한 시무르 칸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눈동자가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으로 향했다가 돌아왔다. 동시에 눈이 초승달로 변했다. 이윽고 나지막하게 귓가에 속삭인다.
“웃어.”
“…….”
“너는 웃는 게 예뻐.”
장난감 인형을 향해 말하는 듯한 목소리.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날붙이 같은 무생물을 만지는 느낌이다. 장난이라는 것을 알지만 두려웠다. 이대로 그가 손아귀에 힘을 주면 자신의 머리는 두부처럼 바스러지리라.
“웃으라고.”
“알겠습니다.”
부관은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웃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반항이었다.
시무르 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고개를 홱 돌려 주인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는 눈빛과 미소였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된다고?”
“……모릅니다.”
“또, 또 삐졌다!”
부관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 * *
시간이 흘러 5부생 1학기.
‘푸른 바람의 늑대’ 시무르 칸이 오른 왕국에서 모습을 드러낸 지 6달이 지났다. 그가 ‘에단의 은신처’를 샅샅이 뒤지며 오우거의 흔적을 찾고 다닌다는 소식에 왕실은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편 오른 왕국의 북방에 위치한 로반테인 공작 가문의 성에서 적발의 사내가 으스스하게 웃었다.
그의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적발이 불꽃처럼 흔들렸다.
“귀머거리 들개 새끼가 감히 우리 왕국에 발을 내디뎠다고?”
사내의 정체는 로반테인 공작이었다.
로반테인 공작가는 아이언하트 공작가를 세운 ‘철혈의 재상’과 더불어 건국왕의 수족인 ‘겁화의 마수’가 세운 가문이다.
‘철혈의 재상’이 오른팔이자 두뇌였다면 ‘겁화의 마수’는 건국왕의 왼팔이자 누구보다 앞장서서 적을 참살하는 검.
누구보다 무武에 집착했던 사내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더욱더 강해졌으며 지금에 이르러 ‘겁화의 마수’의 후손인 사내는 ‘타오르는 화염의 비다르’라고 불리는 50명의 오러 마스터 중 한 명이 되었다.
대륙 공통법이 없었다면 오러 마스터 50인은 이미 반절로 줄어들었으리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은 서로에게 강한 호승심을 갖고 있었다.
로반테인 공작이 오랜 시간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안 됩니다! 공작 각하!”
“각하께서 자리를 비우시면……!”
로반테인 공작이 떠나지 못하도록 가신들이 달려들었으나 그는 창문을 통해 훌쩍 몸을 날렸다.
“젠장! 큰일이다!”
“빨리 왕실에 이 소식을 전해라!”
가신들은 다급하게 통신 아티팩트로 달려갔다.
“개 한 마리 잡아서 푹 고아 먹어야겠군.”
공작성을 나선 로반테인 공작이 사나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 * *
로반테인 공작이 움직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른 왕국은 또 한 번 몸살에 떨었다.
오러 마스터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재앙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1개도 아닌 2개의 재앙이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 더 빨리 움직여!”
“‘푸른 바람의 늑대’와 ‘타오르는 화염의 비다르’를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
오른 왕국의 정보조직은 정보를 조작해서 2명의 오러 마스터가 만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실낱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걸어야 했다.
2개의 재앙이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 무렵 아브람도 교직 회의를 열어 모두에게 단단히 일렀다.
“혹시 모르니 모두들 주의하시게. 무엇보다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시무르 칸의 최종 목적지를 아카데미로 예상했다. ‘에단의 은신처’에서 마지막까지 오우거와 싸웠던 존재가 유한이기 때문이었다. 오우거를 살해한 정체불명의 ‘존재’에 대해 묻기 위해 그를 찾아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리라.
“만약 2명의 오러 마스터가 아카데미 안에서 싸우게 된다면 어떡합니까?”
한 선생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
아브람이 선생들의 표정을 천천히 훑어 내렸다.
불안, 초조, 긴장.
어디를 가더라도 한가락 한다는 선생들이었지만 오러 마스터 앞에서는 태양 앞의 등불이었다. 태풍에 휩쓸려갈 날벌레였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모두가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고 이곳에 모인 이유.
“그때는….”
아브람은 오러 마스터가 아니나 그에 역시 못지않은 힘을 가진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본 교장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학생들의 안전만 생각하시게.”
그의 말에 선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 * *
아카데미가 부산스러워졌다.
2명의 오러 마스터가 아카데미로 방향을 꺾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수업이 짧게 끝나거나 휴강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직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해서 희희낙락 웃으며 놀기 바빴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소수의 학생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카론과 로한은 진실을 알고 있는 소수의 학생들 중 하나였다.
로한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야.”
“큰일이 생기지는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카론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흐음. 오러 마스터 2명의 싸움이라면 사실상 대륙 최강자들의 싸움이잖아? 운이 좋으면 혹시 볼 수 있으려나?”
제론은 음료수를 쪽쪽 빨며 중얼거렸다.
여유로운 친구를 로한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태평하게 말할 사안이 아니야!”
“왜?”
“로반테인 공작이 ‘타오르는 화염의 비다르’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의 가문에 내려오는 검술과 오러 연공법 때문이야.”
“그래서 비다르가 뭔데?”
“비다르는 신조야.”
비다르는 영원을 살아가는 불사조 피닉스Phoenix와 더불어 중앙대륙에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신조神鳥였다.
몸뚱이 크기만 50m이며 양쪽 날개를 펼치면 거의 150m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 비다르의 사냥방법은 정말로 간단했다. 빠르게 날아가며 부리로 먹이를 꼭 쪼아서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몸뚱이가 크다 보니 머리도 커서 입만 벌려도 웬만한 몬스터는 그냥 한 입 거리에 불과했다.
오우거와 바실리스크 같은 대형 몬스터로 분류되는 녀석들조차 거인족 다음으로 즐기던 한 끼 식사였다는 말도 있었다.
로반테인 공작의 별명에 비다르가 들어가게 된 이유도 2m 크기의 대검을 엄청난 힘으로 빠르게 휘둘러 일격에 참살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비다르가 사냥하는 것 같다나?
비다르가 실존했다면 말도 안 되는 비교였겠지만 명색이 오러 마스터를 부르는 별명이었기에 그럴듯한 존재를 갖다 붙인 거지만 말이다.
“그리고… 로반테인 공작이 오러를 사용하는 순간 몸 주변으로 화염의 오러가 넘실거리며 주변을 초토화시킨다고 하더군.”
그 말을 쭉 들은 제론이 생각했다.
‘한마디로 불필요한 힘의 소모가 크다는 거잖아?’
무림인의 관점에서는 딱 맞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적이 같은 인간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극한의 효율을 중시해야 하는 것은 같은 인간이 적일 경우였다.
몬스터처럼 몸집이 크거나 가죽이 단단하고 질긴 놈들을 벨 때는 강력한 일격으로 공격하는 게 제일 효과적이다.
‘얘들은 걱정하지만… 역시 나는 엄청 궁금하단 말이지.’
어쩌면 이 세상에 와서 진짜 검술을 구경할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마선이라 불렸던 천하제일인으로서 호기심이 생겨난 순간이었다.
“왕실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으니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을 거다.”
“너 지금 목소리 떨리고 있는 건 아냐?”
제론이 지적하자 카론은 헛기침을 했다.
* * *
시무르 칸은 거리의 한량처럼 껄렁껄렁 걸어왔다.
오른 왕국의 수도에 도착해 서쪽 검문소 입구를 통과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오러 마스터라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
그의 신분증을 확인한 병사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검문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드, 들어가십시오.”
또 다른 병사가 시무르 칸을 통과시켰다.
혹시나 그가 나타난다면 앞을 막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수고들 하라고.”
시무르 칸이 병사의 어깨를 토닥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투덜거렸다.
“왜들 난리법석이야? 정신 사납게.”
“걸어 다니는 재앙이 바로 옆을 지나갔는데 정상 아니겠습니까?”
그의 옆에서 살짝 뒤떨어져 걷던 부관이 대답했다.
시무르 칸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니. 사람을 뭐로 취급하는 거야?”
“…….”
부관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시기는 하십니까?’라고 묻고 싶었지만 목구멍으로 꿀꺽 삼켰다. 그가 표정으로 ‘나 지금 기분 좋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알겠으니까 표정 풀어. 최대한 사고 안 칠게.”
“감사합니다.”
“아카데미로 안내나 해. 얼른 오우거를 죽였다는 놈에 대해 물어보고 돌아갈 테니까.”
“감사합니다.”
시무르 칸은 뭐가 그렇게 감사하냐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를 10년 동안 옆에서 지켜본 부관으로서는 정말로 감사할 일이었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기를.’
부관은 그렇게 플래그를 세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