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60)
제60화
60화
1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지나 2학기가 되었다.
성녀의 실종으로 혼란스러웠던 대륙은 금세 잠잠해졌다.
아니.
다른 곳으로 이목이 쏠렸다는 말이 맞았다.
칼튼 제국의 황태자 계승권 전쟁이 치열해져 가며 엄청난 사상자가 속출했다. 눈 한 번 깜빡하는 순간 수백 명이 죽어간다고 표현할 정도로 많은 병사들이 다치거나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종되었던 성녀가 돌아왔다는 소문도 크게 한몫했다. 하지만 각국의 권력가들은 성녀가 여전히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소문의 근원지가 아이오닉 교국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은밀하게 소문을 퍼트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성녀는 대륙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마치 땅속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날아오른 것처럼 말이다.
그 무렵 제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면.
“아, 날씨 좋다.”
파라솔 그늘 아래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사실 이번 여름은 욕이 나올 정도로 더웠다. 한서불침의 경지에 오른 제론이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무림의 대막大漠이나 북해北海처럼 험난한 환경만 아니라면 땀 뻘뻘 나는 여름은 따스한 봄철이었고 옷을 두껍게 입어야 하는 겨울은 시원한 가을이었다.
그조차도 적당히 날씨를 느낄 수 있게 조절해서 이 정도였다.
반면 로한과 카론은 땀을 뻘뻘 흘리다 못해 축 늘어져 있었다.
제론처럼 한서불침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더위의 기승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그으래, 조오옿긴 하네. 더어어럽게 좋아서 문제지만.”
“동…감한다.”
파라솔의 그늘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햇볕 아래로 나온 뱀파이어처럼 타들어 가 재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이번 여름은 더웠다.
탁자에 엎드린 채 헐떡이던 두 명은 제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척이나 괜찮아 보이는군.”
“그러게. 넌 왜 땀 한 방울 안 나냐?”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래.”
제론은 로한과 카론이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자 어깨를 으쓱했다.
내공이 심후해져서 한서불침이 되자 웬만한 기후에는 눈곱만큼도 영향을 안 받는다고 설명해봐야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그보다 곧 중간고사인데 다들 공부는 많이 했어?”
“아니. 아직.”
“나도 마찬가지다.”
“하긴 나도 시험 공부할 생각에 벌써부터 끔찍해.”
“그런데 우리 이 대화 예전에 한 적 있지 않냐?”
“저번 학기에 하셨어요.”
불쑥 누군가 끼어들며 대답했다.
“응?”
“어?”
카론과 로한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론의 동생 1왕녀 카야가 인상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
“후우. 더워.”
카야가 손부채질을 했다. 볼을 타고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외모가 받쳐줘서 그런지 저 모습조차 화보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어, 업계 포상……!”
“악!”
“뭐, 뭐야?”
주변에서 지나가던 학생들이 멍하니 카야를 쳐다보다가 나무나 일행,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며 혼란이 생겼지만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로한이 고개를 쭉 내밀고 주변을 살펴봤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우리 헤샤만큼은 아니지만, 이래 봬도 아카데미 최상위 1프로에 포함될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카야랄까?”
“그게 무슨 소리지?”
“그냥 개소리지 뭐겠어.”
카론의 혼란스러운 눈빛과 제론의 절묘한 비꼼이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며 로한은 상처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떨궜다.
곧 카론이 카야에게 물었다.
“카야, 무슨 일로 왔느냐?”
“잠시 자리를.”
카야가 제론과 로한을 힐끗 쳐다본다. 카론은 두 명의 친구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왕실의 남매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로한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질문했다.
“야, 이거 무슨 말이냐?”
“그거는…….”
“오호. 그렇구먼. 역시 제론이야. 그래서 이건?”
“아, 그건…….”
“저건?”
“저거는…….”
“야야, 이거 어떻게 푸냐?”
로한의 질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까지 질문만 할 거야? 스스로 풀 생각은 안 해?”
제론이 주먹으로 탁자를 쿵- 치며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걸 어떡하나.”
“난 네가 아직까지도 어떻게 S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는 걸 보면 A클래스나 B클래스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는데.”
“모두 다 네 덕분이지.”
능청스럽게 말하는 로한의 표정을 보니 화를 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래서 누나랑 잘 사귀고 있는 거겠지.’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잠시 후 카론이 돌아왔다.
녀석의 표정은 어두웠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것 같아서 잠깐 기다리니까 곧 입을 연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잠시 왕실로 가야 할 것 같다.”
“무슨 일로?”
“으음.”
카론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아카데미에서 함부로 꺼내기 힘든 말이었다.
제론이 손가락을 튕기자 3명을 중심으로 기막이 형성되었다.
“이제 밖으로 아무 소리도 새어 나가지 않을 거야.”
“이런 재주는 도대체 어디 가서 배우면 되는 거냐?”
“그냥 열심히 운동하면 돼.”
“그놈의 운동 타령은 언제까지 하려고?”
로한이 투덜거렸지만 믿지 않는 눈치는 아니었다.
운동을 계속하면서 몸이 점점 변화하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오러 연공법까지 익힌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하지만 로한은 알지 못했다.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오른 ‘사자검’ 유한조차도 이런 재주를 부리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제론과 로한이 다시 카론을 응시했다.
곧 카론이 말했다.
“아마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다.”
“전쟁?!”
로한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이내 흠칫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막 때문에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반사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곧 로한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설마 오른 왕국도…….”
“그건 아니다. 하지만 전쟁의 불씨가 미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지.”
카론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성녀 때문이야?”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전쟁의 시발점은 성녀의 실종 때문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칼튼 제국의 황태자 후계자 전쟁이 대륙에 전쟁의 불씨를 퍼트렸다.
대륙은 오랜 시간 평화로웠다.
마지막으로 벌어진 국가적 규모의 전쟁이 대략 100년 전이었다.
100년 동안 쌓이고 모인 힘은 과포화에 이르렀다.
그 힘을 터트릴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황태자 계승권 전쟁과 성녀의 실종이 트리거로 작용되었고 말이다.
“대륙의 세력 구도가 변할 거다.”
* * *
카론은 중간고사가 끝나자 예고했던 것처럼 아카데미를 떠났다.
제론과 로한이 그를 송별했다.
“언제쯤 돌아올 것 같냐?”
“그건 나도 장담하지 못하겠다.”
“나중에 로한이랑 같이 놀러 갈 테니까 맛있는 거 잔뜩 준비해놔!”
“기다리고 있겠다.”
카론은 아카데미 정문 밖에서 뒤를 돌아보며 두 명의 친구에게 미소를 지었다.
어느 때보다 활짝 웃는 얼굴.
그것이 카론의 5부생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윽고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되었다.
페리안 남작령으로 돌아가던 제론은 대륙에 퍼진 소문을 떠올렸다.
‘페르논 왕국과 하이문 왕국의 전쟁이 발발했다지?’
북대륙의 동쪽과 서쪽 끝에 위치해 있는 두 나라는 먼 옛날부터 앙숙이었다.
전쟁의 불씨가 전 대륙으로 퍼지니 기다렸다는 듯 출병해서 국경을 넘어 주요 도시를 침략하고 약탈을 일삼았다.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한 국가들은 전시체제로 전환해 전쟁의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북대륙 전체로 전쟁의 불씨가 번졌다.
동대륙과 서대륙도 아직은 조용했지만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것처럼 위험천만했다.
유일하게 다른 대륙과 달리 평화로운 곳이 남대륙이었다.
남대륙은 V자 형태를 하고 있고 그 밑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펼쳐져 있어서 해양 몬스터와 해적의 습격이 잦았다.
그 피해가 막심해서 내륙의 국가가 침공을 해서 정복하더라도 이득보다는 손해가 컸다.
그래서 전쟁의 불씨가 남대륙까지 퍼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오른 왕국은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으니 카론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정말로 혹시 모르는 상황을 가정해야겠지.’
최악의 경우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카론은 전선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미덥긴 하지만 북부를 지키는 오러 마스터 레바테인 공작도 있었다.
“응?”
생각에 잠겨 있던 제론의 기감 영역에 누군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2명이었다.
몇 초 뒤 수십여 명이 2명을 추격하듯 우르르 몰려왔다.
“하필이면 이쪽으로 오네. 아니, 도움을 요청하려고 오는 건가?”
이대로는 분명 마주친다.
무시하고 지나쳐도 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증거인멸을 하기 위해 전부 죽이는 게 추격자들의 관례(?)였다.
‘귀찮게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누구인지 몰라도 거슬렸다.
제론은 마부석과 이어진 창문을 열고 마부에게 말했다.
“마부 아저씨.”
“예, 제론 도련님.”
“잠시 쉬고 가요.”
“예,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차가 속력을 줄였다.
완전히 정차하자 백부장이 와서 묻는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줌이 마려워서요. 잠시만 쉬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백부장이 돌아가 병사들에게 휴식 명령을 내렸다. 몇 명의 병사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몬스터를 비롯한 위험요소가 있는지 정찰했다.
제론은 그사이 소변을 누는 척 근처 나무로 갔다.
“도련님, 너무 멀리 가시면 안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재빨리 이동했다. 병사들이 많았지만 이목을 속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찰을 나간 병사들의 시선을 피해 앞서 기감 영역으로 들어온 2명에게 향했다.
제론의 신형이 새처럼 빠르고 높게 날아올랐다.
거적때기로 변한 옷을 입고 있는 남자와 소녀가 보였다.
그 뒤로 32명의 추격자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까워졌다면 병사들의 눈에 띄었으리라.
‘빨리 처리해야지.’
제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성녀님! 어서!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성녀?”
남자의 다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론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실종되었던 성녀가 왜 여기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구해줘야겠지?”
골치 아픈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처리하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설마 진짜 성녀는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은 구하기로 했다.
* * *
성기사 단장은 성녀가 더 이상 달리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검을 뽑았다.
“헉! 헉! 제임스?”
“제가 저들을 막겠습니다. 어서 빨리 가십시오.”
“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성기사 단장이 버럭 소리쳤다.
성녀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주춤거렸다.
짧은 고민의 시간.
두 사람을 위기로 몰아넣도록 만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
32명의 추격자들이 두 사람을 포위했다.
“젠장!”
성기사 단장은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롱 소드에 하얀빛이 깃들며 오러 블레이드처럼 검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추격자들이 흠칫 놀랐으나 침착하게 그를 공략했다.
팔과 다리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다.
성기사 단장이 수세에 몰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큭!”
“제임스!”
그의 비명에 성녀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윽고 날카로운 검이 성기사 단장의 목을 노리며 날아왔다.
바로 그때.
검이 성기사 단장의 목을 베기 직전 2개의 하얀 손가락이 검날을 붙잡았다.
모두의 시선이 하얀 손가락의 주인을 바라봤다.
“미안하지만 잠시 방해를 해도 될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