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92)
제92화
92화
“예? 제가 그랬다고요?”
에르딘이 뒷목을 주무르며 묻는다. 녀석은 어제의 기억이 없다고 했다. 뒷목을 맞고 기절한 탓에 기억이 날아간 모양이었다.
제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줬다.
“에이. 설마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피식 웃고 만다.
평소 녀석의 행동을 생각하면 믿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눈이 완전히 뒤집어진 에르딘은 어제 제론도 처음 봤다. 자신을 보자마자 대뜸 공격까지 할 줄 몰랐다.
‘앞으로 조심해야겠군. 혹시나 또 눈 돌아가서 공격하면 큰일이니까.’
어제의 일에 대해서 질책할 생각은 없었다.
에르딘이 궁지에 몰릴 때까지 심하게 몰아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녀석을 위한 일이었다고 하지만 그건 변명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편해지자고 그런 거니까.’
제론은 끓여놓은 수프를 그릇에 담아 건넸다.
뒷목을 주무르던 녀석이 그릇을 받아서 허겁지겁 들이마셨다.
“앗 뜨거!”
“천천히 먹어. 그러다가 체한다.”
“넵!”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서 식혀서 먹는다. 눈이 뒤집히면 위아래를 분간하지 못하지만 제정신일 때는 말을 참 잘 듣는다.
“한 그릇 더 주세요.”
“그럴 줄 알고 넉넉하게 만들어놨지.”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온 냄비는 3명에서 4명이 배불리 먹을 정도로 컸다. 어제 하루 종일 굶었던 에르딘을 위해 그 냄비가 가득 넘쳐서 흐르기 직전이 될 정도로 잔뜩 만들어놨다.
에르딘은 4그릇을 더 비워내고 만족했는지 벌러덩 드러눕고 쉬다가 급하게 화장실을 찾았다. 하지만 산속에 화장실이 있을 리가 없었다.
휴지를 던져주며 근처 풀숲에 숨어서 잘 해결하라고 하자 야만인을 쳐다보는 시선을 날리더니 툴툴대며 사라졌다.
잠시 후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차단한 제론이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했다.
“제가 치우려고 했는데…….”
“응. 그 냄새부터 치워.”
“진짜 제론 님은 밉상 중의 밉상이에요.”
“응. 알고 있어.”
에르딘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멀어지자 제론은 야영의 흔적을 없애고 이동했다. 어제의 일로 본래 계획보다 2배는 많이 움직여서 살짝 여유가 생겼지만 확실한 게 좋았다.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다시 시간이 촉박해진다.
“제론 님, 이거 의식하고 움직이려니까 조금 힘든데요?”
에르딘은 무의식 속에서 펼쳤던 운룡구대식과 용형법을 의식하고 펼치려고 하자 여러 차례 발이 꼬이며 휘청거렸다.
“처음에는 다 그래.”
제론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진짜였다.
몸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운룡구대식과 용형법을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건 불가능하다. 2개의 신법과 보법을 하나로 합치면 무림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무공이었으니까. 누구라도 쉽게 해낼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무공이 아니라 저잣거리에서도 구할 수 있는 가짜 무공이다.
“네. 네. 처음에는 다 그렇죠.”
에르딘이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저런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하는 방법 없으려나?’
발이 자꾸 꼬여서 그런지 따라가기 벅차다.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낫긴 했다.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부터가 그랬다.
그전에는 악에 받쳐서 외치던 게 전부였다. 잠깐이라도 휴식 시간이 생기면 드러누워서 숨을 몰아 내쉬는 게 고작이었다.
지금은 움직이면서도 뭐가 잘못됐는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히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런데 왜 말은 안 타는 건가요?”
“느리니까.”
“말이 느리…….”
에르딘은 황당한 표정으로 말하다가 지닌 일정을 떠올려보고선 납득하고 말았다. 아이언하트 공작성을 떠난 지도 10일이 지났다. 그런데 벌써 공작령을 벗어나 바호마르 백작령을 절반 이상 지나쳤다. 말을 타고 움직였다면 아직도 공작령을 못 벗어났거나 백작령에 막 들어섰을 것이다.
“그리고 너 신법이랑 보법 연습도 해야 하고.”
“주목적이 그거였군요.”
“오러 익스퍼트 상급이 됐다고 해서 네가 그 힘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대련은 몰라도 실전에서 10프로는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으음.”
에르딘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이라고 겪은 건 약한 몬스터 몇십 마리를 상대해본 게 전부였다.
제론이 가려고 하는 장소들은 하나같이 위험천만한 곳이라서 오우거 같은 무시무시한 녀석들도 나타날 것이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제 실력을 뽐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역시 생각이 깊으신 분이셔.’
에르딘은 새삼 제론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다.
최근 그 생각이 많이 흔들렸었지만 이번 일로 바뀌었다.
‘이런 분을 따르기로 한 내 선택은 역시 옳…….’
“사슴이다!”
제론이 눈을 희번덕 뜨며 슈슈슉- 사라졌다.
“……옳았던 걸까?”
에르딘이 처음으로 의심을 한 순간이었다.
곧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에르딘은 제론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제론 님! 어디 계세요?!”
* * *
2개의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바호마르 백작령의 경계를 통과하자 ‘에단의 은신처’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제론은 쫄깃쫄깃한 육포를 질겅이며 말했다.
“좀만 더 힘내. 거의 다 도착했으니까.”
“그 말만 벌써 몇 번째 듣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20번?”
“정확하게 31번입니다.”
“쩨쩨하게 그런 걸 세고 있었냐?”
에르딘은 이마에 핏대가 서는 것을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육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어 삼켰다.
“아, 그리고 앞으로 너는 내 동료라고 소개할 거야.”
“동료요?”
“내 위장 신분이 뭐냐?”
“B등급 용병이죠. …아! 그러네요. 용병이 집사를 데리고 다니는 건 확실히 이상하죠.”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넌 참 대단해.”
에르딘은 이마의 핏대가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어 오르자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화를 식혔다. 육포를 한 개 더 꺼내서 질겅질겅 씹어 삼켰다. 이러다가 습관이 될까 봐 무서웠다.
‘제론 님을 씹는 것보다는 낫지.’
나름 위로를 하며 열심히 걸었다.
사슴고기로 만든 육포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처음에는 피비린내 때문에 속이 뒤집어졌지만 고된 여정으로 힘들어서 몇 번이나 토악질을 하다 보니 비위가 좋아졌고 덕분에 즐기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이게 바로 식감이라는 건가?’
적응한 것을 식감으로 착각한 에르딘이었다.
며칠 뒤 ‘에단의 은신처’에 도착한 제론과 에르딘은 왕실의 정찰대와 마주쳤다.
아카데미 전투 실습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정찰대가 제론과 에르딘을 발견하자 수상쩍다고 여기고 빠르게 포위했다.
“정체를 밝혀라!”
정찰대 대장인 왕실 기사가 검을 뽑아 겨누며 외쳤다.
제론과 에르딘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양손을 들고 정체를 밝혔다. 아카데미의 졸업생이고 이번 전투 실습에서 특별초청을 받아서 왔다고 말하며 신분증을 제시했다.
병사가 다가와 받아 왕실 기사에게 가져갔다.
왕실 기사는 자세하게 확인한 뒤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다가와 인사했다.
“제로니아 페리안 경. 환영합니다.”
제론은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해서 기사의 작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경’이라는 호칭으로 불린 것이다. 또한 왕실 기사가 존댓말로 한 이유는 왕실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저는 왕실에서 선발로 파견된 정찰대장 기사 코린 하르디온이라고 합니다.”
“코린 하르디온 경.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실 기사 코린은 제론의 거만하지 않은 태도가 마음에 든 모양인지 호의가 담긴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의 숙영지로 안내했다.
숙영지는 ‘에단의 은신처’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져 있었다. 이유가 대충 짐작되었다. 병사들이 돌아가며 밤새 보초를 서 있다고 해도 몬스터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에서 머무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숙영지에 도착해서 천막을 쳤다.
병사들이 도와주겠다고 말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정찰을 한 것만으로도 지쳐 있을 병사들이다. 같은 정찰대도 아니고 민폐를 끼칠 수 없었다.
물론 제론이 평범한 귀족이 아니기 때문에 한 생각이었다.
보통의 귀족이라면 병사들이 천막을 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하르디온 경. 죄송하지만 식사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코린은 제론의 그런 행동이 마음에 쏙 드는지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그가 식사를 2인분 추가시키라고 전달하러 간 사이 에르딘이 제론을 보며 감탄했다.
“한 10년 묵은 귀족이 배 속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 뻔뻔함은 저도 한 수 배워야겠네요.”
“이건 뻔뻔한 게 아니라 처세술이라는 거다.”
“그게 그거죠.”
“아 다르고 어 다르거든?”
“북부대륙인 다르고 남부대륙인 다르다는 말인가요?”
“그건 진짜 인종차별이고 인마.”
에르딘이 머쓱해진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후 코린이 찾아와 식사 준비가 끝났다고 전했다.
식사를 마치자 밤이 되었다.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하지만 병사들의 숫자가 수백 명이었다. 먹잇감이 부족해서 굶주려 눈 돌아가지 않는 이상 짐승들이 숙영지를 공격하는 일은 없다.
이튿날 아카데미에서 도착했다. 유한이 제론을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152기 수석졸업생 제로니아 페리안 경이다.”
“반갑습니다. 후배님들. 유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152기 수석졸업생 제로니아 페리안이라고 합니다. 딱딱하게 ‘경’이라는 호칭보다는 편안하게 ‘선배’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론이 인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질문을 받기로 했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많이 질문했다.
“선배님의 몸속에는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는 소문이 있는데, 진짜인가요?”
“아… 그런 소문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지 몰랐네요.”
제론은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전 100프로 순수한 인간입니다. 다른 종족의 피가 섞여 있지 않습니다.”
“아……!”
“그럼 헛소문이었던 거야?”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제론은 하하 웃으며 생각했다.
‘5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 소문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네.’
유한이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다른 질문을 받았다.
“선배님께서는 왜 초청을 수락하셨나요?”
“아카데미의 생활이 제게 많은 추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이런저런 질문을 계속 받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유한이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전투 실습을 시작했다.
잠깐의 여유가 생긴 사이 제론에게 다가와 말했다.
“받아라.”
얇은 책자였다.
받아서 품속에 넣는 척 아공간 주머니로 직행시켰다.
잠시 머뭇거린 유한이 말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아카데미를 관두기로 했다.”
“예?”
“내 낯짝은 그렇게 두껍지 못하다.”
유한은 제론에게 목숨을 건진 빚을 갚기 위해서 정보를 몰래 빼돌렸다. 그 행동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아카데미 측에서는 아직 모른다고 하지만 태연하게 계속 머무를 자신이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잠시 쉬려고 한다.”
“그럼 페리안 자작가에서 쉬시는 건 어떠세요?”
제론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