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88)
제88화
88화
“공작님을 뵙습니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소.”
아빠가 인사하자 아이언하트 공작이 다가가 어깨를 감싸며 격려했다.
그사이 공작 부인과 엄마는 티타임을 갖겠다며 들어갔다.
“하여간 이놈의 여편네는.”
아이언하트 공작이 한숨을 푹 내쉰다. 제론은 생각보다 털털한 그의 모습에 살짝 의외라고 생각하며 형과 함께 인사했다.
“제 자식들입니다.”
“아주 잘생겼군. 특히나 가르시안 페리안 군이. 딸이 한 명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과한 격식 차리지 말게. 우리 사이에 너무 부담스럽군.”
아빠와 아이언하트 공작은 예전부터 알던 사이로 보였다.
‘오늘따라 의외인 일이 많네.’
페리안 자작령은 다른 영지와 교류가 많지 않다. 변방에 위치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급자족하거나 부족한 물자가 있다면 상단을 통해 거래해서 채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제론은 무도회나 연회 같은 사교모임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초대장이 오더라도 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사교모임에서는 제론이 무척이나 신비로운 인물이자 오만한 자로 평가되고 있었다.
물론 제론은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차! 미안하군. 귀한 손님을 계속 세워두고 있었다니.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런 실수를 다 하는군.”
“아닙니다.”
“자네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서 좋아. 차가 좋은가? 술이 좋은가? 뭐라도 한잔하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눠봄세. 그런데 자네는 피부가 무척이나 좋군. 주름도 별로 없고. 무슨 방법을 쓴 겐가?”
아이언하트 공작이 성으로 들어가며 아빠한테 질문했다.
로한이 누구를 닮아서 말이 많고 넉살이 좋은가 했더니 핏줄을 속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로한 녀석은 어디 있지?’
아빠가 대화하는 사이 제론이 두리번거리자 아이언하트 공작이 대화를 마치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로한은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단다.”
“아, 감사합니다.”
“종종 듣기는 했지만 들은 것과 다르게 훤칠하게 생겼구나.”
제론이 잠시 멈칫했다.
아이언하트 공작의 눈과 입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로한이 저를 어떻게 말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로한 녀석이 말하길 제론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머리가 3개에 팔이 6개라고 하더구나. 물론 믿지는 않았단다. 그런 존재는 신화 속에 나오니까.”
아이언하트 공작은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고개를 갸웃하더니 눈썹을 가운데로 좁힌 채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고도 했었지. 말도 안 되게 크다고 했으니까. 자네 나이가 지금 20살이라고?”
“예. 올해로 20살 되었습니다.”
“크긴… 크군.”
아이언하트 공작의 키가 175였다. 그런 공작이 제론을 올려다보는 형태가 되었다. 제론의 키가 190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제론도 간혹 이대로 2m까지 크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까지 크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아…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고 했군요.”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보니 또 모르겠군.”
아이언하트 공작이 연달아 고개를 갸웃하더니 피식 웃었다.
‘이거 로한 녀석을 괴롭히라는 뜻이지?’
아이언하트 공작의 눈빛이 장난기로 반짝거렸다.
반응을 보니 아마도 맞을 것이다.
제론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곧 결혼식을 치를 녀석이니 합법적으로 패도 될 것이다.
‘명분상으로 내 누나를 훔쳐 갔다고 우기면 되겠지.’
물론 제론과 누나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말이다.
* * *
공작성은 자작성보다 최소 5배는 컸다.
아이언하트 공작이 거하는 저택도 당연히 그만큼 커다랬다.
“아들아.”
“네. 아빠.”
“네가 나중에 여행이 끝나고 돌아올 때쯤에는 보물을 잔뜩 들고 오겠지?”
“어, 음. 아무래도 그렇겠죠?”
“알겠다.”
아빠가 미래를 상상하며 흐뭇하게 웃으신다.
제론은 본능적으로 아빠가 자신이 가져온 보물을 팔아서 영주성과 영주 저택을 확장 및 증축하리라는 상상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끙.”
“싫으면 싫다고 말해라. 아들의 것을 뺏을 만큼 막돼먹지는 않았으니까.”
제론은 반사적으로 싫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아빠의 말이 먼저 들려와서 극적으로 목구멍에서 튀어 나가는 것을 참아낼 수 있었다.
“물심양면으로 20살까지 키워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기는 했지만… 값진 보물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키워준 게 고맙다면 순순히 내놓으라는 뜻이다.
제론은 한숨을 푹 내쉬고 항복했다.
“알겠어요. 하지만 키워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줘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아빠라서, 가족이니까 주는 거예요.”
“그러지 않아도 된단다.”
“이미 속셈은…….”
“잘 받으마. 역시 우리 막내가 세상에서 최고란다.”
아빠가 제론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제론이 어색하게 웃으며 아빠를 마주 안았다.
“호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언하트 공작이 재밌어하고 있었다.
* * *
“우여곡절이 많고 탈도 넘치는 나날도 끝났네.”
제론은 침대에 누우며 중얼거렸다. 공작성에 도착하기 전까지 매일 밤마다 형과 에르딘이 천막으로 쳐들어왔다. 그리고선 하는 말이 자신을 신격화시키려는 것처럼 칭찬 일색이다. 두 사람은 어찌나 죽이 잘 맞던지 얼굴이 화끈해질 지경이었다.
“적당히 좀 하지. 적당히 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두 사람은 너무 과했다. 하지만 아이언하트 공작성에 도착한 지금은 살 것 같았다.
“누나와 로한의 결혼식이 끝나면 여행을 떠날 거니까!”
형와 에르딘의 끔찍한 조합이 없어진다. 그 사실만으로도 호랑이 기운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실실 웃는 제론과 다르게 낯빛이 어둡게 물들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에르딘이었다.
‘얼른 벽을 뚫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제론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에르딘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몬스터와 계속 싸우며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벽이 뚫릴 듯 말 듯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애가 닳았다. 하지만 지금은 며칠 남지 않았다.
아무리 길어봐야 10일 이내다.
제론은 7일 후 결혼식이 끝나고 뒤풀이를 가진 뒤 여행을 떠날 것이다.
‘후우.’
에르딘은 마음속으로 짙은 한숨을 내쉬고 제론에게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한 뒤 창을 들고 수련장으로 향했다.
물론 허락을 맡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밤에는 사용하시는 분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사용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너무 시끄럽게 하시면 저희도 곤란하니 조금만 주의를 해주십시오.”
시종장이 주의를 부탁했다.
공작가의 시종장이라는 위치는 웬만한 남작이나 자작보다 힘이 컸다. 농담이나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시종장은 에르딘이 어느 가문의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고, 페리안 자작 가문의 손님으로 함께 왔다는 사실을 알기에 정중하게 대답한 것이다.
에르딘은 알겠다고 한 뒤 수련장을 사용했다. 페리안 자작가의 수련장보다 10배는 큰 면적이었다. 횃불이 사방에서 타오르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휑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외로움과 고독감이 지독하게 몰려왔다.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에르딘은 창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공허함 속에서도 쉬지 않고 창을 움직였다. 전신이 땀으로 범벅되고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땀 냄새가 지독해서 코가 마비될 정도였다. 시야마저 흐릿해지며 자신이 창을 휘두르고 있는 것인지, 창이 자신을 휘두르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에르딘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은 바로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육체가 정신이 아닌 몸이 기억하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신창합일身槍合一!
몰아沒我-스스로를 잊은 상태에 빠져 몸과 창이 하나가 되었다. 창날이 전보다 더욱 빠르고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몸놀림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졌다.
신창합일의 시간이 길어지며 에르딘은 빠른 속도로 진보했다.
쿵-!
그동안 에르딘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크게 흔들렸다.
쩌적.
작은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창과 몸은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잊은 상태에 빠진 에르딘이었기에 벽을 뚫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몸이 이끄는 대로 창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기를 반복했다.
쩌저적-!
작았던 균열이 점점 커지며 벽 전체까지 거미줄처럼 퍼졌다.
두 발이 구름 위에서 뛰어놀 듯 가벼워졌다.
스오오오-!
단전에서 한 줄기의 내공이 피어올랐다. 에르딘이 의식하고 끌어올린 것이 아니었다. 신창합일에 이르고 벽을 뚫기 시작하는 순간 저절로 내공이 반응한 것이다.
내공이 창날을 둘러쌌다. 창기槍氣-오러 스피어Aura Spear가 되어 날카롭게 벼려졌다. 제론의 속성수련을 받으며 연습해왔던 것과 다르게 형태가 진짜 창날처럼 뚜렷해졌다.
에르딘이 구름 위에서 뛰놀며 오러 스피어를 사방으로 내질렀다.
콰아아아아-!
대기가 찢겨져 나가며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동시에.
콰아앙-!
벽이 완전히 허물어지며 오러 스피어가 흩어졌다.
전신으로 새로운 힘이 샘솟았다.
물을 머금은 솜처럼 무거웠던 몸은 어느 때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몰아의 상태에서 빠져나온 에르딘은 동공이 선명해진 순간 깨달았다.
“성공했어.”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올라섰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기뻐서 폴짝 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하지만 홀가분한 기분은 들었다. 막혀 있던 벽을 뚫음으로써 페퍼민트 허브차를 마신 것처럼 상쾌했다.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래.”
“제론 님?!”
에르딘이 깜짝 놀라 뒤돌았다.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윽고 제론을 바라본 순간 에르딘은 번개가 정수리에 꽂힌 것처럼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제론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눈으로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오르며 에르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변했다. 속성코스만으로는 보지 못했던 시야였다. 지금 에르딘이 본 제론은 너무 거대해서 얼마나 큰지 짐작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하늘이었다.
꾸욱!
에르딘은 자신도 모르게 창을 세게 움켜쥐었다. 만약 제론이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모든 내공을 창에 담아 내질렀을지도 몰랐을 정도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제론의 시선이 에르딘의 손으로 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맺혀져 있었다. 에르딘이 드디어 자신의 몸속에서 ‘진짜’ 힘을 조금이나마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러 살짝 드러내긴 했지만 제법이네.’
기氣에 예민해졌다는 뜻이리라.
제론은 진심을 담아 에르딘에게 말했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제가 정말로 벽을 뚫고 오러 익스퍼트 상급으로 오를…….”
“아니. 그거 말고.”
“……?”
에르딘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행 같이 갈 수 있게 되었잖아.”
“……!”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짓던 녀석이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