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99)
제99화
99화
한참을 기다리던 에르딘은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갔다.
제론이 에르딘의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자 물었다.
“왜 그냥 왔어?”
“안 계셨어요. 어디 가신 모양이에요.”
“약속 시간을 어기실 분은 아니신데.”
“척하면 척인가요?”
제론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장간으로 갔다. 역시나 노인은 없었다. 풀무질을 계속 하지 않았는지 열기가 많이 식어 대장간 안이 서늘해졌다. 조금은 쓸쓸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제론이 작업장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그전까지 흔적을 살펴봤다. 끌려가거나 납치당한 흔적이 없었다. 조금 어질러진 흔적이 남았지만 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기셔서 급하게 가신 것 같은데?”
“음. 그럼 어떡할까요?”
“하루 정도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안 오시면 우리도 출발해야지.”
제론과 에르딘이 대장간을 나가자 대장장이로 보이는 남자들과 마주쳤다.
“혹시 안에 스승님께서 계셨습니까?”
“스승님?”
“이 대장간의 주인 말입니다.”
“아침부터 쭉 안 보이시던데요?”
“역시 그렇군요.”
노인의 제자인 대장장이들이 무거운 안색으로 돌아섰다.
에르딘이 한 명을 붙잡아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사실 스승님께서는 오래전에 은퇴하셨습니다. 자신이 만든 무기로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큰 회의감을 느끼고 계셨는데 뒤를 이어야 할 아들마저 무기 제작 의뢰를 받고 돌아오던 도중 도적 떼의 습격으로…… 으음. 참변을 당해버리는 바람에…….”
“…….”
“그런 상황이셨는데…… 어느 날 롬멜 후작의 2공자가 찾아와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기를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니. 사실 명령이었죠. 만들지 않으면 대장간을 무너트리겠다고 협박까지 했으니까요.”
그 뒤로 대장장이가 한 이야기는 뻔하디뻔한 스토리였다.
롬멜 후작의 2공자는 계속 찾아와 무기를 만들라고 했고, 노인-명장은 거절했다.
그런데 어젯밤에 또다시 나타나 명령했지만 이번에도 거절했는데 평소와 다르게 농기구가 아닌 창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불같이 화냈다.
병사들까지 끌고 와 창을 빼앗았다. 노인은 그것을 돌려받기 위해 후작성으로 갔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라는 겁니다.”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렸네요.”
“롬멜 후작의 2공자는 아주 망나니로 유명합니다.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으면 강제로 취하고 물건을 빼앗는 일도 빈번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걱정을 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왜 이곳에서 계속 계셨던 건가요?”
“아들의 마지막 흔적이 남은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셨습니다. 저희도 다른 도시로 가자고 계속 말해봤지만 고집이 워낙 세셔서…….”
대장장이는 그 말을 끝으로 다른 대장장이들과 함께 후작성으로 갔다.
제론과 에르딘은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뭐를?”
“후작성으로 가실 거잖아요. 뭐… 어떻게 하실 건지 알아야 제가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죠.”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나갔냐?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제론은 뿌듯하게 웃으며 에르딘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그러나 에르딘이 뒤로 몸을 빼는 바람에 손이 허공을 만졌다.
“뻘쭘하네.”
“제 나이가 이제 20살인데 언제까지 어린애 취급하려고요?”
“키가…….”
“아, 됐고. 후작성으로 가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뒤집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차라리 그게 더 속 편할 거 같은데요.”
“농담도.”
제론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에르딘은 진심이었다.
‘롬멜 후작이 강경파였지?’
오른 왕국은 왕실을 포함해 동서남북까지 5개의 파벌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5개의 파벌은 지역으로 나누어진 것이고 정치적인 색깔로 파벌을 나누면 크게 2가지였다.
바로 강경파와 온건파였다.
롬멜 후작은 서쪽 파벌의 중심이자 동시에 강경파였다.
‘페리안 자작님은 온건파셨고.’
최악까지 생각하면 강경파와 온건파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덜 최악으로 생각해도 서쪽 파벌과 남쪽 파벌의 싸움이 된다. 정체를 안 들키면 된다지만 도시로 들어오며 제시한 용병패의 기록이 남았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계속 추적한다면 알아내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좋아. 결정했어.”
“네?! 뭐를요?!”
“네 속이 편안하게 만들어줄게.”
“……설마 그건 아니죠?”
“설마 그게 맞을 거야.”
에르딘이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묻자 제론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뚜두둑-!
제론이 역용술과 축골공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앞에서 지켜보던 에르딘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제론 님 맞죠?”
“어. 나야.”
제론은 대답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아아.”
“목소리는 어떻게 바꾼 거예요?!”
“잘.”
미성에 가까웠던 목소리가 허스키하게 변했다. 거울로 모습을 확인하자 깡패처럼 건들거리게 생긴 남자가 있었다.
“목소리랑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해요?!”
“중요하지. 이 모습으로 후작성에 침투할 건데.”
“어어. 그건 맞는데… 분명 맞는 말이긴 한데…….”
에르딘은 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전설의 폴리모프 마법도 아니고, 환상 마법을 사용해서 모습을 바꾼 것도 아니었다. 뼈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맞춰지고 살이 점토를 주무른 것처럼 움직이더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와! 맙소사! 그것도 무공이에요?”
“무공은 맞는데 자주 하면 안 좋아. 특히 너 정도 경지에서는 잘못하면 영원히 본래 모습으로 못 돌아올 수도 있어.”
“그럼 안 배울래요.”
“나도 잘 안 써. 많이 위험하거든.”
제론은 담담하게 말하며 신분이 들킬 만한 물건들을 꺼내 에르딘에게 줬다. 아직 해가 떠 있지만 상관없었다. 일은 빠르게 처리하는 게 좋았다.
“다녀올게.”
“혹시나 2공자 죽이고 그러지는 마세요. 그러면 정말 일이 엄청 커지니까요.”
“살려는 드릴게.”
“그게 더 불안한 말인 거 아시죠?”
제론은 대답 대신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창문으로 나가다 혹시나 누군가 발견하면 방의 위치를 파악해서 알아낼지도 모르니까.
“어?”
로비로 내려가자 직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론을 쳐다봤다.
“저런 손님이 호텔에 묵고 있던가?”
직원이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뒤따라 나갔지만 제론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내가 귀신을 봤나……?”
그러기에는 아직 해가 쨍쨍했다.
* * *
제론은 후작성 앞에서 잠시 주변을 살폈다.
침투경로와 후작성의 방어체계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마법진이 있네.”
전쟁이 벌어지면 방어마법을 발동시켜 외부의 적을 막으려는 것으로 예상됐다. 확실한 것은 마법이 발동하거나 마법진을 직접 분석해봐야 알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좋은 상황은 아니다.
‘성벽을 넘거나 성벽에 구멍을 뚫고 가는 게 제일 좋겠네.’
성벽 위에는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하지만 대단해 봐야 정예병사 수준이었다. 오러를 다룰 줄 모르는 일개 병사가 제론의 은신술을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했다.
“넘자.”
손과 발로 성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 속도는 평지를 뛰는 것처럼 신속했다. 바로 코앞을 지나쳤는데도 병사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하품을 했다.
성벽을 넘은 제론이 가볍게 착지해서 엄폐했다.
‘구조를 먼저 알아볼 걸 그랬나?’
내공을 흘려서 주위로 퍼트렸다. 감지된 생명체는 새와 벌레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연하게 걸어 다니다간 멀리서 우연히라도 발견할 수 있다. 최대한 조심히, 그리고 빠르게 움직였다. 내공을 계속 흘려서 노인-명장의 위치를 탐색했다.
‘이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흘려보낸 내공이 방어체계인 마법진 앞에서 멈췄다. 기감이 민감한 자라면 알아차린다. 빠르게 흩어내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런 짓은 거의 50년(?) 만이라서 약간의 스릴도 느꼈다.
그런데 금세 난관에 봉착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
롬멜 후작성은 페리안 자작성과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크고 넓었다. 무작정 돌아다녀도 되긴 하겠지만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게 뒤탈이 없다.
‘사람들한테 듣는 수밖에.’
시녀나 시종으로 느껴지는 기척들을 따라갔다.
그들의 대화를 주워들었다.
“후작님께서 곧 돌아오신다면서?”
“아유. 한시라도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어. 2공자 때문에 진짜 숨 막혀 죽겠다니까? 맨날 시녀를 자기 방으로 끌어들여서 다들 불만이 이래저래 장난 아니야.”
“후작님께서 안 계시니 2공자가 말썽이네. 후우. 1공자께서 하필 같이 가시는 바람에…….”
“샤벨타이거 아버지 밑에 놀 새끼가 태어나다니 참 가관이야.”
“아이쿠. 그런 말은 좀 조심해. 누가 듣기라도 하면 나나 자네의 목은 그냥 뎅겅! 하는 거라고.”
시종들의 대화라던가.
“괜찮니?”
“흑흑. 그 새끼 죽이고 싶어요. 어젯밤에…….”
“그래. 그래. 고생 많았다.”
시녀들의 대화라던가.
주로 2공자의 뒷담이 시종들과 시녀들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롬멜 후작과 1공자는 멀쩡하고 대단한 능력을 가졌는지 모두가 샤벨타이거로 비유했지만 2공자는 놀이라고 욕했다.
제론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정보였다.
‘그래도 롬멜 후작과 1공자가 이곳에 없다는 건 알았으니까 됐지.’
롬멜 후작은 적색 마탑의 최고 간부 중 한 명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진지는 몰라도 혹시나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다면 살짝 골치 아파진다. 하지만 없다는 걸 알았으니 됐다. 또한 2공자가 망나니짓을 하는 게 2명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 아버지와 형 때문에 그동안 꾹 참고 있다가 자리를 비우니까 바로 패악을 저지른 거였구먼.’
그런 녀석은 아주 뚝배기를 제대로 깨버려야 하는데.
제론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한 시종과 시녀의 대화가 들렸다.
“놀 새ㄲ… 아니 2공자가 나를 불렀다고?”
“예. 어떡해요?”
“나를 왜 불렀는데?”
“저도 잘 몰라요. 최대한 빨리 병기고로 오라고만 하셨어요.”
“병기고가 한두 개야? 어느 쪽인데?”
“동쪽에 있는 병기고요.”
제론은 대화를 여기까지 듣고 바로 동쪽으로 갔다.
‘고맙습니다. 놀 새끼는 제가 잘 처리할게요.’
에르딘이 그랬다.
2공자를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제론은 에르딘의 말을 마음대로 곡해시켰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니 참 쉽네 쉬워.”
* * *
롬멜 후작의 2공자-통칭 놀 새끼는 명장이 만든 창을 들고 휘리릭! 회전시켰다. 하지만 놀 새끼는 창술의 ‘ㅊ’ 자도 몰랐고 검술을 배운 적도 없었다. 창이 회전하다가 놀 새끼의 손에서 튀어 날아갔다.
창에 맞을 뻔한 시종이 창백해진 낯빛으로 외쳤다.
“어이쿠! 2공자님 조심하십시오!”
“누가 조심해?”
“물론 2공자님이시죠! 귀한 옥체가 상하실까 봐 두렵습니다!”
“킥킥. 이 정도로 쫄지 마. 내 창술 알잖아? 스피어 마스터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나다는 거!”
‘예, 혀를 내두르겠죠. X나게 못할 정도로 뛰어나시니까요.’
시종은 속으로 놀 새끼를 욕했다.
놀 새끼는 시종의 아첨이 기분 좋았던지 히죽 웃으며 노인-명장에게 물었다.
“이거 내 창 맞지?”
“아니오.”
명장이 고개를 저었다.
놀 새끼가 인상을 구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