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냅둬
“그래서, 그 사람이란 건?”
내 물음에 망량이 눈을 내리깔았다.
“내겐 ‘이매’라는 누나가 하나 있었어.”
“있었다고?”
마치 지금은 없다는 것 같은 말투였다.
“오래전에 사라졌거든.”
망량이 쓰게 웃었다.
오래전이라. 그게 구체적으로 얼마나 전의 이야기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세월의 흐름이 멈춘 듯한 이곳에서 오래전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단순히 몇 년 전은 아니라 여겨졌다.
“누나는 말도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어. 그때 난 누나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맸지.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누나의 흔적을 찾을 순 없었어.”
그 이야기를 꺼내는 망량의 표정은 전에 없이 굳어 있었다. 늘 웃으며 서글서글한 인상을 주던 남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누나와 비슷한 기운의 흔적이 발견된 거야.”
“비슷한 기운이라.”
그러자 망량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맞아. 누나의 기운이 정확히 느껴졌다면, 나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찾으러 갔을 거야. 하지만… 네 말대로, 그건 비슷하긴 했어도 누나의 기운과는 확연히 달랐어.”
그런 걸 착각할 일은 절대 없다고, 망량이 덧붙였다.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오래전에 헤어졌던 누나와 비슷한 흔적이 발견되었으니, 내게 그 조사를 맡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이 은신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에.
내용은 이해했다.
하지만 들어주고 자시고를 따지기 전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부탁하는 건 좋은데. 난 사람 찾는 데는 재주가 없어.”
물론 기감을 통해 숨어 있는 사람을 알아차리거나, 특정 인물이 어디 있는지 감지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생판 남이 어디 있는지 광범위하게 찾는 건 불가능했다.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망량이 품에서 천에 싸인 물건을 꺼냈다.
안에 들어있는 건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고둥이었다. 그러니 진짜 바다에서 주운 고동은 아니었다. 그 끝에 목걸이로 쓸 수 있는 것처럼 끈이 달려 있었다.
고작해야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 크기니까 분다고 해서 소리가 날 것 같진 않았다.
“이건?”
“누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면, 이 물건이 반응할 거야.”
“그렇군.”
내가 물건을 받아 들었다.
남자인 내가 이걸 목에 걸고 다니는 건 영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지.
그나저나.
누나에 대한 흔적을 찾아 주겠다는 부탁을 들어주는 건 좋지만. 그럼 이걸 들고 이런저런 장소를 돌아다녀야 한다는 뜻인가.
마침 당장은 크게 할 일이 없었다. 클레어와 함께 출연하는 예능 촬영도 끝났고.
하지만 이 고둥이 그 흔적이라는 거에 얼마나 잘 반응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대충 돌아다녀도 되는 건지, 아니면 꼼꼼하게 이곳저곳 뒤져 봐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반응이라는 건 얼마나…….”
그렇게 물어보려는 찰나.
손에 쥔 끈으로 미약한 진동이 전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둥을 내려다보니, 고둥이 아주 작게 떨고 있었다.
“이건?”
망량 역시 그 광경을 놀랍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흔적… 이야.”
“흔적이라고?”
그렇게 말한 망량이 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렇게 쳐다봐도 곤란했다. 난 여동생이 하나 있긴 했지만, 망량의 누나는 아니었다.
“이건 잔향이야.”
“잔향이라고?”
“그래, 네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 누나와 비슷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지. 혹은, 가 봤던 장소 중에 있거나.”
그런가.
내가 만났던 사람. 혹흔 가 봤던 장소. 그중 하나에서 이와 같은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걸 되짚어 가며, 고둥이 강하게 반응하는 무언가를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일이 좀 더 간단하겠군.”
약하게 떨리는 고둥을 주머니에 넣었다.
“역시. 네게 부탁하길 잘한 것 같아.”
망량이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하며 웃었다.
* * *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라…….”
손으로 줄을 쥐고 고둥을 내려다보자, 나무 고둥은 여전히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웬 목걸인가요, 그건?”
클레어의 목소리였다.
“아는 사람한테 부탁을 좀 받아서요.”
“부탁?”
“이걸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나.”
당연하지만 고둥은 클레어에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내가 이 세계로 돌아오고 나서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사람이 바로 클레어였다. 가족인 아버지나 도은이보다도 더.
그러니 고둥이 클레어의 흔적에 반응한 거라면 잔향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은 아니었을 거다. 아마 엄청 크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클레어는 아니었다.
“또 무슨 일을 하는 건지…….”
클레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꼽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클레어에겐 내게 잔소리할 시간이 없었다. S급 헌터로 활동하러 가기 위한 시간이었으니까.
여러 일정이 있었지만, 오늘은 팀원들과 모여서 회의를 하는 날이라 들었다. 던전을 분석하거나 공략 방법을 짜내거나. 그에 맞는 훈련을 하고, 대응할 장비를 알아보는 등.
그래도 팀이 생긴 이후엔 한결 여유가 생긴 모습이었다. 원래라면 도은이와 둘이서 해야 할 일을, 대부분은 팀장인 청진명의 소속 길드 ‘로얄 로드’의 분석팀이 도맡아 해 준다나.
‘그러고 보니…….’
클레어는 청진명이란 남자가 팀장으로 있는 팀의 소속이었지만.
나 역시도 청진명이란 남자와는 구면이었다. 그 팀원들도 오다 가다 한 번씩 얼굴을 본 적이 있었고.
나는 고둥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따라가도 돼요?”
“…네?”
그러자 클레어가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상관은 없지만……. 다른 매니저들도 와서 대기하는 곳이 있으니까 거기에만 있겠다면 괜찮을 거예요, 도은이도 있고.”
그렇게 사무적으로 대답하던 차에, 클레어가 문득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죠?”
“…그냥, 아내가 신세 지고 있는데 인사 안 한 지도 오래됐고…….”
“무슨 소리예요? 당신 그런 거 한 번도 한 적 없으면서.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도 아니고.”
이래서 사람이 평소 행실이 중요하다는 건가.
클레어가 눈을 반쯤 게슴츠레 뜨고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양쪽 허리에 손을 얹으니 마치 모델 같은 자태가 어우러졌다.
“바른 대로 말하면 허락해 줄게요.”
“…….”
이 일은 망량이 부탁한 일이었다.
클레어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하는 건 설명할 게 너무 많아지는데.
무엇보다도 집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긴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동하면서 이야기하자니, 도은이도 함께일 테니 그럴 수도 없고.
결국 나는 클레어의 뒤로 돌아가 등을 떠밀었다.
“자, 자. 갑시다. 오늘은 내가 오랜만에 일일 매니저라고 치고.”
“아니, 잠깐……. 뭘 멋대로……!”
클레어는 나름대로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지만. 그래 봤자 내 힘을 이겨 낼 순 없었다.
“이익…….”
S급 헌터인 만큼 많은 운동량으로 단련된 몸. 거기에 마나까지 사용한다면 웬만한 남자가 밀어도 꿈쩍하지 않을 테지만, 나한텐 안 먹혔다.
결국 클레어는 질질 밀리다가 현관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체념했다.
“하아. 내 팔자야.”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속이 뜨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나오자 클레어를 기다리던 도은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여? 오늘은 왜 같이 나왔어?”
“나도 따라가려고.”
“뭐어?”
도은이가 얼굴을 괴상하게 찌푸리고 딱 붙어서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이 인간이 뭘 잘못 먹었나 하는 표정이었다.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러지?”
도은이야말로 내가 왜 이러는지 짐작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클레어는 나름대로 내가 센터장 영감의 밑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도은이에겐 그런 사실조차도 밝히지 않았으니까.
그동안 나는 주머니에 넣어 둔 고둥을 매만졌다. 반응은 별달리 차이가 없었다.
‘당연한가.’
얘는 내 동생이니까.
“그냥. 가자고, 오늘은 내가 운전할 테니까.”
“당연하지!”
도은이가 냉큼 뒷좌석에 올라탔다.
내가 운전석에, 클레어가 조수석에 앉자 도은이가 핸드폰으로 네비를 찍고 외쳤다.
“고고!”
목적지는 로얄 로드였다.
* * *
“뭐?! 누가 온다고?”
소파에 드러누워 컵라면 볶음을 집어 먹던 청진명은 송민아가 전한 소식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청진명의 선글라스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송민아는 그런 청진명의 반응에 깬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대답했다.
“왜, 걔 있잖아, 클레어네 남편.”
방금 전 클레어와의 연락을 통해 들은 내용이었다. 오늘은 원래 오던 매니저인 이도은과 함께 온 일일 매니저가 있는데 괜찮겠냐는 질문.
그야 그 똑 부러지는 매니저가 데려온 신입이라면 알아서 관리할 테니, 자신들이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괜찮았다. 기껏해야 사람 수 하나 더 준비할 게 조금 는 정도.
그런데 그 사람이 다름 아닌 클레어의 남편.
‘그 인간…….’
송민아는 그를 영 떨떠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간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플레이아데스 길드 사건의 배후에 있는 그 ‘칼날’의 정체가 바로 이도율이라는 사실을, 송민아는 직접 봐서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클레어에겐 지독한 짓을 하는 걸 보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게 더 이상했다.
최근엔 화해했는지 같이 방송도 나오고, 인터넷에선 아주 난리인 것도 같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나서 그런지 금방 가라앉기도 하고.
하지만 청진명은 그런 복잡한 사정 따위는 모르는 듯, 기대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도율 말하는 거 맞지?! 막내가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혼하고 새 남자 만나거나 하진 않았지?”
“이런 미친놈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켁, 켁!”
송민아가 청진명의 멱살을 잡고 응징했다.
청진명이 마구 탭을 쳤지만 송민아의 손아귀는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송민아는 청진명의 폐활량이라면 손에 잡힐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광경처럼 보였지만, 송민아는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청진명에게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너 설마, 아직도 그 인간이랑 싸울 생각이야?”
“…….”
“내가 말했잖아. 그 인간, 보이는 것 이상으로 보통이 아니라고. 플레이아데스 길드 사건 알지? 거기 깨부순 작자가 그 인간이라고. 아무리 너라도 그런 인간한테는…….”
이길 수 없다.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청진명인 목이 졸린 상태에서도 씨익 웃더니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히려 좋아.”
“…….”
그 말에 송민하가 질렸다는 듯이 청진명을 내동댕이쳤다. 바닥에 자빠진 청진명을 보지도 않고 송민아가 악담을 퍼부었다.
“그래, 어디 네 좋을 대로 한번 해 봐라.”
풀려난 청진명이 송민아로부터 도망치듯 밖으로 뛰쳐나가며 외쳤다.
“내 창 가져와!”
“…….”
그랬다.
청진명은 이도율과 한번 싸워 보고 싶어 했다. 구두로지만 약속을 받아 낸 적도 있었다. 그 일이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문제는 그사이에 이도율이 잠수를 탔다는 점. 클레어에게 소식 좀 물어보려고 해도, 청진명이 그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클레어가 살벌하게 노려보기에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손가락만 빨며 기다리다가, 이도율이 제 발로 굴러들어오고 있다는 소리에 청진명이 뛰쳐나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왜 저러는 기요?”
함께 방 안에 있던 고철민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매니저 한 명 더 온다카는데 창은 또 왜 들고 나가는 겁니꺼? 누님은 알아요?”
돈이라도 떼먹혔나?
고철민이 중얼거렸다.
“…냅 둬. 저러다 큰코다쳐 봐야 정신 차리지.”
“예?”
송민아의 그 말은.
모르는 사람이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