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진짜 인간은 아니야
“뭐? 백우진이?”
어제 백우진과 만난 후 오늘 내가 찾아온 곳은 영감이 있는 각성자 지원 센터였다.
영감은 내가 가장 편히 정보를 물어볼 수 있는 상대인 동시에, 직장의 직속 상사라고 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백우진에 대해 묻자, 영감은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갑자기 그 친구는 왜?”
“그냥, 어제 우연히 만나게 돼서.”
그러자 영감이 눈매를 좁히고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 사람아. 내 자네 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잘못이 없는 친구한테까지 그러면 쓰나? 연좌제는 안 돼.”
“…그런 거 아니야.”
연좌제緣坐制라니.
영감은 내가 백우진에 대해 알아보려는 이유가 플레이아데스 길드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플레이아데스가 도은이를 병에 걸리게 한 건 맞았다. 그래서 내가 그 길드를 완전히 박살 낸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뒷일은 영감과 센터 직원들이 잘 처리해 주었다. 여러 불법적인 실험들과 비열한 범행들을 파헤쳐 공개한 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세상에 경고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길드와 관련되어 있던 대부분의 인간들이 대가를 치렀지만.
백우진. 부길드장인 그가 그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건 확실히 의외이긴 했어도. 관여한 게 없다면 악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건데.’
내가 거기에 치를 떨게 된 건 저쪽 세상에 있을 때 겪었던 일들 때문이었다.
가족이나 친척은 물론. 아는 형님과 동네 친구부터 같은 문파의 사형, 사제, 스승, 제자. 온갖 관계로 엮인 무림인들이 체면을 빌미로 복수니 원수니 하며 찾아올 때부터.
당사자의 일은 당사자끼리 끝내는 게 최고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론은, 현재 나는 백우진에게 어떠한 악감정도 품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대체 왜 물어보나?”
영감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잘못 대답하면 감시할 사람이라도 붙일 기세였다.
원래 굳이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괜찮겠지, 영감이라면 말해도.
“아이가 있길래.”
“아이? 무슨 아이?”
나는 어깨를 으쓱해 나도 잘 모른다는 뜻을 전하며 대답했다.
“어린 여자애. 본인 말로는 먼 친척이라 하던데. 진짜 그런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친척이라…….”
영감이 턱을 긁었다.
플레이아데스 길드 사건으로 오갈 데 없어진 아이가 생겼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겠지만. 영감이 그런 사정이 생긴 아이를 놓쳤을 리는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내 함 알아봄세.”
“부탁 좀 하지.”
“무얼. 내가 발로 뛰는 것도 아닌데. 조사 결과는 그 친구가 직접 알려 줄 거야.”
“그 친구?”
그러자 영감이 씩 웃었다.
“왜, 알지 않나? 기밀 자료라든가, 인적 사항이라든가. 모르는 걸 알아보는 일에 적격인 친구.”
영감이 그렇게 소개할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또한 내가 아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 자칭 탐정?”
탐정이라고 한다면, 불야성에서 아크투러스 토너먼트에 참가할 때 손을 잡았던 조력자를 뜻했다.
탐정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센터장 영감에게 임무를 받아 수행하는 비밀 조직 ‘현학’의 멤버였다.
원래 현학은 각자가 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조직이었다. 그런 곳에서 서로 얼굴까지 알고 있으니 나름대로 깊은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 그 친구.”
그 이후로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오랜만에 보게 되겠군.
“그런데 의외군. 자네가 그런 오지랖을 다 부릴 줄이야.”
“…….”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난 백우진이 갈 곳 없는 아이를 보호하고 살든, 아니면 보호 시설에 맡기든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건 백우진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하지만 정확히는.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 여자아이 쪽이었다.
‘왠지…….’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외양에 비해 조금 의젓할 뿐, 행동거지가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파란한 일을 겪으며 배운 태도라고 한다면 말이 됐다.
그리고 마력에 관해서도 특별한 뭔가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도 이제는 이쪽 세상에 제법 익숙해져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완전히 적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었다.
“뭔가 걱정거리라도 있나?”
“…아니.”
뭔가 알게 된다면, 이 생각이 쓸데없는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그때 영감이 뭔가 깨달은 듯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자네, 설마…….”
영감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 채로 물었다.
“부러운 건가?”
“뭐?”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되물었지만. 영감은 이미 홀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런가. 옛날에야 아들이 선호되곤 했지만, 요즘은 딸이 좋다는 얘기가 많지. 오죽하면 딸 부자라는 말도 있겠나.”
“이봐, 누가…….”
“딸 낳으면 참 귀엽겠군. 그렇지 않나? 애 엄마 미모를 생각하면. 생각해 보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떠올렸다.
클레어를 닮은 딸이라. 그야 확실히 남자 여럿 울리고 다닐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왜 이런 생각을.
영감은 변태처럼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소식은 언제쯤 들을 수 있나? 으응?”
“…쓸데없는 소린 관두시지, 변태 노인네.”
영감도 클레어와 나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가 단지 겉으로만 부부 행세를 할 뿐인 계약 결혼 상태라는 걸.
그런 작자가 아이 얘길 꺼내다니.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었다.
그런 영감이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네도 참 고집불통이야.”
“…….”
듣기 싫은 말이라 그런지 입맛이 썼다.
* * *
“초대에 흔쾌히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도율 님.”
예의 그 까마귀가 예를 표했다.
까마귀라고 한다면 이전 ‘망량’이라는 존재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던 그 녀석이었다.
그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이 없더니, 어째서인지 오늘 내게 찾아와 초대를 보낸 것이었다. 여전히 이유는 미리 알려 주지 않은 채.
망량.
처음에는 그 말을 반신반의했지만, 주대현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다시 한번 그와 만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나는 집에서 낮잠을 자던 흰돌이의 목덜미를 붙들고 데려왔다.
「또 거길 가는 겁니까?!」
「넌 운동 좀 해야 해.」
흰돌이는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해 확연히 살이 올라 있었다.
이대로 좀만 더 찌면 이번엔 강아지냐 고양이냐를 떠나서 그냥 많이 먹여서 비만 만들었다고 동물 학대 논란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리고 살 빼는 데엔 계단 뛰어오르기만 한 게 또 없지.
「우웩…….」
상상만 해도 헛구역질이 난다는 듯, 흰돌이가 죽상을 지었다.
“가자.”
“예.”
까마귀가 문을 열었다.
방식은 이전과 같았다. 까마귀가 뽑아낸 털로부터 검은 먹물이 쏟아져 둥근 테두리를 그려 냈다. 이윽고 테두리의 끝과 끝이 이어지자, 폐쇄된 도형 속으로 빛바랜 풍경이 비쳤다.
‘여기, 어떻게 해도 찾을 수 없었지.’
내 쪽에서 먼저 망량을 찾아가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 세계로 향하는 문을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처음에 이 문을 봤을 땐 균열을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흉내를 낸 것에 불과했다. 보다 본질적으로 닮은 건…….
“역시.”
문 너머로 몸을 집어넣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예?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고.”
풍경 속 세상은 변함없이 이전과 같았다.
망량이 기거하는 저택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지키고 있는 자 역시 여전했다. 커다란 몸뚱이를 가진 나무 인간, 장승.
다른 건 저번과 달리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번엔 안 덤비나?”
“넌 이미 자격을 증명했다.”
“난 그리운데.”
내가 그리 말하자 장승이 그 커다란 얼굴을 한껏 구겼다.
“이쪽은 사양이다.”
상대가 싫다면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잠시 후.
「아이고, 죽겠다…….」
나를 등에 업고 돌계단을 오른 흰돌이가 나자빠져 숨을 고르고 있었다. 살이 쪄서 그런지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먹이를 조절해야 하나.”
「내려갈 때도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대협.」
흰돌이가 벌떡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참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망량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저택 안에서는 망량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바람에 나부끼는 긴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 그리고 입가에 물고 있는 긴 곰방대.
“여어.”
앉으라는 듯 망량이 손짓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정해 준 자리에 앉았더니 까마귀가 이전처럼 찻상을 내왔다. 그때는 좋은 차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그동안 잘 지냈어?”
“그럭저럭.”
“그래. 별일 없었다니 다행이네.”
망량은 다급한 기색도 없이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굳이 사람을 불러냈으니 무언가 용건이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망량의 태도는 여유로웠다. 손님을 앞에 두고 보채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듯이.
그 틈에 난 한 가지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여길 내가 스스로 찾아올 순 없던데.”
“아~”
망량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사정이 좀 있거든. 날 미워하는 친구들이 좀 많아서.”
“완벽한 은신처.”
초대를 받은 자가 아니면 찾아올 수도, 존재를 알아챌 수도 없는 공간.
“이 공간 전체가 너의 파경대계인 거지?”
“…….”
그런 나의 말에, 망량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산봉우리가 몇 개나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공간. 아직 가 보진 않았지만 분명 웬만한 도시보다 커다란 크기일 거라고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커다란 곳이기에 쉽게 예상하긴 어려웠지만.
몇 차례의 싸움을 거치며 파경대계란 것에 대해 몸으로 익히게 되며 그 감각을 파악하게 된 결과.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이곳이 망량의 파경대계였다.
그렇다고 한다면 한 번 방문했던 나조차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이해가 간다.
“짐작대로, 이곳이 내 대계 안이야.”
망량이 속 시원하게 시인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크기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정도 크기는 역시 범상치 않았다.
“말과는 달리……. 못 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나 본데?”
망량은 설마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는 듯이 놀라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파경대계는 아직이겠지?”
“그래.”
그 역시 사실이었다.
파경대계에 필요한 밑바탕은 대주천이다. 자신의 마력이나 내공을 신체 바깥까지 순환하는 흐름을 만들어 내는 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파경대계라는 기술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건 말야, 저번에 말해 준 것과 관련이 있어. 영혼, 기억하지?”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소우주를 펼친다는 건 그런 일이야. 영혼이 공명해야만 그 세계에 공감할 수 있지. 기술적 난이도를 떠나서, 강한 바람이 필요해.”
강한 바람이라.
확실히,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나만의 소원 같은 건 달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얘기나 하자고 찾아온 건 아니었다.
“그 얘기는 그만 됐고. 용건이 뭐지?”
“음.”
망량이 멋쩍게 웃었다.
“사실 내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불러 봤어.”
“부탁하고 싶은 일?”
“그래.”
망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보다시피 난 여기서 나갈 수 없는 몸이라서. 그런데 바깥에서 해야 할 일이 조금 있어. 그걸 네게 부탁하고 싶어서 부른 거야.”
망량은 이곳에서 나갈 수 없었다. 이 은신처는 어딘가의 장소가 아니라 그가 만들고 있는 결계였으니까. 어디로 이동하든, 결국 그는 그 안에 있어야 했다.
정확히는 이 대계를 해제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부탁이라.’
망량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주대현과 나, 두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으니까.
“말해 봐.”
그러자 망량이 고맙다는 의미인지 슬며시 미소 짓고 고개를 까딱였다.
“사람을 하나 찾아 줬으면 해서.”
“사람?”
“아, 물론.”
망량이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진짜 인간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