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77)
제77화
77화
스르릉-!
맑은 쇳소리가 나며 검이 뽑혔다.
가늘고 날카롭게 끝이 올라간 가드 위로 천사의 날개가 칼 몸 테두리를 감싸듯 장식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붉은빛 마정석이 박혀 있었다.
평범한 검집 속에 화려한 보검이 숨어 있던 것이다.
“제법 괜찮은 검이네.”
쉬익-!
가볍게 휘두르며 제론이 중얼거렸다. 그저 수석졸업생이라고 주는 예식 검이 아니라 실전에서도 사용이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명검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제법 괜찮다는 게 딱 맞는 표현이었다.
돈으로 사려고 하면 엄청난 값을 지불해서 겨우 구할 정도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검의 균형감이나 손바닥을 감싸는 그립감이 무척 좋았다.
처음부터 제론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안성맞춤이었다.
“이거 마음에 드네.”
오랜 시간 갖고 있던 검처럼 느껴졌다.
씨익 웃은 제론이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 허리에 결속시켰다. 롱 소드보다 조금 더 길어서 아직은 살짝 길게 떨어졌지만 1, 2년만 지나면 몸에 딱 맞을 것 같았다.
제론이 검을 감상하는 동안 아빠가 대리인을 배웅하고 돌아왔다.
“후우. 힘들군.”
아빠의 무공은 이쪽 세상으로 익스퍼트 최상급에 도달했다.
아직 초입이기는 하지만 벽을 뛰어넘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저 힘들다는 말도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피로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정신수양도 시켜드려야겠네.’
제론은 무심코 생각하며 의자에 앉은 아빠의 뒤로 돌아가 어깨를 살살 주물렀다. 손의 힘은 살살이지만 내공을 불어넣어서 근육을 풀었다. 곧 아빠의 눈이 나른하게 변했다.
“아! 좋다.”
“아저씨 같은 소리 내지 마세요.”
“자식이 3명이나 있는데 아저씨가 아니면 뭐겠니?”
아빠가 나른하게 풀어진 눈빛으로 하하! 웃었다.
자식이 3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지만 겉모습은 아직 20대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믿을 정도로 젊었다.
익스퍼트 최상급이 되면서 어긋났던 균형이 맞춰지며 젊어진 것과 똑같은 효과를 보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엄마보다 아빠가 더 어려 보였다. 그래 봐야 아주 근소한 차이였지만 말이다.
“어깨가 많이 굳으셨어요.”
“그거 근육이다.”
“아.”
“윽!”
제론이 당황해서 손에 힘을 세게 줬다.
아빠가 비명을 흘리자 얼른 힘을 풀었지만 이미 고통은 자리 잡은 뒤였다. 다시 살살 내공으로 아픈 부위를 풀어줬다. 통증이 가라앉자 아빠의 표정이 다시 살살 풀렸다.
“20살이라고?”
“예.”
“그때까지 준비를 많이 해야겠네.”
이상하리만치도 씁쓸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대견하다는 느낌도 묻어나왔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막내가 스스로 제 꿈과 목표를 찾아 나선다고 하니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4년 동안 너도 많이 준비해라.”
“알겠어요.”
“엄마 잘 보살피고.”
“아빠는요?”
“나는 당연한 거 아니겠니?”
엄마만 잘 보살피려고? 아빠가 서운하다며 투덜거렸다.
제론이 씨익 웃었다.
* * *
“앞으로 4년.”
제론은 4년의 계획을 촘촘하게 짰다. 4년 동안 가족의 무공만 봐주는 게 끝이 아니다. 과거의 무공을 전부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강해져야 한다.
또한 몇 달 뒤 올 에르딘을 속성으로 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에르딘이 지금 제일 큰 문제인데…….”
4년은 길지만 짧다.
이제부터 무공을 배우더라도 익스퍼트 초급이 녀석의 한계다. 속성으로 가르친다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만약 녀석이 속성을 뛰어넘어 한계를 계속 부딪치며 수련한다면 작지만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그래도 부족하다는 거지.”
제론이 가려고 하는 유적과 던전, 대륙의 금지는 온갖 위험으로 가득 찼다. 어설프게 강하면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제론이 보호를 해주면 되겠지만 결국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그건 동료가 아니라 짐짝에 불과하다. 에르딘도 그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4년 동안 지켜보고 안 될 거 같으면 떨어트리고 가는 수밖에 없지.”
에르딘이 오면 이 부분은 확실하게 말해둘 생각이다.
정확하게 4년.
제론의 20살 생일 다음 날 에르딘을 테스트할 것이다.
“혼자서 여행하는 건 심심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작게 고개를 젓고 제론은 에르딘의 무공 수련을 속성 코스로 짜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뛰게 만든 이유가 속성 코스를 견뎌낼 육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마 녀석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일부러 말 안 한 거지만.”
속성 코스로 무공 수련을 하기 전부터 겁에 질리면 안 되니까.
이윽고 3달 뒤 에르딘이 짐을 싸 들고 페리안 남작가로 왔다.
“제론 님. 저 왔습니다.”
“그럼 짐 내려놓고 와. 운동해야지.”
“꼭… 해야 합니까?”
에르딘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제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4년 뒤에 나랑 같이 가려면 해야 해.”
“어쩔 수 없군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 에르딘이 짐꾼에게 지시를 내려서 짐을 옮기게 했다. 그사이 옷을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각오는?”
“했어요.”
“적당히 죽을 각오 정도는 해야 할 거야.”
“그 이상의 각오도 있어요?”
“물론이지.”
죽을 각오는 생각보다 대단한 각오가 아니다.
정말로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대부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힘들어서 죽기 전까지 가면 그 각오가 달라진다.
견뎌내면 정말로 죽을 각오로 변하는 것이다.
“제발 견뎌내라.”
“조금만 살살은 안 되죠?”
“물론 안 되지. 4년 뒤에 너를 데려가려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해.”
“어쩔 수 없죠.”
에르딘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4년 뒤에 제론 혼자서 대륙을 여행하게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일평생 주군으로 모실 분을 놔두고 언제 돌아올까 전전긍긍 기다리는 것은 성미에 안 맞다.
“정말 어쩔 수 없을까? 흠.”
제론은 에르딘의 저 말이 언제쯤 바뀔지 정말로 궁금했다.
자신이 짠 속성 코스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해낼 정도로 쉽지 않았다.
“뭐 일단 뛰자.”
“네.”
“100바퀴 다 돌고 불러.”
“네! …네? 제론 님, 뭐라고요?”
제론은 에르딘의 되물음을 손짓으로 대답하며 저택으로 들어갔다.
* * *
“…….”
“살아 있냐?”
제론은 시체처럼 쓰러진 에르딘의 몸을 나뭇가지로 콕콕 찔렀다.
페리안 남작가의 수련장은 아카데미와 비교해서 엄청나게 작다. 하지만 100바퀴나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나 같은 곳을 100번이나 도는 건 육체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엄청나게 피로도가 크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계속 같은 곳이니 정신적으로 많이 지칠 것이다.
‘그래도 해냈네.’
아직 첫날이지만 제론은 에르딘의 각오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정도 수련을 해온 기사나 기사의 종자였다면 모를까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녀석이 수련장을 100바퀴나 돈 건 정말로 엄청난 것이다.
“…….”
“기절했네.”
에르딘은 제론과 시선을 마주치자 긴장이 풀렸는지 눈을 뜬 채 그대로 기절했다. 녀석의 몸을 들쳐 업고 녀석의 방으로 가서 침상에 눕혔다. 내공을 몸속으로 흘려보내 탁기를 배출시키고 전신의 근육을 풀어줬다.
4년 동안 전력을 다해서 속성 코스로 수련시키기로 했으니 가벼운 서비스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생각이 있었다.
녀석의 숨결이 편안해지자 밖으로 나갔다.
100바퀴 도는 것을 계속 지켜보느라 힘들었다.
‘나도 수련해야 하고.’
강해져야 하는 건 에르딘뿐만이 아니었다.
제론도 최대한 전생의 힘을 회복해야 한다.
가부좌를 틀고 천천히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에르딘에게 서비스를 해주며 소모된 내공이 빠르게 차올랐다.
대주천을 마치자 명상에 잠겼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새하얀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심상의 세계였다.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풀과 나무, 그리고 숲.
풀벌레와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려오며 마지막으로 상쾌한 숲의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제론은 그곳에서 몸을 움직였다. 무공을 천천히 복기했다.
10시간을 보내자 심상의 세계에서 깨어났다.
현실에서 지나간 시간은 1시간이었다.
심상의 세계는 현실과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비율로 치면 1 대 10.
현실의 1시간이 심상의 세계에서는 10시간이었다.
무공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비율은 점점 더 커진다.
“후우.”
제론은 내공이 미미하게 상승한 것을 느끼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 * *
눈 깜짝할 사이 1년이 지났다.
아빠는 작위가 승격돼서 자작이 되었다.
본래 베론드 남작령과 영지전이 끝나고 영지가 2배 이상 넓어지며 작은 자작령 정도로 커졌지만 자작의 작위를 받을 능력이 되는지 지켜본 것이다.
사실 능력은 인정을 받은 상태였다.
영지전이 끝나고 11년이 지났다. 보통 귀족의 작위는 10년에 한 번씩 실적과 평가의 경위를 분명히 조사해서 올려준다.
다른 국가는 그 형태가 다르지만 오른 왕국의 법은 그랬다.
즉, 법대로는 제론이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해에 작위 승격이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벌의 문제로 시간이 계속 미뤄지다가 이제야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페리안 자작님.”
“으흠.”
아빠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했다.
항상 남작님이라고 불리다가 작위가 승격되어 자작님이라고 불리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엄마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귀엽다며 중얼거리자 형과 누나가 경악했다.
“페리안 자작님, 식사는 어떠십니까?”
“으흠. 매우 좋구나.”
제론이 묻자 아빠는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할 것처럼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엄마가 그런 아빠를 보며 또다시 귀엽다고 중얼거렸다.
누나가 입맛이 뚝 떨어진 표정을 지었다.
“밥 먹는데 꼭 그런 이야기를…….”
“…….”
투덜거리는 누나한테 엄마가 쌍심지를 올렸다. 누나는 흠칫 놀라며 다급하게 시선을 옮겼다. 엄마가 화나면 아무도 못 말린다.
제론이 그 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낄낄 웃었다.
“제론 님, 입에 소스 묻히셨습니다.”
등 뒤에서 에르딘이 냅킨을 내밀며 말했다. 제론이 받아서 입 주변을 닦았다. 낄낄 웃으면서 먹다가 묻은 모양이었다.
“고마워.”
“아닙니다.”
제론은 담담하게 고개를 젓는 에르딘을 쳐다봤다.
1년 동안의 변화는 아빠만 생긴 것이 아니었다.
엄마와 형, 누나 모두 무공이 한 단계씩 발전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무섭게 치고 올라간 사람은 바로 에르딘이었다.
‘자질과 오성은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 더 뛰어난 정도지만 집착이 엄청나.’
에르딘은 4년 뒤-지금 기준으로 3년 뒤에 제론과 함께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그것에 집착하며 속성 코스를 전부 수련하고 있었다.
현재는 오러 유저 중급 수준.
불과 1년 만에 도달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제론도 많이 놀란 부분이었다.
‘이대로 쭉 소화한다면 익스퍼트 상급까지는 올라가겠어.’
제론이 포크로 고기를 콕 찍으며 생각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