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69)
제69화
69화
제론이 거실 가운데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등과 다리를 기댈 벽이나 기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수직을 이루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어지간히도 균형감이 좋은 애들이라면 금방 따라 할 정도로 쉬운 자세였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이다음부터였다.
한 손을 바닥에서 뗀다. 손가락을 하나둘 접었다. 이윽고 검지 하나로 물구나무를 지탱한 채 천천히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아흔여덟, 아흔아홉, 백.”
1초에 1개씩 정확하게 100개를 채웠을 때 검지를 중지로 바꿨다.
“하나, 둘, 셋, 넷…….”
제론은 팔굽혀펴기를 총 10번 했다.
손가락이 10개였으니까.
10개의 손가락으로 100개씩 팔굽혀펴기를 끝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하게 16분 40초.
팔을 바꾸는 시간을 포함한다고 해도 17분을 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한과 카론이 차례대로 중얼거렸다.
“미친놈.”
“저게 되는 거였군.”
1천 개의 팔굽혀펴기를 하는 동안 제론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왕실이나 공작가에 있는 기사들도 저렇게 하는 모습을 못 봤다.
‘그럼 저 옷은 왜 땀에 푹 전 거지?’
로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런 운동을 하고서도 땀 한 방울 안 흘렸는데 어떤 운동을 해야 옷이 땀으로 젖어버리는지 궁금했다.
그런 의문을 해결해주기라고 하는 듯 에르딘이 중량밴드-운동할 때 팔이나 다리에 차는 보조기구-를 가져왔다.
제론이 중량밴드를 차며 두 명에게 말했다.
“너희도 가볍게 몸 풀고 있어. 나 이거만 하면 끝나니까 그때부터 너희도 운동해야 해.”
“알겠어. 그런데 그거 몇 키로냐?”
“음. 대충 10kg?”
“전부 합쳐서?”
“1개당 10kg.”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제론의 모습에서 두 명은 또다시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다시 보니 중량밴드에는 모래가 아니라 쇳덩어리가 들어가 있었다. 그제야 왜 운동을 같이 안 하는지 알았다. 말로만 들었을 때랑 달랐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굴러봐야 제론에게는 몸풀기 운동도 못 된다.
“허리 밴드는?”
“여기 있습니다.”
팔과 다리에만 중량밴드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허리의 중량밴드는 팔과 다리의 중량밴드보다 더욱 두껍고 큰 쇳덩어리가 들어갔다.
“그건 몇 키로냐?”
“몰라? 20kg일 걸.”
제론이 대답하고 중량밴드를 전부 착용한 뒤 런닝머신-처럼 보이는-에 올라가 달린다. 그 모습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슬슬 두 명은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다.
“걱정 마. 너희한테 나처럼 운동하라고 안 시키니까.”
“그치?”
“나처럼 운동하면 너희 죽어.”
제론은 두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평소처럼 담담하게 대화한다. 무엇보다 녀석이 한 말이 섬뜩했다.
-나처럼 운동하면 너희 죽어.
정말로 저렇게 운동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살이 아니었다.
로한뿐만이 아니라 카론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너…….”
“왜?”
“아니다.”
카론은 묻고 싶은 것이 생겼지만 꾹 참았다. 대답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얼마나 강할까?’
운동하는 모습만 봐서는 정확하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저 정도의 운동량을 소화하는 기사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오러를 사용하던 것까지 감안하면 오러 익스퍼트 초급 정도일까?’
오러 유저는 완전히 배제했다. 유한 선생님과 함께 오우거를 쓰러트렸다면 적어도 오러 익스퍼트 정도는 돼야 한다.
이제 막 성체가 된 오우거라도 그 힘은 마스터에 준한다.
‘아마도 초급에서 중급 사이.’
14살의 익스퍼트급 실력자.
대륙 어디에서도 이런 케이스는 보기 힘들다.
‘잘 찾아보면 없지는 않겠지만 각국에서 모두 꽁꽁 감추고 있겠지.’
현시대의 오러 마스터의 뒤를 잇는 차세대 전략병기를 키우고 있으리라. 오른 왕국 역시 그런 존재가 몇 있었다. 하지만 제론과 비하면 태양 아래 반딧불에 불과하게 느껴졌다.
‘그만 생각하자.’
카론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론은 친구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잠시 후 제론이 런닝머신에서 내려왔다.
60kg의 중량밴드를 차고 뛰어서 그런지 땀이 뻘뻘 났다.
가볍게 씻고 돌아와 카론과 로한에게 몇 가지 초식을 알려주기로 했다.
“내가 가르쳐 주는 건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페리안 남작 가문의 비기인가?”
로한은 예전에 들은 것이 있어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카론은 아니었다.
“응, 대를 이어 내려오는 격투술 중 하나라고 보면 돼.”
제론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진실은 페리안 남작 가문의 비기가 아니라 전생의 유민현이 우화등선을 하기 위해 무림 전역을 돌아다니며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긴 무공들 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감동 들어간다! 입 벌려라!’
그런데 카론의 반응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천둥 번개가 몰아친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무슨 말을 하려고?
제론이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녀석이 진지하게 말했다.
“가문의 비기는 함부로 유출하는 게 아니다.”
“어, 음.”
가문의 비기가 아닌데.
제론은 지금 이 순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카론은 제론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오해하고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그만큼 소중한 친구로 생각해줘서 고맙다. 그 마음은 무척이나 기뻐. 하지만 네가 가문의 비기를 가르쳐주는 것까지는 원치 않아. 페리안 남작들께서 오랜 시간 쌓아놓은 가문의 역사니까.”
분위기가 순식간에 서스펜스 장르로 바뀐다.
천재지변이 닥쳐오기 전에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처럼 세상 심각했다.
옆에 있던 로한의 표정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맙소사.’
제론은 카론이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럽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저 알고 있는 몇 가지 잔재주(?) 중 하나를 가르쳐 주려고 한 의도를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 몰랐다.
‘이 정도로 벽창호일 줄은 몰랐는데.’
괜히 가르쳐준다고 했나?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려고 했다.
* * *
그 뒤로도 카론의 잔소리가 계속되었다.
누나가 왜 자신이 잔소리하려고 하면 학을 떼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이구나.’
입술이 떨어지는 것을 본 순간 심장도 함께 떨어질 것 같았다.
녀석이 뭐라고 할지 무서웠다.
그래서 결론만 말하자면 배우기로 했다.
설득하는 과정이 조금 길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시켰다.
혹시나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서 포인트만 집자면.
“너 마도 공학이 왜 발전했는지 아냐?”
“뛰어난 마법사와 공학자가 많아서?”
“아니야. 마도 공학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함께 발전시켰기 때문이야.”
“설득력이… 있어!”
짧게 요약하자면 위의 내용이었다.
덧붙여 가르쳐주려고 하는 격투술은 가문의 비기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는 기초적인 권법이고, 페리안 남작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건 맞지만 옛날 선조께서 무명의 기사에게 배운 것이라고 말하자 카론이 납득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카론에게 장백파의 권법을 가르쳤다.
‘내가 왜 가르치게 해달라고 애원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지.’
무림에서 알았다면 마선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왜 걷어차려고 하냐며 통탄할 일이었다.
“자, 봐봐.”
제론이 먼저 시연했다.
한 발을 앞으로 살짝 내딛고 무릎을 15도가량 굽혔다. 오른손은 주먹을 쥔 채 허리로, 왼손은 손바닥을 펼쳐 전방으로 뻗었다.
“오오! 뭔가 있어 보여!”
로한이 흥분해서 방방 뛰었다.
조용히 문 앞에 서서 구경하던 에르딘도 눈빛을 반짝였다.
이 권법을 배워야 하는 카론은 진중한 눈빛으로 제론의 자세를 자세히 훑어 내렸다.
“이 권법의 포인트는 손바닥이야.”
“선생님, 질문 있어요!”
“질문이 뭔가요?”
“왜 손바닥이 포인트인가요?”
“그건 이제부터 알려줄 거예요.”
제론은 손바닥을 펼친 손의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뱀이 기어 다니는 것처럼 유연하게 꿈틀꿈틀하는데 카론과 로한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으에, 징그러워.”
“보기에 좋지는 않군.”
두 명의 반응을 무시한 제론이 열심히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이윽고 주먹을 쥔 오른손을 힘차게 뻗었다.
쉬익-!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뻗어 나간다.
“이게 끝이야.”
“뭐?”
“응?”
황당하다는 두 명의 반응이 튀어나왔다.
제론은 그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다.
모든 무공은 내공을 써서 펼친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다.
내공 없이 펼치는 무공은 단팥 빠진 찐빵이었다.
단팥이 빠진 찐빵은 그냥 밀가루 빵이다.
즉, 지금 펼친 것은 제대로 된 무공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제론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장백파의 무공과 역혈마공의 내공은 어울리지 않지만 펼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보법도 마찬가지.
가벼운 흉내는 가능했다.
“후우.”
가볍게 숨을 토해낸다.
앞으로 내디딘 발이 팔방八方의 건乾, 진震, 이離를 밟았고 뒷발로 감坎과 곤坤을 밟았다. 허리가 90도 회전한다. 동시에 펼쳐진 손바닥의 손가락이 나무를 타고 오르는 뱀처럼 움직였다.
무척이나 기괴하지만 현란한 움직임!
그러나 내공이 혈도를 타고 흐르자 큰 변화가 생겼다.
앞으로 뻗어진 손바닥이 잔상을 남기며 5개처럼 보였다.
손가락의 현란한 움직임이 내공과 합쳐지며 생긴 착시였다.
곧 기괴한 보법이 이목을 끌어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윽고 뻗어진 주먹.
콰아아아-!
대기가 찢어진다.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카론과 로한이 입을 쩌억- 벌리고 쳐다본다.
두 명 모두 손동작과 발재간으로 눈과 머리가 그곳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언제 주먹이 내질러졌는지 알지 못했다.
제론이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대충 이 정도야. 나도 흉내만 낸 거라 제대로 위력이 나오지는 않네.”
“그게 흉내라고? 맞으면 피떡이 될 거 같은데?”
로한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묻는다.
카론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통으로 맞으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식으로 결투를 하고 있는 상황이거나 일정한 경지에 오른 기사라면 안 통해.”
“진짜?”
“어, 진짜야. 뭐 이런 건 나중에 깨닫게 될 테니까 넘기자고.”
발이나 손을 보고 싸우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고수는 눈을 쳐다보며 오감으로 느끼고 피한다. 그래서 제론은 손과 발로 상대의 이목을 흐리게 만드는 이 권법을 잔재주라고 평가한 것이다.
“그 권법의 이름이 뭐냐?”
“…….”
제론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 권법의 이름은 바로 환백산권幻百山拳.
하지만 그 이름을 그대로 가져가 쓸 수는 없었다.
한자니까.
재빨리 머리를 굴려서 이름을 지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일루젼 마운… 아니 스네이크 피스트!”
“뭐?”
카론이 미간을 좁힌다.
제론은 목을 가다듬고 확실하게 말했다.
“일루젼 스네이크 피스트!”
“네이밍은 구리네.”
“음.”
로한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카론 역시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제론은 이맛살을 구겼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즉흥적으로 지었다고 하면 잔뜩 비웃음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