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궁금해?
-전원이 말입니까?
대현의 집행부.
모든 요원들이 소집된 회의. 원탁을 둘러싸고 앉은 이들 중 유일하게 여성의 실루엣을 가진 이가 물었다.
검은 코트와 붉은 가면. 일반인은 물론, 대부분의 헌터들조차도 소문이나 옷자락만을 얼핏 알아채며 살아가는 어둠 속의 존재들이었다.
집행부 소속의 헌터들은 좋게 말하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다들 제멋대로에 손발이라고는 하나도 맞지 않는 족속들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이 별도의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집행부의 모든 이들이, 하나의 임무를 위해 투입되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집행부 소속의 요원들이 반발하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할배, 노망 난 거야? 우리끼리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
한 남자가 낄낄 웃으며 거역하려는 낌새를 보였으나, 집행부의 가장 오랜 선배이자 ‘철완’이라 불리는 노인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입 조심해라. 감히 어떤 분의 판단에 토를 다는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순히 전달에 불과했다. 집행부인 그가 스스로 판단을 할 리는 없었으니.
그렇다는 건, 집행부 전원이 나서야 하는 임무라고 결정한 것은 그보다 위에 있는 유일한 누군가의 지시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는 건…….
회장의 지시.
천명天命이라는 뜻이렷다.
-실수, 실수.
비웃었던 남자가 말을 주워 담았다. 자유분방한 집행부라 해도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그리고 어길 생각이 없는 절대적인 규칙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이 바로 회장인 주대현에 대한 충성심. 그것만큼은 신기할 정도로 모두가 철저했다.
-근데 신기하긴 하네. 난 이런 적이 처음이라. 전에도 이런 적 있나?
없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집행부 전원이 하나의 임무를 위해 손발을 맞추는 것은.
-아가씨 때문인가?
그 말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이번 임무는 다른 임무들과는 조금 궤가 달랐다. 그들이 지금까지 상대해 온 대부분의 적들은 곧 대현 그룹의 적이었다. 목숨을 끊는다 하더라도 전혀 거리낄 이유가 없는 상대.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이번 임무의 ‘목표’를 제지하려 드는 인물이,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인 주하린일 가능성이 높았다.
죽지 않도록, 가능하면 다치지 않도록 상냥하게 에스코트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과연, 그건 아무리 집행부라 해도 성가신 일이긴 했다. 주하린은 온실 속 화초가 아니었다. 오히려 호랑이 새끼에 가까웠지.
-그래도 영 안 내키는데……. 이것들이랑 손을 잡으라고?
-발목이나 잡지 말라고.
-아? 누가 할 소린데.
-시답잖은 싸움은 관두세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이렇듯, 벌써 잡음이 들릴 정도였다.
-어이, 장발. 넌 할 말 없냐? 제일 불만 많을 것 같이 생긴 놈이.
-…….
길게 머리를 기른 남자는 대답 없이 침묵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임무가 모든 집행부원을 끌어들인 초유의 사태가 된 원인. 여우 가면을 쓴 헌터의 참견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탓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때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정리해 둬야 했는데. 뒤늦게 후회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은 자책이 아니라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내용이 어떻든, 우리가 할 일은 임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장발의 남자가 그 말을 남기고 회의실을 떠났다.
-…거, 다 아는 소리 가지고 되게 무게 잡네.
남겨진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 * *
‘말도 안 돼…….’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여우 가면을 쓴 사내가 집행부 소속의 요원들을 모두 제압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집행부라는 자들이,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이나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그중 세 명은 동시에 싸우기까지 했다. 3대 1으로 수적 우세까지 가지고 들어간 전투에서 패배했다.
집행부를 아는 누군가에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설명한다면, 입으로 떠들기는 쉬운 망상 취급을 당할 게 뻔했다.
하지만 믿기지 않아도 이게 현실이었다.
“내가 말했지.”
반면 여우 가면을 쓴 헌터는 쓰러지긴커녕 지친 기색조차 없이 태연하게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꼿꼿이 서 있었다.
“시간 없다고.”
“……!”
쓰러진 집행부원들이 이를 깨물었다. 임무에 실패하는 날이 오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염병……. 움직일 수 있는 놈 있냐?”
“전혀.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이쪽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몸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마력이…….’
점혈點穴.
여우 가면은 틈이 날 때마다 손가락으로 몸 어딘가를 깊게 푹 찔렀다. 상처를 남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손가락이 빠져나온 자리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다.
그러나 이변을 깨달은 건 잠시 후였다. 마력이 길을 잃은 것처럼 갈피를 못 잡더니, 통제를 벗어나 완전히 폭주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평소보다 강한 화력을 낼 수 있었지만, 문제는 소모도 더욱 빨라졌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단기간에 결착을 내기 위해 더욱 전투의 흐름에 박차를 가했지만.
‘괴물이다.’
문제는 그조차도 소용이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모든 마력을 소진하고도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하고 마력 탈진에 걸리고 말았다.
일반인 역시 그렇지만, 각성자 또한 모든 마력을 소모하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탈진 상태에 놓이고 만다. 심지어 평소보다 강한 마력이 드나들어 온몸의 마력 회로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전투 방식……. 들어 본 적도 없다.’
단순히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아닌, 실험이라도 하는 듯한 방식.
한편, 도율 역시 조용히 놀라고 있었다.
‘클레어가 앓는 소리 내던 이유가 있었군.’
도율이 조용히 납득했다.
혈을 찔러 평소 이상의 마력을 운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 이는 클레어를 훈련시키던 방식의 응용이었다.
단순히 심심풀이로 이런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싸움을 통해 익힌 개선점이었다.
파경대계. 노인은 자신의 마력을 퍼뜨려 새로운 규율 속에 도율을 가뒀다. 노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몇 명과의 싸움에서도 그러한 기술을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도율이 상대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혹여 대처 불가능한 무언가라도 나타난다면.
새로 등장한 세 명의 인물은 노인과 같은 소속으로 보였다. 게다가 달리 노인을 우러러 보는 기색도 아니었다. 비슷한 수준이라고 상정한다면, 그들 역시 파경대계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쓰게 두지 않지.’
대주천에는 상당한 집중력이 소요된다. 물론 마력을 다루는 걸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각성자들에게 그것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평소와 달리 마력이 폭주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평소 운전하던 길 위에 빙판이 깔린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변수만 없으면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너희 임무가 주예린의 제거냐?”
“…….”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부자연스러울 지경이니.
다만 알 수 없는 건 이유였다.
“왜지?”
주예린 역시 주대현의 손녀였다. 후계자는 각성자인 주하린으로 정해졌다 하더라도, 굳이 제거할 것까지는 없다. 주예린이 뒤늦게 각성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 구도가 흔들릴 일은 없을 테니까.
아니, 이제 와서 각성한다 해도 너무 늦었다. 지지 기반이 확실해졌으니까.
게다가 주하린은 주예린을 구하려 했다. 이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던 눈치였다. 지시한 건 회장, 주대현의 뜻이란 의미였다.
‘손녀를…….’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도 대답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도율이 발걸음을 옮겼다. 쓰러진 집행부가 있는 곳을 향해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그 발걸음 소리에 집행부 요원들이 직감했다.
“하……. 죽일 테면 죽여 봐라! 한마디라도 벙긋하나!”
“그래?”
분근착골 좀 당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도율이 위세 좋게 소리친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발치에 남자의 얼굴이 놓여 있었다. 왜 나부터냐고, 시발… 하고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설명하지.”
“어이, 할배!”
동료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표정은 굳건했다. 이미 여우 가면은 들을 자격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믿었다.
“그 전에…….”
노인이 다른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불타는 숲을 헤치고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등에 업은 채 나타났다.
등 뒤에 얹은 코트는 그들이 입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검은 대현의 코트였다.
“학, 하악…….”
주하린이 겨우 걸음을 옮겼다.
등에 업은 주예린을 지키기 위해 마력을 돌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보호하거나 회복시키는 종류의 기술은 희귀했지만, 정령사인 주하린은 미약하게나마 흉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평소 사용하지 않던 분야여서 소모가 막심했다. 그래도 절대 그만둘 수 없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마력을 쥐어짜 간신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순간, 주하린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주하린 씨.”
도율이 주하린의 어깨에 팔을 넣어 쓰러지는 몸을 지지했다.
그을음 하나 없는 새하얀 바탕에, 붉은 도료로 칠해진 곡선 무늬. 여우를 닮은 모양새의 가면을 쓰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에.
“아…….”
주하린이 안도하듯 정신을 잃었다.
* * *
‘어쩐다.’
클레어는 크리스마스 이브, 홀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도율을 보내 주고 홀로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거리에는 다른 커플들로 가득했다. 오늘이 그런 날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실은 평소와 다르지 않지만, 유독 그녀의 눈에 띄는 걸지도 모른다.
평소 혼자서 외출해 시간을 보내는 것엔 전혀 익숙하지 않은 그녀였다. 원래라면 매니저인 도은이 항상 리드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도 불러낼 순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있는 걸 알면…….’
자신이나 도율이나 좋은 소리 못 들을 게 뻔했다. 특히 도율은 제아무리 허락이 있었다 한들 질타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도은이를 불러낸다는 선택은 지워졌다.
‘한번 살려 줬다, 진짜.’
결국 달리 불러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렇게 홀로 길거리를 구경하던 도중.
“안녕♥”
신경을 긁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레어가 돌아보자 그곳엔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성이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목의 근처에서 칼같이 단정하게 잘려 있었다.
“우리 본 적 있지?”
샤디아가 그렇게 물었다.
두 사람은 초면이 아니었다. 예전, 도율이 급하게 뛰어간 어느 가게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가게 마감 시간이 될 때까지 대작을 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클레어가 고개를 갸웃하며 목걸이를 매만졌다. 그녀가 차고 있는 아티팩트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막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 효과는 분명히 아직도 유효했다. 그런데 왜 불청객이 찾아온 거지?
그 의문을 눈치챘는지, 샤디아가 검지를 쭉 뻗어 눈동자를 가리켰다.
“이게 좀 특수 체질이라서.”
그녀의 말에 클레어가 샤디아의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황금색 눈동자는 얼핏 짐승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방송은 잘 보고 있어. 아주 재밌던데?”
“…….”
“그보다 지금은 혼자야? 그럼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지 않을래?”
샤디아의 제안에 클레어가 딱 잘라 거절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냉랭하긴.”
샤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조금 튕긴 것 가지고 굴할 그녀가 아니었다. 그사이 혼자 앞서나간 클레어에게 따라붙으며, 샤이다가 재차 물었다.
“우리 저번에 얘기했던 거 기억하지?”
“…….”
클레어가 걸음을 멈췄다.
일전, 가게에서 둘이서 대화할 때.
보는 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샤디아가 소리 죽여 언질했었던 말이 있었다.
“어때? 확인해 봤어? 응?”
샤디아가 재잘거렸다. 클레어는 그런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고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확인해 봤어요.”
“어땠어?”
즐거운 듯이 묻는 샤디아에게 클레어가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아시다시피, 저도 헌터입니다. 다른 사람 몸에 흉터 좀 있다고 보기 흉하단 생각은 안 합니다.”
그건 도율의 몸에 대한 내용이었다. 도율의 몸에는 빼곡할 정도로 많은 흉터가 있었다. 그의 과거를 아는 클레어에겐 모두 이해가 가는 흔적들이었다.
그러나 클레어의 대답에 샤디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풋. 아하하! 전혀 모르잖아, 너!”
얼마나 우스운 건지 길거리에서 배를 잡고 눈물을 닦을 지경이었다.
눈에 띄기도 하고, 이해도 할 수 없었다. 클레어가 샤디아를 내버려 두고 떨어지려는 사이, 샤디아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그녀의 발길을 붙잡았다.
“역시 넌, 내가 보기엔 자격 미달이야.”
“…뭐요?”
클레어가 험악하게 샤디아를 돌아봤다. 샤디아 역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어딘가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궁금해?”
샤디아가 엄지손가락으로 옆에 늘어선 카페를 가리키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커피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