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91)
제91화
91화
제론은 천천히 여행 채비를 갖췄다.
누나의 결혼식 때문에 아이언하트 공작성으로 오는 길에 필요한 물건을 전부 가져와서 특별히 챙겨야 할 것은 따로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빼먹은 물건이 있는지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다.
에르딘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변장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변장?”
제론은 듣자마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어, 음. 가발?”
“응. 기각.”
“아니면 얼굴에 분칠이라도 할까요?”
“응. 헛소리.”
“염색은 어때요?”
“그건 좋다.”
에르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론은 로한에게 가서 염색약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런 건 따로 구비하고 있지 않아.”
“흐음.”
“하지만 아티팩트가 있지.”
“진짜? 그거 얼마나 하냐?”
“우리 사이에 무슨.”
로한이 콧방귀를 뀌고 방으로 돌아가 작은 귀찌를 가지고 나왔다.
뚫은 귀의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끼는 실리콘 귀걸이처럼 크기가 작고, 피어싱 형태로 되어 있어서 뒤까지 잘 고정시켜 줬다.
몸을 격하게 움직여도 빠지거나 거슬리는 일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얼마라고?”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들켰네.”
제론이 키득 웃으며 바로 귀에 꽂았다. 침이 날카롭지 않아서 내공으로 살짝 둘러싸서 귓불을 뚫었다. 꽤나 따끔거렸다.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막고 회복력과 재생력을 촉진시켰다.
그때였다.
“어?”
에르딘이 깜짝 놀라며 손거울을 가져왔다.
제론이 들여다보니 머리카락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음에 드네.”
검은색 머리카락은 제론에게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유민현.’
생김새는 다르지만 머리카락이 검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거 빼면 다시 색이 돌아와.”
“편리하네. 이거 비싼 거 아냐?”
“비쌌으면 그냥 줬겠냐?”
로한이 피식 웃는다.
아티팩트는 최소한 몇백 골드부터 시작된다. 그런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준 로한에게 제론은 크게 고마움을 느꼈다.
“짜식.”
“그렇게 좋으면 한 대만 쳐도 되냐?”
“안 돼.”
“치사하네.”
제론은 아쉬워하는 로한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려주고 등에 가방을 멨다. 이제는 진짜로 떠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여기서 계속 노닥거리며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조심히 가라.”
마지막으로 제론을 배웅해준 사람은 누나였다.
누나가 시크하게 말하며 돈이 든 주머니를 던졌다.
제론은 주머니를 받으며 씨익 웃었다.
“나중에 2배로 돌려줄게.”
“2배 말고 10배로 돌려주러 와.”
“알겠어.”
한숨을 내쉬듯 ‘멍청이.’라고 중얼거리는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공작성을 빠져나갔다.
에르딘이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에단의 은신처’!”
그곳에서 유한 선생님과 만나기로 했으니까.
* * *
모두가 퇴근을 한 시각.
유한은 집무실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서류에는 ‘전투 실습 계획 보고서’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후우.”
유한이 잠시 서류를 내려놓고 손깍지를 껴 턱 밑에 받쳤다.
쉽게 결정하기 힘든 고민이 생길 때마다 나오는 습관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곧 유한의 한숨 소리가 집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 * *
제론은 곧장 ‘에단의 은신처’로 향했다.
오른 왕국의 중심인 수도를 기준으로 아이언하트 공작령이 서쪽에 있다면 ‘에단의 은신처’는 남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방향으로 보면 엄청 멀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시간으로 계산하면 한 달의 거리였다. 그 거리가 짧다는 건 아니었다. 약속된 날짜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이동해야 했다.
물론 편하게 이동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앗 따가워!”
에르딘이 뺨을 스친 나뭇가지에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제론은 엄살인 것을 알고 있어서 사뿐히 무시하고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놀렸다. 경사가 거의 70도에 가까웠지만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편안한 발놀림이었다.
덕분에 제론을 따라가는 에르딘만 죽을 맛이었다.
‘따라가는 건 정말 힘들다고요!’
필사적으로 따라잡느라 숨이 턱 막혀서 말도 튀어 나가지 않았다.
산 중턱을 올랐을 무렵 제론이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 잠시 쉬자고 말하며 멈췄다.
“헉! 헉! 헉!”
에르딘은 바로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는 모습이 굉장히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물통을 꺼낸 제론이 마개를 열어 녀석의 입에 물려줬다.
“꿀꺽! 꿀꺽!”
“천천히 마셔. 그러다가 큰일 난다.”
탈수증상을 보일 때 갑자기 물을 많이 마시면 몸에 좋지 않다. 핏속에 나트륨이 희석되며 신장에 과부하가 걸리고 수분 부하가 배설되지 않는다.
이 정도까지는 몸이 붓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뇌에 영향을 미치면 발작이나 혼수상태에 빠지고 운이 정말 없으면 죽기도 한다.
제론이 바로 옆에 있어서 그 정도로 크게 문제가 번지지는 않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에르딘이 퍼져서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주세요……!”
물통을 살짝 세우니까 에르딘이 안달 나서 팔을 허우적댔다. 그런 녀석의 수혈을 짚어서 살짝(?) 재웠다. 팔이 땅으로 툭 떨어지자 몸을 편안하게 눕혀줬다.
“이거 신법이랑 보법을 알려줬는데 사용도 안 하고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에르딘이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이유가 순수한 체력과 내공만으로 산을 올라왔기 때문이다. 공작성에서 깨달은 신법만 펼쳐도 땀을 조금 흘리면서 잘 따라올 정도는 된다.
“이래서 속성코스는 안 좋다니까.”
속성코스로 에르딘은 빠르게 강해졌지만 응용력이 부족했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
지금처럼 도적 떼와 몬스터를 잘 피해 다니고 있을 때는 상관없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칫 큰 피를 볼지도 모른다.
30분 뒤 녀석을 깨웠다. 반쯤 풀린 시선으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던 에르딘이 곧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가 왜 정신을 잃었던 건가요?”
“너 반쯤 눈 돌아가서 잠깐 잠들게 만들었어.”
“잠들게 했다고요?”
에르딘은 기절시킨 것도 아니고 잠들게 만들었다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정신을 잃기 전보다 몸이 가볍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냥 ‘그렇구나!’라고 넘어가기로 했다.
“너 운룡대구식雲龍大九式은 왜 안 펼치는 거냐?”
운룡대구식은 곤륜파의 신법으로, 구름 속에서 용이 노니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또한 에르딘은 운룡대구식을 배울 때 보법도 함께 익혔는데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을 누비는 모습을 상상해서 만든 용형보龍形步라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들었다면 알겠지만 운룡대구식과 용형보는 한 쌍을 이루는 보법과 신법이다.
2개 중 1개만 펼쳐도 대단한 상승의 신법과 보법이지만 동시에 섞어서 사용하면 무림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엄청난 무공이 된다. 그 정도의 무공인 만큼 대성하기도 힘들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성취만 이뤄도 확실한 효과는 보장했다.
그래서 제론은 에르딘에게 왜 안 펼치냐고 묻는 것이었다.
‘신법이랑 보법을 펼치면 쉽게 올라오는데!’
배워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걸까?
진지하게 제론은 궁금했다.
“어… 그러게요?”
“네가 내 누나였으면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잔소리 들었어.”
“휴. 집사라서 다행이네요.”
에르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론이 눈가를 씰룩거리며 정정해줬다.
“집사가 더 아래거든?”
“아! 그렇군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헛웃음만 나왔다.
슬슬 주인으로서의 권위가 땅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다.
참교육을 시켜줄 때가 되었다.
“앞으로 5시간.”
“……?”
“휴식 시간 없이 산을 탈 거니까 알아서 잘! 따라와.”
제론은 엉덩이를 탈탈 털고 일어나 달렸다. 에르딘이 다급하게 제론을 불러 세우려고 했지만 이미 저 멀리까지 사라지고 있었다.
“가, 같이 가요!”
에르딘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허겁지겁 일어나 뒤따라 달리는 것밖에 없었다.
* * *
“이번에 그 치들이 ‘에단의 은신처’를 다시 사용한다고 하던데?”
고혹적인 목소리가 말하자 5명의 인영이 불빛에 흔들렸다.
‘에단의 은신처’는 오우거 사건 이후 8년 동안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아카데미의 교장 아브람이 오랜 시간 조사를 해와서 육망성의 6인 역시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경계가 풀린 모양이었다.
“다시 수작을 부렸다가는 꼬리가 잡힐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경박한 목소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고혹적인 목소리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꼬리가 붙잡힐 정도면 실력이 없는 거지.”
“이걸 이렇게 도발하네.”
경박한 목소리가 투덜거렸다.
“그만.”
허스키한 목소리가 말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야만의 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잘 되어 가고 있어요.”
가녀린 목소리가 대답했다. 경과를 보고하지 않았으나 허스키한 목소리는 개의치 않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꼬리가 잡히면 곤란해.”
“꼬리가 잡히더라도 잘 처리할게요.”
관계자를 제거해서 증거를 없앤다는 뜻이었다.
대화가 끝난 것 같자 경박한 목소리가 다시 묻는다.
“그래서, ‘에단의 은신처’는 어떻게 할 거야?”
“오른 왕국은 당분간 건드리지 않겠다고 말했을 텐데.”
“아쉬워서 그렇지. 트롤 샤먼이랑 트롤 전사 몇 마리가 놀고 있거든. 그것들을 보내면 모조리 다 쓸어버릴 텐데 말이야.”
“그 녀석들은 따로 쓰일 곳이 있다.”
“어디?”
“서대륙.”
* * *
“제론 님!”
에르딘이 뒤에서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 녀석을 쳐다본 제론이 다시 앞으로 보며 달렸다.
“아직 멀었군.”
입에서 단내가 풍길 때까지 달렸지만 운룡대구식과 용형보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쯧쯧. 혀를 찬 제론이 더욱 속도를 높였다.
“제로오오온 님!”
“어. 그래.”
제론은 무심하게 대답하며 달렸다.
대답이 녀석한테 들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시간.
2시간.
3시간.
이윽고 4시간이 되자 녀석은 엉금엉금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체력과 내공으로만 달리는 데 한계가 온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배분을 잘 했는지 4시간이나 버텼다.
‘하지만 봐줄 생각은 없지.’
제론은 에르딘을 버리고 갈 생각까지 했다. 곧 30분이 지나자 녀석의 기척이 제자리에 멈췄다. 실신했는지 몰라도 주변에 몬스터가 없으니까 괜찮았다.
“말년에 무슨 고생이냐.”
투덜거리며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주변에 몬스터가 없는 이유는 제론이 기파를 사방으로 뿌렸기 때문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이곳에 있다고 알린 것이다. 일종의 영역 표시였다. 그래서 본능으로만 움직이거나 기를 느낄 수 있는 놈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힘내라. 힘.”
제론이 건성으로 중얼거리며 잠시 기다리자 에르딘의 기척이 조금씩 움직였다. 처음에는 기어오는 것처럼 느렸지만 천천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움직임이 변했다.
드디어 운룡구대식과 용형보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저 멀리서 에르딘이 신법과 보법을 펼치며 다가왔다.
점점 녀석의 신형이 확대되듯 커졌다.
“어이어이! 믿고 있었다구?!”
제론이 엄지를 척! 들고 외쳤다.
그런데 에르딘의 손에는 창이 들려 있었다.
“죽엇-!”
“이 미친놈이!”
제론은 녀석의 공격을 피한 뒤 뒷목을 때려 기절시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