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이게 촉이 좋았거든요
클레어 씨의 매니저 자격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긴 했지만, 내가 회의에서 할 일은 딱히 없었다. 그냥 구경만 했다.
회의 내용은 클레어 씨의 설명과 다르지 않았다. 던전 공략에 있었던 작전의 검토와 돌발 상황에서의 대처 복기. 그에 따라 누구의 활약이 유효했고 어떤 행동이 발목을 잡았는지.
현장에도 없었고 전체 과정도 지켜보지 않았던 내가 왈가왈부할 내용이 아니었다.
“후.”
한차례 발언을 마친 클레어 씨가 숨을 돌렸다. 나는 그 틈을 타고 물었다.
“저기 있는 것들은 뭔가요?”
“아, 저거. 전리품이에요.”
“전리품?”
“던전 공략하고 획득한 아이템들이요.”
던전 공략의 주요 보상은 몬스터의 사체에서 비롯된다.
어떤 몬스터는 고기를 잘라서 팔기도 하고, 어떤 몬스터는 신체의 특정 부위를 장비 제작에 사용하는 재료로써 사용하기도 한다. 또는 마력이 응축된 돌, 마석을 얻기도 한다.
그러니까 헌터들이 장비하고 있는 갑옷이나 무기, 장신구의 대부분은 몬스터의 사체를 재료로 공방에서 만들어져 나온 것이란 뜻이다. 소모품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아이템들은 모두 [커먼] 등급이다.
하지만 드물게도 완성품이 발견될 때가 있다. 그런 아이템들은 모두 [언커먼] 이상의 등급을 적용하고 공략 참가자 내부 경매를 거친 후, 공개 경매에 내놓는다. 그리고 그 정산금을 분배하는 건데.
“안 팔린 것들이죠.”
“아하.”
어쩐지 취급이 좀 박하더라.
“가져가도 되나요?”
“여기가 뭐 도떼기시장인 줄 아나요?”
“그럴 거면 뭐 하러 갖다 놓은 건데요? 아무도 안 가져가면 저것들은 어떻게 돼요?”
“폐기 처분이죠.”
“폐기 처분?”
“분해해서 마력의 흔적만 추출하거나, 그런 거죠.”
분해해서 가루가 된다라.
기구한 운명이군. 조용히 명복을 빌었다.
「아아악! 제발 살려 주십쇼, 대협!」
“…….”
「야! 이제 와서 안 들리는 척하지 말라고!」
소리의 근원은 바로 그 버려진 아이템 더미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리가 아니었다. 말하는 아이템이 나왔다면 엄청난 화제가 되어서 경매에서 안 팔렸을 리가 없으니까. 적어도 소리가 들린 순간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인간들이 주목했을 거다.
그러나 내 옆에 앉은 클레어 씨는 물론이고, 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그 누구도 아이템 더미에 눈길 하나 주고 있지 않았다. 들리는 건 나 한 명이었다.
이건 전음이었다.
아무래도 진짜 소리를 내는 법은 모르는지 녀석은 전음으로 이 회의실에 있는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반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나도 모르는 척할걸.
이곳에서 전음을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신기해서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한숨을 쉬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전음은 받을 땐 극소량의 내공만 있어도 가능하지만, 보내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시끄러워.」
「대협! 역시 전음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셨군요. 처음 뵈었을 때부터 가능하실 줄 믿고 있었습니다! 대협께선 저 같은 필부도 알아볼 수 있는 고강한 내력이 느껴지는…….」
「시끄럽다고 했다.」
녀석은 즉시 말을 멈췄다.
마음만 같아선 저 아이템 더미를 싹 다 치워 버리고 싶지만, 저것들도 어디까지나 던전 공략의 전리품. 당장 쓰레기통에 처박아도 되는 물건들은 아니었다.
「듣자 하니 안 팔린 것들은 싹 다 분해한다고 하더군. 얌전히 운명을 받아들여.」
「마, 말도 안 됩니다! 이럴 순 없습니다! 저에겐 저 하나만 바라보는 토끼 같은 아내와 여우 같은 자식들이 있단 말입니다!」
「틀렸다.」
게다가 아이템이 무슨 아내와 자식이 있어?
「그러게 쓸모를 증명해서 팔렸어야지.」
「어, 억울합니다! 전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다고요! 제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놈들이……!」
그래 보이긴 했다.
의지를 가진 아이템은 비싸다. 에고 웨펀이라고 해서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말을 하는 무기들이 있는데, 이 녀석들의 값어치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주인에 맞춰 변화하거나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녀석도 생각이란 걸 할 줄 안다는 사실만 밝혀졌으면 밖에서 부르는 가격에 거래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전음밖에 하지 못해 저렇게 잡동사니 취급을 받는 중이었다.
「대협! 제발 절 사 주십시오! 전 이런 데서 끝날 인재가 아닙니다!」
「어떻게 생겼는데?」
「예?」
「여기선 네가 정확히 어떤 놈인지 구분이 안 돼. 어떻게 생긴 놈인지 설명해 봐.」
「저기… 먼저 구매할 의사가 확실하다고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음. 생김새를 불면 잽싸게 치워 버릴 생각이었는데, 들켰나.
「야, 이 악마야!」
「알았다, 알았어. 그럼 한번 들어 보지.」
「들어 본다니, 뭘 말입니까?」
「뭐긴. 증명해 보란 거지, 네 쓸모를.」
난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애초에 돈도 없다. 내가 저기 놓인 아이템 중 하나를 구매할 수 있다면, 그건 사장인 클레어 씨의 동의를 구한 후 그녀가 돈을 지불하는 방법뿐이다.
내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그리고 클레어 씨를 설득하기 위해서. 녀석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내 머릿속에 대고 시끄럽게 소리칠 줄만 아는 놈이라면 굳이 살 이유가 전혀 없지.
「저라면 대협의 내력을 더욱 고강하게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보다 높은 경지. 무인이라면 바라 마지않는 것일 테지요?」
내력이라.
저쪽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환장을 했겠군.
「끝이냐?」
「예? 아니, 끝이라뇨. 내력이라니까요? 이거 진짜 엄청난 겁니다?」
물론 엄청나긴 했다.
외공과 내공을 수련하는 건 강해지기 위해서다. 하지만 세상에 강해지기 위해 수련을 하는 사람은 많다. 자기가 뛰는 동안 옆에 있는 놈도 뛴다. 어쩔 땐 내 머리 위를 훌쩍 날아가는 놈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더 노력해라, 더 열심히 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차이를 만들려면 환단과 같은 외부 수단에 의지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마력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헌터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클레어 씨에게 투자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거짓말치지 마십시오! 강함에 대한 집착 없이 그 정도 경지에 이르렀을 리가……!」
녀석이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래서 끝이냐?」
「…….」
「우리 인연은 여기까진가 보다.」
내 선언에 녀석이 자포자기로 중얼거렸다.
「어휴. 남은 건 내공 주입해서 아픈 사람 기운 좀 나게 하는 건데, 이 인간쓰레기가 그런 걸로 넘어올 것 같진 않고…….」
「합격.」
「예?」
「합격!」
마침 좋았다. 우리 집엔 병원 신세를 지는 사람이 있고, 나한텐 당장 쓰지 않을 내공이 넘쳐났으니.
「…뭐 하는 놈이지?」
남은 건 클레어 씨를 설득하는 일뿐이었다.
“좋아요.”
“…진짜요?”
그 클레어 씨는 맥없을 정도로 간단히 수락했다.
자고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남의 지갑을 열게 하는 일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장인 클레어 씨를 설득하는 게 가장 큰 난관일 줄 알았는데.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클레어 씨가 현금 대신 아이템으로 정산을 받는 게 회의에도 긍정적인 흐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똑같은 소리만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회의가 얼추 마무리됐다. 남은 자세한 사항은 추후에 매니저들이 서류로 협의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회의를 주관하던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서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클레어 씨께서 양보한 덕에 원활하게 끝났군요.”
“매니저가 제안한 일이니까, 감사라면 이쪽에 하시죠.”
“아, 그렇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도율 매니저님이라고 하셨죠? 배려 감사드립니다.”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가 덧붙여서 설명했다.
“미지의 아이템이라고 하면 듣기 좋지만, A급 헌터만 돼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확률이 떨어지죠. 던전 공략 보상을 확률 낮은 복권으로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요.”
“아, 네. 그렇군요.”
인사와 함께 건네받은 아이템은 족자였다. 둘둘 말려 있어서 내용물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펴지지도 않았다.
「내공을 주입해야 펼 수 있습니다, 대협!」
「그래?」
지금 여기서 할 순 없으니, 일단 그만뒀다.
족자를 매만지고 있었더니 클레어 씨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그거죠? 다른 것도 많았는데.”
“이게 촉이 좋았거든요.”
전음에 대해 설명하려면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아서 얼버무렸다.
우린 분명 물건을 건네받고 참가자 중 가장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나서는 길이었다. 그런데 회의실 문틀에 누군가 등을 기대고 서있었다. 우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나?
“지나갑니다.”
“…….”
“저기요, 지나간다고요.”
길을 막고 선 여자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때 클레어 씨가 먼저 앞장서서 몸을 옆으로 돌리고 빠져나갔다.
“그냥 가요.”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게 했다. 도은이가 헌터 중엔 성격 이상한 사람이 많다고 했지. 이거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클레어 씨와 내가 문을 지나가자 목소리가 들렸다.
“다 들었어.”
“…뭘 말입니까?”
“무시해요.”
클레어 씨는 이런 일도 익숙하다는 듯 지나치려 했지만, 이어진 말에 걸음을 멈췄다.
“남자가 사 달란 대로 물건을 사 줘? 천하의 클레어 컴벨도 갈 때까지 갔구만.”
“…….”
클레어 씨에게 귀엣말로 물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그냥 업계 지인이에요.”
“그게 아니지! 동기잖아! 아카데미 동기!”
“아카데미?”
아카데미라면 헌터 아카데미를 말하는 건가?
“헌터 아카데미 [극광] 30기 차석 졸업생, 주하린! 바로 나잖아!”
헌터 아카데미 극광.
그곳의 차석 졸업생이란 말에 귀를 의심했다.
극광은 나도 이름을 들어 본 적 있을 정도로 유명한 헌터 아카데미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최고 수준의 헌터 아카데미 중 하나. 10년 전에도 유명한 헌터 중엔 극광 출신이 많았다.
그곳에서 차석 졸업생이라고 한다면 말 그대로 엄청난 엘리트인 것이다.
“와, 사장님 인맥 미쳤는데요? 저런 헌터가 아는 척을 다 하고…….”
“그쪽 매니저는 보는 눈이 좀 있네.”
“아이고, 과찬이십니다요!”
주하린은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는 얼굴로 어깨를 두드렸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 건지 힘 조절 하는 것도 잊고 퍽퍽 쳐 댔다.
내가 아니었으면 사람 하나 골로 보냈겠군.
호들갑을 떠는 내게 클레어 씨가 차가운 얼굴로 일축했다.
“수석은 접니다.”
“아.”
그와 동시의 주하린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그래서 또 무슨 용건이죠? 시비나 걸러 올 정도로 한가하진 않으실 텐데.”
“나라고 네 얼굴 보고 싶어서 남은 줄 알아?”
주하린이 짜증스레 대꾸하고 분위기를 바꿨다.
“요즘 너 말 많던데. 던전 공략이라면 닥치는 대로 참가하고 다닌다고.”
“…….”
클레어 씨는 부인하지 않았다. 이유라면 나도 짐작이 가능했다. 마석을 구하기 위해서다.
“할 수 있어서 하는 일인데,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 당연히 있지. 너 마지막으로 오염도 측정한 게 언제야.”
“그건…….”
클레어 씨가 입술을 깨물었다.
주하린은 그런 클레어 씨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는 건 아냐. 그래도 몸은 챙기면서 해야지. 안 그래? 너까지 쓰러질 거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
“아, 예. 그러시겠죠. 하여튼 걱정해서 손해 본 기분 만들게 하기 선수라니까.”
주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난 분명 경고했다. 너, 좀만 더 있으면 협회에서 조사도 나올 거야. 라이선스 정지당하기 싫으면 적당히 해라.”
주하린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사라졌다.
둘만 남게 되자 클레어 씨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지시했다.
“가요.”
그리고 먼저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붙은 내가 물었다.
“저기, 클레어 씨. 오염도라는 건……?”
“몰라도 돼요.”
그녀가 선을 그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오늘 일은 도은이한테는 말하지 마요.”
아무리 봐도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