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62)
제62화
62화
“설득력이… 있어!”
제론이 양손에 쥔 배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해와 별의 배지가 있으니 달 모양이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개가 새겨진 해 배지를 받기 전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말이야.’
조금, 아니 조금보다는 살짝 더 관심이 생겼다.
사실 문양과 모양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닌 배지였다.
처음 월계수가 새겨진 별 모양의 배지를 받았을 때만 해도 메이엔 선배가 카드 점을 봐주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내용이 계속 신경 쓰여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성녀가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또 다른 배지를 주니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질이 조금 특이한 것 같긴 한데…….”
쇠와 알루미늄의 중간으로 보였다.
진짜 재질이 2가지 재료를 합쳤다는 게 아니라 느낌상 그렇다는 것이다.
강도는 살짝 내공을 담아서 힘줘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제론이 조금보다 살짝 더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배지의 강도 때문이었다.
내공을 살짝 담았다고 하지만 엄마의 뱃속부터 백회혈이 열린 채 모은 정순한 내공이라서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롱 소드는 손쉽게 종이처럼 접어버릴 수 있고 클레이모어 같은 대검은 수수깡처럼 똑- 부러트리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데 고작 손바닥보다 작은 배지가 그 힘을 버틴다고?
정말로 말도 안 될 정도로 단단한 것이다.
‘힘을 더 줘볼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제론은 곧 고개를 저었다. 힘을 더 준다면 구부러질 것 같지만 굳이 강도를 테스트할 필요까지는 못 느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쓰일지도 모르는 물건을 막 다루기도 뭐했다.
“에이. 됐다. 언젠간 쓸 날이 오겠지.”
배지를 주머니에 막 넣으려는 순간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고 있느냐?”
“그냥 저 두 명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쥬페토가 작은 점으로 보이는 성녀 무리를 힐끔 쳐다봤다.
두 눈으로 내공을 불어넣자 작은 점이 3배로 커졌다.
“으음.”
성녀와 성기사 단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볼펜으로 콕 찍은 점이 3배로 커져 봐야 여전히 작은 점에 불과했다.
그나마 사람이라는 것을 알 정도라는 게 위안이랄까?
“흠흠. 그런데 그 손의 배지는 뭐니?”
“아, 메이엔 선배가 준 거예요.”
“메이엔 선배? 혹시 여자애니?”
“형이 졸업할 때 절 찾아왔던 그 선배요. 기억 안 나세요?”
제론이 잠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아빠를 올려다봤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걸까?
그런 제론의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쥬페토가 멀쑥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막내아들의 입에서 여자애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나온 거 같아서 말이다. 하하! 여태까지 여자애들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지.”
“꼬맹이들한테만 관심이 없는 거예요.”
“으응?”
멀쑥했던 쥬페토의 미소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잠시 제론의 나이가 몇인지 상기했다.
5부생 2학기가 끝나 방학이 되었으니 곧 14살이다.
14살이면 충분히 어리다.
나이에 맞지 않게 몸은 크지만 얼굴에는 아직 앳된 티가 많이 난다.
그런데.
‘꼬맹이들한테 관심이 없다고?’
막내아들이 조숙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연상 취향일 줄은 몰랐다. 연상 취향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단지 너무 조숙해서 걱정이 들었다.
“음. 제론아.”
“네?”
“…….”
쥬페토는 잠시 머뭇거렸다. 막내아들의 순수한(?)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이내 큰 결심을 하고 말했다.
“그 배지 잠시 봐도 되겠니?”
“물론이죠.”
제론이 헤- 웃으며 배지를 건넸다.
‘하아.’
쥬페토는 배지를 받으며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용기가 없는 스스로를 원망했다.
보통은 자식들이 조숙하다고 하면 다 컸다며 아쉬움 반 대견함 반이라던데 제론에게는 그것이 통용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성숙했다.
‘나중에 아이리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진지하게 고민을 하며 배지를 주물럭거리던 쥬페토는 제론의 빤한 시선을 느끼고 어색하게 웃고선 배지를 다시 돌려주려고 내밀었다.
“음?”
그런데 갑자기 배지의 모양이 눈에 확 들어왔다.
우선 첫 번째는 천사의 날개가 새겨진 해 모양의 배지.
“‘태양의 교단’의 증표인가?”
“어? 그 배지 알아요?”
“알다마다. 유명한 거니까.”
쥬페토는 배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다시금 확신했다.
이 배지는 ‘태양의 교단’에서 대사제 이상의 고위직에게만 배포되는 증표였다.
예전에 봤던 것과 조금 다르게 생긴 부분도 있었지만 누구한테 받았는지 예상이 돼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성녀님께 받았겠지.’
쥬페토가 봤던 배지는 페리안 남작령에 있는 ‘태양의 교단’ 신전 주교-대사제 이상만 주교로 파견이 가능하다-의 것이었다.
해 모양이라는 건 똑같았지만 날개의 크기가 달랐다.
‘그럼 이건……?’
두 번째로 월계수가 새겨진 별 모양의 배지.
본 적 없었다.
하지만 제론이 예감했던 것처럼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해와 별.
전혀 다른 모양이지만 똑같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이었다.
“이 배지는 뭔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이건 ‘태양의 교단’에서 대사제 이상의 고위직에게만 배포되는 증표란다.”
“일종의 신분증이라는 거네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다만 그 증표를 다른 사람에게 준다면 의미가 달라진다고 하더구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데요?”
“보답을 해야 한단다.”
그 말에 제론은 바로 이해를 했다.
무림에서는 은혜를 받으면 호패를 넘긴다.
호패에는 단순히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반드시 보은하겠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내가 구해줘서 고맙다고 준 건가?’
메이엔 선배가 준 배지도 그런 뜻이라면 이해가 되었다.
미안함에 무언가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그런데 왜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단순한 억측일지도 모르지만 여자의 육감처럼 고수의 육감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2개의 배지에서 묘한 관계성이 보인다.
바로 그때 쥬페토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재질이 조금 다른 것 같구나.”
“네?”
“내가 본 배지는 단순한 쇠로 만들어졌는데 이건 달라. 합금인 것 같은데… 이런 기술을 갖고 있는 곳이 몇 없을 텐데?”
쥬페토의 마지막 말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처음으로 2개의 배지가 가진 공통점이 나왔다.
똑같은 기술로 만들어진 합금이었다.
진짜로 합금인지는 몰라도 같은 재질이라는 건 확실했다.
“성녀님이라고 하니까 특별히 제작한 것일지도 모르죠.”
“으음. 그러려나?”
제론은 쥬페토에게서 배지를 받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재밌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 * *
해가 저물기 전 제론은 병사들의 장비를 납품하는 대장장이를 찾아가 배지의 재질에 대해 물어봤다.
대장장이는 배지를 들고 한참을 살펴보더니 대답했다.
“합금이 맞습니다. 적어도 3가지 이상의 금속이 합쳐진 녀석이지요.”
“어떤 게 섞였는지 알 수 있겠어요?”
“정확하게 알아보려면 이걸 가지고 이것저것 테스트를 해봐야 하는데 상처가 많이 생기거나 형태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추천해 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런가요? 조금 아쉽네요.”
“그래도 2가지는 알겠군요.”
제론이 눈빛을 반짝였다. 단서가 될 수 있는 게 한 가지라도 나온다면 좋았다. 그런데 2가지나 된다고 하니 기꺼웠다.
“그게 뭔가요?”
“서부대륙에서 나오는 초강草鋼과 남부대륙에서 나오는 해강海鋼이 섞여 있습니다.”
“초강은 뭐고 해강은 뭔가요?”
“으음. 쉽게 설명해서, 들판 아래에 있는 광맥에서 캐온 쇠를 초강이라고 하고 바닷속에 있는 광맥에서 캐온 쇠를 해강이라고 합니다. 초강은 풀처럼 잘 휘어지지만 탄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그래서 강철로 된 활을 만들 때 자주 사용됩니다. 혹은 거중기나 투석기 같은 공성 무기를 만들 때도 쓰이지요. 해강은 평범한 쇠와 성질은 비슷한데… 현무암처럼 구멍이 송송 나 있습니다.”
초강과 해강에 대해 설명하던 대장장이가 곧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말했다.
“아! 해강은 마력 전도율이 좋아서 마법사들이 실험에 자주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저도 자세히 몰라서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아니에요. 지금 말해주신 것만 해도 충분해요.”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참 대단하군요. 초강과 해강은 합금시키기 굉장히 어려운데 이걸 어떻게 한 건지…….”
대장장이는 크게 감탄했다. 그런 대장장이에게서 배지를 회수한 제론은 아까 그랬던 것처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대장장이가 아쉬운 눈빛으로 제론의 주머니를 빤히 쳐다봤다.
“흐음. 서부와 남부란 말이지?”
서부대륙은 광활한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대륙에도 초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서부대륙과 비교하면 대륙과 반도의 차이라고 할 정도로 격차가 컸다.
또한 남부대륙은 V자 형태를 하고 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둘러싸였다.
중앙대륙에서는 절대로 보지 못할 바다!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가볼 곳이 많네.”
어차피 차기 영주는 형이 될 테니 자신은 열심히 놀면 된다.
히죽거리며 웃은 제론이 성으로 돌아오자 저택 앞에 서 있던 누나가 그를 발견하고 외쳤다.
“얼른 와! 아빠랑 엄마가 목 빠지게 기다리고 계신다고!”
“알겠어.”
해가 거의 다 저물어가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할 때가 된 것이다.
* * *
남은 방학 기간 동안 제론은 가족들의 무공을 손봐줬다.
아빠나 엄마, 형, 그리고 누나도 스스로 수련을 할 경지가 되었지만 길잡이가 있다면 더욱 빠르게 순항하기 때문이다.
제론은 누나의 무공을 봐주다가 짙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누나! 그거 아니라니까?”
“네가 알려준 그대로 하고 있는데?”
“아니거든?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거든?”
“그럼 네가 해봐!”
제론이 발을 놀리자 땅이 푹푹 꺼지며 족적을 남겼다.
누나가 와서 자신의 족적과 제론의 족적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똑같잖아!”
“각도가 다르잖아. 여기는 10도. 저기는 5도.”
“야! 그 정도는 큰 차이도 안 나잖아!”
“그렇게 훅 가는 거야. 아까도 그러다가 발 꼬여서 자빠졌잖아?”
제론이 혀를 쯧쯧 차자 누나가 부들부들 떨었다. 사시나무가 동족이라며 쌍수를 들고 반길 법한 격한 몸 떨림이었다.
“형을 좀 본받아.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잖아.”
“쟤랑 나랑 같냐!”
“형한테 쟤가 뭐야? 내가 누나한테 야! 라고 하면 기분 좋겠어?”
“그런 사소한 건 따지지 말고!”
“그래, 그럼 중요한 걸 따질게. 아빠나 엄마의 반이라도 해. 하나를 가르쳐서 하나라도 알면 좋겠어. 솔직히 누나는 하나를 알려줘도 반도 모르잖아. 가르치는 내 입장을 좀 생각해.”
“야!”
“호.”
제론의 어처구니없는 농담에 누나가 두 눈에 지진을 일으켰다.
곧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왔는지 그렁그렁 눈물방울을 매달았다.
로한이었다면 바로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쩔쩔맸겠지만 현실의 남매는 그렇게 만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누나 운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