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아는 사람
“누, 누구를 만났다고?”
여기는 각성자 지원 센터, 센터장 집무실.
센터장 영감에게 근황을 보고하며, 대현 그룹과 있었던 일 또한 빼놓을 순 없었다.
영감이 발급해 준 블랙 라이센스를 헌터가 아닌 주예린에게 보여 준 적이 있으니,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말해 둘 필요가 있었다.
‘따로 걱정할 건 없겠지만.’
물론 주예린이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아니라, 대현 그룹의 손녀인 만큼 입단속은 제대로 할 거라고 믿었다.
게다가 그게 주하린의 부탁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당분간 시간 내기 어려울 거라고 영감에게 미리 일러뒀던 탓에. 영감 또한 내가 그쪽 일에 관여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인터넷에 마구 뿌려진 기사를 통해 눈치챌 수 있었을 테니.
그래서 대현 그룹에 관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수 있는 부분만 걸러서 전달했는데. 그중에는 내가 주대현을 만났다는 점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영감은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어왔다.
“직속 부대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은 게 아니란 말인가?”
“직속 부대라면, 집행부인가 하는 걔들 말인가?”
“그래, 그거.”
영감이 말 잘했다는 듯 손가락질했다.
나는 찻잔에 담긴 커피로 목을 축이며 대답했다.
“그 친구들하고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말이 안 통했다니…….”
그러자 영감이 안 그래도 움푹 패인 눈동자를 더욱 크게 뜨며 물었다.
“자네, 설마 싸웠나? 그자들하고?!”
“그만 놀라. 눈 튀어나올까 겁난다.”
“지금 농담할 때가……!”
영감이 이이익 하고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쳐다봐도 이미 저지른 일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 좋게 끝났으니까.”
“…자네가 잘 모르나 본데, 집행부란 이름이 갖는 무서움은 개개인이 갖는 강함이 아닐세.”
영감이 훈계를 늘어놓았다.
“회장의 말이라면 목숨을 버려서라도 따르는 자들. 그게 옳은지 그른지 판단도 하지 않고,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부품’을 바꿔서라도 완수해내고 말지. 그건 이미 인간 집단이 아니란 말일세.”
확실히 집행부라는 녀석들은,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프로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건 바로 광기에 가까운 충성심이었다. 그건한 단순한 고용인과 피고용인 관계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물론 한두 명 정도는 어떠한 사연을 통해 충성을 맹세하는 심복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걸 단체로, 집단으로 만드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그건…….’
나 역시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쪽 세상에선 각성자나 헌터 따위와는 연이 없는 평범한 삶을 보냈던 내가 그 방법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낯선 세상에서 겪었던 일 때문이었다.
좋지 않은 기억이었다.
“아무튼 하나를 쓰러뜨린다고 끝이 아니란 말일세. 그들은 회장의 뜻이 이뤄질 때까지, 대현이 꺾이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그래서 다른 집행부도 다 손봐 줬지.”
“뭐?”
“한꺼번에 다.”
영감은 이번엔 입을 크게 벌렸다.
그 나이 먹고 입을 그렇게 벌리면 턱 빠질 텐데.
“한꺼번에… 집행부를 전부 다?”
영감이 되묻는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부는 아니었다. 하나는 먼저 상대했고. 뒤따라 온 건 세 명이었다. 전부 다섯 명인데, 나머지 한 명은 내가 쓰러뜨린 게 아니긴 하고.
그래도 다섯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결과는 똑같았을 거라고 확언할 수 있다.
“그러게 말하지 않았나. 좋게 끝냈다고.”
“…….”
영감은 이젠 아예 혼이 빠진 듯한 모양새였다.
“자네, 내 밑에서 일하고 있다고 그쪽 사람들한테 얘기한 적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음. 아마도.”
주하린에겐 얘기했던 것 같다.
“…졸지에 핵폭탄 키운 노친네 신세가 됐군.”
“그래도 자기 부한데, 뭐 어떤가. 어디 가서 맞고 오는 것보단 낫지 않나?”
“자네는 그걸 위로라고 하나?”
영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주대현, 그 작자와 직접 만났다는 건 과장이 아닌 모양이군. 그야 집행부를 모두 제압했다면 궁금해서라도 직접 부를 만하지…….”
신기한 일이라는 듯 중얼거리는 영감.
그에 내가 물었다.
“직접 만나 본 적 없나?”
“옛날에나 그랬지. 틀어박힌 후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네.”
영감은 오래 전 일을 회상하는 듯, 눈의 초점이 먼 곳을 향해 맞춰져 있었다.
“그게 내가 젊을 때 일이니까, 벌써 수십 년도 전의 이야길세. 무슨 이유에선지 누가 됐든 한 번도 만나 주지 않았고.”
“마치 예전에는 곧잘 만나던 사이였던 것 같은 말씀이시군.”
“…글쎄.”
그 이유에 대해서 나는 들은 적이 있었다.
주대현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와 같은 자들은 속세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도리이기 때문이라나.
“그래 놓고 갑자기 손녀랍시고 애를 둘이나 툭 던져 놓는데, 좌우간 이 영감탱이, 보이지도 않더니 이런 소식도 재깍재깍 안 전하곤. 어디서 주워 온 애들 아니야, 싶었다네.”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는 게 좋겠지.
“어쨌든 보고할 내용은 이게 전부다.”
“그렇구만.”
센터장 영감이 다시 평온한 얼굴로 커피를 마셨다.
“궁금하진 않고?”
“뭐가 말인가?”
“내가 주대현과 무슨 얘기를 했을지.”
그러자 영감이 심드렁하게 귓구멍을 팠다.
“그야 자네가 말하지 않으면 어련히 이유가 있겠지. 그보다 부디 말하지 않았으면 하네.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이 늘어나는 건 사양이니까.”
“그런가?”
“…아니.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아는 편이 다행인가?”
영감이 머리를 싸매고 고뇌에 빠졌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내가 도와줄 부분은 아니었다.
“아, 참.”
“또 뭔가?!”
센터장 영감이 겁에 질린 얼굴로 외쳤다. 마치 내가 입을 열 때마다 폭탄 발언이라도 하는 인간인 것 같은 반응이었다.
4대 길드 중 하나를 완전히 박살 내 버린 일이나.
도시 하나를 통째로 장악한 뒷조직의 우두머리를 날려 버린 일이나.
나와 얽히면 스케일이 큰 사건에 휘말리기는 하지만. 둘 다 본인이 완전히 무관했던 일도 아니면서, 나만 문제아 취급하면서 빠져나가면 섭하지.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 둬야 할 것 같았다.
“영감이 줬던 보석, 그거 썼어.”
“보석이라니……. 세이렌의 눈물?”
“그래, 그거.”
그러자 영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걸 대체 어느 틈에……?”
“쓰라고 준 거 아닌가?”
“아니, 맞긴 하지만. 어쩌다 그렇게 된 건가?”
이 역시 자세한 설명은 주대현과의 대화 내용이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최대한 간단히 정리했다.
“대현 쪽 일이 있을 때. 다친 사람 구하려고.”
“그…런가?”
“그래.”
영감은 여전히 무언가 속이 시원하지 않은 눈치였다.
보석을 건네줄 때부터 전설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으니. 설마 자기도 정말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다는 걸까.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전설은 사실이었고.
확신이 없었다 해도 도움이 된 건 분명했다.
“요긴하게 잘 썼다고.”
“…그래. 그렇다면 된 거지.”
왠지 진이 빠진 듯한 기색이었다.
* * *
“짠합시다, 짠!”
정혜경이 잔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확실히 무대에 자주 서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썩 조용하지 않았던 가게를 온통 뒤덮을 정도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도 잔을 들고 주변 사람들과 잔을 맞췄다.
“생각보다 금방이었네요.”
“그러게요.”
오늘은 예능 프로그램 ‘부부의 세상’ 방영 종료를 기념하는 회식이었다.
‘원래 예능이라는 게 이렇게 짧은가?’
내가 아는 건 장수하는 몇 년 짜리 예능들 뿐이었다. 겨우 한 달 남짓한 방영 기간을 가지는 건 생소했다.
함께 출연했던 강종우가 설명했다.
“요즘은 다 이래요. 시즌제라고 해서, 시청자 반응을 보고 더 할지 말지 보는 거죠.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지기도 쉽고요.”
“그렇군요.”
애초에 승낙한 것도 기간이 짧게 잡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나한테 선택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즌 투를 기원하는 자리이기도 한 거죠.”
“아하…….”
미안한 말이지만 난 반대였다.
아니면 출연을 안 하든가.
“시즌 투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마무리가 좀 거시기했던지라.”
쓰읍, 하고 강종우가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마무리라고 한다면 크리스마스라는 대목 이벤트를 놓치게 된 그 사건을 얘기하는 걸까. 아니면 동물 학대 논란을 말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무안한 일이었다.
“그건 면목이…….”
“있을걸요? 시즌 투.”
이야기에 끼어든 건 주예린이었다.
그녀 역시 같은 방송의 출연자로, 회식에 참가하는 건 이상할 거 없는 일이었다.
주예린의 말에 강종우가 화색이 되었다.
“오. 정말입니까?”
“네. 이런 저런 사건이 있었지만, 어쨌든 방송이란 거야 화제만 되면 장땡인 거라고요.”
주예린이 악당 같은 웃음을 지었다.
이 여자는 역시 이런 얼굴이 잘 어울려.
“그리고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니니 떳떳하지 못할 것도 없고. 오히려 보고 싶은 걸 못봤던 시청자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을 테니, 제작에 박차를 가하기엔 딱 좋은 상황이죠. 물론 준비 기간이 살짝 필요하긴 하겠지만.”
“이야, 제작까지? 그거 분명 어디서 들으신 거죠?”
“우리끼리만의 비밀이에요.”
주예린이 검지를 세웠다.
나야 방송가의 이야기는 들어도 잘 모르는 일투성이였으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 하지만 우리야 방송 나가는 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지만, 따로 본업이 있는 분이 스케줄이 괜찮을까요?”
강종우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외적으로, 나는 본업이 따로 없다.
그러니까 물어보는 건 클레어에 관해서다. 클레어는 헌터이고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본업이니까. 방송에 출연하느라 그쪽이 소홀해져서야 본말전도다.
문득 그게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던전 공략은 인류 전체를 위한 숭고한 거사인 법이다.
“아마…….”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 주예린이 내 말을 가로챘다.
“본인에겐 허락받고 왔어요.”
“예?”
“지금까지와 같은 촬영 스케줄이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어지간히 피곤할 텐데, 역시 각성자는 체력도 좋아. 난 두 탕 세 탕은 못 뛰겠던데.”
“하하. 그거야 클레어 씨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직 강철도 씹어 먹을 나이죠.”
“…그건 제가 나이 들었다는 소리로 들리는걸요?”
“하… 하하…….”
주예린과 강종우.
두 사람 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강종우 저 사람은 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입만 열면 말썽이군.
“잠시 바람 좀.”
나도 파란이 일어나기 전에 자리를 떴다.
* * *
“이런 곳에서 뭐 해요?”
“피난.”
“……?”
내 대답에 클레어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는 클레어 씨는? 왜 밖에 나왔어요?”
“저도 피난이요.”
“웬…….”
클레어가 가볍게 웃으며 창문 안쪽 가게의 풍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농담 아니에요. 진짜 큰일 났거든요.”
“무슨 일인데요?”
“강종우 씨가 주예린 씨 칭찬하다가 정혜경 씨한테 들켰거든요.”
“…….”
그렇군.
지난 발언을 수습하기 위해 혀에 기름칠 좀 하다가 자기 와이프한테 딱 걸린 건가.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딱이었다.
“저기…….”
그런 클레어가 창문에서 떨어져 시선을 향한 곳은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듯한 현장이었다. 고성이 들려, 금방이라도 싸움으로 번질 것만 같았다.
늦저녁의 번화가이니, 다소 소란스러운 일 정도는 있을 수도 있다.
‘내가 경찰도 아니고.’
굳이 간섭할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하지만 클레어는 생각이 조금 다른 듯했다.
“말려야…….”
그런 클레어를 따라 소란의 근원지에 시선을 옮기니. 당사자로 엮여 있는 듯한 사람들 속에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저건…….”
“아는 사람이에요?”
클레어의 물음에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성인의 허리춤에 올 정도로 작달막한 키를 가진 어린아이가 어떤 남자의 바지춤 뒤에 숨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사무직 엘리트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남자였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진 인상에 지나가는 눈으로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기를 펼쳐 확인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백우진.
내가 없애 버린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던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