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79)
제79화
79화
분위기가 전환되자 제론은 검지와 중지를 펼치며 말했다.
“2번 남았다.”
앞서 3번의 공격에는 방어만 한다고 말한 바가 있었다.
찌르기 공격을 막았으니 이제 2번 남았다.
다시 한번 에르딘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2번……!”
에르딘은 진지한 표정으로 ‘2번’을 계속 곱씹었다.
찌르기가 통하지 않았다.
죽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전력을 다해서 찔렀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니.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제론의 말처럼 창술은 찌르기가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에르딘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찌르기를 했다.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제론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힘을 쏟았어도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통하지?’
에르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슨 방법을 써야 제론에게 자신의 공격이 통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란攔, 나扎, 찰扎.’
에르딘이 배운 기초 창술이다. 란攔이 상대의 공격을 밖으로 눌러 막는 방어 기술이라면 나扎는 안으로 눌러 막는 것이다. 그리고 찰扎은 상대를 찌르는 공격 기술이다.
말은 즉, 에르딘이 배운 공격 기술은 찌르기뿐이라는 뜻이다.
‘몽둥이처럼 휘두르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아니다.
쇼트 스피어-일명 단창은 이름과 다르게 자루가 1.2m에서 2m 사이로 길다. 에르딘이 들고 있는 것도 가장 짧은 1.2m의 길이였지만 몽둥이처럼 휘두르기에는 너무 길었다.
‘찌르기 말고는 모르겠어.’
어느새 내기에 대해서는 조금씩 잊고 제론과의 대련에 집중하기 시작한 에르딘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씩 제론이 거대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까마득히 높은 절벽으로 느껴졌다.
바로 그때 제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정관념에서 깨어나라.”
“……!”
에르딘이 눈을 크게 뜨며 제론을 바라봤다.
무공을 가르치면서 그가 항상 하던 말이었다.
“자루의 길이가 길다고 해서 휘두르지 못하는 게 아니야. 휘두르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너는 나와 함께 여행을 가지 못해.”
“…….”
“지금 바로 고정관념을 깨라고 하지 않아. 그러기도 힘들고. 하지만 3년밖에 안 남았어. 아직 3년이나 남은 게 아니야. 이대로는 안 돼. 넌 나와 함께 가지 못해. 네가 나를 따라왔다가 죽게 놔둘 수 없어서라도 떼놓고 갈 거야.”
제론은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에르딘을 떼놓고 가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녀석의 정신을 한계까지 몰려는 것이다.
‘한계를 돌파해라.’
제론의 진심은 이것이었다.
육체가 성장한다고 해서 정신까지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을 경험하며 아는 게 많아진 것이다.
에르딘은 경험도, 지식도 부족했다.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한 가지였다.
필사적이어야 한다.
한계를 넘고, 또 넘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언제까지 내가 알려줄 수 없어.’
3년의 시간.
결코 길지 않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제론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에르딘을 응시했다.
* * *
거대했다.
까마득한 절벽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제론의 존재가 이처럼 거대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에르딘은 창을 쥔 손아귀에 힘을 줬다. 너무 세게 힘을 줬는지 손바닥이 아팠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이 점점 또렷해진다.
“후우.”
무거운 숨결을 토하며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제론에게 무공을 배운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떠올렸다. 역시나 없다. 제론을 공격할 방법이 ‘찌르기’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고정관념을 깨야 해.’
제론이 자신에게 원하는 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원한다면 깨야 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나아가야 해.’
고정관념을 깨는 것을 뛰어넘어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한다.
* * *
제론은 에르딘의 눈빛이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호오.”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큰 것은 아니었다.
몇 마디의 말을 듣는다고 사람은 확 바뀌지 않는다.
무림의 고수들은 별것 아닌 말에도 깨달음을 얻어 초일류의 고수가 되거나 절정의 고수가 된다고 하지만 에르딘의 수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작은 변화는 가능했다.
그 작은 것이 쌓이고 쌓여서 크게 된다.
일단 한 발 내디뎠다.
그 사실만으로도 제론이 에르딘에게 일말의 기대를 품게 된 것이다.
곧 에르딘이 취한 자세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찌르기?’
이내 제론이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또다시 할 리가 없다.
‘페이크야.’
진짜로 노리는 건 따로 있다.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지켜보자.
무엇을 할지 지켜보고 판단하자.
제론이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이자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에르딘의 몸이 질풍처럼 매섭게 닥쳐왔다. 역시나 찌르기였다. 힘의 순간적인 폭발과 함께 회전이 깃들어 엄청난 위력을 뿜어냈다. 하지만 페이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제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손가락 하나로 창날을 밀어내 흘려보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테냐?’
두 번째 공격의 기회가 이렇게 사라졌다.
남은 기회는 한 번.
그 순간 에르딘은 밀려서 허공을 가르는 창날의 방향을 틀어 땅에 박았다. 박힌 창의 자루를 중심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회오리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인 에르딘이 발을 휘둘렀다.
퍽-!
“……!”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제론과 에르딘의 대결을 지켜보던 가른이 벌떡 일어섰다. 씹고 있던 간식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이 더욱 중요했다.
에르딘의 발이 제론의 턱을 차올렸다!
“……아니.”
곧 가른은 자신의 눈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과 턱 사이를 막고 있는 손바닥.
에르딘의 연속공격이 유효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제론의 두 발은 여전히 땅에 붙어 있었다.
“큭!”
제론은 에르딘이 낭패하며 벗어나려고 하자 발을 콱 움켜잡았다. 녀석의 몸이 허공에 붕 뜬 채 떨어지지 않았다.
자루를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겠지만 발이 제론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대롱대롱 매달리냐.
허공에 붕 뜬 채 있냐.
에르딘이 고민하려는 순간.
“방금 찌르기에 돌려차기까지 3번의 공격이 모두 끝났네?”
이제는 공격이 가능했다.
제론이 히죽 웃으며 놀고 있는 손을 주먹으로 쥐고 내질렀다.
“컥-!”
에르딘이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날아갔다.
녀석의 몸이 땅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축 늘어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합격이네.’
그런 에르딘을 쳐다보며 제론이 생각했다.
* * *
에르딘은 하루가 꼬박 지난 뒤에야 깨어났다.
정신을 차린 녀석은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제론을 찾아왔다.
“일어났네?”
“예.”
에르딘은 대답하고 제론을 빤히 쳐다봤다.
제론도 녀석을 빤히 쳐다봤다.
“왜?”
“…….”
“뭐?”
“할 말 없으십니까?”
제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표정으로 ‘무슨 할 말?’이냐고 묻자 에르딘의 광대가 꿈틀거렸다. 살짝, 아니 많이 빡친 모습이다.
“없으면 됐습니다.”
“그래~.”
물결 표시까지 확실하게 붙여서 말하자 에르딘이 윗입술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한다. 곧 포기했는지 뒤돌아선다.
그런 녀석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제론이 다시 말했다.
“잘했어.”
“……네?”
“내 상상 이상으로 잘해줬어.”
뒤돌아섰던 에르딘이 후다닥 다가와 침대 맡에 턱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더! 더! 더 말해주세요!’라고 말하는 표정을 보자 괜히 괴롭히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꾹 참았다.
“첫 번째 공격은 너무 뻔했어.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연속공격은 아주 훌륭했어. 뭐, 정확하게는 세 번째 공격이 좋은 거지만… 아무튼 창술이라고 해서 꼭 창으로 공격하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한 고정관념이 그것을 의미했던 거고.”
“…….”
말하다 보니까 어느새 설교로 변해 있었다. 제론은 에르딘의 눈빛이 실망으로 물든 것을 발견하자 그 사실을 깨닫고 얼른 말을 바꿨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너는 고정관념을 깬 거지. 나는 그걸 높게 쳐주고 싶어. 에르딘. 아주 훌륭했어. 아주 칭찬해.”
“헤… 헤헤.”
에르딘이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은근히 단순한 녀석이었다.
살짝(?) 형식적인 칭찬에도 해죽 웃으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니 골든 리트리버가 떠올랐다.
‘우리 천사견 에르딘.’
손을 뻗어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붕붕 흔들렸다.
물론 에르딘에게 꼬리가 정말로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환영이 보여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건가요?”
“아, 맞다. 깜빡하고 있었네.”
에르딘이 기대감을 품은 표정으로 묻자 제론이 책상 서랍에서 녀석을 위해 집필해뒀던 무공 비급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당분간 네가 익힐 보법이야. 다른 것도 있긴 한데 아직 집필 중이거든. 그거 다 익힐 때쯤 집필이 끝날 거야.”
“보법이라면 무공인가요?”
제론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게 바로 무공……!”
에르딘은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제론이 무공에 대해 말해줘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이다. 하지만 그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긴장한 것이 아니었다.
제론이 진정으로 자신을 믿어줬다는 기쁨이 과도하게 샘솟으며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긴장한 것처럼 보인 것뿐이다.
“반드시 이 비밀은 무덤까지 안고 가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는데?”
“예?”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잖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몬스터랑 싸울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중에 페리안 자작가가 비밀이 드러나도 지켜낼 힘을 갖춘다면 그때는 상관없어.”
“……!”
에르딘이 눈을 크게 떴다. 곧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말한다.
“그렇군요. 제론 님께서는 중앙의 실권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로군요.”
“응? 아니야.”
“여태까지 왜 힘을 숨기고 계셨나 했더니 그 힘을 질투하고 탐낼 비열한 놈들 때문이었군요.”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런 간악한 자들 때문에 제론 님처럼 능력 있는 하급귀족들이 뜻을 펼치지 못하고…….”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
계속 부정했지만 에르딘은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혼자서 계속 뭐라고 중얼중얼거리는데 전부 헛소리에 불과했다.
‘아, 모르겠다.’
제론은 녀석을 포기했다.
먼 훗날 후회하게 될 일의 시초였다.
* * *
“야! 오랜만이다!”
제론이 마차에서 내리는 로한을 보며 외쳤다.
곧 로한이 달려오자 손을 들었지만.
“헤샤아아아아아!”
“로하아아아아안!”
곁을 쌔앵- 지나쳐 누나한테 달려가 격한 포옹을 했다.
“하… 이래서 친구는 가려서 사귀어야 했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