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83)
제83화
83화
형과 에르딘은 지금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서로의 기량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도 있지만 실전의 경험이 없다는 이유가 컸다.
상대방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 이전에 자신의 기량부터 알아야 한다. 하지만 형과 에르딘은 실전 경험이 없어서 상대의 기량을 측정하지 못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기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정확하게 말해서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있었다고 생각했겠지.”
제론이 작게 혀를 찼다. 정말이지 이런 곳에서만 둔감한 두 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형이 되었다.
두 사람은 비무를 하며 조금씩 깨달아갔다.
자신의 역량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니라고.
실제로 형과 에르딘은 날개를 크게 펼친 새처럼 날아올랐다.
제론이 가르쳐준 머리로 이해하고 있던 것들을 몸으로 흡수하고 펼쳐내며 오러의 양으로 정해지는 경지가 아니라 진짜 익스퍼트Expert-숙련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채쟁-!
검과 창이 부딪친다. 점점 공격이 예리해지고 정교해져 갔다.
서로 공격을 허용하지 않게 되면서 더 이상 몸에 상처가 늘어나지 않았다.
살짝은 경직되어 있던 두 사람의 몸놀림 역시 자연스럽게 풀린다.
“저기서 오러까지 사용한다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겠지만.”
제론은 입맛을 다셨다.
두 사람 다 그럴 생각은 없어 보였다.
비무는 어느새 수백 합을 넘겼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은 채 전력투구로 싸우던 두 사람.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어둠이 주위를 덮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형형한 눈빛으로 어둠을 꿰뚫고 똑바로 서로를 응시했다.
검과 창이 부딪치기를 일천 번의 숫자가 넘어갈 무렵에 두 사람은 입을 맞춘 것처럼 동시에 물러섰다. 반쯤 무아無我의 경지에 빠져들었던 형과 에르딘의 몸에서 땀이 비 내리듯 흐르고 있었다.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가 제론이 지켜보고 있는 먼 곳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승부수인가?”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한쪽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남은 건 승부를 결정지을 마지막 한 방이다. 형과 에르딘은 동시에 그것을 떠올렸고 미리 이야기라도 한 것처럼 물러선 것이다.
“상호작용.”
완벽한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제론은 마지막 승부를 지켜보지 않고 돌아섰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누가 이기냐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제론이 형과 에르딘을 찾아온 이유.
저녁 식사를 해야 하는데 2명이 도통 나타나지 않아서였다.
구경하다가 1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괜히 나까지 엄마한테 혼나겠네.”
제론이 투덜거렸다.
* * *
형과 에르딘의 승부를 끝까지 지켜보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형의 표정이 태연하고 담담하며 평화로운 반면 에르딘은 꼭 뭐라도 씹은 표정을 애써 감추고 있자 승자가 누구인지 예측이 가능했다.
‘형이 이겼네.’
실전경험이 부족해도 형은 10년 이상을 수련해왔다.
그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형이 오만하고 자만한 사람이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수련하지 않았는가.
에르딘이 제론과 비무하며 간접적으로 실전의 경험을 쌓았다고 해도 결국 진짜로 죽을지도 모르는 ‘진짜’ 실전과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속성코스로 단숨에 따라잡았다.
사실 이게 더 말도 안 되는 결과물이다.
3년의 수련으로 10년 이상 수련한 사람을 따라잡았다는 건 천재, 아니 신이 내려준 재능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해서 에르딘이 신이 내려준 재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집착의 결과인가? 그래도 잘 따라 와줬네. 많이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승부의 승자는 형이었지만 많은 것을 얻어간 사람은 에르딘이었다. 녀석은 오러 익스퍼트 초급의 벽을 뚫고 중급으로 올라섰다.
앞으로 중급에서 상급으로 올라가기 위한 벽을 맞닥트리기 전까지는 쭉쭉 성장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에르딘은 뭐라도 씹은 표정 아래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이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해서 괜히 놀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애써 꾹 참았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에르딘이 찾아왔다.
“이제 다음 단계인가요?”
“어… 뭐 그렇지.”
녀석은 얼른 알려달라고 재촉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론이 고개를 저었다.
“기다려.”
“…….”
“앉아.”
“……?”
“손.”
에르딘이 미친놈이라도 본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개입니까?”
“개는 아니고 개 같긴 하지.”
“그거 욕한 거죠?”
“그럴 리가!”
제론은 내심 아쉬워서 입맛을 다시고 말했다.
“형과 싸우면서 느낀 게 있지? 그것부터 먼저 추슬러.”
“하지만……!”
“1년하고도 4달 남았어.”
로한과 누나의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에르딘이 다급한 것은 알지만 형과 싸우며 얻은 깨달음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다면 오히려 전보다 더욱 커다랗고 높은 벽이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속성코스는 계단을 한 번에 여러 개씩 휙휙 올라가다 보니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것이 많다. 나무 기둥부터 세운 집보다 차근차근 주춧돌부터 쌓은 집이 튼튼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형과 싸우며 채워진 구멍을 단단하게 다질 때였다.
“조급해한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게 아니야.”
“그건… 맞아요.”
“지금은 잠시 쉬어야 할 때야.”
제론이 딱 잘라 말하며 축객령을 내리자 에르딘은 우물쭈물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방을 나갔다. 녀석의 기척이 멀어지자 제론은 머리 위에서 그루밍을 하고 있는 네론의 머리를 살살 긁었다.
탁-!
손이 닿기 무섭게 앞발로 후려치긴 했지만 말이다.
“다들 까칠하구먼.”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리며 녀석의 머리를 다시 한번 살살 긁었다.
탁-!
네로가 또다시 앞발로 후려쳤다.
* * *
제론은 여행을 떠나면 가장 먼저 들를 곳을 정해뒀다.
오른 왕국에 존재하는 몬스터의 숲. 바로 ‘에단의 은신처’였다.
오랜 시간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아카데미 전투 실습 당시 상정하지 못한 존재-오우거가 나타났고, 그에 대한 의문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키기 위해 먼저 들르려는 것이었다.
오우거를 ‘에단의 은신처’로 이끈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흔적을 몇 년이 지난 뒤에서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진짜 목적은 이것이었다.
‘거기서 유한 선생님과 만나기로 했으니까.’
유한은 제론에게 큰 빚을 여러 개 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목숨값을 받으려고 한다.
‘교장 선생님이 정보 조직을 들쑤셔서 흉수를 찾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유한에게 그 정보를 받기로 했다. 수석졸업생 특별초청자격으로 전투 실습에 참가하기로 해서 명분도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더불어 유한을 페리안 자작가로 끌어들일 밑 작업까지 할 생각이었다.
‘지금쯤이면 벽에 부딪쳐서 끙끙거리고 있을 테지.’
유한은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였다. 오러 마스터가 될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언제 오러 마스터가 될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오래전에 그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맛을 모른다면 모를까 한 번 맛본 오러 마스터의 경지는 갈증처럼 점점 심해질 것이다.
제론마저 졸업한 지금은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이리라.
그런 유한에게 갈증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준다면 어떻게 될까?
목을 축이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그러나 제론이 기부 천사가 아니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유한에게 깨달음을 뿌려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갖고 있지 않았다.
‘선생님을 끌어들여서 페리안 자작령의 힘을 키워야지.’
현대지식을 활용해서 사업을 크게 벌이는 방법도 있지만 이목을 크게 집중시킨다는 리스크가 컸다.
‘하이 리스크가 꼭 하이 리턴을 가져오는 게 아니니까.’
페리안 자작 가문이 가진 힘이 크지 않은 지금 가뜩이나 남작령에서 자작령으로 승격해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현대지식을 활용한 사업은 무리수에 가까운 도박이었다. 하지만 유한을 끌어들이는 것은 리스크가 크지 않았다. 그가 특별하게 적을 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씩 가문의 힘을 키우면 돼.’
20살이 되면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도 그것과 관계되어 있었다.
단순히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어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진짜로.”
제론은 이유 모를 양심의 찔림에 무심코 중얼거렸다.
* * *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찾아왔다.
땡볕 아래에서 제론이 검을 휘둘렀다. 그 옆에서 함께 창을 휘두르고 있던 에르딘이 신기한 눈초리로 제론을 쳐다봤다.
“웬일입니까?”
“뭐가?”
제론이 검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반문했다.
“원래 따로 수련하시잖아요.”
“보통은 그렇지.”
에르딘이 고개를 갸웃하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보통 그렇다는 말은 지금이 보통과 다른 경우라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가끔씩 나오셔서 검을 휘두르긴 하셨지.’
말 그대로 가끔이었다.
대충 1년에 3~4번?
그래서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새삼스레 제론이 다르게 보였다.
혼자서만 몰래(?) 수련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제론을 봤다면 숨만 쉬어도 강해지는 줄 알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수발을 들지 않았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말을 걸어 놓고 생각하고 있던 탓일까?
제론의 표정이 뚱해진다.
그러면서도 검을 쉬지 않고 휘두르고 있는데, 피식 웃으며 그 모습을 보던 에르딘의 두 눈이 곧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어?’
제론의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못에 박힌 것처럼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이쪽을 바라볼 때도 고개만 돌아가고 그 외의 신체 부위는 조금도 틀어지지 않은 채 계속 같은 자세와 경로로 검을 휘두른다.
‘조금 무섭긴 한데…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거지?’
에르딘의 의문을 알아차린 제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속성코스로 배워서 못하는 거야. 원래는 하루에 최소 1천 번씩 창을 휘둘러야 해. 하지만 너는 최대한 빠르게 강해지는 것을 바랐고, 그래서 그 과정을 패스한 거지.”
“왜 못하는지는 알겠는데… 그거 하면 뭐가 좋은 거예요?”
“마음의 수련에 좋아.”
생뚱맞은 대답에 에르딘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제론은 검을 곧게 세웠다. 그리곤 아주 오래전 유한에게 보여준 적이 있던 삼재검법을 천천히 시연했다.
“창술의 기초가 ‘란攔, 나拿, 찰扎’이라면…….”
세로 베기.
가로 베기.
마지막으로 찌르기.
모든 검술의 시작과 끝이며 동시에 완전무결한 3개의 초식.
“검술의 기초는 바로 이 ‘삼재三才-천天, 지地, 인人’이야. 천은 하늘을, 지는 땅을, 인은 하늘과 땅 사이의 사람을 뜻하지.”
“……?”
“왜 그런 표정이야?”
“그거랑 마음의 수련에 좋다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제론이 멈칫했다.
‘아무런 관계없는데.’
멋있어(?) 보이려고 그럴듯하게 말했다. 유일하게 간과한 게 있다면 그 사실을 에르딘이 간파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칫. 너무 얕봤나?’
제론은 내심과 다르게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잠자코 듣기나 해. 이거 다 어디서 쉽게 듣지 못하는 가르침이야. 언젠가 너의 피와 살이 되는 거라고. 설렁설렁 듣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마.”
“흐응. 아무 관계 없구나. 그랬구나.”
에르딘이 입꼬리를 씰룩이며 중얼거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