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84)
제84화
84화
제론이 성큼성큼 다가가 에르딘의 머리를 콩- 때렸다.
“아얏!”
제법 세게 때려서 그런지 에르딘이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는다. 그런데 녀석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원망스럽게 쳐다보자 제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바로 그때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
‘더 때리고 싶다!’
선이 가는 미소년이 주저앉아서 눈물방울을 그렁그렁 매단 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니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나 혹시 문제가 있는 건가?’
자꾸만 그런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는 사실에 제론은 살짝 자괴감이 들었지만 주먹이 자꾸 휘둘러 달라며 근질거리니 참기 힘들었다.
“너무해.”
“윽!”
에르딘이 시무룩하게 중얼거리자 제론은 심장 폭행을 당한 것처럼 가슴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곧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여자가 좋은데?’
제론은 이성애자였다. 근래에 들어 몇 번씩 살짝 스스로를 의심하는 단계(?)에 접어들 뻔했지만 아주 잠깐에 불과했고, 곧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흠흠. 그러게 누가 주군을 놀리래?”
“제론 님도 저 놀리잖아요!”
“넌 내 집사잖아. 그러니까 안 돼.”
“칫.”
에르딘이 언제 눈물을 글썽거렸냐는 듯 멀쩡한 얼굴로 일어섰다.
처음부터 연기였던 것이다.
제론은 내심 감탄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아까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너한테 부족한 것은 깊이야.”
“깊이요?”
“네가 아까 뭐가 좋은 거냐고 물었잖아. 그게 바로 깊이라고.”
에르딘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제론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삼재검법을 시연했다.
아까보다 조금 더 느리게 천천히 천天, 지地, 인人을 펼쳤다.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또한 바라지도 않았다.
에르딘은 속성코스로 누구보다 빠르게 강해졌지만 ‘무공에 대한 이해’라는 깊이가 부족했다.
가까운 예로 지금 펼치는 삼재검법이 있었다.
삼재의 천은 하늘을 뜻한다.
천天이라는 글자가 하늘이라는 뜻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천은 세로 베기.
검의 끝으로 하늘을 찌름으로써 그 기운을 받는다.
지는 가로 베기.
검을 눕혀 땅과 수평을 이루어 그 무거움을 담는다.
인은 찌르기.
하늘의 기운을 받고 땅의 무거움을 담아 조화를 이룬다.
궁극에 다다라야 펼치는 것이 가능한 완전무결한 3개의 초식!
제론조차 탈마의 경지에 이르러 깨달을 정도로 그 깊이는 심오했다. 하지만 속성코스로 배운 에르딘이 그 심오한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보여주고 또 보여주는 것이다.
수박 겉핥기라는 말처럼 아무런 소득이 없는 행위일지도 모르지만 ‘수박’이라는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한 번을 휘두르고 두 번을 휘두를 때는 큰 차이가 없어.”
제론은 말을 하면서도 삼재검법의 시연을 계속 반복했다.
“하지만 그 한 번이 쌓이고 쌓여서 1백 번, 1천 번까지 도달하면 어떻게 될까? 또 하루 이틀이 지나 수천여 일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삼재검법을 펼치는 제론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러나 검의 경로는 틀에 맞춘 것처럼 1mm의 오차도 생기지 않고 같은 곳으로 움직였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에르딘이었으나 5번의 시연이 넘어가자 고개를 갸웃하더니 10번의 시연에 이르자 자신의 착각이 아님을 깨닫곤 경악했다.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천재와 범재의 차이는 스타트 지점과 달리는 속도가 다를 뿐이야. 결국 골인 지점은 하나인 거지. 그것만큼은 모두가 똑같아.”
범재는 천재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100프로 진실도 아니었다.
재능이 없지만 불세출의 고수가 된 무인은 있었다.
그러면 누군가 코웃음을 치며 말할 것이다.
-그래봤자 1명, 2명이 전부가 아니냐?
아니.
그 숫자는 고작 소수에 그치지 않았다.
그런 자들은 시대와 상황을 떠나 꾸준히 나타났다. 스타트 지점이 다르고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가 달랐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좌절과 절망을 견뎌내고 일어나 대종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제론은 에르딘에게 ‘너도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선은 하나의 점으로 이어지니… 이는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삼재검법의 시연을 마친 제론이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여운을 즐겼다.
아직은 회복하지 못한 전생의 무공 경지였다.
‘하지만 멀지 않았다.’
육체의 그릇이 완전하지 못해 전생의 깨달음을 일부러 소화시키지 않았다. 너무나도 막강한 힘이 그릇을 깨트리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지금은 80프로 정도 그릇이 완성되었다.
물론 100프로가 된다고 해서 한순간에 전부 소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이전처럼 깨달음을 억제하고 막을 필요가 없어진다.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어.’
곧 20살이 된다.
그전까지 준비를 마친다.
제론이 한결 개운해진 기분으로 에르딘을 바라봤다. 자신의 말을 1프로만이라도 얻었다면 크게 깨우친 것이 있으리라.
“무엇을 느꼈냐?”
“…….”
에르딘이 깊은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제론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제론 님은 역시 재수 없다는 거요.”
“너 진짜 죽을래?”
제론이 인상을 찌푸리자 에르딘이 후다닥 도망쳤다.
1초도 되지 않아 붙잡혔지만 말이다.
* * *
“아이고. 아이고.”
흠씬 괴롭힘을 당한 뒤 풀려난 에르딘은 밥도 멀리한 채 곧장 침대로 돌진했다. 제론의 분노를 일으켰던 장난스러운 대답과는 다르게 그는 충격에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와 제론 님은 보고 있는 세계가 달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제론의 말은 거칠고 커다란 폭풍우를 동반한 파도였고, 자신은 견디지 못할 자연재해를 정면으로 맞은 꼴이었다.
만약 에르딘이 체계적으로 무공을 수련해왔다면 주화입마에 빠졌을지도 몰랐으나 다행히도(?) 속성코스로 배워서 최악의 경우는 맞닥트리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를 맞닥트리지 않은 이유.
정말로 어처구니없게도 제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만 아는 사람의 앞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처럼 초고난이도 수학 문제를 풀라고 갖다 놓은 격이었다.
굉장히 심오하고 어려운 건 알겠지만 그 이상은 모르겠다. 지식과 이해의 한계였다. 풀려는 생각도 들지 않게 난해하고 복잡했다.
그런 이유로 에르딘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아, 모르겠다.”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가른이 떠올랐다.
‘가른 님이라면 나랑 달라겠지. 바로 이해했을 거야.’
물론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가른도 제론의 심오한 깨달음을 이해할 만큼 경지가 높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에르딘과 다르게 체계적으로 무공을 배웠기 때문에 어렴풋이 느끼고 받아들였을 테고, 최악의 경우 주화입마에 빠져들거나 적어도 심마에 들어섰을지도 몰랐다.
그러한 사실까지 에르딘이 알 리가 없었고 나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가른에게 상대적인 자격지심까지 느끼게 되었다.
‘이제 와서 체계적으로 배우기는 늦었다고 하셨지.’
제론이 했던 말이다.
에르딘은 그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시간이 부족했다.
‘1년도 채 남지 않았어.’
그 시간 동안 체계적으로 수련해서 무공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건 불가능하다. 제론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면 모를까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가 멀지 않은 지금 마음이 조급해져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다행인 건 알지 못할 말들 가운데 한 가지는 이해했다는 점이다.
“만류귀종萬流歸宗……!”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진다.
가른처럼 체계적으로 무공을 수련한 것은 아니지만 제론의 속성코스를 받다 보면 언젠간 같은 산의 정상에 도달하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 제론 님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어.”
에르딘은 궁상이라도 떨 시간에 창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자고 생각하고 벌떡 일어나 창을 쥐고 밖으로 나갔다.
* * *
계절이 바뀌어 겨울로 접어들었다.
대륙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칼튼 제국의 황태자 계승권 전쟁이 끝났다. 황태자로 책봉된 것은 놀랍게도 4황자였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였다.
1황자와 4황자의 세력이 비등비등했다고 하지만 당위성으로 보면 1황자가 적통이었고 4황자는 서자였다. 당연하지만 대다수의 귀족들이 1황자를 지지했다. 하지만 4황자가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던 도중 소수의 정예를 이끌고 은밀하게 1황자를 기습해서 목을 베는 데 성공하자 머리를 잃어버린 몸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기습해서 공격하기 전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미심쩍다는 말이 많이 나왔으나 어쨌건 최후의 승자는 4황자였다. 명실상부 제국의 황태자가 되어 실세로 자리 잡은 4황자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모두가 열심히 발버둥 칠 뿐이었다.
두 번째 변화는 대륙의 정세였다.
칼튼 제국의 황태자 계승권 전쟁이 길어지면서 그로 인해 많은 피를 흘렸고 국력이 쇠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국의 면모를 잃지 않았으나 대륙의 최강대국에서 2순위나 3순위로 밀려난 것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다른 강대국들이 칼튼 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으니 칼튼 제국으로서는 당분간 내정에 힘을 쏟아야 했다.
세 번째 변화는 야만족이 북대륙을 침략했다는 것이다.
대륙은 5개로 나뉘는데 실제로는 북대륙의 끝에 위치한 거대한 설산을 경계로 하여 ‘야만의 땅’이라고 불리는 땅이 존재했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야만족이라고 불렀다.
그 땅을 ‘야만의 땅’이라고 부르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야만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문화와 복장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도 식인의 문화가 존재해 전 대륙인을 경악에 빠트렸다. 또한 거대한 설산을 넘어가면 기후가 급격하게 변해 밤을 제외하고 365일 내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드넓은 늪지대와 숲이 펼쳐졌고 그로 인하여 옷을 반쯤 헐벗고 다녔다.
물론 대륙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야만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식인의 문화는 오래전에 사라진 구시대의 유물이었고, 말 그대로 먹을 것 하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만 어쩔 수 없이 식인을 했다.
억울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북대륙을 침략하는 이유 역시 ‘야만의 땅’의 환경이 살아가기에 너무나도 척박하고, 자신들의 후손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 관습이 달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로 인하여 타협은 이뤄지지 않아 끊임없는 침략과 그것을 막기 위한 방어의 전쟁이 치러졌다.
한편 페리안 자작가에서는.
“예쁘네. 그래도 수박에 줄 그어봐야 수박이지만.”
제론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아이참. 화장 중에는 가만히 계시라니까요. 자꾸 그러시면……!”
헤샤가 욱해서 쌍심지를 올리며 소리치려고 했지만 유모의 잔소리 폭격을 듣고 제론에게 눈빛으로 ‘나중에 두고 보자!’라고 말했다.
물론 그 정도에 쫄 제론이 아니었다.
코웃음을 치며 비웃어줬다.
“풉. 나중에 두고 보자고 하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더라.”
“너 진짜!”
“가만히 좀! 계시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요?!”
헤샤의 이맛살이 짙게 좁혀지며 또다시 잔소리를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론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누나랑 로한이 진짜로 결혼하기는 하는구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