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8)
제8화
8화
제론은 흠칫 놀랐으나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다른 곳을 쳐다보는 척 슬금슬금 날파리-겉모습은 검게 칠한 근엄하고 위엄 넘치는 표정의 유령이었지만-를 곁눈질했다.
저것들이 날아다니는 곳마다 주변이 조금씩 어둠침침해진다. 마치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런데 저 녀석들이 뭉쳐 있으니 1m 반경으로 어두운 안개가 뿌려진 것마냥 시야가 흐릿하다.
‘블랙홀이랑 비슷한 개념인가?’
그런데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근처에 있는 유모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어떻게 된 거지?’
한 가지 추측되는 것이 있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신비가 존재한다.
정확하게 현대와 무림에서만 57년을 산 유민현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지식.
마법사라는 존재도 신기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신비.
바로 정령.
제론이 날파리들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해냈다.
날파리-정령은 자기들끼리 위엄 넘치고 근엄한 목소리로 대화했다.
[정말로 눈이 마주쳤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정령의 축복도 받지 못한 존재가 우리를 어떻게 본다는 거지?] [확실히 정령의 축복이 느껴지지 않는군.]제론은 정령들의 대화를 듣고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판타지 세상에서 마법에 이어 정령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섭섭하지.’
정령精靈!
대자연을 구성하는 마나와 더불어 세상의 일부이자 근원인 초자연적인 존재였다.
유민현으로서 현대에서 살아갈 때 몇 번 본 적 있는 판타지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필수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거랑 전혀 다른데?’
보통은 4대 원소라 해서 불火과 흙土, 물水, 바람風의 정령만 언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작가의 설정에 따라 4대 원소를 뛰어넘어 번개나 얼음 등이 추가되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4대 원소에서 끝난다.
사실 제론은 아직 알지 못하나 이 세상도 어느 정도 비슷한 설정(?)이 존재했다.
다만 점차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정령사들에 의해 여러 가지 속성의 수많은 정령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져 세상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런데 왜 그 노인 주변에서 알짱거린 거지?’
노인이 마법사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정령은 본래 정령의 사랑을 받고 태어난 정령사의 자질을 가진 존재 주변 혹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속에 머무른다고 소설 속에서 그랬다.
[흠. 우리끼리 대화를 나눠봐야 아무 소용없겠군.] [비슷한 생각이다.] [그럼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꼬마야.]“뭐? 꼬마?”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제론은 꼬마라는 단어에 저도 모르게 발끈했다. 곧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하게 혼자서 웅얼거리는 척했지만 정령들이 얼굴 앞까지 올라와서 빤히 쳐다보자 포기했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저리 가라고 손짓했다.
[정말로 우리를 보는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분명히 정령의 축복을 받지 못한 인간이다.]근엄하고 위엄 넘치는 표정과는 다르게 상당히 수다스러운 녀석들이다.
계속 얼굴 앞에서 알짱거리자 손으로 잡아서 던지려고 했다.
‘어라?’
놀랍게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공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평범한 손짓에는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웠다.
“도련님?”
제론이 갑자기 발끈하며 손짓을 한 탓일까?
유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말을 했냐고 물어본다.
다행히 말의 내용까지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갑자기 먼지가 눈 속으로 들어가서.”
“조금 더 이쪽으로 오세요.”
제론이 얼버무리자 유모가 손을 살짝 잡고 조금 더 안으로 끌어당긴다.
[먼지?] [감히 우리를 먼지라고 표현한 것인가!]‘알겠으니까 저리 가라.’
제론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정령이라는 존재가 신기하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귀찮기만 했다.
‘심지어 이것들 시력도 엄청나게 좋은 것 같고.’
마법사 노인과 자신 사이의 거리는 대략 200m가 넘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200m 너머에서 시선이 마주쳤다는 사실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녀석들 크기가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큼 작으니 시력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 녀석들만 보이지?’
[꼬마야. 우리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것이다.]다른 정령들은 없는 건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놈들이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인지 말했다. 다만 계속 꼬마라고 말하는 게 거슬렸다.
‘몸이 작다는 의미에서 꼬마라고 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지들은 더 작으면서!
내심 투덜거리며 다시 한번 녀석들을 만져보기 위해 손을 꼼지락댔다.
역시나 이번에도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다.
내공을 써볼까 고민하는 사이 정령들이 갑자기 아쉬운 듯 말했다.
[신기한 인간 꼬마.] [다음에 또…….]“어라?”
말을 하던 정령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잠깐 헛것을 본 게 아닐까 의심도 해봤지만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님을 알기에 조금 전까지 주변에 있던 정령이 진짜라는 것을 확신했다.
‘왜 사라진 걸까?’
제론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마법사 노인이 말을 타고 저 멀리 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었다.
사라진 정령들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힐끔힐끔 시선이 마주치는데 좀 전까지 이곳에 있던 녀석들이 분명했다.
일정한 거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흐음. 마법사와 정령사는 엄연히 다른 존재라고 아는데.’
제론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아장아장 걸어가 유모의 손을 잡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정령이라. 신기하네.’
제론이 정령이라는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순간이었다.
* * *
페리안 남작령은 2만 5천 명이 살아가는 소도시 하나와 나머지 1만 5천 명이 각각 나누어져 사는 7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영지를 가진 남작이라고 하면 보통 5만 명에서 10만 명의 영지민을 다스리니, 페리안 남작령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었다.
비록 규모가 작다고 하나 당당한 하나의 귀족 가문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
정말로 의외인 것은 페리안 남작가의 역사가 오른 왕국의 건국부터 함께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만 역대 페리안 남작들이 욕심이 많지 않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여 오른 왕국의 변방에 틀어박혀 살다 보니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지가 코딱지(?)만 한 것이었다.
“……라고 책에 써져 있네.”
제론은 ‘오른 왕국의 역사-페리안 가문 편’이라는 제목의 책을 덮고 책장에 꽂았다.
며칠 전에 정령이라는 존재에게 호기심이 생긴 뒤로 서고를 기웃거렸다.
다만 서고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아빠-쥬페토의 허락이 필요했고, 온갖 애교-속으로는 자괴감과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으로 토악질을 할 뻔했다-를 부려서 겨우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한 가지 당부를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쪽 세상에서도 책이 무척이나 귀하다고 했던가?’
정확하게는 종이가 귀하다기보다는 무언가를 기록해놓은 ‘책’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뜻으로 들렸다.
가볍게 예를 들자면 조금 전에 꽂아 넣은 역사서 같은 것이 그런 ‘책’의 종류 중 하나였다.
현대나 무림에서도 무언가를 기록해놓은 책이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다. 더불어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가 무궁무진해지기 때문에 제론으로서도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서고에 들어오니까 책이 엄청나게 많았다.
페리안 남자가의 역사가 오른 왕국과 함께 이어져 내려왔으니, 제아무리 검소한 역대 페리안 남작들이라고 해도 필요에 의해 한 권씩 모으다 보니 점점 많이 쌓이게 된 것이었다.
물론 중급 귀족이나 상급 귀족의 서고는 이보다 몇 배는 더 크겠지만.
‘어후. 먼지.’
다른 책을 꺼내서 보려고 하는데 먼지가 풀풀- 떨어지며 흩날렸다. 목이 턱 막혔다. 먼지가 들어간 눈이 따가웠다.
제론은 주위를 확인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휘이이- 미풍微風이 일어나 주변 먼지를 한 곳으로 쓸어모았다.
제론으로 환생하기 전의 유민현이었다면 서고 전체의 먼지를 전부 쓸어 담았겠지만, 지금은 내공이 고작 10년 어치밖에 되지 않았다.
이 정도가 한계였다.
“콜록!”
아직 남아 있는 먼지가 있었다. 눈물이 찔끔 나오는 기침을 하며 창문을 활짝 열었다. 서고가 환기되며 숨쉬기 편해졌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네에. 먼지가 좀 많아서! 창문을 열었어요!”
유모가 제론의 기침 소리를 듣고 서고 밖에서 걱정스럽게 묻자, 얼른 대답했다.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기척이 느껴졌다.
유모는 쥬페토의 허락을 받지 못해 바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고의 문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제론이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불안에 떨 수밖에 없던 것이다.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낸다고 올라가시면 안 돼요!”
“응응. 알겠어요!”
“도련님께서 털끝이라도 다친다면 이 유모는 슬퍼서 엉엉 울지도 몰라요.”
“걱정 말아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책장이 높다고 해봐야 3m다. 내공의 힘으로 저 정도 높이에 있는 책을 꺼내서 안전하게 착지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운 일이다.
제론은 폴짝 뛰어 꼭대기 칸에 있는 책을 꺼내 들었다.
서고가 어떻게 분류되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칸마다 책을 한 권씩 꺼내서 확인해봐야 했다.
‘차라리 정령을 봤다고 말할 걸 그랬나?’
아니.
믿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 증거로 정령들이 정령의 축복도 받지 못한 그가 어떻게 자신들을 보냐며 신기하게 여겼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정령을 보지 못하는 게 정상적인 세상이다.
‘게다가 마공을 익혔기도 하고.’
역혈마공은 무림에 대부분 알려진 마공과는 다르게 사마외도라 불리는 방법으로 수련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기운은 여타 마공과 비슷하게도 거칠고 파괴적인 성질을 띠고 있었다.
기를 컨트롤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정령을 본다고 우기다가 혹여나 몸속 내부라도 검사하게 된다면 만에 하나 들킬지도 모른다.
‘혹시나 악마의 자식이랍시고 오해받으면 어떡해?
거칠고 파괴적인 성질을 띤 역혈마공의 기운은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기의 성질을 바꾸는 것이 가능해지기 전까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자고로 최대한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게 조심하는 게 짱이다.
제론은 이것저것 책을 확인하며 본의 아니게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했다.
‘오, 이건 오러 연공법에 대한 책!’
읽고 내심 실망했다. 수준이 낮거나 해서 실망스럽다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기초적인 지식만 저술되어 있었다.
‘이 책으로는 오러 연공법을 익히지 못해.’
오러 연공법이 탄생하게 된 계기와 익히기 전에 알아둬야 할 정보만 적혀 있다. 그래도 하나의 공부에 대한 연원을 알아간다는 행위는 무척이나 반길 만한 것이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 마지막 책장.
제론은 위 칸부터 차근차근 칸마다 한 권씩 꺼내서 내용을 확인했다.
이윽고.
“……찾았다.”
‘정령사가 되고 싶다면?’이라는 제목의 책을 펼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