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87)
제87화
87화
“또 몬스터냐.”
“하아. 징그럽다.”
병사들이 투덜거리면서도 창을 고쳐 쥐며 앞으로 전진했다.
아이언하트 공작령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페리안 자작 가문의 깃발이 걸려 있어서 도적 떼가 습격하는 일은 없었지만 몬스터가 어디 그런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이 있던가!
에르딘이 창을 들고 앞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제가 먼저 갈게요!”
“저 도련님은 참 용감하구먼.”
병사들이 입맛을 다셨다. 몬스터의 습격만 벌써 8번째다. 매번 누구보다 먼저 앞서 달려나가는 에르딘을 보며 참으로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혼자였다면 극구 말렸을 것이다.
“흡!”
에르딘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듯 가른도 검을 뽑아 들며 달렸다.
“아이고! 소영주님까지.”
병사들이 탄식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익숙했는지 전열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천천히 전진했다. 이번에 습격한 몬스터는 놀 수십 마리밖에 안 된다. 전열만 흐트러트리지 않으면 아무 피해도 없이 처리할 수 있다.
그사이 순식간에 에르딘의 꽁무니까지 쫓아간 가른이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는 놀의 머리를 베어냈다. 먼저 몬스터를 잡은 가른이 살짝 입꼬리를 올린 순간 에르딘은 창을 눕히고 찔러 2마리를 꿰뚫었다.
에르딘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가른을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가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는 1마리지만 난 2마리라고?
에르딘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후우.”
가른은 한차례 깊은숨을 토해냈다. 눈을 번쩍이며 검을 휘둘렀고 근처로 다가온 놀 5마리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본 에르딘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질 수 없지.’
창을 고쳐 쥐고 재빠르게 내질렀다. 놀의 어깨를 꿰뚫은 창날이 뒤에 있던 녀석의 목까지 관통했다. 빠르게 창을 뽑아낸 에르딘이 다음 타겟을 노렸다. 이 순간에도 가른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고 있다. 절대로 질 수 없었다.
“허이고.”
“이러다가 우리 영주님께 혼나는 거 아냐?”
“영주님께서 너희를 혼내실 리가 없지. 대신 내가 혼내겠지만 말이야.”
웅성거리며 구경하는 병사들 뒤에서 백부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병사들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백부장님. 좀 봐주십시오. 소영주님과 저 도련님이 저러시는 걸 저희가 어떻게 막겠습니까?”
사실이었다.
실제로도 쥬페토가 묵인하고 있기까지 하니 병사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정말 억울했다. 백부장도 내심 동감하기는 했다. 병사들의 잘못은 없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안 되는 건 사실이었다.
“인마들아. 뭐라도 하는 척해야 할 거 아냐!”
“그렇게까지 말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한데…….”
“이미 놀들이 다 죽었는데 어떡합니까?”
“뭐?!”
백부장이 깜짝 놀라며 돌아서자 시체가 된 놀 수십 마리가 보였다. 동시에 자신이 처리한 놀의 숫자를 세고 승자와 패자가 나뉜 광경도 함께 보였다.
“칫.”
“이번엔 내가 이겼군.”
에르딘이 발로 땅을 차고 있었고 가른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2마리 차이로 승자가 된 가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실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제론은 처음부터 가른이 이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누나.”
“왜?”
“내놔.”
“칫.”
헤샤는 내공을 실어 금화를 던졌다. 제론이 아무렇지 않게 히죽 웃으며 받아내자 더욱 약이 오른 헤샤가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고 쳐다봤다.
“고마워. 다음에 또 내기하자고?”
“안 해! 안 한다고!”
“헤샤.”
쥬페토가 헤샤에게 조용히 하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으그그극!”
헤샤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옹알거리며 제론을 사납게 노려봤다. 하지만 옛날부터 누나를 괴롭혀왔던 제론에게 그 정도는 귀여운 애교밖에 안 됐다. 내기의 대가로 받은 금화를 손가락 사이에 껴서 까딱거리며 더욱 놀려댔다.
누나가 이쪽을 쳐다보지 않자 제론은 김샌 표정을 지었다. 곧 에르딘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에르딘 저 녀석 날로 잔뜩 물오르고 있네.’
페리안 자작령을 벗어난 지도 어느새 2주가 지났다.
그사이 8번의 몬스터 습격이 있었다.
지금처럼 적은 숫자의 습격이 대부분이었지만 백여 마리가 넘는 대규모도 2번 있었다.
페리안 자작령이 매년 몬스터 토벌을 하며 병사들 모두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경험이 몬스터 헌터에 못지않게 많았고, 다른 누구보다 형과 에르딘이 앞서 나가 싸워서 피해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중에서도 에르딘이 특히나 두각을 드러냈다.
살생의 경험이 없던 에르딘은 자신보다 한참 약한 몬스터를 상대로 진땀을 쏙 뺐지만 형이 나서자 자극을 받았는지 처음으로 몬스터를 죽였고 그 후로 빠르게 실력이 향상되었다.
지금도 2마리 차이로 형이 간신히 이겼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5마리에서 10마리나 차이가 났다.
이대로 가면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가 멀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형보다는 약하겠지만.”
형과 에르딘은 깊이가 다르다.
두 명이 싸운다면 무조건 형의 필승必勝이다. 그럼에도 형과 에르딘이 대련을 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가 형 역시 실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실전의 경험이 몬스터의 습격을 통해 조금씩 메꿔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에르딘의 성장 폭이 훨씬 더 크겠지만 나중에는 형이 순식간에 추월하리라.
몬스터 시체를 정리하고 돈이 될 만한 최소한의 재료만 챙긴 뒤 다시 출발했다.
잠시 후 해가 저물자 행군을 멈추고 숙영지를 구축했다.
불침번이 돌아다닐 때쯤 형이 찾아왔다.
“자니?”
“아니. 들어와.”
“음.”
형이 천막으로 들어왔다가 에르딘을 발견하고 살짝 멈칫했다. 제론은 에르딘과 같은 천막을 사용한다. 그 사실을 깜빡 잊고 있던 것이다.
“무슨 일이야?”
“음.”
“말하기 곤란하면 밖에서…….”
“아니. 상관없다.”
형의 말투가 살짝 딱딱해졌다.
상관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에르딘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아까 놀과 싸울 때 지켜보고 있었니?”
“응. 누나랑 내기했거든.”
“……?”
형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갑자기 누나와 내기를 했다는 말에 의아한 듯했다. 하지만 관심이 없었는지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지켜보고 있었다니 이야기하기 쉽겠군. 문제점이 뭐였다고 생각하니?”
앞뒤 말이 다 잘렸지만 형을 오래 봐서 그런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조급해져서 동작이 커졌어.”
“동작이 커졌다, 라.”
형이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론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는 최적의 경로로 놀을 상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삼자가 보기에는 충분히 동작이 컸다.
“에르딘한테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해 계속 쳐다보고 그랬잖아.”
“윽.”
형은 정곡을 찔렸는지 작게 비명을 토했다. 에르딘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웃음을 참았지만 제론의 타겟은 형뿐만이 아니었다.
“에르딘 너도 마찬가지야. 내기를 하는 건 좋다 이 말이야. 하지만 한 번에 누가 더 많이 잡았는지 일일이 확인할 시간이 어디 있어? 1마리라도 더 빨리 잡아야지.”
“죄송합니다.”
“타박하려는 건 아니니까 표정 풀어.”
에르딘이 고개를 푹 숙이며 웅얼대자 제론이 다독였다.
그 모습을 형이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잠시 후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하다.”
“……?”
“……?”
제론과 에르딘이 빠르게 눈빛 교환을 했다.
‘다독여달라는 거지?’
‘예. 빨리 다독여줘요.’
제론이 형한테 다가가 안아주며 말했다.
“응. 형도 고개 들어. 타박하려던 거 아니니까.”
“고맙다.”
형이 고개를 들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 형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형을 꼬셔 줄 형수님이 누구려나. 형수님 제법 고생하시겠는데.’
동생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
제론은 심히 걱정하며 말했다.
“아무튼, 두 사람의 문제는 서로를 너무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먼저 말하지만 신경 쓰지 말라는 게 아니야. 너무 과해서 문제라는 거야. 의식은 하되 스스로의 움직임에 방해가 돼서는 안 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흐음.”
“둘 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나 보네.”
에르딘이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
“의식을 분리하라는 말인가요?”
“양의심공도 아니고 무슨…… 아까 말했잖아? 조급해져서 동작이 커졌다고.”
“무슨 말인지 더 모르겠는데요?”
“더 싸우다 보면 느낌이 올 거야.”
그때 형이 말했다.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거구나.”
“그렇지.”
“후후.”
형은 음침하게 웃으며 에르딘을 쳐다봤다.
에르딘이 볼을 씰룩거렸다.
제론은 이런 상황에서도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서서히 뭐가 문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문제가 아닐까?’
무공을 가르쳐준 것부터가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론은 깊게 반성했다.
두 사람의 뜨거운 라이벌 의식은 새벽이 돼서야 끝났다.
제론이 잠을 자겠다고 두 명 다 쫓아낸 것이다.
본의 아니게 같은 천막에서 잠을 잔 형과 에르딘은 이튿날 아침 분위기가 이전보다 살짝 부드럽게 풀린 채 제론의 천막으로 왔다.
그리곤 말했다.
“좋은 동생이더구나.”
“좋은 형님이더군요.”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이내 서로 시선을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제론은 기분이 기묘해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에 뭐 한 거야?”
“진지한 대화를 했다. 인성이 훌륭한 동생이어서 앞으로 친하게 지내기로 했단다.”
“저 역시 형님의 인품에 거듭 감탄했습니다.”
형이 먼저 대답하고 에르딘이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호칭도 변해 있었다.
새벽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몰라도 알고 싶지 않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야지.”
제론은 서로를 칭찬하는 두 명을 내버려 두고 향긋한 스튜 냄새를 따라갔다. 고기를 듬뿍 넣은 비프 스튜였다. 배식을 받으려는 순간 형과 에르딘이 어느새 따라와 달라붙는다.
“제론아!”
“제론 님!”
결국 함께 배식을 받아서 제론의 양옆에 앉아 식사를 한다.
‘뭐지?’
제론은 거듭 느껴지는 기묘한 느낌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잠시 멍하니 비프 스튜를 먹는 사이 형과 에르딘이 대화를 했다.
“제론 님…… 대단…… 다!”
“나 역시…… 제론이…… 생각…….”
자신의 이름이 들려온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이니까.
“아카데미에서 제론 님을 흠모하던 소녀들이 무려 백 명이 넘었습니다. 그 소녀들이 팬레터를 보내는데 제가 전부 불태워버렸죠.”
“잘했다. 우리 제론이 아깝지. 적어도 제국의 황녀는 돼야 제론의 짝으로 어울려.”
“맞습니다.”
“미친…….”
제론은 더 이상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않고 신법을 펼쳐 사라졌다. 무림에서도 이 정도로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가 없었다.
잠깐이지만 피부에 닭살까지 올라왔다.
‘내가 괴물들을 키웠구나!’
당분간 천막은 혼자 써야 할 것 같았다.
반드시!
형과 에르딘은 출입금지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