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54)
제54화
54화
시무르 칸이 검문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모두 숙소로 돌아가 절대로 나오지 말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된다. 절대로! 절대로다! 무조건 절대로! 나오면 안 된다. 알겠지?”
“네?”
“왜요?”
“이유는 묻지 말고! 따로 공지가 있기 전까지는 숙소에서 먹고 자고 싸고 놀고 있어라. 특식도 제공할 예정이니까 꼭! 숙소에 있어야 한다.”
선생님들은 각자 맡은 반의 학생들에게 단단히 주의시켰다.
아직 로반테인 공작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가 도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시무르 칸이 떠나기 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오러 마스터 2명이라는 재앙이 아카데미에 몰아칠 수도 있었다.
“혹시나 싸움의 조짐이 보이면 학생들을 1순위로 대피시키십시오. 그리고, 유한 선생님께서는 시무르 칸을 맞이할 준비를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유한은 하드 레더Hard leather와 투 핸드 소드로 무장했다.
오러 마스터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맨몸으로 그의 앞에 설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후우.”
긴 호흡으로 긴장감을 풀며 아카데미 정문에서 그를 기다렸다.
멀리서 한량처럼 껄렁껄렁 걸어오는 한 사내와 여기사가 보였다.
‘저자가 바로 시무르 칸인가?’
시무르 칸의 머리카락은 하늘색이다. 그래서 ‘푸른 바람의 늑대’로 불린다. 뒤에 있는 여기사가 누구인지 궁금했으나 잠시에 불과했다.
사내-시무르 칸과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오싹!
유한은 저도 모르게 투 핸드 소드의 자루를 세게 움켜쥐었다.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것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될까?
한없이 크고 넓은 바다?
저 높은 하늘?
아니.
그런 건 너무 추상적이었다.
시무르 칸, 그는 한 마리의 야수였다.
반면 자신은 야수를 만나 오들오들 떨고 있는 토끼에 불과했고.
유한은 까마득히 높은 절벽 앞에 선 기분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 정도의 차이였던가?’
절대로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높은 절벽이었다. 시야가 흐릿해지며 절망감마저 느꼈다.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에 오르면서 오러 마스터의 경지도 멀지 않았다고 자신했던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달았다.
주르륵.
단순히 시선을 마주쳤을 뿐인데 온몸이 비를 맞은 것처럼 땀으로 젖어든다. 입고 있는 하드 레더를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선생님.
한 줄기의 음성이 머릿속을 파고들어 왔다.
“헉!”
유한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눈썹을 찡그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시무르 칸이 보였다.
“너, 어떻게 한 거냐?”
“무슨……?”
“흠.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다른 녀석이 있는 것 같은데.”
시무르 칸이 흥미를 잃었다는 표정으로 유한에게서 시선을 뗐다.
잠깐이지만 오우거를 살해한 ‘놈’이 유한이라고 생각했다.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으니까.
더군다나 이제 막 성체가 된 오우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기세를 흘려보니 바로 알았다.
‘이 녀석은 아니야.’
오우거를 살해할 정도라면 이 정도 기세에 잔뜩 쫄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어디에 숨어 있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네놈이겠지.”
시무르 칸이 히죽 웃었다.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의 표정이었다.
* * *
제론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오러 마스터라고 해서 기대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기감이 더 뛰어났다. 유한 선생님을 정신 차리게 하려고 보낸 혜광심어의 기운을 역추적해서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역추적을 금방 끊어냈으나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차렸는지 시무르 칸이 시선을 날카롭게 한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싸우면 정체를 들키지 않고 이길 수 있을까?’
고민은 깊지 않았다.
아직 불가능하다.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림의 무공은 오롯이 같은 무인을 상대하기 위해 발전했다.
내공-오러가 상대보다 적다고 해도.
신체가 상대보다 우월하지 못하다고 해도.
칼침 한 번만 제대로 놓는다면 숨통을 끊을 수 있다.
‘하지만 기회를 엿보다가 시도해야 해.’
최소 수십 초.
어쩌면 수백 초의 검격을 나눠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체를 들키지 않고 오러 마스터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걸 어떡해야 할까…….’
제론이 방법을 물색하던 순간 시무르 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오지 않으면 모조리 다 부숴버린다?”
녀석의 말은 진심이었다.
격을 초월한 존재에게 평범한 상식으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제론이었다.
‘내가 그랬으니까.’
나가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 페리안 남작령을 지킬 힘이 부족하다. 몇 년 뒤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 전 대륙의 이목을 집중 받아서는 안 된다.
“‘푸른 바람의 늑대’여! 오우거를 살해한 자를 찾는 것이라면 제대로 찾아오셨소. 내가 바로 오우거를 살해한 자이오.”
정신을 차린 유한이 외쳤다. 하지만 시무르 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아니야.”
“내가 맞소.”
“정말 그럴까?”
시무르 칸이 비틀린 미소를 짓자 하늘색 오러가 몸에서 흘러나오며 주변을 잠식한다.
“……!”
유한은 입을 틀어막은 것처럼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곧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시무르 칸이 ‘푸른 바람의 늑대’라고 불린 이유.
그의 오러가 대기를 조종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한도 오러를 끌어올려 맞서 싸웠으나 고작 실낱같은 숨통만 트였다.
‘이거 안 되겠네.’
이대로 가다가는 유한 한 명만 질식사하는 거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제론을 찾기 위해 아카데미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뒷일?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격을 초월한 존재에게 평범한 인간과 같은 사고방식을 바라면 안 된다.
‘죽이는 수밖에.’
제론이 마음을 먹자 눈빛이 변했다. 바로 그때 시무르 칸의 뒤에 있던 여기사가 소리쳤다.
“시무르 칸! 저와의 약속을 잊으셨습니까!”
“……뭐?”
시무르 칸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여기사-부관을 노려봤다.
부관은 창백하다 못해 검게 죽어가는 안색으로 다시금 외쳤다.
“최대한 사고 안 치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오우거를 살해한 이에 대해 물어보고 돌아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아.”
시무르 칸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다. 손가락 사이로 살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하지만 곧 살기가 거둬졌다.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막 자세를 잡았던 제론이 멈칫했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다리가 꼬여서 넘어질 뻔했다.
‘이건 또 뭐야?’
부관은 익스퍼트 중급의 여기사였다.
오러 마스터라는 존재를 멈춰 세울 힘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시무르 칸은 멈췄다.
“후우. 재미없게.”
살기까지 거두며 의욕을 잃고 김 샌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쉰다.
“야, 누군지는 몰라도 이따 밤에 찾아와라.”
“저희는 ‘해가 저무는 밤’이라는 호텔에서 머무를 예정입니다.”
시무르 칸이 대뜸 말하고 뒤돌아서자 부관이 위치를 말했다.
제론은 전음으로 시무르 칸에게 말했다.
-찾아가도록 하지.
“안 오면 여기 다 부숴버릴 테니까 꼭 와라.”
성격도 지랄 맞군.
제론은 고개를 절레 내저었다. 하지만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지.’
정체만 들키지 않으면 되니까.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 나는 듯했다.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과 같은 거대한 기운이 느껴지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어딜 가는 거냐? 개새X야.”
적발의 사내가 사납게 미소를 지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로반테인 공작이었다.
그가 2m에 달하는 대검을 천천히 들어서 시무르 칸에게 겨눴다.
최악의 경우가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
시무르 칸이 다시 뒤돌아섰다. 로반테인 공작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야, 다음에 만나면 싸우자.”
“뭐?”
로반테인 공작은 무슨 헛소리냐며 쳐다봤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시무르 칸과 로반테인 공작이 지독한 앙숙이자 라이벌이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오러 마스터가 되기 전에 정체를 감추고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각자 사는 대륙이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자주 마주쳤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싸움 실력.
비슷한 성격.
그러다 보니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이 앙숙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앙숙이 되기 전까지는 서로의 호승심을 자극하는 라이벌이자 강해지기 위한 자극에 불과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지독한 앙숙으로 변한 건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최고의 오러 마스터는 코이트란 대제다.’
코이트란 대제는 500년 전에 존재했던 테이론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당시 최강의 오러 마스터로 무명을 날렸던 사람이었다.
로반테인 공작은 어렸을 적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대형 몬스터를 일격에 베어내는 코이트란 대제의 일화를 듣고 그를 목표로 삼았다.
‘아니. 호룬 경이다.’
호룬 경은 300년 전에 전 대륙에 명성을 떨친 최강의 오러 마스터였는데, 코이트란 대제와는 반대로 힘으로 검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기교파였다.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둘러 검격의 그물을 만들어낸다고 하며 그 누구도 그의 검격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시무르 칸은 호룬 경의 일화를 듣고 마음속 스승으로 삼았다.
서로 존경하고 목표로 삼은 인물은 달랐지만 추구하는 검술이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더 최고냐를 따지면서 점점 더 술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검술로 승부를 내기에 이르렀다.
승부는 놀랍게도 동수였다.
마지막의 마지막 힘까지 짜내 검을 휘둘렀지만 서로에게 닿지도 못한 채 동시에 기절했다.
그 뒤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은 앙숙이자 라이벌로 관계가 변했다.
오러 마스터가 되어도 그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비공식적으로 싸운 횟수가 두 자리를 넘었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결착을 내자고 약속했다.
그랬던 시무르 칸이 다음에 만나면 싸우자고 한다.
“귀가 먹었냐? 다음에 만나면 싸우자고.”
“이건 무슨…….”
“오늘은 싸울 기분 아니니까 다음에 보자고.”
시무르 칸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절레 내저었다.
로반테인 공작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미안하지만 다음은 없다.”
대검의 검신에 불꽃이 피어오르며 휘둘러졌다.
“다음에 보자고 했을 텐데?”
클레이모어의 검신에 푸른 바람이 깃들며 불꽃을 흩어냈다.
어느새 제삼자가 되어버린 유한과 부관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잽싸게 몸을 던졌다.
콰앙-!
2명의 오러 마스터가 뿜어낸 오러가 땅에 처박히며 폭발했다.
* * *
콰앙-!
오러가 땅에 처박히며 폭발이 일어났다.
“미친놈들인가?”
제론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오러 마스터의 싸움을 보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