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82)
제82화
82화
“앞으로 1년.”
에르딘은 20살이 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곱씹었다.
정확하게는 로한과 헤샤의 결혼식이 끝나면 여행을 떠난다고 했으니 1년하고도 몇 달의 시간이 남았지만, 그때까지 오러 익스퍼트 상급에 도달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해야만 해.”
에르딘은 제론이 혼자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의 집사임을 자청했다. 그의 가신임을 자청했다. 고난의 길이라도 마땅히 함께 걸어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도 열심히 수련하고 또 수련해야 했다.
“후우.”
창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 란, 나, 찰을 수련했다.
적이 검을 찔러오면 창을 움직여 란攔-밖으로 눌러 막고, 나扎-안으로 눌러 막고, 틈이 생기면 찰扎-단숨에 가슴을 꿰뚫었다.
하지만 결국은 가상의 적에 불과했다. 보이지 않는-존재하지 않는 적을 상대로 수련해도 한차례 땀을 흘린 뒤 남는 것은 텅 빈 공허함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지?”
이건 공허함이 아니다.
너무나도 커다란 벽에 부딪쳐서 어떻게 이것을 뚫고 나가야 하는지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었다.
에르딘은 답답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묵묵하게 창을 휘두르는 것 외에는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답답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다시 창을 움켜쥐었다.
시간이 지나며 숨이 거칠어져 갔다.
점점 더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이 까마득히 커져 간다.
“하아.”
에르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급한 마음과 달리 정체가 길어지며 이런 일이 자주 생겼다.
“본분을 망각해서는 안 되지.”
자신은 제론 님의 집사다.
아무리 조급하더라도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낸 에르딘이 수련장을 정리하고 돌아선 순간 노을에 길게 늘어난 그림자 한 개를 발견했다.
그 순간 섬뜩한 예기가 목덜미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심코 창의 자루를 콱 움켜쥐며 고개를 들자 검을 곧게 세운 채 서 있는 가른을 발견했다.
노을에 길게 늘어난 그림자의 주인이 바로 가른이었던 것이다.
“…….”
“…….”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했다.
가른이 왜 자신에게 섬뜩한 예기를 쏴 날렸는지 에르딘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싸우자.
1년 전부터 가른은 저런 눈빛을 자주 보여줬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당시 이제 막 오러 유저 중급이 된 자신과 다르게 가른은 오러 익스퍼트 초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과장을 보태면 일격에 참살을 당하리라!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가른과 자신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로 작았다.
계단으로 비유하면 고작 2개의 계단 위였다.
제론처럼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였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안다. 고작 2년-지금은 3년을 수련했다. 그런데 오러 익스퍼트 초급이 되었다.
세상 누구도 이러지 못한다.
자신의 재능이 대단한 것일까?
아니다.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 더 뛰어난 수준밖에 안 된다.
제론이 대단한 것이다.
이런 자신을 3년 만에 여기까지 끌고 와준 제론이 정말로 엄청난 것이다.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야.’
누구보다도 제론과 가까운 존재.
바로 가족은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에르딘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냈다.
이런 생각은 지금 필요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예기-투기를 쏴 날리고 있는 가른에게 집중했다.
그가 말한다.
지금 여기서 싸우자고.
‘혼자서 수련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하셨지.’
제론이 자주 언급하던 말이었다.
에르딘은 창을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긴장감을 온몸으로 흩어내며 나른하게 만들었다. 지쳤던 몸에서 다시금 힘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윽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개전의 신호!
가른이 쏘아진 화살처럼 쇄도해 온다.
콰아아아-!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압박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2개의 계단이었지만 고작이 아니었다. 한 발자국을 내디뎌 올라가기 힘들 정도로 높은 계단이었다. 하지만 에르딘은 그 계단을 올라갈 방법을 알아내야 했다.
가른과의 대결이 그 방법을 알아낼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창을 눕히고 찔렀다.
가른이 몸을 살짝 낮추며 어깨로 창날의 날카롭지 않은 부분을 올려쳤다. 창이 허공을 찌르는 순간 그가 순식간에 에르딘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에르딘은 당황하지 않고 창을 회수하며 무릎을 차올렸다. 가른의 팔목을 때리며 검이 궤적을 바꿔 허공에 수를 놓는다.
조금만 늦었다면 검이 가른 것은 허공이 아니라 가슴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오러를 사용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야.’
에르딘이 깨달았다. 막지 못했을 것이다. 심장이 꿰뚫려 죽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결과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한 방 정도는 어떻게 해서든 먹이리라.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조건은 똑같아.’
비록 가른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을 수련했다고 하지만 제론의 가르침이 시간에 비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시간과 비례했다면 에르딘은 오러 익스퍼트 초급이 되지 못했다.
증거가 이미 존재했다. 그래서 에르딘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전의를 불태우고 투쟁의 마음을 끌어올렸다.
혼자서 수련하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제론이 자주 언급하던 말이었다면 잔소리처럼 매일 하는 말도 있었다.
-넌 경쟁의식이 부족해.
그래.
에르딘도 알고 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갖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마음이 생겨났다.
‘이긴다. 반드시 이기고 말 거다.’
* * *
제론은 멀리서 두 사람이 비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왜 안 오나 했더니 저러고 있었구먼.”
두 사람의 비무는 예정되어 있었다.
왜냐면 제론이 계속해서 호승심을 자극해왔기 때문이다.
특별히 형에게 에르딘을, 에르딘에게 형을 의식시킨 것은 아니었다.
굳이 호승심을 자극하지 않았어도 언젠간 서로를 의식했을 것이란 뜻이다.
무인이란 그렇다.
한쪽이 압도적으로 강한 게 아니라면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서로를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굳이 호승심을 자극하지 않았어도 된다는 것이다.
“잘된 일이지.”
제론은 두 사람의 비무를 계속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우선.
형은 대단한 오성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계속 노력한다. 그래서 벽을 마주치지 않는다. 노력으로 모든 것을 커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것이 가능할까?
사람은 때론 걷다가 힘들어서 쉬기도 한다.
형한테는 그런 것이 없다.
끝없이 걷기만 하니 나중에 벽에 부딪친다면 누구보다도 가장 큰 절망을 맛보리라.
“쓰러지면 잠시 쉬고 일어서면 그만이지만 마음이 꺾이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지.”
다음으로 에르딘.
녀석은 약하다. 하지만 형을 꺾지 못할 정도로 약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형이 제대로 된 실전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공을 사용하면 결과가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아니다.
만약 두 사람이 자신이 가르쳐준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 승부에서 내공의 유무는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래서 에르딘이 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녀석은 놀랍게도 속성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수련방식을 그대로 따라왔다.
형이 자만하지 않는 순수한 노력파 천재라면 에르딘은 집착의 화신이다.
노력과 집착은 크나큰 차이가 있다.
바로 목표였다.
녀석의 집착이 아직은 자신과 여행을 함께 떠나는 것에 향해 있지만 그 이상을 노린다면 어떻게 변할지 제론도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형과 에르딘은 좋은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있지.”
집착의 화신과 싸우면서 형이 갖게 될 변화도 기대됐다.
자만하지 않는 순수한 노력파 천재가 집착까지 갖게 된다면 어떨까?
“…오싹해지네.”
제론은 진심으로 기대됐다.
* * *
제론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가운데 두 사람의 비무는 점차 치열해져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몸에 새겨지는 상처가 그것의 증거였다.
퓻-!
검이 에르딘의 어깨를 스치자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에르딘은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고 창을 회전시켜 검을 비껴 쳐냈다. 이윽고 가른이 위로 튕겨져 올라간 검을 회수하는 사이 뒤돌아 발로 복부를 찼다.
텅-!
가른은 순순히 당해주지 않았다.
검을 쥐고 있지 않은 손목의 아대로 에르딘의 발을 막았다.
찌릿찌릿!
아대 아래로 팔목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울렸다.
‘위력적인 발차기!’
가른이 발차기의 충격을 이용해 날아가듯 뒤로 물러났다.
1년 전 제론과 비무를 한 이후 에르딘은 장족의 발전을 했다. 창술과 각법을 섞어 사용하며 공격과 방어가 다채롭게 변했다. 처음에도 호승심을 느꼈지만 불과 1년 사이에 싸우고 싶다는 투쟁의 마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강해졌다.
‘내공을 사용해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가른이 호흡을 고르며 검을 곧게 세웠다.
에르딘과의 싸움은 놀랍게도 호각이었다.
이유?
지금 이 순간 처절하게 깨닫고 있었다.
경험이 부족하다.
제론에게 배운 대로 검을 쓰고 무공을 펼치는 건 가능하지만 응용력이 부족했다. 녀석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순간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반면 에르딘은 제론과 자주 지도대련을 해서 그런지 순간 대처능력이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깜짝깜짝 놀라서 공격을 허용할 때가 많았다.
가른의 심정은 그러했다.
하지만 에르딘만큼 놀라고 있지는 않았다.
‘말도 안 돼!’
에르딘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형이 얼마나 대단한지 제론에게 거의 수백 번은 들었다. 그때마다 내심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한 가른이었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고 모든 방면으로 천재라 불리는 존재는 없다고 확신했다.
부모님이 ‘내 자식이 머리는 좋은데…….’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검을 겨뤄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로 괴물이다.’
심지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괴물이기까지 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대륙에는 눈앞의 완성되지 않은 괴물이 아니라 이미 완성을 이룬 괴물이 즐비할 것이다.
예전에 제론은 그런 존재를 언제 어디서 맞닥뜨릴지 모른다고 경고했고 그런 이유로 함께 여행을 떠나길 원한다면 오러 익스퍼트 상급이 되라고 조건을 걸었다.
그때는 말도 안 되는 거라며 말했지만 처음으로 그 말이 실감됐다.
‘어쩌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려고 했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며 떨쳐냈다.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니까!
에르딘이 각오하며 창을 역수逆手로 쥐었다.
* * *
제론이 눈을 반짝였다.
“호오! 이제야 제대로 한판 붙어보려는 건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