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68)
제68화
68화
“처음부터 솔직히 말해줬으면 내가 이러지 않았을 거다.”
카론은 언제 히죽 웃었냐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제론을 질책했다.
로한과 에르딘이 운동장을 열심히 뛰다가 두 명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밍기적거렸다.
제론은 바로 알아차리고 두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안 뛰어?”
“저 바실리스크보다 독한 놈 같으니라고.”
“나중에 약점 하나라도…….”
두 사람은 이를 빠드득- 갈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제론이 그런 두 명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두고 보라고 해도 안 무섭다. 아무튼, 숨길 생각은 없었어. 이건 진심이니까 믿어라.”
“알고 있어. 숨기려고 했다면 그렇게 어설프지 않았을 테지.”
“그렇게 어설퍼 보이냐?”
“많이.”
카론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기억하는 제론은 항상 철두철미했다. 이런 어설픈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무척이나 생소했다.
‘음? 아닌가?’
문득 카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론이 철두철미했다고 기억하지만 무엇이 그랬냐고 생각해봐도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어설픈 모습만 보여줬던 기억만 난다.
그런데 왜 철두철미했다고 기억하는 것일까?
‘정말로 숨기려고 한 적이 없었구나.’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철두철미했던 기억이 없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제론은 그에게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진실한 모습만 보여줬다. 친구라는 이유로. 그래서 그런 기억이 없던 것이다.
섭섭함이 쏙 들어간다. 대신해서 고마운 마음이 생겨났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지. 친구가 없는 군주는 군주의 자격이 없는 거라고.’
친구도 사귀지 못하는 군주가 수많은 신하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겠냐며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는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친구 사이에서도 서로가 지켜줘야 할 게 있는 것이다.
“그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하나쯤은 있겠지.”
“응?”
제론은 뚱딴지같은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카론이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로한은 어디까지 알고 있냐?”
“한… 1프로?”
“그렇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린 제론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까와는 반응이 달랐다. 분명히 다른 건 알겠다. 하지만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모르겠다.
‘치매는 아닐 텐데.’
따돌려서 섭섭하다고 말한 뒤 그런 적 없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저 나이에 치매가 걸렸을 리는 없었다. 치매였다면 왕실에서 진작 알아차리고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럼 뭘까?’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왜 갑자기 무슨 이유로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몰라도 아까처럼 섭섭하거나 비슷한 종류의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씁. 모르겠네.’
짐작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깊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고민해봐야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내가 아는 것도 1프로냐?”
“음.”
“그래, 그 정도면 충분히 대답이 된 것 같다.”
제론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말하지 못하는 건 미안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감추고 있을 생각도 없었다.
“적어도 모두를 지킬 수 있을 때.”
“어?”
“그때 말해줄게. 나머지 99프로까지.”
카론이 눈을 끔벅거리다가 담담하게 웃었다.
평소처럼.
“그래, 고맙다.”
진심을 담아서.
* * *
진실을 알게 된 카론은 더 이상 제론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운동에서 빠졌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들 평소에 얼마나 운동을 안 했으면 그러냐?”
“헉, 헉!”
“숨이 아주 넘어가겠어.”
카론이 로한 옆에서 뛰며 담담하게 약을 올렸다. 녀석의 얼굴에서 땀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운동장 뛰기는 한 달이 지난 뒤 반쯤은 명물처럼 자리 잡았다.
카론과 로한, 그리고 에르딘이 뛰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최대한 가까운 스탠드에 앉기 위해 자리 쟁탈전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카론 녀석한테는 뭘 시켜야 하지?”
제론은 그런 3명을 쳐다보며 궁리했다.
각법가 수련용 마보는 카론에게 큰 효과가 없었다. 귀족의 예법 중에서 발꿈치를 드는 걸음걸이가 있었다. 모든 귀족이 익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에 와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예법이었지만 카론은 왕족이라서 배웠다고 한다.
한마디로 블러핑을 당했던 것이다.
“몸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
소위 말하는 식스 팩도 배에 알차게 박혀 있었다.
지금 뛰는 것만 봐도 그냥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진짜로 무공을 가르쳐야 하나?’
카론이 어디 가서 함부로 입을 놀릴 것 같지는 않았다.
곧 또 다른 문제가 떠올랐다.
주기적으로 마법사와 사제에게 건강을 체크받는다는 것이다.
카론이 자신처럼 내공을 잘 숨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내공심법은 빼고 초식을 몇 가지 알려줘야겠네.’
내공과 오러, 마나는 본질적으로 근원이 대자연의 기라는 점에서 같지만 어떤 필터로 걸러 냈냐에 따라 성질이 확 달라진다.
즉, 힘의 종류만 다를 뿐 사용하는 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100프로의 힘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말이지.’
그래도 예상하지 못한 비장의 한 수 정도는 될 것이다.
제론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운동장 뛰기’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로한과 에르딘이 가쁘게 숨을 내쉬며 운동장 3바퀴를 돌 때 카론이 10바퀴를 돌고도 몸이 덜 풀렸는지 스트레칭을 한다.
“저… 괴물 같은… 자식!”
“저희가… 저질이 아닐까요…?”
로한의 이 가는 소리에 에르딘이 팩트를 뿌렸다.
반은 맞고 나머지 절반은 틀렸다.
처음의 두 명이었다면 저질이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카론이 엄청나다는 말이 정확했다.
아직 준기사급은 안 되지만 같은 나이 또래 중에서 카론만큼 신체 능력이 뛰어나거나 그 이상인 녀석은 몇 없다.
‘기사수련을 받아온 녀석이니까.’
카론은 재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형만큼은 아니지만 무골武骨이 제법 좋다. 오성도 뛰어나서 무공을 익히면 금방 대성할 스타일이다.
아, 물론 거듭 말하지만 형만큼은 아니었다.
‘형이 치트키인 거지.’
무공을 익힐 때는 무골보다 오성이 더욱 중요하다.
무골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무공을 익히면 초식에 담긴 힘을 100프로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무골이라면 무공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오성이다.
오성이 받쳐줘야 무골은 그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오성과 무골 2가지를 모두 갖춘 형이 치트키라고 하는 것이다.
‘아, 형 보고 싶다.’
제론은 얼른 방학이 오기를 기다리며 카론에게 알려줄 몇 가지 초식을 떠올렸다. 녀석의 성격과 제일 맞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자 무당파와 청성파, 그리고 장백파가 떠올랐다.
무당파는 극한의 부드러움을 추구한다. 그래서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무공이 많았다.
청성파는 부드러움 속에 날카로움을 감췄다. 처음에는 산들바람 같이 느껴지지만 어느새 그 안에서 궁지에 몰린 자신을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장백파는 좋게 말하면 신비롭고 나쁘게 말하면 괴이했다. 안개로 뒤덮인 웅혼한 산세 같은 무공을 펼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이유도 모른 채 당하고 만다.
어느 정도 무공에 눈이 트인 무림인들은 장백파의 무공이 괴이한 것이 아니라 신비롭다고 말하나 그렇지 못한 자들은 괴이하거나 사특하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 말했다면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이다.
제론이 카론에게 알려줄 몇 가지 초식이 바로 장백파의 무공이었다.
“너 검을 쓰던가?”
“검과 창, 칼 등 여러 가지를 다 다룰 줄 안다.”
카론이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제론은 재차 물었다.
“주먹이나 발은?”
“그건 따로 배우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카론은 제론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런데 남자는 역시 주먹이 아닐까?”
제론이 검지로 코 밑을 훔쳤다.
역시 내 친구라서 그런지 훌륭한 대답이다!
“깔끔해서 좋네.”
중간고사가 끝나면 몇 가지 재주를 가르쳐준다고 말하고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다들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밥을 산더미처럼 가져왔다. 하지만 제론은 평소처럼 먹었다.
열심히 우걱우걱 밥을 먹던 로한은 문득 고개를 갸웃하더니 제론에게 묻는다.
“그러고 보니 너는 왜 운동을 안 하냐?”
“나? 할 필요가 없어서.”
“……?”
모두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제론을 쳐다봤다.
당연했다.
제론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안다. 하지만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기사가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똑같다. 아직 어린 그들에게는 명상이나 깨달음을 통해 강해진다는 방식을 알지 못해서 나오는 반응이었다.
“에혀.”
작게 한숨을 내쉰 제론이 팔을 걷어서 속살(?)을 보여줬다. 단단하고 크며 세밀하게 자리 잡은 근육이 자태를 드러냈다. 조각으로 만든 것처럼 완벽한 근육이었다.
“오우야.”
“와……!”
“저 근육에 안기면 어떤 느낌일까?”
“맞으면 아프겠다! 가서 한번 때려달라고 해 볼까?”
“하아. 너무 아름다워.”
사방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중간에 이상한 말도 섞여 있었지만 제론은 과감하게 무시했다.
저런 변태들과는 상종해서 좋을 게 없다.
“한번 만져 봐봐.”
로한이 제론의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윽고 자신의 팔을 만졌다.
제론의 팔이 단단한 돌이라면 자신의 것은 물렁물렁한 젤리였다.
“젠장.”
로한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런 이유로 웬만한 운동으로는 단련이 안 되는 상태야.”
“아아. 그럼 따로 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맞아. 어떤 운동을 하는 거야?”
“나?”
제론이 소매를 내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친구들을 쭉 살펴보니 다들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업 다 끝나고 이따 밤에 내 방으로 와.”
“방으로?”
“어떤 운동을 하는지 궁금하다며.”
보여줄게. 아니, 시켜줄게.
제론이 뒷말을 삼키며 씨익 웃었다.
* * *
카론과 로한은 수업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제론의 숙소로 향했다.
도착하자 문 앞에는 에르딘이 갈아입을 옷을 들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들어가셔서 옷을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응?”
“왜 갈아입는 거지?”
에르딘이 살짝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두 명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제론 님께서 옷을 갈아입고 오면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으음. 불안한데?”
“공감한다.”
로한과 카론이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그러자.
“안 들어오고 뭐 해?”
두 명이 눈빛 교환을 끝내고 돌아선 순간 뒤에서 제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화들짝 놀란 로한이 뒤를 돌아보자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걸어 나오고 있는 제론이 있었다. 카론은 평소처럼 담담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두 눈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땀으로 푹 절어 있는 제론의 옷으로 향했다.
땀으로 푹 절어 있었다.
에르딘이 건네준 손에 들고 있는 옷과 같은 것이었다.
‘설마 우리도……?’
두 사람은 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