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85)
제85화
85화
사실 제론은 약혼식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결혼식 전날에도 파혼이 나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지금은 로한과 누나의 결혼식이 6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지 서서히 실감 나기 시작했다.
신부 화장을 하며 미리 준비하는 모습까지 보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짠했다.
‘친구랑 결혼하는 누나를 보는 심정이 이런 거구나.’
실제로는 현대의 유민현에게 친구라고 부를 만한 존재와 가족이 없었지만 말이다.
갑자기 다른 의미로 마음이 짠해진 제론이었지만 재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제론이니까.’
유민현이었던 사실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건 과거-전생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제론이었다. 그 사실이 더욱 중요했다.
그래서 우화등선이 왜 실패했는지 궁금했지만 크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갑자기 왜 조용하냐?”
“응?”
갑자기 들려온 누나의 목소리에 제론이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는 누나가 보였다.
“아아. 유모한테 혼나는 누나가 짠해서 수박에 줄 긋는…….”
“야아!”
“제론 님!”
누나와 유모가 동시에 외치자 제론은 히죽 웃으며 방을 나갔다. 계속 방해했다가는 유모한테도 혼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컷 놀려먹었으니 됐다.
“신부 화장을 계속 지켜보는 것도 지겹고.”
누나의 화장은 벌써 12번째로 하는 것이었다. 화장마다 뭐가 다르고 저건 어떻고 하는데 제론의 눈에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화장을 바꿀 때마다 자꾸 질문을 해오는데 솔직히 고역이었다.
그래서 괜히 심술을 부려서 누나를 놀린 것이다.
“형이랑 에르딘은 열심히 피 터지게 싸우고 있네.”
창문 밖으로 형과 에르딘이 대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격하게 싸우고 있는지 몸 곳곳에 작고 큰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적당히 좀 하지. 그러다가 크게 다치면 어쩌려고.”
작게 혀를 찬 제론이 아빠를 찾아갔다.
똑똑.
“들어와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평소처럼 서류의 산더미에 파묻혀 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제론이 의자에 앉자 깃펜을 내려놓고 말했다.
“헤샤의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던가?”
“예, 맞아요.”
의아한 건 저 이야기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20살에 여행을 간다고 했지만 ‘바로’라고 한 적이 없었다.
범인은 그 녀석이다.
‘에르딘, 이 입 싼 놈.’
제론은 마음속으로 에르딘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결혼식 끝나고 바로…라.”
“…….”
“짜식. 새끼 새가 다 크면 부모의 둥지를 떠나는 건 자연의 이치다. 미안한 표정 짓지 말고 이거나 챙겨둬라.”
아빠가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서 책상 위로 올렸다.
제론이 주머니를 열어 확인해보자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이게 뭐예요?”
“옛날에 네게 받아서 판 아티팩트 값이다.”
세상에.
제론은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시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티팩트였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돌려준다고 했었지만 의례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대인배셨군요!”
“무슨 뚱딴지같은…… 하하! 설마 진짜로 안 돌려줄 거라고 생각했던 거냐?”
아빠가 크게 웃으시며 물었다. 하지만 제론이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말한다.
“아티팩트의 값만 그대로 딱 돌려주면 섭섭하겠지? 벌써 15년이 지났으니까… 이자를 전부 챙겨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대신 여행을 다닐 때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들을 같이 넣어뒀단다.”
“오오!”
제론이 기대하며 얼른 주머니 속을 뒤졌다.
그러자 3가지 물건이 튀어나왔다.
첫 번째 B등급 용병을 상징하는 은빛의 용병패였다.
이름은 아론이고 성은 로이트였다.
합쳐서 아론 로이트.
오른 왕국의 몰락 귀족의 후예라는 설정이라고 아빠가 말했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돼서 용병패가 따끈따끈(?)했다.
“실제로 존재했던 귀족 가문이라서 너를 아는 사람만 아니라면 웬만해서 정체를 들킬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빠……!”
“그래, 막내야!”
제론은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아빠를 바라보며 감동 받은 표정을 얼굴에 그렸다.
그렇게 부자父子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생각했다.
‘이거 내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만든 거네.’
‘부모로서 막내아들이 어디를 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
용병패는 단순히 용병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만이 아니다.
용병패를 발급해준 용병 길드에서 그의 신원을 보증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사용하는 즉시 기록으로 남아서 추적이 용이했다.
아빠가 용병패를 만들어줬으니 더더욱 추적하기 편할 것이다.
분명히 인맥을 이용해서 만든 것일 테니까.
그래도 용병패가 신분을 숨기고 움직이기 편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이유로 제론은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두 번째 물건을 꺼냈다.
테두리 안쪽에 번개의 문양이 각인되어 있는 은반지였다.
‘아티팩트가 아닌데?’
잠시 살펴보자 알 수 있었다. 무슨 용도로 준 것인지 궁금해서 다시 아빠를 쳐다보니 씨익- 웃으시더니 말했다.
“이 아빠가 대륙을 떠돌아다닐 때 우연찮게 곤란에 처한 친구를 도와준 적이 있단다. 그 친구가 은혜를 갚고 싶다며 증표라고 준 게 바로 이 은반지란다. 사실 그동안 쭉 잊고 있다가 네게 무엇을 줘야 할지 고민하며 서랍을 뒤지다 보니 기억이 났지 뭐니. 본래라면 형한테 줘야겠지만 형은 소영주로서 영지를 벗어날 일이 없으니 네게 준 거다.”
“아하! 그렇군요. 그런데 아빠는 어쩌다가 대륙을 떠돌게 되신 거예요?”
사실 제론은 이게 더 궁금했다. 아빠한테는 형제가 없다. 그래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밑에서 차기 영주로서 혹독한 교육을 받았다고 들었다.
즉,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대륙을 떠돌게 되었단 말인가?
“어, 음. 그런 거 있지 않느냐? 사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넓은 세상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지금은 사내이기 전에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무척이나 생각이 어렸지. 어느 날 문득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날 바로 짐을 꾸려서 떠났단다. 하하! 어쨌든 덕분에 엄마를 만나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 아니고 뭐겠냐?”
제론은 아빠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서 가출했다는 거네.’
장황하게 말했지만 결론은 그랬다. 어색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리고 싶어 하는 아빠의 모습까지 보니 더더욱 확실해졌다.
“그런데 아빠의 친구분을 만나도 제가 누구인지 알아볼까요? 너무 옛날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갑자기 나타나서 ‘제가 쥬페토 페리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해도 안 믿을 것 같은데. 아니, 그전에 아빠도 정체를 숨기고 떠돌아다니셨을 테니 그 친구분이 아빠의 정체를 모르지 않을까요?”
가출했냐고 은근슬쩍 돌려서 떠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고심에 잠기셨다.
“흐음.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가른이었다면 보는 순간 바로 알아보겠지만, 제론 너는… 엄마도 많이 닮았으니 어쩌면 믿지 않을 수도 있겠어.”
잠시 고심에 잠겼던 아빠가 말했다.
“녀석을 만나게 된다면 ‘에르텐’, ‘술집’, ‘난동’이라고 말해봐라. 그날의 일은 녀석도 죽을 때까지는 잊지 못할 테니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거다.”
“‘에르텐’, ‘술집’, ‘난동’이요?”
에르텐이 어딘지 안다. 오른 왕국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다.
“아무튼, 그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아빠는 그러면서 친구가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했다. 듣다 보니 살짝 의외인 건 만난 곳은 오른 왕국인데 살고 있는 곳이 폴른 제국이라는 점이다.
폴른 제국은 서대륙에 위치한 대륙 2강이었다.
본래 칼튼 제국이 2강 중 1위였으나 황태자 계승권 전쟁으로 2위로 추락하고 2위였던 폴른 제국이 1위로 격상했다.
아무튼 오른 왕국에서 폴른 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1년을 부지런히 이동해야 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면 몇 달로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어쨌건 멀다는 것이었다.
‘폴른 제국에 갈 일이 없는 건 아니니까 아빠의 소식이라도 전해주러 가봐야겠네.’
폴른 제국과 그 주변에는 공략되지 않은 던전이나 유적이 많다.
무엇보다도 대륙의 금지禁地 중 한 곳인 ‘침묵의 안개 숲’이 폴른 제국의 영토에 있으니 제론이 갈 이유로는 충분했다.
마지막 세 번째 물건.
아빠가 서랍에서 작은 목갑을 꺼내서 슥 내밀었다.
“진짜 선물은 이거다.”
“으음?”
열어보니 허름해 보이는 작은 주머니가 있었다.
“이건 뭐예요?”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으로 봐선 아티팩트인 건 알겠다.
잠시 살펴보면 무엇인지 금방 알아낼 수 있겠지만 아빠의 입이 엄청 근질근질한 것처럼 보였다.
“아공간 주머니다.”
“오…… 주인공 전용 아이템이잖아?”
제론이 무심코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아빠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으나 엄청난 아티팩트라고 감탄했다고 얼버무리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하지만 제론의 속마음은 정말로 감탄한 상태이긴 했다.
‘데르먼 수석 마법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마법은 엄청나게 고난이도 마법이라고 했는데?’
현 대륙에서 시간과 공간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는 한 손에 겨우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조차도 시간이나 공간과 관련된 마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오랜 준비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 과정 끝에 보여주는 결과도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어 사실상 지금에 와서는 최고위 마법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들었다.
작은 주머니라고 하지만 아공간 마법이 부여되어 있었다.
아니.
조금 더 본질로 돌아가자면 일개 자작가에 이런 보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우리 집을 폄하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왕실의 창고에 고이 모셔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려 주인공 전용 아이템인 아공간 주머니였으니까!
‘게다가 여행을 다닐 때는 필수 중의 필수인 아이템이지.’
여행을 다닐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소지품의 간소화였다. 마차나 수레를 끌고 다닐 게 아니라면 갖고 가고 싶어도 포기해야 하는 게 많아진다. 하지만 아공간 주머니가 있다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진다.
10개 중 8개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10개 중 3개만 포기하면 된다.
“겉모습은 작지만 주머니 입구에 공간 왜곡 마법이 걸려 있어서 네 검도 들어간다. 무게조절기능도 있어서 갖고 다니기 편할 거다.”
아니.
10개 중 1개만 포기하면 될 거 같았다.
제론이 벌떡 일어섰다.
“아빠.”
“응?”
“사랑해요. 많이 많이 사랑해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엄마보다 백배 천배 더 좋아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아빠를 격하게 껴안았다.
아빠의 흐뭇한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물론이죠.”
두 남자가 코밑을 훔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