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89)
제89화
89화
“야, 야! 왜 우냐!”
당황한 제론은 식은땀을 흘리며 에르딘을 다독였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것도 아니고 서럽게 뚝뚝 떨어트리고 있으니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이내 에르딘이 흐느끼듯 말하자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제 가치 갈 수 있자나여.”
“설마 잊고 있었던 거냐?”
끄덕끄덕.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에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형도 그렇지만 에르딘 이 녀석도 자신에 대한 의존도가 장난 아니게 높았다. 그만큼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사실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카데미에서 9살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따랐으니 11년이나 되었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여전히 짐작되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볼 때마다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운명을 느꼈어요!
개연성이라고는 1도 존재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래서 이럴 때마다 가끔씩 당혹스럽기도 했다. 페리안 자작가가 백작가나 후작가라도 됐다면 차라리 이해한다. 뭔가 떨어질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그런 건가 보다 하고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남작가였고 에르딘의 집안이 왕실 소속의 집사 가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더욱 이해가 안 됐다. 의문만 더욱 깊어졌다.
에르딘이 눈치 빠르게 알아차리고 말했다.
“운명을 느꼈다니까요. 운명을!”
“알겠어. 알겠어. 그러니까 일단 눈물부터 뚝 그치자.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해.”
제론은 얼른 녀석의 등을 토닥였다.
바로 그때.
공작가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방금 기사급의 힘이……!”
에르딘이 내공을 사용하자 그 기운을 느끼고 달려온 것이었다.
다행히도 아빠와 아이언하트 공작도 비슷하게 도착해서 기사들과 병사들을 물러나게 했다.
“별일 아니니 이만 돌아가게.”
“옙! 알겠습니다!”
“항상 고생이 많아.”
기사들과 병사들이 물러나자 아빠와 아이언하트 공작이 눈빛을 교환했다.
“흠흠. 그나저나 무엇을 오해한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만.”
“저도 오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림이 꽤나 잘 나오는군.”
하필이면 아빠와 아이언하트 공작은 마지막 말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제론이 재빨리 말했다.
“저는 여자가 좋아요!”
“누가 뭐라고 했더냐?”
“아니. 표정이 그러시잖아요. ‘우리 막내아들은 남자를 좋아했구나.’라고 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생각 한 적 없다.”
아빠가 싹 정색하며 부정했지만 제론은 이미 어떤 표정과 눈빛을 했는지 본 뒤였다.
아이언하트 공작이 옆에서 재밌는 부자 관계라고 중얼거리며 웃었다.
“다시 말하지만 전 에르딘 녀석을 좋아하지 않아요!”
“저를 싫어하셨던 거였군요.”
뒤에서 에르딘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감정을 추스르느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말하는 거잖아!”
“아, 그런 뜻이셨군요.”
히죽 웃는 것을 보니 모르는 척한 거다.
‘두고 보자!’
제론은 이를 빠드득 갈며 에르딘을 노려봤다.
* * *
“제론 님. 기침하셨습니까?”
“아니.”
아침 7시 30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에르딘이 묻는다.
제론은 차갑게 대답하며 가부좌를 풀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어젯밤의 일로 꼴도 보기 싫었다. 공작성만 아니었다면 실컷 괴롭혀서 기분이라도 풀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까 짜증만 잔뜩 났다.
“제론 님. 기침하셨습니까?”
“기침 안 했다고!”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대답을 하시는 겁니까?”
“…….”
제론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함께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아주 여유가 넘친다. 언젠간 저 콧대를 사정없이 짓눌러 주리라고 생각했다.
“제론 님. 기침하셨습니까?”
“…….”
“기침하신 걸로 알고 들어가겠습니다.”
덜컥.
들어오라고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이불을 잡아당겨 끌어내린다. 제론도 힘을 주자 이불이 끌려 내려가다가 멈췄다. 에르딘이 씨익 웃으며 말한다.
“기침하셨군요?”
“야 인마!”
제론이 기어코 성질까지 내자 녀석은 만족했는지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서히 누가 주인이고 누가 집사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끔찍한 혼종을 탄생시켜버린 걸까!’
나란 놈 너무 무섭다.
제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에르딘을 흘겨봤다.
“제론 님. 어서 준비하시고 가셔야 합니다. 아이언하트 공작님과 그분의 일가를 기다리게 하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납니다.”
에르딘이 상큼하게 흘려보는 것을 무시하고 말했다.
“하아. 진짜 끔찍한 혼종이다.”
“제가 무슨 혼종입니까? 게다가 끔찍하다니요. 저 남자치고는 예쁘장하게 생긴 편입니다.”
“그래. 스스로를 잘 알아서 너무 좋겠다.”
“그럼 세안을 준비하겠습니다.”
제론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식당으로 향했다.
살짝 서둘러 준비하고 간 덕분인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시녀의 안내로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1명, 2명 들어왔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대화는 많지 않았다.
간밤에 아이언하트 공작과 술을 거하게 마셨는지 아빠의 얼굴이 숙취로 퀭했다.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에 올라 웬만해선 술에 잘 취하지 않으셨는데 독주를 잔뜩 마신 모양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티타임을 가지며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론을 비롯해 형과 에르딘은 참석할 필요가 없는 자리라서 차만 간단하게 마시고 자리를 떴다. 물론 아이언하트 공작과 아빠가 가보라며 먼저 배려를 해준 덕분에 서슴없이 뜰 수 있던 것이다.
“로한 녀석이랑은 대화 한마디도 못 해 봤네.”
제론이 밖으로 나와서 아쉬워했다.
로한은 결혼식 준비로 바빴다. 누나도 당사자였지만 녀석보다는 덜 바쁜 편이었다. 앞서 집에서 철저히 준비를 마치고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한과 로한의 형제, 남매의 경우에는 아이언하트 공작과 함께 주변 영지의 영주나 가신을 손님으로 맞아야 해서 시간이 남질 않았다.
어느 세상이나 다 똑같지만 결혼식은 단순히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정치적인 관계-현대는 조금 다르지만-가 생기는 자리이기도 했다.
“제론 님은 정말로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시는군요.”
“내가? 로한을?”
“그렇지 않으면 아쉬워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요?”
“지루한 자리에 계속 있는 것보단 낫다는 거지.”
제론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가른과 에르딘이 생각했다.
‘내 동생이지만 참 솔직하지 못하군.’
‘제론 님은 솔직하지 못해서 탈이야.’
두 사람은 고개를 젓다가 시선이 마주쳤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손을 뻗어 굳게 마주 잡았다.
“뭐 하는 거야?”
제론은 이상하게도 불쾌해져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형은 그렇다 쳐도 에르딘 녀석이 참으로 괘씸했다. 마음속으로 분노 스택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런데 이제 뭘 할 생각이니?”
형이 묻는다.
제론은 잠시 고민하고 대답했다.
“대련할래?”
“좋아요!”
에르딘이 눈에 띄게 반색하며 외쳤다.
제론이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왜 좋냐? 너는 구경이나 해.”
“제론 니이이이님.”
“애교 부리지 마라. 징그러우니까.”
“아이이잉.”
제론은 육두문자가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형도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 * *
시간이 지나서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공작가의 연회장으로 수천 명의 손님이 들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남을 정도로 연회장은 크고 넓었다.
아이언하트 공작 가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졌다.
“아카데미 강당보다 2배 이상 크네.”
제론이 주위를 쭉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에르딘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은 건 왕실과 아카데미를 제외하고 처음이었다.
“오른 왕국에서 제법 힘 있다고 알려진 유명인사는 전부 다 모였군요.”
“아, 그래?”
“아, 그래? …가 아니라 나중을 생각하면 교류라도 미리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나?”
“물론이죠.”
“내가 오러 마스터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을 알면 먼저 설설 기면서 다가올 텐데?”
에르딘은 말문이 막혀서 멍하니 제론을 쳐다봤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누구라도 인연을 맺기 위해 먼저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하신 거지?’
곧 제론이 조금 전에 한 말을 상기시켰다.
-내가 오러 마스터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을 알면 먼저 설설 기면서 다가올 텐데?
잘못 듣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말은 즉, 제론이 오러 마스터와 싸워서 그를 쓰러트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에르딘은 아는 바가 없었다.
그 순간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바로 레바테인 공작과 시무르 칸의 대결이었다.
두 명의 오러 마스터는 대결을 하다가 아브람의 개입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시무르 칸이 누군가와 싸웠고 누군가의 정체는 미궁 속으로 사라졌다.
‘설마……!’
에르딘이 놀란 표정으로 제론을 쳐다봤다. 하지만 제론은 다른 곳을 훑어보느라 에르딘의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가능성은 있어.’
제론이 유한과 함께 오우거를 쓰러트렸다고 알려졌으나 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아는 몇 명 중 한 명이 바로 에르딘이었다.
‘오우거를 쓰러트리실 정도면 가능성이 충분해.’
오우거의 강함은 오러 마스터에 비견된다.
물론 오우거가 오러 마스터와 막상막하로 싸운다는 말은 아니었다.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 여럿이 있거나 오우거 헌터로 불리는 프로 헌터가 다수 있으면 충분히 사냥이 가능했다.
즉, 단독으로 오우거를 상대할 무력을 가진 존재가 오러 마스터밖에 없다는 말이 정확했다. 그런데 제론이 평소에 습관처럼 하는 말을 들어보면 오러 마스터는 별것 아닌 것처럼 비유했다.
‘그래, 분명해.’
에르딘은 고심한 결과 시무르 칸을 꺾은 존재가 제론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럼요. 제론 님께서 오러 마스터를 꺾은 사실을 알게 되면 모두가 설설 기며 올 거예요.”
“귀찮아질까 봐 말 안 하고 있…는……?”
제론은 코웃음을 치다가 말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린 순간 에르딘과 시선이 마주쳤다.
‘X발. 실수했다.’
에르딘이 눈웃음치고 있었다. 호텔에서 시무르 칸과 싸운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제론이 변명하려는 순간 녀석은 손을 들어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곤 지(?)가 말했다.
“네. 네. 제론 님은 시무르 칸과 싸운 적이 없어요.”
“젠장.”
“아, 물론 그를 쓰러트린 적도 없고요.”
“그으래. 정말로 고오오맙다.”
“천만에요. 저는 제론 님의 집사이자 가신이니까요.”
에르딘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입술 위로 검지를 세우며 작게 속삭였다.
“제론 님께서 괜찮다고 하실 때까지 비밀을 지킬게요.”
“X라게 고맙다.”
제론이 이를 빠드득 갈며 분노 스택을 쌓았다.
‘언젠간 반드시 복수하고 말 테다!’
마음속으로 복수를 다짐하고, 또 다짐한 제론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