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78)
제78화
78화
물론 계속 한계에 부딪치고 그것을 이겨낸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사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오러 연공법 한 번 수련해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이 익스퍼트 상급이 된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일평생-수십 년을 검술과 오러 연공법을 수련해온 기사들도 오러 익스퍼트 초급은커녕 오러 유저로 끝을 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제론의 속성 코스가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1년 만에 오러 유저 중급에 올라섰다.
‘내가 잘 가르쳐서 그런 거지.’
제론은 입속에 든 고기를 오물오물 씹어 삼키며 생각했다. 단순히 자아도취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방법으로 에르딘을 수련시킨다고 해도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건 제론만이 소화시킬 수 있는 극한의 수련방식이었다.
물론 에르딘도 잘 따라와 줬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럼 이제 슬슬 ‘그것’을 할 차례가 되었네.’
에르딘이 오러 유저 중급이 되었다고 해도 아직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철저한 실전이 배제된 수련만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의 전투 실습-집사 후보생은 전투 실습에서 제외된다-에도 참가하지 못한 녀석이 몬스터와 죄수들의 끈적거리는 살기와 광기, 독기를 처음 맞닥뜨린다면 제 실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몸이 굳어버리고 말 것이다.
무공을 배운 무인이 적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학문을 공부하는 학사와 다를 바와 없지 않은가?
‘내가 가려는 곳은 위험천만하기까지 하지.’
까딱하면 죽음의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어설픈 실력과 마음가짐으로는 가선 안 된다.
생각을 정리하며 식사를 마칠 때쯤 에르딘이 작게 말했다.
“제론 님.”
“응?”
“오전에 아이언하트 공작가의 인장이 찍힌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아, 그래?”
로한일 것이다.
페리안 자작가가 아이언하트 공작가와 혼인의 교류가 있다지만 자신의 앞으로 서신을 보낼 사람은 로한밖에 없다.
방으로 돌아가 서신을 확인하자 역시나 로한이 맞았다.
내용은 별것 없었다. 한 달 뒤, 그러니까 서신이 도착한 시간을 기준으로 일주일 뒤에 찾아갈 거라고 적혀 있었다.
“누나를 보러오나 보네.”
서신은 자신에게 보냈지만 진짜 목적은 보나 마나 뻔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지난 1년간 누나를 보지 못했으니 혀에 바늘이 돋았을 것이다. 아이언하트 공작가에서 페리안 자작가로 간다는 말을 듣고 함께 동행하는 것이리라.
“뭐, 이건 됐고. 에르딘. 오늘부터 대련한다고 말했던 거 기억하지?”
“예, 준비해놨습니다.”
제론은 아카데미에서 수석 졸업선물로 준 검 하나면 충분했지만 에르딘은 풀 플레이트를 입고 대련하기로 이야기됐다.
녀석의 몸 크기에 맞는 풀 플레이트가 없어서 자작령의 기사를 위해 준비해놓은 예비용을 창고에서 꺼내 놨다.
“그럼 준비하고 있어. 나도 마저 준비를 하고 나갈 테니까.”
풀 플레이트는 착용하는 시간만 30분이 걸린다.
물론 숙련된 착용 보조자(?)가 옆에 있다면 10분에서 15분 사이로 시간이 줄어들겠지만 제론과 에르딘의 일은 영지의 공적인 일이 아니라서 제론의 전담 시녀와 유모가 도와줘야 했다.
그래서 30분의 시간 동안 제론은 에르딘을 위해 몇 가지 무공을 준비해둘 생각이었다.
“형이나 누나처럼 처음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다질 수가 없는 상황이지.”
에르딘에게 그 정도로 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3년.
지난 1년 동안 그릇의 틀을 어느 정도 완성시켰으니 이제는 단단하고 질기게 두드릴 때가 되었다.
“앞으로 조금 더 괴로울 테지만.”
내 사정 아니니까.
제론은 빠르게 손을 움직여 무공비급을 써 내렸다. 녀석을 위해 이쪽 세상 대륙공통어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주석까지 달았다.
주어진 시간이 30분이라서 한 가지 무공밖에 못 썼지만 다음 무공비급을 쓰기 전까지 가르치기에는 충분했다.
철그럭.
무공 비급의 잉크가 마르길 기다리는 사이 방으로 다가오는 쇳소리와 기척이 느껴졌다.
에르딘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어색하게 움직이며 오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아니 많이 크네.”
“덕분에 숨쉬기는 편한데 움직이는 게 불편합니다.”
에르딘이 바이저 아래로 인상을 찡그린 채 말했다. 플레이트 몸통은 몰라도 팔과 다리의 공간이 많이 남아 움직이는 데 많이 불편했다.
이 상태로 대련을 하는 게 가능할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다 너의 안전을 위해서야.”
“알고 있습니다.”
“가자.”
제론이 피식 웃으며 앞장섰다.
* * *
대련을 시작하기 전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첫 번째로 진검을 사용한다.”
목검과 진검의 차이는 단순히 재질만이 아니다. 진검에는 목검에 담기지 못하는 날카로움, 즉 예기가 시각적으로 보인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의 끝이 자신에게 향하며 두 눈을 통해 전달되는 섬뜩함!
목검으로는 시각이 아닌 제론의 내공과 기세로 진검의 예기를 흉내 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흉내에 불과할 뿐이다. 시각을 통해 전달이 불가능했다. 이 대련의 첫 번째 목표가 바로 시각적인 효과로 인한 두려움을 견뎌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역시 첫 번째 목표의 연장선이었다. 또한 두 번째 목표인 내공이 고갈된 상태에서 극한의 한계를 맛보여주려는 것과 연계된다.
지금 에르딘은 오러 유저 중급의 수준이다. 대략 10년 어치의 내공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련을 시작하기 전에 내공을 잠시 막아둘 생각이었다.
제론은 에르딘에게 계속 한계를 맞닥트리게 할 생각이었다.
“세 번째는 나는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예?”
마지막 세 번째에서 에르딘이 당황했다.
곧 표정을 찌푸렸다.
제론이 강하다는 건 에르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그의 오기를 일으켰다.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셨죠?”
“맞아.”
“그럼 발바닥을 땅에서 떼지 않는다는 말과 같죠?”
“그렇지.”
제론이 내심 웃었다.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에르딘의 승부욕을 끌어올리려고 내건 속셈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잘 걸려줬다.
‘은근히 단순하다니까.’
단순히 녀석을 화나게 하려고 내건 조건이 아니었다.
에르딘은 지나치게 온순하다.
성격이 얌전하거나 조용하다는 뜻이 아니다.
싸움이나 경쟁에서 큰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카데미의 성적은 시험을 보면 성적표가 나와서 자동적으로 순위가 나오기 때문에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는 것에 그치지만 에르딘은 그것을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가문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하는 공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생사가 갈리는 싸움에서도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제론은 에르딘을 자극했다.
“바로 시작하죠.”
“그 전에.”
제론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에르딘의 눈을 보며 씨익 웃었다.
“이런 건 역시 내기가 걸려야 제맛 아니겠어?”
* * *
“음.”
가르시안 페리안. 줄여서 가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가 의자에 앉아 동생과 동생의 집사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니까 공증인이 되어주라고?”
“응.”
“예, 그렇습니다.”
제론과 에르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가른은 검지로 볼을 긁적였다.
내심 당황한 가른이었지만 겉으로는 그런 기색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형을 잘 알고 있는 제론은 바로 알아차렸지만 말이다.
“내기가 걸려서 그래.”
“내기?”
가른이 눈빛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드러내자 제론이 아까의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그렇게 된 거야.”
“재밌겠군.”
형의 눈빛이 더욱 크게 반짝였다.
곧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제론과 에르딘이 무슨 일인지 멀뚱멀뚱 지켜보자 잠시 후 간식을 들고 나타났다.
“……?”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면 재미없잖니?”
한마디로 팝콘 각이라는 뜻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제론은 금방 납득하고 에르딘을 쳐다봤다. 녀석의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꽤나 재밌었다. 자신의 시선을 인식했는지 표정을 빠르게 관리했지만 눈빛의 동요만큼은 감추지 못했다.
“아까 내가 말한 3가지는 기억하지?”
“…예.”
“네가 이기는 방법은 하나야. 내 발을 떼게 만드는 거.”
“제가 공격 안 하면요?”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얘기하지 않았잖아. ‘멀리 떨어지면 어떡하려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거 뻔히 보여. 뭐, 그래도 상관없긴 하지만 이 정도 페널티를 줬는데 그런 같잖은 수작을 부린다면…….”
제론이 말꼬리를 흐렸다.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에르딘에게는 ‘네 수준이 그 정도인 거지. 풉.’ 하고 비웃는 것처럼 들려왔다.
“바로 하시죠.”
“아.”
“또 뭔가요?”
에르딘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승부욕을 잔뜩 일으켜줬으니 당연하리라.
“3번의 공격에는 방어만 할게.”
무림에서는 고수가 하수에게 3번의 공격기회를 준다.
제론은 이왕 에르딘을 도발하는 거 제대로 도발하기로 했다.
“……!”
에르딘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다 못해 레이저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드루와.”
손가락을 까닥이자 녀석이 폴짝폴짝 뛰며 몸놀림을 가늠하더니 단숨에 쇼트 스피어-일명 단창을 찔렀다.
쉬익-!
단창이 매서운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갈랐다.
정확하게 제론의 목젖을 노린 공격이었다. 잠깐이지만 팝콘… 아니 간식을 먹던 형이 몸을 움찔 떨 정도로 날카로운 한 수였다.
하지만.
“3번의 공격만 방어한다니까?”
제론이 검지로 정확하게 단창의 소켓을 밀어냈다.
“읏!”
단창의 창날이 허공을 갈랐다.
에르딘이 휘청거리며 제론의 옆으로 콩콩 걸어 지나갔다.
‘잘못하면 자빠질 뻔했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에르딘은 머리 한구석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다고 말해서 얕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법 힘을 줘서 내지른 찌르기를 손가락 한 개로 막아낼 줄은 몰랐다.
“다시 말하지만 너는 창술에 재능이 있어.”
제론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에르딘은 몸이 가늘지만 팔과 다리의 힘이 제법 대단했다.
물론 신력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근육의 크기에 비해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한순간의 출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래서 창과 궁합이 가장 좋았다.
양가창법의 기초인 란나찰攔拿扎을 가르쳐주고 몇 가지 초식을 알려주니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쑥쑥 소화해냈다.
“창술이 꼭 찌르기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
창의 찌르기가 제일 위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격이 너무 뻔했다. 창으로 공격한다고 하면 누구라도 찌르기를 가장 먼저 떠올리니까.
제론이 지적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도발을 당해서 화가 난 건 알겠지만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는 싸움에서는 차가운 이성을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에르딘의 표정이 변했다.
“그럼 다시 처음부터…….”
“어디서 수작질이야?”
제론은 흡족한 미소를 짓다가 싹 정색하며 말했다.
“칫.”
에르딘이 아쉬웠는지 작게 혀를 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