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65)
제65화
65화
“…이상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입학식이 끝났다.
사회자가 살짝 지친 표정으로 마이크처럼 생긴 아티팩트를 내려놓았다.
2시간에 달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로 심신이 지쳐버린 것이다.
“올해는 입학생이 적군요.”
“전쟁의 여파로 멀리 돌아오느라 아직까지 도착하지 못한 학생이 제법 많습니다.”
선생님들이 잡담을 나누며 아카데미 관계자와 함께 신입생들을 교실로 데려갔다.
그사이 재학생들은 2학기 성적을 종합해 클래스가 승격되거나 강등돼서 새로운 반을 배정받았다. 당연하지만 제론은 S클래스였다.
‘입학생부터 5부생까지 쭉 1등을 놓쳐본 적이 없거든.’
로한도 아슬아슬하지만 S클래스를 유지했다.
작년 2학기 기말고사를 보기 직전에 갑자기 배탈이 나서 시험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하지만 그전까지 쭉 상위 성적을 거둬서 운 좋게 강등당하지 않았다.
입학식이 끝나고 기숙사를 배정받을 때 카론이 왕실에서 돌아왔다.
카론은 1학기 기말고사와 2학기 시험을 치르지 못했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여 클래스가 강등되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S클래스의 특혜라고 한다.
“그래서 다들 S클래스가 되려고 그러는구나.”
“다행인 일이지.”
S클래스와 A클래스의 혜택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사실 혜택은 둘째 치고 타의 모범이 돼야 할 1왕자로서 클래스 강등은 불명예였다.
그런데 특혜를 받았다고 해도 클래스가 강등되지 않았으니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럼 내일 보자.”
“잘 자라.”
카론과 로한이 손을 내젓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밤 8시가 되자 제론은 에르딘을 돌려보냈다.
오늘 막 아카데미에 도착한 녀석이었다. 숙소의 짐을 정리하고 내일 수업 준비까지 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리라.
“그럼 내일 아침에 찾아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지난 5년간 제론의 성격을 파악한 에르딘은 겸허하게 받아들였고 곧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은 바로 검술 수업인가?”
혼자 남은 제론이 나눠준 유인물을 쭉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아카데미에서 배운 검술이 정신과 육체를 수양하기 위한 의례적인 것이라면 6부생부터는 과거 대검호로 이름을 날렸던 데카르트의 ‘데카르트 제식 검법’을 배운다.
‘데카르트 제식 검법’은 기사가 되기 위해 종자가 되거나 기사단에 들어가면 배울 수 있는 검법이다.
검법의 수준으로만 보면 중급이지만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모든 기초 검술이 총망라되었다.
무사히 졸업만 한다면 기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부호나 상인들이 기부금을 내서 아카데미에 자식들을 집어넣는 이유가 괜한 것이 아니다.
제론은 운기조식까지 마치고 늦은 밤이 돼서야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
“제론 님.”
시침과 분침이 정확하게 7시 30분을 가리킬 때 노크 소리와 함께 에르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운기조식을 끝냈다.
침대를 내려가 문을 열자 에르딘의 퉁퉁 부은 얼굴이 보였다.
제론은 화들짝 놀랐다.
“아 깜짝이야!”
“왜 그러십니까?”
에르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거울 안 보고 왔어? 얼굴 완전 부었어. 거의 2배야. 호떡맨이 친구냐고 물어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호떡맨? 그건… 아니지. 잠시만요. 거울 좀 볼게요.”
에르딘이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거울 앞으로 가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
곧 충격받은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진짜였다.
호떡맨이 뭔지 몰라도 얼굴은 정말로 2배 부었다.
평소 홀쭉했던 볼이 빵빵하다.
콕- 찌르면 뻥! 하고 터질 정도다.
“술은 또 뭐 이리 많이 마셨어?”
“그,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냄새가 나잖아. 냄새가.”
제론이 엄지와 검지로 코를 쥐었다.
에르딘 녀석을 놀리기 위한 과장된 제스처였다.
실제로는 코를 쥘 정도로 냄새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안 나는 것도 아니었다.
무공이 일정한 경지를 넘어서면 오감이 극도로 발달한다.
열심히 씻어서 냄새를 덮으려고 했겠지만 제론의 후각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래서 에르딘이 지난밤에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래도 제론은 나름 고수들 중에서는 후각이 평범한 축에 속했다.
어떤 놈들은 개보다 후각이 민감해서 며칠 전에 먹은 음식 이름까지 알아맞힌다. 그래서 무림에서는 고수와 싸울 때 냄새도 조심해야 했다.
기습하려고 은신해 있어도 냄새로 바로 알아차리니까!
제론은 코맹맹이 소리로 물었다.
“누구랑 마신 거야?”
“그… 카론 님과 로한 님의 집사 친구들이랑요.”
제론이 어울리는 친구라고는 카론과 로한이 전부였다.
에르딘이 두 명의 집사 후보생들과 친하게 지내는 건 당연했다.
“으이구. 적당히 마시지.”
“그 정도로 심각해요?”
제론이 계속 놀리자 에르딘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장난이 너무 심했나?’
살짝 당황했다.
녀석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다 못해 울 것처럼 변했다.
‘심하긴 심했네.’
제론이 반성했다.
아카데미는 공식적으로 술의 반입을 금지시켰다. 신성한 교육의 장소에서 성인도 아닌 학생들이 술을 마신다는 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카데미 내부 가게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학생들은 몰라도 선생님들까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이유로 밤에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가볍게 술을 한 잔씩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러나 마나를 다루는 선생님들은 과음만 하지 않으면 숙취로 고생하지 않으니 걱정도 없었다.
그걸 이용해서 학생들 몇 명은 인맥을 동원해 선생님 혹은 식재료를 가져오는 상단을 통해 술을 반입해온다. 선생님은 자신이 마실 거라고 하면 되고 상단은 술을 반입해오다가 들켜도 다른 곳에 가져갈 물건이라고 둘러대면 되니까.
어쨌건 공식적으로 반입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학생들이 술을 마시거나 갖고 있는 것을 들키면 엄중히 처벌한다.
최악의 처벌은 퇴학이었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술을 마시더라도 절대로 들키지 말자는 룰이 있었다.
더군다나 에르딘은 왕실에 소속된 집사 가문인 제이워크 가문의 일원이었다.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하면 불명예였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야지.’
제론이 안쓰럽게 에르딘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바로 그때 킁카킁카 하면서 자신의 입 냄새와 몸 냄새를 맡던 에르딘은 쭈그려 앉아서 훌쩍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으우. 퇴학당하면 제론 님의 집사가 될 수 없는데…….”
“어?”
“제론 님의 집사가… 흐이. 돼야 하는데…… 흐우.”
“그런 이유였냐?”
가문의 불명예 때문이 아니라?
제론은 가끔씩 에르딘이 다른 꼬맹이들에 비해 어른스럽기 때문에 똑같은 14살의 꼬맹이라는 사실을 잊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짜식 귀엽네.’
제론이 피식 웃으며 에르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녀석에게 무공을 가르치기로 결정했다.
이 정도는 잠시 맛보기로 느끼게 해줘도 된다.
‘내공의 힘을 느껴봐라.’
내공을 천천히 불어넣었다.
녀석의 몸속에 있는 주독을 조금씩 몰아내려는 것이다.
“앗?!”
에르딘은 제론의 의도대로 몸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렸다.
따뜻한 무언가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짧은 탄성을 토해냈다.
그것의 정체가 내공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제론이 한 번도 내공의 존재에 대해 에르딘에게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공을 가르쳐줘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몇 달 전이었다.
“입 열지 마.”
“……!”
제론이 엄중히 말하자 에르딘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녀석의 양 볼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내공이 에르딘의 몸 전체로 퍼지며 기분을 들뜨게 만든 것이다. 이는 제론이 익힌 역혈마공의 내공이 거칠고 파괴적인 성질을 띠고 있어서였다.
단전도 형성되지 않은 에르딘에게 많은 양을 불어넣으면 위험하기에 적은 양을 아주 천천히 불어넣자 오히려 쾌감으로 몰려왔다.
에르딘이 파르르- 몸을 떤 순간 손가락 끝에 검은색 물방울이 모였다.
“어?”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살짝 진한 술 냄새와 퀴퀴한 찌든 내가 코끝을 찔렀다.
둔탁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졌다.
“제론 님, 이건……?”
“몸속에 남은 술을 배출시켰어. 아마 네가 걱정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제론이 히죽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내, 내가 조금 전에 무슨…… 으아앙-!”
그때가 돼서야 에르딘은 조금 전에 울먹이며 했던 말이 떠올랐고 부끄러움이 몰려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으로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어, 음.”
뻘쭘해진 제론은 검지로 볼을 긁적였다.
* * *
“야, 우냐?”
“안 웁니다.”
에르딘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녀석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제론은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아, 미안. 지금이 아니라 아까 울었지.”
“……!”
까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론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웃음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녀석을 놀리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주독을 배출시켜주며 탁기도 함께 뽑아줬더니 기운까지 넘친다. 괴롭히는 맛이 어마어마하다.
‘아, 이래서 누군가를 괴롭히는 걸 멈출 수가 없다니까.’
늘 짜릿해. 새로워.
“지금 이상한 생각 하고 계시죠?”
“이상한 생각? 그런 적 없는데. 그냥 너를 괴롭히는 게 즐겁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게 이상한 생각이잖아요!”
“엥? 그게 왜?”
“괴롭히는 게 즐거운 건 정상이 아니라구요!”
“내가 정상이 아니구나.”
제론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에르딘은 순간 멈칫하며 또르르 눈을 굴려 제론의 눈치를 살폈다.
순간 말이 심했나 싶었던 것이다.
“그럼 정상이 아닌 걸로 하자.”
“예?”
“괴롭히는 게 즐거운 건 정상이 아니라구요!”
제론이 에르딘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 했다.
“으그그그극!”
“그거 우리 누나가 자주 내는 소리인데?”
“누나분께서 화가…… 많이 나셨던 모양이군요.”
“너도 화가 좀 많이 난 것 같네.”
“예! 많이, 아니 엄청 많이 났습니다!”
에르딘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제론은 낄낄 웃으며 그 뒤를 따라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졸업까지 2년밖에 남지 않은 일상이었지만 말이다.
“이따 밤에 방으로 와!”
“왜요?!”
“내가 좋은 거 알려줄게.”
에르딘이 ‘알겠어요!’라고 대답하며 달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제론은 매일 밤 에르딘을 불러 내공심법을 전수했다.
물론 오러 연공법이라고 말했다.
페리안 남작 가문에 내려오는 기초 연공법이라고 말하자 녀석이 크게 감동 받은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보통 오러 연공법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절대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은 녀석의 그릇부터 완성을 시키고 그다음에 천천히 알려줘야지.’
녀석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제이워크 가문에서 전해지는 무술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론이 눈치채지 못한 까닭은 에르딘의 성취가 무척이나 낮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다행이야.”
“네?”
“내가 가르쳐 주려는 건 정말 대단한 거거든.”
“그게 무슨…….”
에르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하려다가 내공으로 술기운을 몰아내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말끝을 흐렸다.
“아무튼, 천천히 해 보자고.”
참고로 로한처럼 열심히 굴릴 예정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