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97)
제97화
97화
“누가 봐도 저쪽이 악당 아니냐?”
“말하는 게 그렇다는 거죠. 제론 님이 진짜 악당이라는 게 아니라 말하는 게요.”
“어쨌거나 나보고 악당 같다고 한 거잖아.”
“남자가 쩨쩨하게 꼬투리 잡고 그러는 거 아니랬어요.”
“누가? 어떤……!”
“아버지께서요.”
“…분인지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정말로 멋진 상남자시구나.”
제론은 진심을 꿀꺽 삼켰다. 하마터면 탈룰라 할 뻔했다.
“두 번째 실수는 알겠어요. 그래서 다음은요?”
“세 번째 실수는 아직도 무공을 제대로 연계시키지 못한다는 거야. 음. 이 녀석들이 너무 약해서 시범을 보여주기 힘드네.”
“저 남자도요?”
“쟤? 한 10명 있으면 되려나?”
남자가 시커먼 안색으로 볼살을 푸들거렸지만 손가락 하나로 검을 막았던 제론의 엄청난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 에르딘은 위협적으로 느끼지 못했다.
“뭐 경험은 좀 많은 거 같은데 그래 봐야 익스퍼트 중급이지.”
“와! 진짜 재수 없다.”
“자꾸 딴죽 걸래?”
“딴죽 거는 게 아니라 사실인 걸 어떡해요.”
제론과 에르딘이 투닥거리기 시작하자 남자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지금이 도망칠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두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제론과 시선이 마주쳤다.
“마지막 네 번째 실수.”
“실수가 4개나 됐어요?”
“안 될 거 같으면 빠르게 도망쳤어야 했어.”
남자가 뒷걸음치던 자세로 얼어붙었다.
제론이 남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점점 가까워졌지만 남자는 도망치지 못했다. 도망치는 순간 어떻게 될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편하게 죽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주머니 속에는…….”
“그래. 절대로 포기하지 못할 만큼 소중한 물건이 들어 있었겠지. 그래도 도망쳤어야 했어. 혼자서 찾아오는 게 불가능하다면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야.”
에르딘이 하얗게 색이 변할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있잖아?”
귓속을 파고든 목소리에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제론의 넓은 등이 보였다. 다른 말과 표현은 필요 없었다.
듬직했다.
거인巨人처럼 보였다.
왜 제론을 따르기로 했는지 기억났다. 그가 큰사람-거인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 역시 제론의 발자취를, 그의 옆에서 함께 걸어가야겠다는 운명을 느꼈다. 단순히 집사 가문에서 태어나 집사가 되어야 하는 숙명 때문이 아니었다.
“역시 제론 님은…….”
“지켜봐.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순순히 당할 것 같……!”
남자가 혀를 깨물어 정신을 차리고 공격했다. 제론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검은 제론에게 닿지 못했다. 검이 휘둘러져 온 순간 손이 뱀처럼 움직여 목을 붙잡았다.
철그렁!
손에 든 검이 땅으로 떨어졌다. 숨이 턱 막히며 손아귀에 힘이 풀려버린 것이다. 제론은 씨익 웃어줬다. 남자의 눈에는 악마의 미소처럼 섬뜩하게 보였다. 목을 움켜잡았던 손을 풀고 뒤쪽으로 던졌다.
쿠당탕-!
남자가 벽에 처박혔다.
아지트 안에서 몰래 바깥을 훔쳐보던 최고 형님과 데릭이 이를 딱딱딱 부딪치며 뒷문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곳에는 벽에 처박힌 남자가 데려온 또 다른 오러 유저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자가 나선 이상 손쉽게 정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쉬고 있었고, 좀처럼 시끄러운 소리가 그치지 않자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지금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 너희가 왜 안 오나 싶었다.”
제론은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애당초 에르딘에게 이미 피를 게워낸 남자를 상대로 어떻게 싸우는지 지켜보라고 한 게 아니었다. 지금 막 나타난 오러 유저들을 상대로 녀석이 앞으로 어떻게 싸워야 하나 보여주려고 했다.
“단장님!”
“이게 무슨……!”
오러 유저들은 벽에 처박힌 남자를 단장님이라고 부르며 다급하게 검을 뽑았다. 그리곤 순식간에 제론을 포위했다.
“네놈은 누구냐!”
“그러는 너희는 누구냐?”
제론이 히죽 웃으며 되묻자 오러 유저들이 동시에 공격했다.
10개의 검이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찔러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에르딘을 바라본 제론이 입 모양으로 말했다.
‘절대로 시선 떼지 마.’
이제부터 딱 에르딘의 수준으로 싸움을 할 거니까.
육체적인 능력과 내공까지 전부 에르딘에 맞췄다.
즉, 이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면 오러 유저 10명 정도는 우습게 발라버린다는 말이다.
제론이 씨익 웃고 진각을 밟았다.
쿵!
가벼운 진동과 함께 높이 뛰었다. 10개의 검이 허공을 찔렀다. 그 위로 가볍게 착지한 제론은 어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러 유저의 뺨을 툭 건드렸다.
“그러다가 아주 뒈지는 거야.”
파각-!
제론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발꿈치로 정수리에 꽂았다.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가 나며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남은 9명의 오러 유저들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제론은 어느새 한 명의 코앞까지 쫓아가 팔꿈치로 안면을 찍었다. 이번에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거 제가 할 수 있는 거 맞나요?”
“내가 박투술도 알려줬잖아. 그리고 이건 사실 마구잡이 싸움에 가깝다고?”
“음. 확실히 그렇긴 해요.”
제론은 계속 지켜보라며 고갯짓하고 다음 녀석을 쫓아갔다.
오러 유저들은 제론이 압도적인 차이로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일제히 산개하며 벽에 처박힌 남자를 챙기고 도망쳤다.
“이런 건 생각 못 했는데.”
“그냥 쫓아가면 되잖아요?”
“네 수준에 맞춰서 싸운다고 했잖아.”
“그럼 어떡하게요?”
“내버려 둬야지. 몇 놈은 잡고.”
제론은 말하면서 오러 유저들을 차근차근 쓰러트렸다.
특별한 초식을 사용하지 않고 전부 맨손으로 때려눕혔다.
남자를 들쳐 멘 오러 유저는 도망치는 데 성공했지만 나머지는 그러지 못했다.
“큭큭……!”
기절하지 않은 오러 유저가 음침하게 웃었다.
제론이 손바닥을 탈탈 털고 녀석을 쳐다봤다.
“우리한테서 아무것도…….”
털썩.
오러 유저는 검게 죽은 피를 입가에 흘리며 절명했다.
제론이 다가가 확인하자 독은 아니었다.
“아티팩트인가?”
은은하게 남은 마나의 잔향.
아티팩트나 마법으로 오러 유저들을 죽게 만든 것이다.
“이제 알겠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어, 음. 아니요.”
“내가 기껏 중요한 놈을 놔주면서 시범까지 보여줬는데 이러기야?”
“제론 님이 제 수준에 맞춘다고 해서 제가 그대로 따라 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죠. 머릿속에 든 지식이나 경험부터가 다른데요.”
“하긴. 그건 맞아. 너 같은 평범한 사람이 나를 어떻게 따라 하겠어?”
“우와. 진짜 재수 없다.”
“너 요즘 말이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막 튀어나온다?”
“아무튼, 제 물건부터 돌려받죠.”
에르딘은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최고 형님과 데릭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데릭이 눈물을 질질 짜며 최고 형님을 쳐다봤고, 그가 덜덜 떠는 손으로 주머니를 건넸다.
“금화가 몇 개 비는데?”
“자, 잠시만요.”
데릭이 몸속에 숨겨둔 금화를 꺼냈다.
그런데 마지막 1개를 숨긴 위치가 너무 더러웠다.
“팬티에 숨겨 놓는 건 처음 봤네.”
제론이 어처구니가 없어져 웃고 말았다.
에르딘은 금화를 돌려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 * *
신고를 받은 경비대가 출동했다.
“B등급과 C등급 용병이라고요?”
경비대장 제임스가 의문을 드러냈다. B등급 용병부터는 마나 혹은 오러를 다룰 줄 안다. 하지만 2명이 쓰러트린 놈들은 전부 오러 유저였다. 상식적으로 C등급을 데리고 쓰러트릴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B등급과 C등급 용병 둘이 오러 유저 20명과 싸워서 이겼다고?’
소매치기들이 증언하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경비대장 제임스는 제론과 에르딘을 데려가서 취조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명분이 없어서 시체를 수습하고 소매치기들만 잡아갔다.
“혹시 이놈들한테 현상금 같은 건 안 걸려 있습니까?”
“아, 현상금 헌터셨습니까?”
제론이 태연하게 묻자 경비대장 제임스의 표정이 변했다.
현상금 헌터는 돈을 목적으로 의뢰받아서 등급이 잘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낮은 등급에 비해 강한 경우가 많았다. 오러 유저 20명이라는 숫자를 생각하면 100프로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납득은 됐다.
‘아론 로이트. 에르딘 테페론.’
경비대장 제임스는 두 사람의 이름을 외우고 현상금 수배서를 쭉 찾아봤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수배서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소매치기 소탕에 도움을 준 포상금 10실버가 끝이었다.
“쩝.”
제론은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그때 경비대장 제임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지금 현상금 의뢰를 받고 계신 것이 있으십니까?”
“지금은 없습니다만.”
제론은 경비대장 제임스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뜨는 환상을 봤다.
‘퀘스트다!’
“마침 잘 됐군요. 아주 짭짤한 현상금 의뢰가 있습니다.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바로 가시죠.”
“하하! 알겠습니다.”
경비대장 제임스가 몇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앞장섰다.
제론과 에르딘이 그를 따라가며 속닥거렸다.
“제론 님, 정말 괜찮은 거예요?”
“뭐가?”
“정체요. 저희의 정체!”
“용병패 있잖아? 후작성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안면식을 가진 적도 없으니까 알아보지는 못할걸? 그리고 들키면 뭐 어때? 우리 잘못한 거 없어. 오히려 소매치기들 소탕하는 데 공을 세웠지.”
“아… 그러네요.”
“넌 가끔 보면 참 멍청해.”
“제론 님은 항상 재수 없어요.”
제론은 뼈를 맞고 에르딘한테 꿀밤을 먹였다.
“아얏!”
“맛있지? 언제든 말만 해. 잔뜩 먹여 줄 테니까.”
“저도 먹여드리고 싶은데…… 아 물론 진심은 아니고요.”
에르딘이 제론의 사나운 눈초리에 다급하게 말을 돌렸다.
“자자.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경비대장 제임스는 경비초소로 두 명을 들였다. 경비초소 안에는 수배서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중 벽에 붙은 것을 하나 떼서 보여줬다.
“‘검은 고양이’ 페르논?”
“예. 요즘 중앙대륙에서 엄청 극성인 도둑놈입니다.”
제론은 어깨 위에 있는 네로를 쳐다봤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네로는 왜 쳐다보냐고 표정으로 물었고 제론은 어깨를 으쓱하고 수배서를 살펴봤다. 수배서에는 ‘검은 고양이’ 페르논에 대한 정보가 제법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도시를 지나쳐간 현상금 헌터 분들께는 전부 의뢰를 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왜 저희에게도 의뢰를 하시는 건가요?”
“일단 실력이 비범하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검은 고양이’ 페르논을 꼭 붙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가 중요한가 보군요.”
“예.”
“이유를 말해주시지 않는 걸 봐선 말하지 못하는 사정일 테고… 아무튼, 알겠습니다. 이놈을 보게 된다면 붙잡거나, 붙잡지 못하더라도 이쪽으로 연락을 하겠습니다.”
“알아내신 정보가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소식을 전해주십시오. 후작령과 거리가 멀다면 적색 마탑이나 마탑 지부로 가셔도 됩니다.”
경비대장 제임스는 볼일을 마쳤는지 소매치기 소탕 포상금을 건넸다.
제론과 에르딘은 경비초소를 나가며 말했다.
“적색 마탑의 물건을 훔친 모양인데?”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후작성 혹은 적색 마탑을 털었다.
‘검은 고양이’ 페르논의 실력은 두말할 것 없이 대단하리라.
‘재밌겠네.’
제론이 네로의 머리를 살살 긁으며 생각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