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80)
제80화
80화
제론은 진지하게 로한을 친구에서 제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 제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나와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던 로한이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닥쳐.”
“보자마자 닥쳐는 뭐야?”
“꺼지라고 안 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로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제론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오랜만이라고 까칠하긴. 요즘 뭐 힘든 일이라도 있냐?”
“없다.”
“에이. 까칠한 거 보니까 뭐 있는 거 같은데?”
“너. 네가 문제다. 네가.”
“내가 뭐가 문제야?”
“됐다. 말을 말자.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닌 녀석이 눈곱만큼도 못 알아차리는 걸 보니 정말 절교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니까 그냥 가서 누나랑 놀아라.”
제론이 삐죽하게 말했지만 로한은 특유의 넉살로 살살 꼬드겼다.
“야, 내가 그냥 온 거 같아? 네게 줄 것도 챙겨왔어.”
“필요 없으니까 누나한테 줘.”
“아티팩트인데?”
제론은 그 말에 귀가 솔깃했다.
로한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와 옆구리를 콕 찔렀다.
“뭐… 대단한 아티팩트는 아니지만 나중에 여행 가서 꽤나 요긴하게 쓸 만한 거야. 그래도 싫어? 그냥 우리 헤샤한테 줘?”
“여행 가서?”
우리 헤샤라는 호칭이 심히 거슬렸지만 여행 가서 요긴하게 쓸 거라는 말에 살짝 혹했다.
제론이 살짝 넘어온 것을 알아차린 로한은 못 들은 척 중얼거렸다.
“필요 없는 거 같으니까 그냥 우리 헤샤한테 줘야겠다.”
“뭔데?”
“어? 뭐라고? 내가 잠시 딴 생각하느라 못 들었어.”
“…….”
로한은 실실 웃다가 제론이 무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자 등골이 서늘해져 흠흠 헛기침을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심하게 장난을 친 것 같았다. 시선을 슬쩍 피하며 마차로 갔다. 함께 온 짐꾼들이 다른 마차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다.
전부 다 로한과 헤샤의 약혼식 패물이었다.
“제임스. 따로 빼놓으라고 했던 거 어디 있어요?”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마부-제임스가 마차 안을 뒤적거리더니 작은 상자를 꺼내왔다.
로한이 받아서 제론에게 건넸다.
“열어봐.”
달칵-.
상자를 열자 검푸른 색의 로브가 자태를 드러냈다.
겉보기에는 평범했다. 재질도 고급이 아니었고 특별하거나 휘황찬란한 무늬나 자수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제론은 로브에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우거의 가죽을 오랜 시간 무두질해서 최대한 평범하게 보이도록 만든 로브야. 온도 조절과 유지 마법, 자동 수복 마법까지 인챈트 되어 있고. 어때?”
“…….”
제론은 로브를 꺼내서 펼쳤다.
평범한 여행자가 편의를 위해 즐겨 입을 만한 디자인이다. 촌스럽다는 뜻은 아니었다. 너무 무난해서 오랜 시간 질리지 않고 입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도 인챈트 되어 있는 마법이 마음에 쏙 들었다.
‘내공의 소모를 줄일 수 있겠어.’
제론은 한서불침의 경지에 도달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내공이 소모되지 않는다는 말은 또 아니었다. 한서불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공이 조금씩 소모된다.
그래서 이 로브에 인챈트 된 마법이 마음에 든 것이었다.
불필요한 내공의 소모를 줄여줄 수 있으니까.
“마음에 드나 보네.”
“흠흠.”
제론이 쑥스러운 헛기침을 흘렸다.
디자인이 눈에 띄지도 않아서 정체를 숨기기에도 좋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짓을 다 하네.’
오우거 가죽이라면 잘 찢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자동 수복 마법까지 인챈트 되어 있으니 찢어진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복구된다.
‘정말로 여행자를 위한 필수템인 거지.’
그런데 이런 기능을 가진 아티팩트가 싸구려일 리가 없다.
적어도 몇천 골드는 나갈 것이다.
‘단순한 추측이지만.’
수백 골드밖에 안 된다고 해도 로한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살 만한 가격은 아니다.
정말로 제론 자신을 위해 준비한…….
“아, 부담 갖지 마. 공물로 들어온 거니까.”
“……공물?”
“이래 보여도 아이언하트 공작가의 차남이라고? 휘하 귀족이 매달 상납하는 물건 중 하나를 빼돌리는 건 일도 아니야.”
젠장. 그런 거였냐.
물을 막아뒀던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지던 감동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삥 뜯은 물건 중 하나를 선물로 줬다니.’
그래도 나름 친구를 챙겨준답시고 선물을 가져왔으니 고맙기는 하지만 아까처럼 감동이 다시 샘솟는 일은 없었다.
“고맙다. 잘 쓰마.”
“그래. 여행 가서도 나 잊지 말라고 준 거야.”
제론은 씨익 웃는 로한의 눈빛이 ‘좋은 거 있으면 나도 좀 주고.’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이 새끼랑은 절교가 답인가?’
고개를 세게 저어서 잡념을 떨쳐냈다.
로한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변한 것은 자신이다.
제론이 그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부로 절…….”
“2공자님.”
제론이 절교하자고 말하려는 그때 공작가의 가신이 다가와서 로한에게 준비가 끝났으니 오라고 말했다.
“응? 뭐라고 하려고 했어?”
“아무것도 아냐. 어서 가봐.”
타이밍을 놓친 제론이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로한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일단 급한 일이 약혼식 문제였으니 알겠다고 대답하고 얼른 페리안 자작과 헤샤를 만나기 위해 올라갔다.
“방으로 옮겨놓겠습니다.”
에르딘이 자연스럽게 로한이 준 선물을 받아서 방으로 옮겼다.
제론은 언제 로한과 절교를 할까 고심하며 수련장으로 향했다. 아빠와 엄마, 누나는 약혼식 이야기로 바쁠 테고 형은 아빠를 대신해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방으로 선물을 옮겨놓고 에르딘이 오면 며칠 전에 준 무공 비급을 잘 익혔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 * *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로한이 벌떡 일어나 깊게 허리를 숙였다. 쥬페토가 이러지 말라고 말렸지만 로한의 깊게 숙여진 허리는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꾸 이러시면 부담됩니다.”
“말 편히 해주십시오. 공작가 차남이기 전에 헤샤의 약혼자이자 제론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후우. 알겠네. 그러니 허리를 펴시게.”
“감사합니다.
로한이 씨익 웃으며 허리를 폈다.
공작가 가신이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앞으로 페리안 자작가와의 관계를 생각해서인지 나서는 일은 없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로한이 가신과 함께 접객실을 나갔다.
“후우.”
쿵- 문이 닫히자 로한은 길게 숨을 토해냈다. 안도라는 감정이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갔다. 약혼식 이야기가 잘 끝났다.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놓지 않아서 그런지 많이 피곤했다. 가신의 표정을 살펴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세요.”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쯧.”
로한이 혀를 세게 찼다. 가신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정말로 몰라서 하는 말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페리안 남작가, 아니 자작가는 봉신 가문이에요. 비록 변방에 머무르고 있지만 오른 왕국의 건국 때부터 역사가 이어져 내려오는 명문이죠.”
로한이 가신의 말허리를 자르고 천천히 말했다.
가신의 표정이 점점 당황으로 물들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스럽다는 듯 이야기하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
“하아. 정말 답답하네요.”
로한이 진심으로 중얼거리며 가신을 빤히 쳐다보자 그의 몸이 살짝 들썩였다.
화가 나거나 반감이 일어난 것 때문이 아니었다.
‘누, 눈빛이……!’
로이하른 폰 아이언하트.
아이언하트 공작가의 차남이지만 그 능력만큼은 모두에게 인정받은 엘리트였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 장남인 라이오른 폰 아이언하트가 없었다면 차기 공작자리는 차남인 그가 차지했을지 모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엄청난 두각을 드러낸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다.
가신은 로한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친 순간 공작 앞에 선 것처럼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은 어린애라고 생각했는데!’
방심하고 얕봤다지만 말도 안 됐다.
어떻게 감히 공작 각하와 비견된단 말인가!
가신의 팔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로한은 그런 가신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보잘것없는 봉신 가문이 건국 이래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아니. 지금은 자작으로 승작까지 되었죠. 정말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당대의 페리안 자작님께서 능력이 뛰어나서 가능하다고 말하지는 말아주세요. 진심으로 실망할지도 모르니까요. 페리안 봉신 가문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해서 변방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지 능력이 없는 게 아니에요. 정말로 힘없고 보잘것없는 가문이었다면 수백 년 전에 다른 귀족 가문에게 삼켜졌을 거라는 말이죠. 봉신 가문의 자리를 차지하고 중앙으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전前 베론드 남작이 페리안 봉신 가문을 얕보고 영지전을 신청했다가 패배한 사실을 기억해요.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패악질을 들켜 반역죄로 공개처형까지 당했죠. 그래도 모르겠어요? 정말로 모르겠다면 본질을 파악할 줄 아는 눈을 기르세요. 안 그러면 언젠간 쓸모가 없어져서 내쳐질 테니까요.”
“…….”
가신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페리안 자작 가문이 힘이 없었다면 이미 왕국 내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껍데기만 페리안이라는 성을 갖고 있을 뿐 전혀 다른 가문으로 바뀌었으리라.
“아무튼, 그 사실과는 별개로 페리안 자작님께 저자세로 나간 건 제가 그분의 여식… 헤샤와 결혼하기 때문도 있지만 친구의 아버지라는 이유가 커요.”
로한이 가신을 책망하다가 표정을 싹 바꾸고 말했다.
가신은 그 모습을 보며 어느 쪽이 진짜 로한인지 헷갈렸다.
“이틀 뒤 복귀할 테니까 그동안 푹 쉬어요.”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가신의 목소리가 메마른 사막처럼 갈라졌다.
* * *
“끽!”
에르딘은 발이 꼬이며 자빠졌다. 혀를 깨물었는지 비명 소리가 참담했다. 제론이 그 광경을 지켜보며 배꼽을 잡고 폭소했다.
“크히히히히힣!”
“으어에 읏이 아에어!”
제론이 어눌한 녀석의 발음에 또다시 포복절도했다.
들어보니 ‘그렇게 웃지 마세요!’라며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에르딘은 양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렸지만 제론의 폭소는 도저히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 두 명에게 다가오는 한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뭐 하냐?”
“이야기가 잘 끝났나 보네. 표정이 아주 좋은 걸 보니까.”
제론이 겨우 웃음을 참고 말했다.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장인어른과 장모님 앞이라고 어찌나 긴장되던지. 어휴. 땀이 뻘뻘 날 정도였어.”
“엄살 부리지 마. 네가 그 정도로 긴장할 리가 없잖아.”
“진짜라니까? 이거 안 보여?”
제론이 로한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땀이 뻘뻘 난 흔적은 없었다.
“역시 엄살이었네.”
“왜 안 믿어주는 건지 모르겠네.”
녀석이 투덜거리자 제론이 말했다.
“야, 운동이나 해.”
“나 이틀 뒤에 가는데?”
“1년 동안 운동 잘 해왔는지 확인은 해야지.”
제론이 로한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잠시 후.
“꾸에에엑!”
돼지의 멱을 따는 소리가 수련장에 울려 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