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61)
제61화
61화
“누구냐?”
추격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스산한 목소리.
끈적끈적한 살기가 풀풀 풍겨 나왔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텐데?”
제론이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팅-!
“큭!”
추격자의 손바닥이 찢어지며 손가락으로 잡고 있던 검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훨훨 날아갔다. 찢어진 손바닥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
모두가 깜짝 놀란 시선으로 제론을 쳐다봤다.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없겠지?”
제론이 손에 깍지를 끼고 손바닥이 보이게 앞으로 쭉 뻗었다.
추격자들이 제론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재형성했다.
그사이 성기사 단장은 성녀를 가깝게 끌며 조심히 제론에게서 물러났다.
그 순간 추격자들의 검이 제론을 노렸다.
성기사 단장보다 제론이 더욱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위험……!”
성기사 단장이 다급하게 외치려는 순간 제론이 진각을 밟았다.
쿵-!
“……!”
추격자들의 몸이 흔들렸고 찔러 들어오던 검들이 제론을 비껴갔다.
제론은 허리를 돌리며 가장 맨 앞의 추격자를 발로 걷어찼다.
무림에서 가장 흔한 각법脚法인 선풍각旋風脚이었다.
본래라면 보잘것없는 위력이야 하지만 고수가 펼치는 선풍각은 가히 상승 무공이 부럽지 않을 만큼 강력했다.
퍽-!
“……!”
발로 걷어차인 추격자가 북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주변에 있던 추격자들이 볼링 핀처럼 나가떨어졌다.
“아차차. 잘못하면 터트릴 뻔했네.”
제론이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적당히 처리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배를 터트릴 뻔했다.
얼른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힘 조절을 잘 못했다.
조금만 더 세게 찼다면 배가 터져서 피와 내장이 줄줄 쏟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경악하고 있을 여유가 있나?”
“……!”
추격자들이 화들짝 놀라더니 다시금 덤벼들었다.
* * *
제론이 추격자들을 전부 쓰러트리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5분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쓰러진 추격자들은 전부 죽었다. 끔찍한 광경을 연출하지 않기 위해 적당히 힘 조절하다 보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입을 열게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입을 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놈들은 많이 봐서 알지만 끝까지 침묵하거나 입을 열게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제 어떻게 하실…….”
“잠시만 기다려요.”
제론은 얼른 마차로 돌아가 병사들에게 여차저차 상황을 말했다. 직접 싸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소변을 누고 있는데 싸우는 소리가 나서 잠깐 가봤더니 어떤 남자와 소녀가 괴한들에게 포위당해서 싸우고 있었고 도움을 요청하려고 돌아가려는 순간 싸움이 끝났다.
라고 말했다.
남자-성기사 단장과 말을 맞추지 않았지만 딱히 걱정은 없었다.
‘눈치껏 알아서 잘 하겠지.’
말이 꼬일 거 같으면 전음으로 말해줘도 되기 때문이다.
“빨리 움직여!”
백부장이 외치자 병사들은 제론이 말한 위치로 우르르 몰려갔다.
혹시나 주변에 괴한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시체를 한 곳으로 모아라!”
백부장이 병사들에게 명령하고 제론과 함께 성기사 단장과 성녀에게 갔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성기사 단장과 성녀가 잠시 움찔 떨었지만 제론이 병사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더니 백부장의 질문에 천천히 대답했다.
“쿠론 왕국의 기사 호크만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가 모시는 주군의 영애이신 이오르 반 퓨이론입니다.”
“쿠론 왕국이면……?”
“중앙대륙의 서남쪽에 위치한 작은 왕국입니다.”
“아아, 그렇군요.”
성기사 단장이 기사라고 대답하며 신분증을 내밀자 백부장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작은 왕국이라고 하지만 기사 작위를 받는 순간 준귀족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100명의 병사를 이끄는 백부장이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비굴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론이라는 든든한 배후(?) 덕분이었다.
“저희는 페리안 남작가의 병사입니다. 아카데미 학생이신 제로니아 페리안 도련님을 모시고 영지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지요.”
“제론이라고 해요.”
제론이 귀족의 예법으로 인사했다.
“영지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은 페리안 남작령으로 가고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오! 이런 우연이!”
“예?”
백부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잘됐다는 말투였기 때문이다.
“저희도 마침 페리안 남작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 정확하게는 페리안 남작령을 지나쳐야 한다는 말이 맞지만요. 하필 도적들을 만나서 이런 고초를 겪긴 했습니다만… 페리안 남작가의 도움을 얻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신의 인도’겠지요. 그런데 혹시 마차를 얻어 타고 가도 되겠습니까? 퓨이론 영애께서도 많이 지치셔서 걷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만 충분한 사례를 하겠습니다.”
성기사 단장은 눈치껏 잘 둘러댔다. 하지만 무슨 속셈인지 동행을 요청했다.
‘재밌네.’
제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성기사 단장을 쳐다봤다. 성녀의 표정이 담담한 것으로 보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야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으음.”
백부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에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제론 도련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백부장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호위병의 대표였지만 결정권은 제론에게 있었다.
아직 어리다고 하지만 명백한 귀족의 자제.
당연히 제론의 의견이 우선적이었다.
“형의 생각은 어때요?”
“살짝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도적이라고 말한 저 괴한들이 의심스럽습니다. 입고 있는 갑옷이나 무기가 전부 고급입니다. 그리고…….”
백부장은 제론에게 평범한 도적이 아니라는 설명을 충분히 했다.
제론이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백부장 형의 말은 맞아요. 하지만 곤란한 상황에 빠진 분들을 외면할 수는 없어요.”
“어쩌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위험해지더라도 형이 구해줄 거잖아요?”
“예?”
백부장이 잠시 벙쪘다. 이내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 짓더니 말했다.
“하하! 저만 믿으십시오. 병사들 사이에서는 ‘신속의 제다르’라고 불리는 몸입니다. 거동이 수상하다면 제가 바로 해치우겠습니다.”
“역시 백부장 형밖에 없어요!”
제론이 배시시 웃으며 백부장을 치켜세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기사 단장은 백부장이 숨겨진 실력자인지 잠시 착각했다.
아까 전에 제론의 엄청난 실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방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론과 대화를 마친 백부장이 성기사 단장에게 가서 말했다.
“저희 도련님께서 동행을 허락하신다고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사례는 꼭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추격자들의 시체는 한 곳에 쌓아두고 방치시켰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냄새를 맡고 들짐승과 몬스터가 나타나 먹어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값비싸 보이는 갑옷과 무기, 패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추격자들의 정체가 의심스러웠지만 페리안 남작령은 변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대놓고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추적을 당할 일도 없었다.
대충 수습이 끝나자 다시 출발했다. 성기사 단장은 마부의 옆 좌석에 앉았고 성녀는 제론과 같이 마차에 타서 빠르게 이동했다.
시체가 있는 곳 주변에 있으면 들짐승과 몬스터가 나타날 테니 최대한 멀어지려는 것이었다.
이윽고 해가 저물어가자 숙영지를 구축했다.
수레에서 천막을 꺼내 설치하자 성기사 단장이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기사님께서 계시니까 금방 설치하는구먼.”
“아까 도적들의 시체 못 봤어? 32명이나 되는데 전부 큰 상처가 없었잖아!”
“그러고 보니 내가 몬스터 토벌을 나가서 기사님들이 싸우는 모습을 봤는데 진짜 어마어마했어. 아마 저 기사님께서도 엄청난 실력을 갖고 계시겠지?”
성기사 단장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시선에 호의가 담겼다.
사실 이것을 노리고 성기사 단장이 행동한 것이었다.
물론 그가 자진해서 나선 건 아니었다.
‘성녀님께서 왜 그러신 거지?’
성기사 단장이 다른 천막을 치며 성녀의 말을 떠올렸다.
-제임스, 병사님들을 도와주세요.
성녀는 제론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필요하다며 부탁했다.
모시는 분이었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성기사 단장이 천막을 치던 것을 멈추고 성녀와 제론이 쉬고 있는 마차를 바라봤다.
* * *
“할 말이 있으면 해.”
“…….”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거 알고 있어.”
“어떻게 아셨어요?”
“꼭 눈으로 보라는 법은 없잖아.”
제론이 피식 웃으며 검지로 눈을 툭툭 건드렸다. 무림에는 상대의 이목耳目을 속여서 공격하는 환검을 비롯해 수많은 괴공들이 존재한다.
그런 괴공들은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느껴야 했다.
‘예를 들자면 이 기운처럼.’
아까부터 사제들이 갖고 있는 신성력과 비슷한 기운이 피부 위를 간질거렸다.
안대로 두 눈을 가리고 있으니 육안이 아닌 저 기운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야.”
“역시 제론 님은 평범한 사람과 다르시군요.”
“그건 또 아니긴 한데…….”
“……?”
“아무튼, 할 말이 있으면 얼른 해. 곧 사람들이 올 테니까.”
“이것을 받아주세요.”
성녀가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제론이 받아서 열자 천사의 날개가 새겨진 해 모양의 배지가 나타났다.
“이건……?”
“증표예요.”
“증표?”
제론이 되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힐끔 쳐다보니 자신의 할 일을 마쳤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 성녀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시선을 돌려 배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특별한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거 왠지 그거랑 비슷한 느낌인데?’
제론은 아카데미를 졸업한 메이엔 선배가 줬던 월계수가 새겨진 별 모양 배지가 떠올랐다.
배지의 모양과 안의 각인도 달랐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어봐도 대답은 안 해줄 것 같으니까 패스하고. 너 정체가 뭐냐?”
‘성녀님’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확인차로 물어본 것이다.
“성녀예요.”
“허?”
잘못 듣지 않았다면 분명히 ‘성녀’라고 했다.
제론은 성녀를 빤히 쳐다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실종된 성녀가 너라고?”
“예, 실종된 성녀가 바로 저예요.”
담담한 대답.
아무래도 진짜 성녀인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몸속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이 결정적인 증거였다. 지금까지 만나본 신전의 사제들과는 차마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신성력이 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누추한 곳에 귀한 손님이 왔네.”
“……?”
“아무튼, 네가 진짜 성녀라면 이만 돌아가. 너 하나 때문에 대륙이 난리니까. 네가 무슨 이유로 나에게 이걸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알겠어요.”
성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 * *
성녀와 성기사 단장은 페리안 남작령에 도착하자 신전에 연락을 취했다.
제론의 말처럼 아이오닉 교국으로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한 달이 지나 교황 직속 성기사단이 도착했다.
“성녀님을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기사단은 비밀리에 쥬페토와 만나 적절한 보상을 치렀다.
잠시 후 성녀와 기사단장이 떠났다.
“흐음.”
제론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오른손에 쥔 천사의 날개가 새겨진 해 모양의 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이윽고 왼손을 펼치자 월계수가 새겨진 별 모양의 배지가 나타났다.
해와 별.
“그럼 달 모양 배지도 있으려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